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악
【정견뉴스】

화우진(火牛陣)이란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명장 전단(田單)이 즉묵(卽墨) 전투에서 사용한 고전적인 전술이다. 당시 연(燕)나라 명장 악의(樂毅)가 6국 연합군을 이끌고 제나라를 공격하여 불과 반년 만에 70여 성을 함락시켰다. 거(莒)와 즉묵 두 성만 남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전단은 즉묵 수비를 맡아 5천 병력으로 수년간 연합군에 저항했고, 끝내 화우진을 운용해 연나라 군대의 방어선을 돌파하며 제나라를 회생시켰다. 그러나 전단 이후 역사 속에서 화우진은 전설적인 절창(絶響)이 되어 성공 사례를 찾기 힘들었다.
그러다 북송 초년, 익진관(益津關, 현 하북성 패주시)에서 명장 양연소가 화우진을 성공적으로 운용해 한창의 5만 철갑 기병을 대파하며 이 고전적인 전투를 재현했다.
요나라 철갑기병 대군이 첫 전투에서 패한 후에도 한창(韓昌)은 단념하지 않고 권토중래를 준비했다. 송군 진영에서는 양연소가 첩보를 통해 한창이 대군을 이끌고 익진관을 침범하려 한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하고 장수들을 소집해 방어 대책을 논의했다.
맹량과 초찬(焦贊)이 말했다. “철갑기병은 용맹하여 막아내기 어렵습니다. 지난번에는 유인책이 성공해 이길 수 있었으나 이번에는 다시 쓰기 힘들 듯하니, 험난한 지형에 의지해 지켜야 합니다.”
악승(岳勝)이 말했다. “이 관문 앞에 평원이 넓게 펼쳐져 있어 지킬 만한 험지가 거의 없습니다. 마땅히 참마도(斬馬刀)와 큰 도끼 등 무거운 병기를 준비해 말의 다리를 베어 강함으로 강함에 맞서야 합니다.”
양연소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그렇다, 오래 지키기만 해서는 반드시 빈틈이 생긴다. 이곳은 요새라 할 만한 지형이 없어 방어가 극히 어렵고, 철갑기병의 전력이 매우 강하니 큰 우환이 될 것이다. 적을 깨뜨릴 방도를 찾아야 하니 일단 악승의 제안대로 준비하도록 하라.”
회의가 끝난 후 양연소는 장수들에게 새 무기를 준비하게 하는 한편 훈련을 강화했다. 요나라 철갑병의 기세가 워낙 대단해 참마도로 진형을 깨뜨린다 해도 아군의 피해 또한 적지 않을 것이기에, 그는 아군의 손실 없이 적을 섬멸할 방책을 끊임없이 고민했으나 좀처럼 실마리가 풀리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장수들과 함께 관문 근처 지형을 순찰하다가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들판을 보게 되었다. 목동들이 소와 양을 방목하고 있었는데, 목동의 인도에 따라 소와 양 떼가 질서 정연하게 줄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목동은 장수들을 보자 다가와 예의를 갖추며 정성껏 준비한 내차(奶茶, 밀크티)를 대접했다.
목동이 말했다. “원수님과 장사(將士)들께서 변방을 지켜주시는 덕분에 저희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어 감사드립니다.”
양연소는 장수들과 함께 답례를 표하고 말에서 내려 목동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목동이 말했다. “이 소라는 짐승이 밭 가는 소가 되기가 영 쉽지 않습니다. 저와 동료들이 꽤나 고생한 끝에야 겨우 쟁기를 끄는 법을 익히게 했지요. 성질에 맞춰 훈련해야 하고 제때 좋은 풀을 먹여야 합니다. 아버지께 10여 년을 배우고 나서야 겨우 요령을 터득했으니, 정말 보통 공부가 아닙니다!”
이 말을 듣던 양연소는 문득 영감이 떠올라 적을 물리칠 비책을 생각해 냈다! 그는 목동에게 감사를 표하며 말했다.
“고맙소. 적을 깨뜨릴 핵심이 바로 이 소들에게 있었구려. 당신 소들을 좀 빌려야겠소.”
그는 목동에게 소를 징집하는 비용으로 충분한 군자금을 주었고, 모자라는 수는 장수들을 보내 사방에서 사들여 며칠 만에 천여 마리의 소를 모았다. 이어 익진관 북쪽 전방에 지형을 따라 남북으로 수리에 걸친 진지를 구축했다. 요나라 군대가 성을 공격하려면 반드시 이 진지를 지나야 했다. 그는 주위에 울타리를 치고 천여 마리의 소를 이곳에 배치해 화우진을 위한 훈련에 돌입했다.

화우 장비, 송 증공량(曾公亮)과 정도(丁度)가 지은 《무경총요(武經總要)》 삽화. (공유 영역)
양연소는 목동들을 불러 장수들에게 소를 훈련시키는 법을 가르치게 했다. 그는 수많은 짚인형을 만들어 요나라 군대의 갑옷을 입힌 뒤, 갑옷 아래에 소가 좋아하는 사료를 숨겨두어 소들이 갑옷을 헤치고 먹이를 먹는 습관을 갖게 했다. 또한 소의 몸에 날카로운 칼과 긴 창을 묶고 짚인형을 향해 직선으로 돌진해 꿰뚫도록 훈련시켰으며, 실전에서는 소꼬리에 불을 붙여 돌진 속도를 높일 계획이었다.
시간이 흐른 뒤 송나라 군대는 목마에 철갑과 짚인형을 입혀 요나라 기병을 흉내 내게 했고, 소들이 이를 향해 돌진하게 했다. 소들이 목마와 짚인형을 부수어야만 먹이를 먹을 수 있도록 하여 습관을 들였다. 이렇게 점진적이고 반복적인 훈련을 한 달간 지속하자, 천여 마리의 소는 점차 이러한 충격식 작전 방식에 익숙해졌다.
한창이 5만 철갑병을 이끌고 권토중래하다
양연소가 긴박하게 참전 준비를 하는 동안 북쪽의 요나라 역시 남침을 준비하며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지난번 철갑병이 격파된 후 한창은 이번에 다시 야율휴가(耶律休哥), 야율사(耶律沙), 대붕(大鵬) 등 10여 명의 장수와 5만 철갑기병 대군을 이끌고 익진관에 와서 싸움을 걸었다. 양연소는 이미 소식을 듣고 악승, 양흥(楊興), 맹량 등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관 앞의 새 진지에 진형을 갖추고 기다렸다.

《수상남북송지전》 삽화 속 야율사. (공유 영역)
한창은 양연소를 보자마자 욕설을 퍼부었다.
“양육랑! 지난번엔 방심해서 졌지만 이번엔 다시 속지 않겠다. 담력이 있다면 내 철갑기병과 정면으로 승부해라. 맨날 잔꾀나 부리지 말고!”
양연소가 응수했다. “한창! 병불염사(兵不厭詐 병법에 속임수를 쓰는 것도 꺼리지 않음)는 예로부터 당연한 이치다. 보아라, 내가 이미 관 앞에 진형을 갖추어 두었으니, 네놈이 이를 깨뜨리지 못하면 관 안으로 들어올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우리 정면으로 당당히 한판 붙어보자!”
이때 야율휴가와 야율사도 튀어나와 싸움을 돋우며 소리쳤다.
“양육랑! 지난번 내 형제 야율경(耶律慶)을 죽이고 수많은 대요(大遼) 장수들을 네 궤계로 죽게 했으니, 이번에 피의 복수를 해주마. 우리 철갑대군의 위력을 똑똑히 보아라!”
한창의 명령이 떨어지자 야율휴가와 야율사 등 10여 명의 요나라 장수들이 5만 철갑대군을 이끌고 일제히 쏟아져 나와 새 진지를 향해 달려들었다.
양연소 역시 즉시 호령을 내리니, 식량을 묶은 수만 발의 화살이 송나라 진영에서 빗발치듯 쏟아졌다. 요나라 철갑기병들은 방패를 들어 막아냈고, 정강으로 제작된 철갑 덕분에 화살은 그들에게 아무런 상처도 입히지 못한 채 몸에 풀더미만 좀 꽂혔을 뿐이었다.
한창은 비웃으며 말했다. “양육랑, 네 화살은 정말 쓸모가 없구나. 이번에 넌 끝이다!”
그런데 이때 송나라 진영 후방에서 투석기를 이용해 모래와 흙이 섞인 수많은 큰 풀가마니를 철갑기병들에게 던졌다. 이 풀가마니 역시 살상력은 없었기에 한창과 요나라 장수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송나라 군대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곧 철갑기병의 대열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풀가마니 속에는 콩, 조, 산나물 등 소와 말이 좋아하는 잡곡이 가득 들어있었고, 전마들이 고개를 숙이고 먹이를 가로채 먹으려 했기 때문이다.
양연소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지휘해 명령을 내렸다. 송나라 군사들이 양옆으로 비켜서며 진지의 중문이 활짝 열리자, 천여 마리의 소가 번개처럼 쏟아져 나왔다. 소들은 뿔에 날카로운 칼을 묶고 몸 양측에는 긴 창을 매달았으며, 구름 무늬 옷을 걸치고 가슴에는 철갑을 둘렀으며 꼬리에는 불붙은 짚단이 매달려 있었다. 오랫동안 굶주렸던 소들은 말을 탄 요나라 군대를 보고 먹이를 주는 줄 알고 힘차게 돌진했다. 요나라 군대는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없었고, 전마들은 철갑을 두른 맹수들의 돌격에 겁을 집어먹고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전방의 철갑기병들이 무너지며 진형이 어지러워지자 후방도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 이처럼 철갑기병의 진형은 차례차례 토붕와해(土崩瓦解)되며 지리멸렬해졌다. 송나라 장수들은 참마도와 대도끼 등 중병기를 들고 소 떼 뒤를 바짝 쫓으며 맹렬히 공격하니 함성이 하늘을 찔렀고 철갑대군은 막대한 사상자를 냈다. 공격이 주효하자 양연소는 다시 양흥, 진림(陳林), 시감(柴敢)에게 명해 기병을 이끌고 양측에서 협공하게 하니, 송나라 군대가 점차 승기를 잡았다.
상황을 지켜보던 한창은 후방의 예비 부대를 모두 투입해 전세를 뒤집으려 했다. 이때 대붕이 간곡히 만류했다. “두령님, 송나라 군대에게 우리를 제압할 새 무기가 있어 전황이 불리합니다. 지난번과 이번의 패배로 이미 장수의 절반을 잃었습니다. 철갑기병은 우리 대요의 정예이니 이들을 모두 잃는다면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이 될 것입니다. 차라리 군사를 물려 훗날을 도모하는 편이 낫습니다!”
한창은 잠시 망설이다가 승리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전군에 후퇴 명령을 내렸다. 양연소는 요나라 군대가 물러가는 것을 보고 더는 추격하지 않았다. 송나라 군대는 강력한 철갑기병을 정면에서 격파하는 데 성공했고, 이 전투는 대승으로 끝났다.
전투가 끝난 후 양연소는 조정에 장계를 올려 장수들의 공을 포상하고 소들을 백성들에게 돌려주었다. 이 진지는 이후 익진관을 지키는 견고한 방어벽이 되었다. 훗날 송나라와 요나라 사이에 휴전기가 찾아오자 이곳에 백성들이 점차 이주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지역 사람들은 당시 양연소가 화우진으로 적을 물리친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이곳을 우두진[牛頭鎭, 후에 우타진(牛陀鎮)으로 개명]이라 불렀고, 마을 북쪽의 작은 하천 이름을 망우하(牤牛河)로 바꾸었다.
참고사료:
《杨六郎威镇三关口》河北人民出版社1984年出版 赵福和 李巨发 等人 搜集
《杨家将外传》河北少年儿童出版社 1986年出版 赵云雁 搜集整理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98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