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여(劉如)
【정견망 2019년 10월 08일】
장비가 분노하여 독우(督郵)를 매질한 일은 《삼국연의》 제2회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장비가 강직하고 의로우며 감히 백성을 위해 해를 제거하는 품성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영제 시기 환관인 ‘십상시(十常侍)’가 조정을 장악하여 제멋대로 휘두르고 임금을 속이며 조정의 충신과 양장들을 모해하고 배척하던 전형적인 장면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목적은 결코 어두운 현실을 폭로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빌미로 한말(漢末) 조만간 분열로 치닫고 영웅들이 나란히 일어날 것임을 예고하는 데 있다.
독우는 어떤 관직인가?
이 이야기를 명확히 하려면 먼저 독우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이는 한 지방 군국(郡國) 태수 아래의 속관으로, 직위는 그리 커 보이지 않으나 각 현의 관리를 감찰하고 탄핵할 권한을 가졌다. 그들은 태수를 대신해 군 내 속현의 관리들이 직무에 적합한지 순시하고 형옥(刑獄)을 조사하며 사법을 감찰했다. 군 내부는 여러 부(部)로 나뉘기도 했는데, 각 부마다 독우 한 명씩(서부독우, 동부독우 등)을 두었다. 이들은 영제 시기에 이르러 상당수가 ‘십상시’의 지방 앞잡이가 되었다. 직권을 이용해 각 현의 관리들을 위협하여 뇌물을 챙기고 선량한 이들을 괴롭혔다.
유비가 맹세를 이행하며 백성에게 조금도 해를 끼치지 않다
책에는 유비가 안희현에 부임한 지 단 한 달 만에 백성에게 조금도 해를 끼치지 않으니, 백성들이 모두 감화되어 그에게 매우 감사해했다고 적혀 있다. 유비는 현위로서 오늘날의 경찰서장처럼 치안을 책임졌다. 장비와 관우는 매일 유비의 곁을 지키며 함께 먹고 자고, 대중 앞에서는 종일 유비를 좌우에서 호위하며 결코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장비와 관우가 유비를 따라 현의 치안을 책임지며 부지런히 일했고, 결코 직권을 이용해 백성을 억압하거나 재물을 긁어모으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도원결의에서 한 ‘위로는 국가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겠다’는 맹세를 진정으로 이행한, 전형적인 위국진충(爲國盡忠)의 충의지신(忠義之臣)들이었다. 백성들은 이 때문에 그들에게 매우 감사해했다.
독우가 유비를 무함하며 뇌물을 요구하다
뜻밖에도 부임한 지 넉 달이 채 되지 않아 조정에서 묘한 조서가 내려왔다. 황건적을 소탕하여 군공(軍功)을 세워 각 현의 고위 관리에 임명된 자들은 모두 제명하여 도태시키라는 내용이었다. 이 조서는 사실 ‘십상시’가 황제를 속이고 모의한 결과였다. 조정의 관직과 작위는 모두 그들의 손에서 재물을 도모하는 수단이었으니, 거액의 뇌물을 바치지 않는 자는 반드시 그들의 눈엣가시가 되었다. 따라서 군공으로 관직을 얻고도 뇌물을 바치지 않은 유비 같은 이들은 그들의 눈에 반드시 도태시켜야 할 대상이었으며, 돈을 내지 않고 관직에 앉아 자신들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수를 먼저 비천한 현급 관리들에게 뻗친 것이다. 유비는 이 때문에 고난을 겪게 된다.
독우는 명을 받들어 이른바 고찰 업무를 하러 유비의 현청에 왔다. 유비는 예로써 맞이했으나 독우는 매우 오만방자했다. 관영(館驛)에 도착해서는 거만하게 앉아 유비를 오랫동안 서 있게 하며 사람을 안중에 두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독우는 한참 후에야 입을 열어 출신을 물었다. 유비가 대답하기를, 자신은 중산정왕의 후손이며 탁군에서 황건적을 소탕할 때부터 크고 작은 서른여 차례의 전투를 치러 적잖은 공을 세웠기에 지금의 관직을 얻었다고 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독우는 유비를 크게 꾸짖었다.
“네가 황친(皇親)이라 사칭하고 공적을 허위로 보고했구나! 지금 조정에서 조서를 내려 너희 같은 함량 미달의 탐관오리들을 도태시키려 한다!”
유비가 현청으로 돌아와 다른 관리들과 이 일을 상의하니, 모두들 독우가 위세를 부리는 것은 그저 뇌물을 받으려는 수작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유비는 뇌물 주기를 거절했다.
다음 날, 독우는 유비 수하의 관리들을 포박하라는 명을 내리고 그들을 핍박하여 유비가 백성을 해쳤다는 증언을 하도록 무함하려 했다. 유비가 몇 번이나 독우를 찾아가 사람을 놓아달라고 청했으나 번번이 수위들에게 막혀 문밖에서 쫓겨났다.
백성들이 매를 맞자 장비가 해악을 제거
독우가 유비를 가해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은 백성들이 속속 독우의 관영으로 몰려와 유비를 구하려 했으나, 수위들에게 쫓겨나고 매를 맞았다. 장비가 말을 타고 역관 앞을 지나다 마흔에서 쉰 명가량의 노인들이 그곳에서 통곡하는 것을 보고 연유를 물었다. 독우가 뇌물을 요구할 목적으로 관리들을 묶고 백성을 억압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장비는 격노했다. 그는 말에서 내려 역관으로 들이닥쳐 후당(後堂)으로 직행했다.
독우가 청청에 앉아 현의 관리들을 핍박하는 것을 보고 크게 외치기를, “백성을 해치는 도적놈아! 나를 알아보겠느냐?” 하고는 독우의 머리채를 휘어잡아 역관 밖으로 끌어냈다. 현청 앞의 말뚝에 묶어놓은 뒤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힘껏 매질하니, 버드나무 가지 열여 소 개가 연달아 부러졌다. 백성을 위해 해를 제거하려 한 것이다.
유비가 소란을 듣고 장비가 독우를 매질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크게 놀랐다. 연유를 묻고 장비를 말린 덕분에 독우는 겨우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관우 역시 유비에게 탐관오리를 제거하고 이 관직을 버린 뒤 다른 길을 도모하자고 권했다. 유비는 인자하게도 관인을 독우의 목에 걸어주며 경고하기를, “본래 백성을 위해 너를 제거해야 마땅하나 지금은 우선 목숨을 살려줄 테니 물러가라” 하고는 관직을 버렸다. 독우는 돌아간 뒤 정주(定州) 태수에게 유비를 고발했고 태수는 사람을 보내 체포하려 했다. 유비는 장비, 관우를 데리고 대주(代州, 산서 일대) 태수 유회(劉恢)에게 의탁했다. 유회는 유비가 한실 종친임을 보고 유비를 구해 집안에 머물게 했다.
이것이 장비가 분노하여 독우를 매질한 전말이다. 이 이야기는 유관장 세 사람이 관리로서 충의롭고 강직하며 백성을 자식처럼 아끼고 탐관오리와 결탁하지 않는 품성을 상세히 보여주는 동시에, ‘십상시’가 충량(忠良)한 이를 함해하고 백성을 억압하며 제멋대로 구는 구체적인 수법과 추악한 행태를 매우 구체적으로 폭로하고 있다. 목적은 환관의 난정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예고하는 데 있다.
그리하여 이어서 책에서는 십상시가 권력을 쥐자 배척 대상을 황건적을 물리쳐 공을 세운 장군들에게로 돌렸음을 개괄적으로 설명한다. 그들은 사람을 보내 공을 세운 장수들에게 금백과 재물을 요구했고, 따르지 않는 자는 황제에게 상소하여 조서를 내려 직위를 파면하게 했다. 황보숭, 주준 등 장군들도 유비와 마찬가지로 뇌물을 주려 하지 않았고, 영제는 참언을 믿어 이들 공신은 모두 파직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충량한 이를 함해한 환관들을 장군으로 봉하니, 장양 등 환관 열세 명은 공도 없이 녹을 받고 모두 열후(列侯)에 봉해졌다. 조정의 정치는 더욱 나빠지고 백성들의 원망은 하늘을 찔렀다.
이에 장사(長沙), 어양(漁陽) 등지에서 혼란을 틈타 속속 반란을 일으켰다. 긴급한 보고가 눈사태처럼 날아들었으나 황제는 전혀 알지 못했다. 십상시가 이러한 긴급 군사 정보를 모조리 감춰버렸기 때문이다. 간관(諫官)들이 직언하여 환관들을 꾸짖자 황제는 오히려 “나라가 태평한데 무슨 위급한 일이 있단 말이냐?”라며 대신들이 자신의 시신(侍臣)들을 모함한다고 여겼다. 간관들은 하나둘 옥에 갇혔고 결국 환관들에게 모해를 당해 옥사했다.
유비는 유회의 천거로 유주목 유우(劉虞)의 처소로 갔다가 어양의 반란을 토벌할 기회를 얻었다. 큰 공을 세운 뒤 독우를 매질한 죄를 사면받고 평원현(平原縣) 현령이 되었다. 각지의 반란은 비록 평정되었으나, 이 모든 것은 환관들이 황제의 명을 빌려 조서를 내린 소행이었으니, 위기가 지나가면 다시 예전 버릇대로 충량을 배척하고 관직을 파니 못 하는 짓이 없었다.
이로부터 황제는 완전히 환관의 참언에 눈이 멀었고 조정의 충량은 물러나고 간신들이 들어앉아 소인이 득세하니 강산이 위태로워졌다. 영제는 곧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다. 영웅들이 나란히 일어나 강산이 분열되고 제후들이 쟁패하는 서막이 곧 열리려 하고 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