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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늦지 않다

악광(岳光)

【정견망】

서한(西漢) 유향(劉向)의 저서 《설원(說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진(晉) 평공(平公)이 사광(師曠)에게 말하기를, “내가 올해 70세인데 공부를 하고 싶으나 이미 너무 늦은 것 같소.”라고 했다.

사광이 대답하기를, “어찌하여 촛불을 켜지 않으십니까?”라고 했다.

평공이 이해하지 못해 말하기를, “신하된 자로서 어찌 감히 임금을 이처럼 희롱하는가?”라고 했다.

사광이 대답했다.

“눈먼 신하인 제가 어찌 감히 임금을 희롱하겠습니까? 제가 듣기로 소년 시절에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이제 막 솟아오르는 해와 같고, 장년에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중천에 떠 있는 햇빛과 같으며, 노년에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손에 촛불을 들고 밝히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촛불을 켜고 나아가는 것이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가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평공은 이 말을 듣고 “참으로 좋은 말이로다!”라며 찬탄했다.

이 단락의 대화는 사광과 평공이 공부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평공이 고려한 것은 공부의 결과, 즉 자신이 기대하는 수확을 여전히 얻을 수 있을지 여부였다. 그래서 늙어서 다시 배우는 것은 아마 헛수고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반면 사광이 강조한 것은 공부 그 자체의 의의였다. 언제 시작하든 빛을 가져다주어 인생이 어둠 속으로 빠지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비록 그 빛이 미약할지라도 빛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

따라서 평공이 보여준 것은 다소 소극적인 태도인 반면, 사광은 적극적으로 정진하고 끊임없이 위를 향하는 정신 경지를 보여준다.

자신을 돌아보아도 종종 비슷한 체험을 한다. 얼마 전 나태해졌을 때, 아침에 일어나 연공(煉功)을 하려는데 시간이 한 시간이 안 되거나 심지어 20분밖에 남지 않았으면 아예 일어나지 않고 “이미 늦었으니 차라리 좀 더 누워있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진하는 상태일 때는 완전히 달랐다. 설령 10분밖에 없더라도 일어나서 한 장이라도 연공을 했다. 왜냐하면 조금이라도 하는 것이 전혀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로 보건대 관건은 시간의 길고 짧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동할 의지가 있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사광이 보여준 것처럼 위로 제고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며, 수행(修行)에는 더욱더 짧은 시간이라도 아껴가며 최선을 다해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설령 아주 작은 노력일지라도 그것은 자신을 위해 등불 하나를 밝히는 것과 같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