요연(了緣)
【정견망】
한편, 그 원숭이는 칠선녀를 정지시켜 두고 정원을 뛰쳐나와 곧장 요지(瑤池)로 향했다. 가는 길에 적각대선(赤脚大仙)을 만나자 거짓말로 그를 속여 떠나보내고, 스스로 적각대선의 모습으로 변신해 반도회에서 제멋대로 굴기 시작했다.
요지의 보각(寶閣)에 이르니 문득 코를 찌르는 술 향기가 풍겨왔다. 여러 동자들과 선시(仙侍 시중을 드는 신선)들이 옥액경장(玉液瓊漿)을 옮기는 것을 보자 군침이 돌아 견딜 수 없었던 원숭이는 졸음벌레를 내놓아 사람들을 잠재웠다. 그러고는 즉시 배를 비우고 미친 듯이 먹고 마셨다. 배불리 먹고 술 기운이 오르자 그제야 취기가 서린 채 생각했다.
‘안 되겠군, 안 되겠어. 조금 있으면 초대받은 손님들이 올 텐데, 나를 탓하지 않겠는가? 당장 붙잡히면 어찌한단 말인가? 차라리 어서 처소로 돌아가 잠이나 자는 게 상책이겠어.’
그리하여 갈 바를 몰라 비틀거리며 술기운에 의지해 걷다 보니 어느덧 도솔천궁(兜率天宮)에 이르렀다. 사방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는데, 알고 보니 모두 태상노군과 연등고불(燃燈古佛)의 설법을 들으러 간 뒤였다. 어쩜 이리도 절묘하게 범행 시간과 장소가 마련되었는지, 원숭이는 길을 따라가다 단로(丹爐) 옆에 놓인 다섯 개의 호리병을 보았다. 호리병 안에는 모두 연마해 둔 금단(金丹)이 들어 있었다. 원래 이것을 얻으려 했던 것인지 대성(大聖)은 기뻐하며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선가(仙家)의 지극한 보배로구나. 만난 것이 곧 인연이지.”
원숭이는 도를 얻은 후 비록 한 몸 가득 재주를 익혔고 내외를 함께 수련해야 했으나,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부족한 것이 바로 기연(機緣)이었는데 마침 선단이 도움을 주게 되었으니 어찌 그냥 지나치겠는가. 그리하여 볶은 콩을 먹듯 선단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금방 단약이 가득 차고 술이 깨자 스스로 헤아려 보았다.
‘안 되겠군, 안 되겠어! 이번 화(禍)는 하늘보다도 크니, 만약 옥제를 놀라게 하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겠구나! 가자, 가자! 차라리 하계(下界)로 내려가 왕 노릇이나 하련다.’
본래 원숭이는 그저 입이 심심해 술과 음식을 훔쳐 먹고 반도회를 망친 것뿐이었다. 얄밉기는 해도 죽을죄까지는 아니었으며, 기껏해야 벌 좀 받고 말 일이었다. 재주가 있으니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보여주고 고개를 숙여 잘못을 인정하면 대충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처소로 돌아가 잠시 숨을 생각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선단(仙丹)을 훔쳐 먹은 것은 일이 커졌다. 그 선단이 얼마나 귀한지는 차치하고라도, 이것은 옥제를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하느님 몸을 보하는데 쓰는 것이니 하늘을 보수하는 것과 다름 없었다. 원숭이가 이를 훔쳐 먹은 것은 하늘에 구멍을 뚫은 격이며 삼계(三界)마저 문제가 생길 일이다. 그렇다면 이 화(禍)를 누가 감당하겠는가?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원숭이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사고를 치고는 오직 도망칠 궁리만 하며, 정 안 되면 하계로 내려가 왕 노릇이나 하면 그만이라는 식이었다.
원숭이의 문제가 보이는가? 처음에 생떼부터 시작해 나중의 방자함과 안하무인에 이르기까지, 이 녀석은 도무지 세상 물정을 모른다. 만약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반도회에 초대받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홧김에 난동을 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왕모의 반도회는 수만 년 동안 열려 왔고, 그때 원숭이는 바위 속에서 해와 달의 정기를 흡수하고 있었으니 반 푼어치의 연고도 없었다. 천궁에 와서 처음 맞는 반도회에서 관례에 따라 초대받지 못한 것뿐인데 상처를 입었다고 느끼고, 하찮은 식탐 때문에 큰 화를 자초했다. 그러니 보리조사가 그를 쫓아낼 때 사문의 이름을 대지 말라고 경고한 것도 당연하다. 원숭이가 세상 물정을 모르고 예의와 도리를 가리지 못하며, 성격이 급하고 화를 잘 내어 재주만 있을 뿐 내면의 악을 다스릴 줄 모르는 사고뭉치임을 진작에 꿰뚫어 보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승(唐僧)이 원숭이의 사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이 사부는 원숭이에게 전해줄 진경(眞經)도 없고 역시 세상 물정을 잘 모르며 별다른 재주도 없어, 처음에는 원숭이가 이 사부를 업신여기고 심지어 사문(師門)을 배반하려 하기도 했다. 긴고주(緊箍呪)가 있고서야 조금 얌전해졌다. 하지만 당승은 절에서 자랐기 때문에 다른 것은 몰라도 자비(慈悲)를 근본으로 삼을 줄 알았다. 비록 가끔은 선이 지나쳐 요괴와 사람을 구분하지 못해 스스로 고난을 가중시키기도 했으나, 초심을 고치지 않는 소중함이 있었기에 각처의 신선들이 도와주러 온 것이다.
당승이 오공에게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이 지녀야 할 기본적 도덕 규범이었으며, 도리에 통달하게 하여 기본적으로 사람다운 모습을 갖추게 하는 것이다. 왜 동물이 수련하려면 먼저 사람몸(人身)을 얻어야 하는가? 사람의 모습은 신의 형상을 본떠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인명재천(人命關天 사람의 명은 하늘에 달렸다)이라는 말은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이 실제로 더 고층의 생명과 대응하고 있음을 뜻한다. 수련하기만 하면 고층의 에너지와 연결되는 것이다.
반면 동물은 수련하려면 사람몸을 얻어야 하는데 위에 대응하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신의 세계에는 동물과 대응하는 형상이 없으며, 그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다. 비록 탈것이나 영물(靈物) 등이 있어 하계의 동물과 대응하기도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급이 낮으며 고층차로 올라가면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과거 구우주의 삼계에서 동물의 수련을 허용하기도 했으나, 생각해보라. 구우주의 사람도 수련해서 삼계를 벗어나기 힘든데 하물며 동물이겠는가. 또한 이것은 말세(末世)가 시작되면서 나타난 폐단으로, 온갖 마가 어지럽게 날뛰는 글자 그대로 ‘난(亂)’ 그 자체였다.
때문에 파룬따파는 오직 주원신(主元神)만을 제도하며, 부원신(副元神)은 제도하지 않고 단지 호법(護法)이 될 수 있을 뿐이다. 다만 능력과 내원이 극단적으로 강하고 호법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여 주원신과 일체동심(一體同心)으로 원만을 향해 나아가거나, 특별한 공헌이 있어 본연의 위치를 초월해 금자탑의 꼭대기까지 닦아 올라간다면 호법으로서 원만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동물은 더더욱 수련이 허용되지 않는다. 사람의 몸에 부체해 법을 훔치려 하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길이다. 그런 것들은 나타나는 하나가 나타나면 하나를 멸(滅)하는데, 대법제자를 해치려 한다면 형신전멸(形神全滅)의 결말뿐이다.
이 대목을 쓰다 보니 오래전에 읽었던 《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 속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떤 사람이 여우들이 모여 책을 읽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들이 읽는 것이 사서오경 같은 것들이었다. 이상하게 여겨 늙은 여우에게 물으니, 동물들이 수련하여 사람의 몸을 얻으려면 먼저 인성(人性)에 통달해야 하기에 성현의 글을 읽어 마음의 거울을 닦고 사람의 도리를 배워 인신을 닦을 기초를 다지는 것이라고 답했다. 대략 그런 뜻이었다. 당시 나는 속인이었지만 꽤 인상 깊게 읽었다. 동물조차 사람의 몸을 얻기 위해 인성을 배우려 하는데, 정작 사람의 몸을 얻고도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이들이 있다. 사상이 지옥 아래로 떨어져 사람 가죽을 쓰고도 머릿속은 짐승 같은 마음(獸性)으로 가득 차 온갖 악행을 저지르니 짐승만도 못한 것이다!
대법이 널리 전해지는 이때 사람의 몸을 얻은 중생들은 반드시 기연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천만년의 기다림이 바로 오늘에 있다. 무신론은 사람을 해치는 정도가 매우 깊다. 신이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든 것은 사람에게 수련의 기연을 주고 상계(上界)의 에너지 법칙과 대응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무신론은 사람의 바른 신앙(正信)을 끊어 신을 배반하게 하고, 사람이 신을 믿는 사상을 단절해 공산사령(共産邪靈)에게 접붙였다. 당신이 사령과 대응하면 짐승의 인장(獸印)를 받고 당문화(黨文化)에 세뇌되면, 영혼은 뒤틀려 짐승의 형상으로 변이된다. 즉, 당신의 생각 속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가 바로 당신의 존재를 결정한다.
신(神)이 아무리 자비로워도 당신을 제도할 수 없다. 신과 대응하는 형상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신을 믿지도 않으며, 그것이 스스로 구한 결과이니 누가 상관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삼퇴(三退)하여 평안을 보존하라는 것은 신이 사람에게 주는 가장 큰 자비이자 마지막 구원의 기연이다. 사악한 당에 속았더라도 깨어나 생각을 바꾼다면 똑같이 제도될 수 있다. 그러니 부디 권고를 들어야 하며, 잠든 척해서는 안 된다.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역병이 지나간 후 거리가 텅 비어 있는 것을 보라. 인산인해를 이루던 곳이 이제는 싸늘해졌고 사람을 보기 힘들 정도다. 쇠락하고 적막한 거리 풍경을 보며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신이 당신을 제도하는 데는 거의 아무런 조건이 없다. 오직 신을 믿고 사악한 당에서 탈퇴하여 생각을 바른 믿음(正信)으로 돌리고 신의 에너지와 연결되기만 하면 대도태를 피할 수 있다. 어떠한 물질 이익도 필요치 않으며, 오직 악을 버리고 선을 따라 자신을 변화시키기만 하면 아름다운 미래를 얻는 것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말로 할 수 있는 것은 이만큼이다. 진상을 알리는 것은 대법제자의 사명이지만, 선량이 결코 비굴함을 뜻하지는 않는다. 말하고 안 하고는 나의 심성 문제요, 듣고 안 듣고는 당신의 심성 문제다. 우리는 선을 권할 수는 있으나 남을 대신해 선택해 줄 수는 없다. 당신의 생명은 당신이 주인이며, 선택권이 오직 자신에게 있을 때라야만 최후 떠나고 남음에 억울한 이가 없을 것이다.
글을 쓰는 오늘은 섣달그믐 밤이다. 나는 마음속 숙원을 위해 등불을 밝히고 글을 쓴다. 중생들이 안개를 뚫고 진상을 통찰하여 하루빨리 삼퇴하고 신의 자손으로 돌아가 아름다운 미래와 행복과 안녕을 누리기를 기원한다.
사존께 새해 문안 인사를 드립니다! 제자가 좀 더 정진해 사부님께서 걱정을 조금 덜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동수 여러분, 새해에도 함께 힘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