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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장왕이 후세에 주는 계시

소양춘

【정견망】

성인께서 말씀하시기를 “무력으로 천하를 정복하고, 왕자가 나라를 다스린다”라고 하셨다. 초장왕(楚莊王)은 춘추시기 초나라에서 가장 성취가 컸던 군주이자 춘추오패 중 한 사람이다. 그와 관련된 역사적 고사인 ‘일명경인(一鳴驚人한번 울어 사람을 놀라게 하다)’, ‘문정중원(問鼎中原)’, ‘지과위무(止戈爲武)’ 등은 후세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어느 정도 현실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명경인(一鳴驚人)–한번 울어 사람을 놀라게 하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초장왕이 즉위하기 전 3년 동안 초나라는 내우외환에 처해 있었고, 각지에서 보낸 긴급 보고서가 눈송이처럼 영도(郢都 초나라 도성)로 날아들었다. 그러나 장왕은 여전히 가무(歌舞)를 즐기고 술을 마시며 정사를 돌보지 않은 채 황폐하게 보냈다. 아울러 “감히 간언하는 자가 있으면 죽이되 용서하지 않겠다!”라는 명령을 내렸다.

근심이 타는 듯했던 대신 오거(伍舉)는 의연하게 궁궐로 들어가 완곡하게 장왕에게 일깨워주며 말했다.

“남쪽 언덕에 새 한 마리가 있는데, 3년 동안 날개도 치지 않고 날지도 울지도 않으며 묵묵히 소리가 없으니, 이것을 무엇이라 이름하겠습니까?”

종과 북 사이에 앉아 있던 장왕은 오거가 자신을 암시하며 풍자하고 있음을 알고 도광양회(韜光養晦)의 말투로 대답했다.

“3년 동안 날지 않았으나 날면 하늘을 찌를 것이요, 3년 동안 울지 않았으나 울면 반드시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오.”

이것이 바로 ‘날지 않으면 그만이나 한번 날면 하늘을 찌르고, 울지 않으면 그만이나 한번 울면 사람을 놀라게 한다(不飛則已,一飛沖天;不鳴則已,一鳴驚人)’라는 성어의 최초 출처다.

하지만 그 후 몇 달 동안 장왕은 여전히 예전 그대로였다. 대부 소종(蘇從)이 다시 죽음을 무릅쓰고 간언에 나섰다. 그는 궁에 들어가 장왕을 보자마자 소리 내어 통곡했다.

장왕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선생은 무슨 일로 이토록 슬퍼하시오?”

소종이 말했다.

“제 자신이 죽게 된 것도 물론 슬프지만, 더욱 슬픈 것은 초나라가 망하게 된 것입니다!”

장왕이 놀라며 물었다.

“그대가 죽을 것을 어찌 알며, 그것이 초나라의 멸망과 무슨 상관이 있소?”

소종이 말했다.

“저는 대왕께 정사에 힘쓰시라고 간언하러 왔으니 대왕께서는 반드시 저를 죽이실 것입니다. 중신들이 충언을 하는 자가 죽는 것을 목격하고, 대왕께서 깨닫지 못한 채 계속 온종일 사냥을 즐기며 주색에 빠져 계신다면 더 이상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초나라가 망할 날도 멀지 않을 것입니다!”

장왕이 크게 노하여 말했다.

“그대는 죽을 줄 알면서 왜 헛되이 죽으러 왔는가?”

소종이 말했다.

“대왕께서 저를 죽이신다면 저는 임금에게 충성하고 직언한 것으로 칭송받겠지만, 대왕께서는 이로 인해 나라를 잃고 망국의 군주가 되실 것입니다.”

‘정성이 지극하면 금석도 열린다(精誠所至, 金石爲開)’라고 했다. 다행히 초장왕은 마침내 꿈에서 깬 듯 선한 말을 따랐다. 소종의 권고를 받아들여 즉시 여자 악사를 해산하고 주색을 멀리하며 조정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분발하여 강해지기에 힘썼다. 소인을 처단하고 현신(賢臣)을 임용하며 생산을 중시하고 경제를 발전시키니 초나라는 나날이 강성해졌다.

문정중원(問鼎中原)

한 번 울어 사람을 놀라게 한 초장왕은 영윤 산숙오(孫叔敖)를 임용하여 조정을 보필하게 했다. ‘백성에게 가르침을 베풀고’ ‘도로써 정치를 펴며’ ‘근본인 농업을 튼튼히 하고 백성의 이익을 유도’하여 형벌을 너그럽게 하고 정치를 완화하니 여러 업종이 제자리를 찾아 초나라의 경제적 실력이 끊임없이 증강되었다. 이에 야심만만해진 초장왕은 군대를 이끌고 북상하여 중원으로 진출했다. 낙수(洛水)까지 진격하여 주나라 천자의 도성인 낙읍(洛邑) 부근에 다다르니, 역사는 이를 ‘주나라의 강역에서 군대를 관찰했다(觀兵於周疆)’라고 한다.

주정왕(周定王)은 즉시 왕손만(王孫滿)을 보내 초나라 군대를 위로하게 했고, 초장왕은 이 기회를 틈타 정(鼎)의 크기와 무게를 물었다.

정이란 고대 구주(九州)의 상징이며 군주가 천하를 차지했다는 표식이다. 대우(大禹)가 구정(九鼎)을 주조한 이래 하, 상, 주는 이를 전해받으며 보배로 받들었으니 이는 천자의 권력과 지위가 의심의 여지나 도전의 대상이 아님을 의미했다.

이에 왕손만은 기지 있게 대답했다.

“천하를 통일하고자 함은 덕(德)에 있는 것이지 정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 “주나라에 불복했던” 초장왕은 말했다.

“그대들 주나라 왕은 구정(九鼎)을 가졌다고 해서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고 자부하지 마시오. 우리 초나라는 꺾인 창만 거두어들여도 구정을 주조할 수 있소.”

중원을 굽어보는 초장왕을 향해 왕손만은 화제를 돌려 말했다.

“옛날 대우(大禹)께서 덕이 있어 각지에서 조공을 바치고 구목(九牧)에서 구리를 바쳐 구정을 주조했습니다. 하나라 걸왕이 혼덕(昏德)을 가졌기에 정이 상나라로 옮겨갔고, 상나라 주왕(紂)이 포학했기에 정이 주나라로 옮겨왔습니다. 성왕(成王)께서 겹욕(郟鄏, 낙읍)에 정을 안치하고 점을 치니 30대 700년 동안 이어질 것이라 했으니, 이는 하늘로부터 명을 받은 것입니다.”

“정치와 덕(德)이 청명하면 정이 작아도 무겁고, 임금이 도(道)가 없으면 정이 커도 가벼운 법입니다. 주 왕조가 중원에 정을 정한 것은 권력이 하늘이 내린 것입니다.” 왕손만은 기지를 발휘해 의미심장하게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왕손만은 단호하게 초장왕에게 암시했다. 지금 “주나라의 덕이 비록 쇠했으나 천명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정의 무게는 물어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왕손만의 정의롭고 준엄한 말을 들은 초장왕은 천명을 어기기 어려움을 스스로 알게 되었다. 이른바 ‘황천은 친소(親疎)가 없으며 오직 덕 있는 사람을 돕는다(皇天無親,惟德是輔)’라는 것이다. 이에 군대를 물리기로 결정하고 이후 다시는 주나라 왕실을 침범하지 않았다.

지과위무(止戈爲武)

초장왕은 중원의 정(鼎)을 물어 천명이 귀속된 곳을 알게 된 후, ‘필 전투(邲之戰)’에서 당시 가장 강성했던 제후국인 진(晉)나라를 일거에 격파하고 대승을 거두었다. 이때부터 초나라는 오랑캐의 기풍을 버리고 대국의 예의와 풍범을 본받아 결국 나중에 시작했음에도 앞서 나가게 되었다. 한때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었으며, 고대 그리스 문화에 필적하는 초문화(楚文化)를 창조했다. 초장왕은 이로써 제환공, 진문공에 이은 세 번째 춘추패자가 되었다.

《좌전》의 기록에 따르면, 패배하여 도망치던 진나라 군사들이 배를 다투어 강을 건너려 했다. 전차가 진흙탕에 빠져 움직이지 못하자, 초나라 군대는 승세를 타고 추격하기는커녕 오히려 진나라 군대에게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쳐주어 진나라 전차가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했다.

필의 전투가 끝난 후, 대신 반당(潘黨)이 건의했다.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군영을 수축해 무공을 과시하고, 진나라 병사들의 시신을 거두어 ‘경관(京觀)’을 세우지 않으십니까? 신이 듣기에 적을 이기고 승리하면 반드시 후대에 기념을 남겨 선배들의 전공을 잊지 않음을 표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창힐이 글자를 만들 때 ‘지(止)’와 ‘과(戈)’ 두 글자를 합쳐 ‘무(武)’라는 글자를 만들었다. 한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성인이 무(武)로써 폭력을 금하고 어지러움을 정리하여 전쟁을 그치게 하는 것이지, 잔인하게 사람을 해치고 멋대로 행동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인터넷 이미지)

초장왕은 그렇지 않다며 말했다.

“그 말은 틀렸소. 문자 구조로 볼 때 전쟁을 멈추는 것이 무(武)요[止戈爲武]. 무왕이 상나라를 정벌한 후 주나라 사람들이 《송(頌)》을 지어 말하기를, 무왕이 명령을 내려 창과 방패를 거두고 활과 화살을 집어넣게 했다고 했소. 무왕은 무(武)를 멈추고 문(文)을 닦았을 뿐만 아니라, 천하의 덕 있는 선비들을 찾아 나라를 다스리게 했으며 어진 이를 구하는 마음을 제후국들에게 널리 알렸으니, 천하의 마음이 돌아온 주 왕조는 이때부터 강산이 견고해졌소.”

“무력을 동원할 때는 일곱 가지 미덕을 기억해야 하니, 즉 ‘폭력을 금하고(禁暴), 병기를 거두며(戢兵), 대국을 보존하고(保大), 공을 세우며(定功),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安民), 대중을 화합하게 하며(和衆), 재물을 풍성하게 하는 것(豐財)’이오. 나는 진나라에 병사를 썼으나 단 한 가지 무덕(武德)도 없으니 무엇으로 후대를 가르치며 어떻게 덕으로 사람을 복종시키겠소? 차라리 초나라의 선군(先君)들을 위해 종묘를 세우고 초나라를 보우하신 조상의 덕에 감사드려야겠소. 군사력을 남용하고 위세를 떨치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오.”

이른바 경관이란 고대 전쟁에서 승리한 쪽이 상대방 전사자들의 시신을 들판에 방치하고 언덕처럼 쌓아 흙을 덮어 사방에서 보이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제후들을 위협하고 무력을 과시하며 자손들이 조상의 공훈을 명심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당태종은 망자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기 위해 역대 왕조가 세운 경관을 평평하게 깎고 해골을 다시 매장하여 흙 속에 편히 안치하게 한 적이 있다.

결론

예로부터 중화민족에게는 ‘덕을 숭상하고 무를 중시하며(崇德尚武)’, ‘덕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는(以德服人)’ 우수한 전통이 있었다. 《손자병법》의 첫머리에는 바로 ‘지전(止戰)’ 사상이 나온다.

“병(兵)이란 나라의 대사이며 삶과 죽음의 마당이고 존망의 길이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싸우지 않고 남의 군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선 중의 선이다.”

동시에 전쟁은 반드시 명분이 뚜렷하고 이유가 정당해야 함을 요구했다. 전쟁의 목적은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죽이거나 땅을 빼앗기 위함이 아니라, 정의를 수호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칼을 주조해 보습을 만들고(鑄劍爲犁)’, ‘무력을 멈추는 것이 무(止戈爲武)’이며, ‘피를 흘리지 않고 이기고(兵不血刃)’, ‘창과 방패를 비단으로 바꾼다(化幹戈爲玉帛)’는 등의 말은 중화 전통 무술의 도덕 정신일 뿐만 아니라 화하(華夏)민족이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적 내포를 투영하고 있다. 사람은 신이 만든 생명이기에 생명을 아끼는 것은 온 인류가 마땅히 준수해야 할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4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