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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탓하다 신의 견책을 당하다

안단(顔丹)

【정견망】

“선과 악에 응보가 없다면 건곤(乾坤)에 반드시 사사로움이 있는 것이다.”[善惡若無報,乾坤必有私]”

이 고어(古語)에 대해 남송의 학자 유성(兪成)도 하늘이 혹 선으로 갚지 않는 것은 보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며, 이른바 때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 열매가 아직 익지 않았기 때문이니, 선의 열매가 익을 때는 반드시 그 복을 받는다고 보았다. 만약 선이 아직 익지 않아 선보(善報)의 시기가 오지 않았다면, 이때의 우리가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탓할 수 있겠는가. 사실 절박하게 선보를 얻으려는 마음 역시 조급한 표현이다. 선보를 얻기 위해 선행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선의 참된 본뜻을 어긴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선보가 더디게 오거나 오더라도 깎이는 것은 정수(定數) 중의 변수가 된다.

사람들에게 이러한 도리를 깨우쳐 주기 위해 중국 고대 민간에서 공평과 정의의 화신으로 인정받았던 성황신(城隍神)은 때때로 현신하여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다 믿지 못하는 인과(因果)를 설파하곤 했다.

청조(淸朝) 때 강소성 소주 장주현(長洲縣)에 유천우(劉天佑, 자는 약재約齋)라는 수재(秀才)가 있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향시에 응시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그의 집은 성수위서(城守尉署) 서쪽에 있었는데, 남쪽에는 높게 쌓인 흙더미가 있었고 그 안에는 명말 전사한 병사들의 유해(遺骸)가 묻혀 있었다. 어떤 장군이 이곳에 성벽을 쌓으려고 유해들을 파내려 했으나, 한동안 안장할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

유천우는 이 일을 듣고 스스로 장소를 찾아 그 유해들을 잘 묻어주려 했다. 하지만 수중에 돈이 넉넉하지 않아 친척들에게 돈을 빌리러 다녔다. 결국 그는 빌린 돈을 전부 다 써서 총 110구의 유해를 안장했다.

그해 가을 유천우는 다시 향시를 치렀으나 역시 합격하지 못했다. 그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어서 섣달 24일 밤 조왕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직접 소문(疏文) 한 편을 썼다. 그 안에는 분개하며 원망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제가 비록 음덕(陰德)을 많이 쌓지는 못했으나 타인의 유해를 정중히 안장한 일은 큰 선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의 신명(神明)이시여, 당신들은 마치 보지 못한 듯 저를 돕지도 않고 운수를 바꿔주지도 않으시는 겁니까.”

이튿날 밤 그는 꿈에 성황묘로 들어가는 꿈을 꾸었다. 성황신이 당 위에 앉아 그의 이름을 부르더니 말했다. “너는 기왕에 독서인으로 공명이록(功名利祿)과 앞날의 부귀(富貴)에 다 정해진 수가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타인의 유해를 안장했다고 해서 어찌 신명과 조건을 따지고 하늘에 공을 내세울 수 있단 말이냐. 네가 만약 이런 광망(狂妄)한 마음을 내려놓지 않는다면 아마도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네게 여전히 선근(善根)이 있음을 보아 이번에는 죄를 기록하지 않겠다. 사실 네가 게으름 없이 선을 행한다면 장차 공명을 얻지 못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있겠느냐?”

성황신의 말이 끝나자마자 유천우는 깜짝 놀라 깨어났다. 그는 몹시 후회하며 그때부터 다시는 하늘을 원망하거나 사람을 탓하지 않았다. 3년 후 그는 마침내 향시에 합격했다. 순위는 앞쪽이 아니었으나 나중에 내각에 들어가 중서사인(中書舍人)에 임명되었다.

사람은 홍진(紅塵)에 미혹되어 운명의 기승전결 속에서 원망하는 마음을 내기 쉽다. 양주(揚州)에 성이 예(倪) 씨인 장님도 일찍이 신상(神像) 앞에서 불평한 적이 있었다. 그는 연중 내내 성안의 성황묘에 혼자 살며 점술에 조금 통달한 덕에 점을 쳐서 생계를 꾸렸다. 다만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묘에 향객이 한 명도 오지 않아 굶주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젊고 부유한 상인이 묘에 와서 향을 피웠다. 그는 아름다운 처첩을 거느렸을 뿐만 아니라 뒤따르는 마차와 의장대도 매우 당당하고 위세가 대단했다. 한눈에 봐도 장사로 큰돈을 번 모습이었다. 예 씨는 눈으로 보진 못했지만 그 상인의 귀기(貴氣)를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신상 옆에 서 있다가 갑자기 불쾌한 마음이 들어 속으로 중얼거렸다.

“신이시여, 저 사람은 단지 비천한 상인일 뿐인데 어찌 이런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립니까? 저는 원래 가세가 남부럽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토록 초라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하늘이 정말 눈이 없군요. 내가 매일 신께 절을 올려도 영험이 없으니.”

그날 밤 예씨가 성황신 앞으로 끌려가 심문을 받는 꿈을 꾸었다. 성황신이 말했다.

“그 상인은 명(命)중에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어 있고, 너는 이토록 낙담한 인생을 살게 되어 있다. 이것은 모두 인과로 촉성된 것이며 이미 정수(定數)가 있거늘 네가 감히 신에게 따지느냐. 하늘의 잘못이라 여기느냐. 네게 이렇게 모독하는 마음이 있으니 적어도 판자(板子) 20대는 피할 수 없다. 즉시 의정현(儀征縣)으로 보내 형을 집행하라.”

이 말을 듣고 예 씨 장님은 곧바로 깨어났다. 과연 이듬해 겨울 그의 여동생이 의정현으로 시집갔다가 얼마 안 되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여동생의 장례를 치르러 그곳에 가야 했다. 어느 날 밤 갑자기 배가 몹시 아파 밖에서 볼일을 보려 했다. 그런데 대문을 나서자마자 야간 순찰을 하던 관원을 만났다. 관원이 물었다. 너는 한밤중에 거기 서서 무엇을 하느냐. 그가 우물쭈물하며 한참 동안 답을 못하자 관원은 화가 나 그의 옷을 벗기고 판자 20대를 때렸다. 매질이 끝나자마자 그의 조카가 방에서 나왔지만, 이때는 조카가 변명을 해주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사람의 마음에 일념이 일어나면 신은 반드시 아신다. 사람들의 오늘의 결과는 단지 과거의 원인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니, 어찌 신이 편벽되고 사사롭다고 의심할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이 인과에 따라 빈틈없이 집행되게 하는 신명은 어떤 시비곡직(是非曲直)이나 흑백(黑白)과 선악(善惡)도 잘못 판단하지 않는다. 설령 이승에서 끊지 못한 미제 사건이나 원한 맺힌 사건이라도 결국 저승에서는 공정한 심판을 받게 된다. 이른바 빚을 지면 돈을 갚고 사람을 죽이면 목숨으로 갚는다는 말처럼, 허다한 사료들은 신(神)의 눈은 번개와 같아 결코 한 사람도 억울하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참고자료: 《북동원필록(北東園筆錄)》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