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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선량을 위배하지 말아야! 노자 “國之利器不可以示人”의 진정한 의미

도생(道生)

【정견망】

《도덕경(道德經)》은 일명 《노자(老子)》 혹은 《오천언(五千言)》이라고도 불리며, 동주(東周) 시기의 성인 노자가 저술한 경전으로 ‘만경(萬經)의 왕’이라 존숭받는다. 이는 사람들의 지혜를 일깨워 도(道)를 깨닫게 하지만, 수천 년 동안 이를 진정으로 독파한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중화 오천 년 문명의 전통 정통적인 바른 신앙은 신(神)은 존재하며, 사람은 수련을 통해 득도하여 신이 될 수 있다고 여겼다. 중국인이 살아온 이 땅은 예부터 신주(神州)라 불렸으며, 신은 중화민족에게 찬란한 수련 문화를 남겨주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불가(佛家)와 도가(道家)로, 불가는 부처(佛)를 닦고 도가는 도(道)를 닦으니, 그 목적은 모두 반본귀진(返本歸眞)하여 대도(大道)를 깨닫고 정과(正果)를 얻어 신이 되어 삼계(三界)를 벗어나 윤회에 들지 않는 것이다.

《도덕경》은 도가에서 도를 배우고 닦는 지극히 중요한 경전으로, 표면적으로는 치국(治國)과 용병(用兵)의 함의도 담고 있는 이번 차례 인류 신전문명(神傳文明)의 보배다.

인류 도덕의 하락과 서양에서 온 유령인 중공사당(中共邪黨) 마귀의 악의적인 파괴로 인해, 오늘날 중화민족의 문화 전승은 매우 심각하게 단절되었다. 오천 년 중화 전통 신전 문화는 현재 보편적으로 왜곡되고 곡해되어 사람들이 그 참뜻을 알기 어렵게 되었는바, 본문의 공유가 사람들의 오해를 개선하고 대법 ‘법정건곤(法正乾坤)’을 위해 공헌하고 ‘진선인(眞善忍)’ 법리에 부합하는 정화의 힘이 되기를 바란다.

본문에서 바로잡고자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널리 오해받고 있는 《도덕경》 중 영향력이 큰 한 구절인 “국지이기불가이시인(國之利器不可以示人)”이다. 글자 그대로 직역하면 이 구절은 “국가의 가장 날카로운 무기는 사람들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로 된다.

도가는 문무(文武) 병용을 중시하므로 이러한 이해가 용병(用兵) 중에서 군사적 운용 원칙으로 쓰인다면 어느 정도 이치는 있다. 그러나 인류의 도덕 품성이 보편적으로 하락함에 따라, 만약 이런 함의를 용병에 국한하지 않고 치국(治國)의 근거로 삼는다면, 이는 《도덕경》 제57장의 “바름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기이함으로 군사를 쓴다(以正治國, 以奇用兵)”라는 준칙에 명백히 위배되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예를 들어, 사람은 나면서 말을 할 수 있으니 언론의 자유는 상식이다. 그런데 만약 통치자가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사람들이 함부로 말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이해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뒤이어 진실을 말하지 못하게 하고, 그다음에는 사람마다 거짓말을 하게 되며, 마지막에는 누구도 말을 할 수 없는 죽음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또 다른 예로, 코로나가 창궐할 때 중국 대륙의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공산사당의 강온 양면책과 기만술에 속아 저질 중국산 코로나 백신을 ‘자발적으로’ 접종했다. 이 백신은 분명히 심각한 후유증을 낳아 사람들에게 반복적인 ‘감기’와 고통을 주었으며, 심지어 심근경색이나 뇌경색으로 돌연사하게 만들기도 했다.

만약 병가(兵家) 사고방식을 따른다면, 통치자는 반드시 병을 숨기고 의사를 피하듯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대외 용병 관념에 깊이 세뇌된 피통치자들 또한 이 사실을 직시하려 하지 않고, 듣지도 보지도 생각지도 않으며 자구책을 찾지 않는다. 흐름에 휩쓸려 마비된 채 구도받을 기연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도가 ‘진(眞)’의 원칙에 명백히 위배된다.

세뇌당한 사람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래, 이 백신에 문제가 있고 맞고 나서 아주 괴롭지만, 이미 맞았으니 말해봐야 소용없어. 말하지 마! 짜증 나!”

반면 그래도 양심이 남은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강제로 맞았는데, 목숨을 구할 방법이 없을까?”라고 말할 것이다. 이 두 가지 생각은 서로 다른 운명의 궤적을 가져온다. 한쪽은 살고자 하는 선념(善念)이 부족하고, 다른 한쪽은 구도 받을 기연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생생불식(生生不息)이야말로 대법(大法)과 대도(大道)이다. 만약 깨달은 함의가 이 참뜻에 위배된다면 사람을 그릇된 길로 빠뜨리기 쉽다. 성인(聖人)과 각자(覺者)가 남긴 경전에 대해 우리가 이해한 함의가 선량에 위배되고 앞뒤 문맥의 뜻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대개 그 안에서 서로 원융(圓融)한 고층차의 도리를 체득할 수 없다.

파룬따파 《전법륜》에서는 “부동(不同)한 층차(層次)에는 부동한 층차의 법이 있다”라고 했다. 이는 성인과 각자의 경전에서 동일한 문자라도 층차에 따라 서로 다른 이해를 얻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앞서 언급한 “국지이기불가이시인(國之利器不可以示人)”에 대한 이해가 심각하게 어긋난 한 가지 원인은 단장취의(斷章取義)에 있는데, 이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직접적이고 표면적 요인이다. 우리가 《도덕경》 원문의 이 구절 바로 앞 문장인 “물고기는 연못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魚不可以脫於淵)”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원의에 더 부합하는 고층차의 이해를 얻게 될 것이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는 오래 살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즉, 이 두 구절을 연결하면 “물고기가 물을 떠날 수 없는 것처럼, 국가에 가장 이로운 방법은 해서는 안 될 규칙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라는 일관된 함의를 얻게 된다.

[역주: 필자는 國之利器不可以示人을 國之利器는 不可를 以示人이라고 풀었다. 즉 “나라의 가장 이로운 방법은 할 수 없는 것(不可)이 무언인지 사람들에게 명확히 알려주는 것이다”는 뜻이다.]

우리는 더 높은 층차의 이해도 얻을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고층차의 도리를 깨닫지 못하는 심층적 원인은 도를 깨칠 때의 내면이 충분히 선량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문의 서두에서 분석했듯이, 많은 이들이 이 구절을 용병의 방법으로 이해하고, 심지어 《도덕경》을 한 권의 병서나 권모술수를 부리는 사설(邪說)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도덕경》 제18장에서는 “지혜가 나타나매 큰 거짓이 있게 되었다(智慧出, 有大僞)”라고 했으며, 제70장에서는 “이로써 성인은 거친 베옷을 입고 옥을 품는다(是以聖人被褐而懷玉)”라고 했다. 즉, 진정한 지혜가 담겨 있을지라도 사람들이 오해하기 쉽고 심지어 거짓 지혜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진정한 지혜를 읽어낼 수 있는가? 《도덕경》 제31장에서는 “군대는 상서롭지 못한 도구이므로 만물이 이를 싫어하니, 도가 있는 자는 처하지 않는다(夫兵者, 不祥之器, 物或惡之, 故有道者不處)”라고 했다. 즉, 《도덕경》에서 도를 깨닫고자 한다면 스스로를 병가(兵家)의 층차에 빠지지 말아야 하며, 더욱이 악념(惡念) 속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제79장에서 “천도는 사사로움이 없어 항상 선한 사람과 함께한다(天道無親, 常與善人)”라고 한 것처럼, 천도와 대도를 깨닫고자 한다면 마땅히 선량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때 우리는 파룬따파 ‘진선인(真善忍)’의 계시에 근거하여 스스로 선량함과 인내, 진리를 구하는 마음을 유지하며 “물고기는 연못을 벗어나서는 안 되고, 국가의 이기(利器)는 사람들에게 불가한 것을 명확히 알리는 것이다”라는 문자의 내함을 세심히 음미해야 한다.

그리고 제39장의 “하늘은 하나를 얻어 맑다(天得一而清)”라는 일치된 원칙으로 앞뒤 문맥을 정리해야 한다. 물론 다른 장의 함의도 결합해야 한다.

우리가 ‘연(淵)’자가 ‘매우 깊고 넓은 물’을 뜻함을 주의하고, 제8장의 “최상의 선은 물과 같으니,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上善若水, 水利萬物而不爭)”를 결합해 본다면, 여기서 알려주려는 뜻은 다음과 같음을 발견하게 된다.

“물고기가 물을 떠날 수 없는 것처럼, 국가에 가장 유리한 방법은 모든 사람이 생명이 의지하는 선(善)을 떠날 수 없으며 ‘선’의 원칙을 위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제35장의 “큰 상(象)을 잡으면 천하가 모여드니, 가도 해롭지 않고 안온하며 평화롭고 태평하다(執大象, 天下往. 往而不害, 安平泰)”라는 구절과도 부합한다. 즉, 대도(大道)의 상을 잡으면 천상과 지하가 함께 가며, 서로 선량하여 해치지 않으니 비로소 편안하고 평화로우며 안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본문에서 중점적으로 논의하는 장구는 제36장에 나온다. 단장취의를 피하기 위해 제36장 전체에 대한 번역과 풀이를 아래와 같이 제시하니 참고하기 바란다.

원문:

제삼십육장(第三十六章)
장차 오므리려 하면 반드시 잠시 펴게 하고,
장차 약하게 하려 하면 반드시 잠시 강하게 하며,
장차 폐하려 하면 반드시 잠시 흥하게 하고,
장차 취하려 하면 반드시 잠시 주어야 한다.
이를 일러 미명(微明)이라 한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
물고기는 연못을 벗어나서는 안 되고,
국가의 이기(利器)는 해선 안 되는 것을 사람들에게 명확히 알리는 것이다.

第三十六章
將欲歙之,必故張之﹔
將欲弱之,必故強之﹔
將欲廢之,必故興之﹔
將欲取之,必故與之。
是謂微明。
柔弱勝剛強。
魚不可脫於淵,
國之利器不可以示人。

풀이:

숨을 들이마시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열어야 한다.
약화시키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강하게 한다.
황폐하게 하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흥성하게 한다.
얻고자 할 때는 반드시 먼저 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미명(미시적 상태의 명료함)’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

물고기가 (형이상학의 도(道)처럼 ‘상선약수’의 광박하고 심원한) 연못을 떠날 수 없는 것처럼, 국가의 가장 유리한 (형이하학적인) ‘그릇(방책)’은 ‘만물을 이롭게 하되 다투지 않는 선'(생명 자신의 생존이 의지하는 근본적인 선)을 위배해서는 안 된다는 근본 원칙을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상의 번역은 《주역(易經)》의 ‘도(道)’와 ‘기(器)’의 도리를 결합한 것이다. 노자는 주나라의 수장사(守藏史)로서 마땅히 《주역》에 통달했을 것이므로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논리적이다.

즉, 우리가 상선(上善)의 ‘상(上)’을 형이상(形而上)으로 이해한다면, 《주역》의 “형이상자를 도라 이른다(形而上謂之道)”에 따라 ‘상선(上善)’이란 ‘형이상의 도와 같은 선’을 뜻함을 알 수 있다. 형(形)이란 형체나 구체적인 형상을 말한다. 즉 도는 형을 포괄하며, 일체 구체적인 형상뿐만 아니라 그 너머까지 포함한다.

또한 국지이기의 ‘기(器)’를 형이하(形而下)로 이해한다면, 《주역》의 “형이하자를 기라 이른다(形而下謂之器)”에 따라 ‘이기(利器)’란 가장 유리하고 구체적인 그릇, 즉 최선의 방책을 뜻함을 알 수 있다. 기란 용기나 기물처럼 도가 포함하는 일체 구체적인 ‘성주괴(成住壞)’의 체현이다.

원문의 글자들로부터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물과 만물이 모두 천연의 진실한 존재임을 안다면 그로부터 ‘진(眞)’을 깨달을 수 있다.

‘만물을 이롭게 하되 다투지 않는 것’이 무사(無私)하고 이타적인 선량함임을 안다면 그로부터 ‘선(善)’을 깨달을 수 있다.

물이 만물을 포용하고 정화하며 본질이 순수하고, ‘다투지 않음’이 청순(淸純), 정결(貞潔)과 인내와 양보를 체현함을 안다면 그로부터 ‘인(忍)’을 깨달을 수 있다.

만약 우리가 파룬따파 《전법륜》이 알려주는 무상의 법리인 “우주 중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 真(쩐)ㆍ善(싼)ㆍ忍(런)”임을 안다면, 《도덕경》 속의 이 이치들이 모두 ‘진선인’이라는 대법의 법리에서 깨달은, 우주 특성에 부합하는 ‘대도’임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신이 진정으로 파룬따파 수련에 들어서면 창세주의 지혜인 ‘진선인’에 어떻게 동화할 것인지 더욱 무궁무진한 가르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전법륜》의 계시에 따르면, ‘연(淵)’이 나타내는 연원유장(淵源流長)과 물의 순환으로부터 생생불식(生生不息)하고 주이부시(周而復始 한 주기를 마치면 다시 시작)함을 깨달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파룬은 항상 돌고, 불법은 끝이 없다(法輪常轉, 佛法無邊)”는 대법의 법리이다. 이는 대법의 법리가 층차마다 서로 다른 법으로 체현된 것이다.

사람은 선량함을 위배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도덕경》의 “물고기는 연못을 벗어나서는 안 되고, 국가의 가장 좋은 방책은 사람들에게 해선 안 되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다”가 우리에게 주는 계시이다.

노자의 가르침이 선량함을 위배하지 말라는 것이라면, 우리가 어찌 우주의 가장 근본 특성인 ‘진선인’을 위배할 수 있겠는가? 《도덕경》 제51장에서는 “도는 낳고 덕이 기른다(道生之, 德畜之)”라고 했다.

도가에서는 천지 우주 만물 일체가 대도에 의해 생겨나고 덕에 의해 유지되고 양육된다고 본다. 이는 도와 덕이 모두 실재하는 존재이며 선량한 존재이고 모든 것을 용인하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즉, 가장 근본적인 도덕은 생생불식하는 특성인 ‘진선인’이다.

사람이 ‘진선인’ 대법에 대해 배척하고 오해하며 심지어 조소하고 부정한다면, 이는 생명의 가장 근본적인 토대를 위배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이 선량함을 위배하고 하늘의 뜻을 거슬러 도에 어긋나 구제 불능이 될 때 그 결과는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바로 진선인 ‘대법(大法)과 대도(大道)’로부터 생성된 고귀한 운명의 윤회가 당신을 떠나가고, 당신의 운명이 철저한 해체와 소멸로 접어드는 것이다.

도는 존재하며 부처와 신도 존재한다. 진선인(真善忍) 파룬따파는 우주의 근본 대법이며 창세주의 지혜이다. 세상 사람들이여, 부디 신과 적대하고 우주 근본 대법인 ‘진선인’과 적대하는 무신론적 ‘가악폭(假惡暴 거짓 사악 폭력)’ 공산사악주의를 멀리하라. 당, 단, 대에서 탈퇴하는 삼퇴(三退)를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생명이 지닌 소중한 운명의 윤회로 돌아가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행동이다!

신은 생생불식하는 운명의 윤회를 주재하신다! 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 공산사당 마귀를 따르는 자는 반드시 생명의 소멸과 운명 윤회를 철저히 잃게 되는 근본적 파멸에 직면할 것이다. 선량하게 신을 믿고 마귀를 멀리하며 ‘삼퇴’하는 것은 모든 생명의 내면적 양심에 부합하는 명철한 선택이다.

역병은 하늘이 나쁜 사람을 도태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가 ‘삼퇴’를 하고 진심으로 무신론 가악폭 공산사악주의를 멀리하며, 선량한 마음을 품고 신적(神跡)을 믿으며, “真(쩐)ㆍ善(싼)ㆍ忍(런)의 표준은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임을 명백히 알고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진심으로 믿는다면, 설령 저질 코로나 백신을 맞았더라도 지고무상한 창세주 ‘신(神)’께서 당신에게 복을 내려 생기(生機)를 이어가고 정상으로 회복하게 하실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신은 어디에나 계시며 무소불능(無所不能)하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