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단(顏丹)
【정견망】
중국 고대 관직 품계에 따르면 현령(縣令)은 대부분 7품관(극소수만 5품)에 불과했다. 그러나 백성들의 마음속에서 그들은 한 지방을 안정시키는 부모관(父母官 목민관)이었다.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한 현령들은 흔히 백성들의 깊은 사랑을 받았으며, 사람들이 그 덕행을 칭송하기 위해 세운 사당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저자거리와 시골 마을 사이에 어렴풋이 남아 있다.
그들의 명성이 후세에 길이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시대를 초월한 선정(善政)과 덕행 덕분이다. 이러한 덕행은 하늘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여 신명(神明)의 도움을 받았다. 그리하여 예전에는 세상을 떠난 후 성황(城隍)으로 봉해진 현령이 있는가 하면, 살아생전 단 한 명의 군사도 쓰지 않고 호환(虎患)을 없앤 현령도 있었다.
후한(東漢)의 두 현령이 이런 능력이 있었다. 한 명은 유릉(劉陵)으로 자는 맹고(孟高)이며 원래 강서 애현(艾縣, 현재의 구강 수수현 서부) 사람이다. 화제(和帝) 재위 시절 그는 장사 안성현(安成縣)의 현령으로 임명되었다. 이곳은 두 군(郡)의 접경지에 위치하여 호환(虎患 호랑이 피해)이 매우 심했다. 많은 백성이 그 고통을 견디다 못해 타향으로 떠나야 했다.
유릉은 이 소식을 듣고 즉시 사람을 보내 호랑이를 잡게 한 것이 아니라, 덕행으로써 백성을 교화하고 현지에 선정을 베풀었다. 이렇게 한 달여가 지나자 안성현의 호랑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호환이 제거되자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도 외지에서 다시 돌아왔다.
화제가 이 일을 알게 되어 유릉을 크게 칭찬하고 그를 궁으로 불러 시중(侍中) 직을 맡겼다. 나중에 화제가 낙양 남교(南郊)에서 제사 대전을 거행할 때도 유릉을 곁에서 모시게 했으니 그에 대한 신뢰가 매우 두터웠다.
또 다른 덕행이 뛰어난 현령은 동회(童恢)로 자는 한종(漢宗)이다. 그가 불기현(不其縣)에서 현령을 맡았을 때 현의 관리와 백성이 선행을 하는 것을 보면 크게 포상하고 장려했다. 만약 법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인내심 있게 타이르고 권유했으며 결코 지나치게 엄한 형벌을 내리지 않았다. 그의 다스림 아래 백성들은 남자는 밭 갈고 여자는 베 짜며 화목하고 평온한 삶을 살았다. 당시 현아(縣衙)의 감옥에는 수년 동안 죄수가 없었다. 이웃 현에 사는 사람들조차 명성을 듣고 찾아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외지에서 이주해 정착한 가구가 2, 3만 호에 달했다.
한동안 현에 호환이 일어나 모두가 매우 두려워했다. 동회는 함정을 설치해 호랑이 두 마리를 산 채로 잡았다. 그는 호랑이 앞에 서서 꾸짖었다. “하늘이 만물을 냈으나 사람이 가장 귀하다. 호랑이와 이리는 가축을 먹이로 삼아야 하거늘 어찌 사람을 먹을 수 있느냐? 인간의 법률에 따르면 사람을 죽인 자는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 너희 둘 중 사람을 죽인 자가 있다면 머리를 숙여 죄를 인정하고 법의 처분을 받되, 사람을 죽이지 않은 자는 포효하여 자신의 억울함을 밝히거라.”
동회의 말이 끝나자마자 호랑이 한 마리가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으니 마치 대인의 처분대로 하겠다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 마리는 땅에서 뛰어오르며 그를 향해 슬피 울부짖었다. 결국 동회는 죄를 인정한 호랑이를 처형하고 억울함을 호소한 호랑이는 산림으로 돌려보냈다.
북송(北宋) 관리 여수(呂璹)는 자가 계옥(季玉)으로 역시 백성을 염려한 훌륭한 관리였으며 부임하는 곳마다 사람들의 까다로운 난제를 해결해 주었다. 그는 젊은 시절 장주 장포현(漳浦縣)의 현령으로 있을 때 그곳을 아주 훌륭하게 다스렸다. 감사의 뜻과 애정의 표시로 백성들은
한번은 어떤 백성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는 말을 듣고 그는 오랫동안 슬퍼했다. 그리고 즉시 죽은 사람이 습격당했던 곳에 함정을 묻게 하고 직접 그곳을 지켰다. 그는 함정을 향해 말했다. “사람을 해친 맹수여, 속히 와서 벌을 받으라!” 다음 날이 되자 정말로 호랑이 한 마리가 함정에 빠져 있었다.
또 다른 노파의 아들이 장군묘(將軍廟)에 가서 공양물을 훔쳤다. 그는 묘 문을 나오자마자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현장에서 사망했다. 노파는 자식을 잃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슬피 울었다. 여수가 이를 보고 차마 견디지 못해 특별히 축문(祝文)을 지어 장군묘에서 낭독했다. 대의는 이러했다. 법률에 따르더라도 황실 종묘의 주식(酒食 술과 음식)을 훔친 자에게는 경형(黥刑, 얼굴에 문신을 새기는 형벌)을 내릴 뿐인데, 하물며 묘 안의 장군은 인신(人臣)에 불과하니 어찌 사형에 처한단 말인가! 고의로 악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한때 미혹된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관용을 베풀어야 법률의 공정하고 엄명함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수가 이 축문을 태우자마자 노파의 아들이 기적처럼 살아났다. 신기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자 백성들은 수군거렸다. 그들은 여수가 천지를 흔들고 신명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명대 초기 주욱(周郁)이라는 수재(秀才)가 있었는데 덕과 재능이 뛰어나 태조 홍무(洪武) 31년에 산서 양릉현(襄陵縣)의 지현(知縣)으로 선발되었다. 나중에 그는 선정을 베풀어 성심(聖心 황제의 인정을 받음)을 얻어 혼원주(渾源州, 현재의 대동시 혼원현) 지주(知州)로 발탁되었다.
한동안 주에 황충(蝗蟲) 피해가 일어났다. 주욱이 경건하게 하늘에 기도하자 현지의 메뚜기들이 곧 모두 날아가 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 남쪽에 다시 호랑이가 나타나 백성을 물어 상하게 했다. 주욱이 이를 알고 축문을 써서 신명께 기도했다. 그는 또 사람들에게 산기슭에 우리를 놓게 하고 그 위에 방을 붙여 “사람을 상하게 한 호랑이는 스스로 안으로 들어오라”고 적었다. 그날 밤 사람을 물어뜯었던 호랑이가 정말로 스스로 우리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보아하니 호랑이도 신명의 명과 안배에 복종해야 하는 듯하다! 호랑이를 꼼짝 못 하게 잡고 흉악한 짓을 못 하게 하려면 신명의 가련히 여기심을 구해야 한다. 하늘은 흔히 덕이 있는 선비와 마음씨가 순선(純善)한 사람을 돌보시니, 부모관이 선정을 베풀면 백성들은 신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주욱과 같은 지현은 백성에게 지성(至誠)과 지선(至善)을 다했으니, 훗날 형주(荊州) 지부로 승진해 떠난 뒤에도 혼원의 백성들이 그를 잊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참고자료: 《호회(虎薈)》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4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