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여(劉如)
【정견망】
《삼국연의》를 읽다 보면, 우리는 이 책이 묘사하는 고대 사회가 드라마에서 보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옛사람들이 일을 판단할 때 핵심은 ‘덕(德)’이었으며, 예법과 무력은 보조적인 수단일 뿐 궤변은 발붙일 곳이 없었다. 비록 겁이 많은 이들이 일시적으로 무력에 눌려 말을 못 할지언정, 그 사상은 결코 흐리멍덩하지 않았으며 쉽게 세뇌되거나 이용당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사악한 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었기에, 포악한 동탁이 명리에 밝은 노식을 그토록 두려워하며 제거하려 했던 것이다. 오늘은 노식의 말을 통해 옛사람들의 지혜를 자세히 분석해 보자.
이윤(伊尹)의 뜻으로 동탁의 찬역(篡逆)을 단정
먼저 노식의 그 유명한 반박문을 다시 음미해 보자.
“명공(明公)의 말씀은 틀렸소. 옛날 태갑(太甲)이 현명하지 못하자 이윤(伊尹)이 그를 동궁(桐宮)으로 내쫓았고, 창읍왕(昌邑王)은 즉위한 지 겨우 27일 만에 3천여 가지의 악행을 저질렀기에 곽광(霍光)이 태묘(太廟)에 고하고 그를 폐위했었소. 지금의 황제는 비록 어리시나 총명하고 인자하며 지혜로우시어 털끝만큼의 과실도 없으시오. 공은 외군(外郡)의 자사로서 평소 국정에 참여한 적이 없고, 또한 이윤이나 곽광과 같은 큰 재능도 없는데 어찌 억지로 폐립의 일을 주관하려 하시오? 성인(聖人)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윤과 같은 뜻이 있다면 가능하나, 이윤과 같은 뜻이 없다면 찬탈이다’라고 하셨소.”
이 말의 요지는 이렇다. 당신의 폐위 주장은 옳지 않다. 과거 상조의 태갑이 덕을 잃었을 때 재상 이윤이 그를 유배 보내 반성하게 했고(3년 뒤 태갑이 뉘우치자 다시 복위시켜 명군이 됨), 한조의 창읍왕은 단 27일 만에 수천 가지 악행을 저질렀기에 곽광이 종묘에 고하여 폐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소제(少帝)는 어질고 총명하여 과실이 없다. 또한 당신은 지방 자사일 뿐 국정에 참여할 권한도 없으며 성인과 같은 대재능도 없는데 어찌 무리하게 폐립을 주관하려 하는가. 성인의 가르침에 따르면, 왕위를 탐내지 않고 군주를 바로잡으려는 공심(公心) 즉 ‘이윤의 뜻’이 있다면 정당하나, 그런 마음 없이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반역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결국, 폐위되는 자는 심각하게 실덕(失德)해야 하며, 이를 집행하는 자는 사심 없는 공심과 천하의 신망, 그리고 천지신명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이윤(伊尹)은 상조(商朝) 개국 승상으로, 5대 군왕을 보좌하며 백 세를 살았고 사후에는 왕의 예우로 장례를 치렀다. 그는 천명을 받들고 세상에 내려와 하늘의 이치에 통달하고 인도(人道)에 부합하는 큰 재능을 가진 인물이었으며, 요순(堯舜)의 인효(仁孝)를 다스림의 도로 삼아 역대 상조 왕들을 가르친 제왕의 스승이었다. 《삼국연의》 중의 제갈량은 바로 이윤의 상징으로, 세 번이나 청한 뒤에야 산에서 나왔으니 보통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경지를 갖추었다. 이러한 대지혜자들은 하늘의 이치를 밝게 알고 천명(天命)을 알며 천의(天意)에 순응하여 행하니, 국운과 천하 대사를 가슴속에 훤히 꿰뚫고 있어 권력과 왕위에는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이윤이 태갑(太甲)을 추방한 이야기는 《사기》 등 여러 역사 기록에 나온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완전히 상반된, 악을 선양하는 것을 가치관으로 삼는 별개의 사서들을 근거로 이윤을 부정한다. 전통적인 성왕(聖王)과 어진 재상이 남긴 도덕적 귀감을 부정하는 것은 매우 무서운 일이며, 조상을 마(魔)로 변화시켜 후손과 전체 민족의 도덕을 파괴하려는 시도다. 이는 천고의 죄인이 되는 일이며 마귀나 하는 짓이다.
만약 아이들이 이를 믿게 된다면 조상을 철저히 비웃고 도덕을 비웃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을 한 사람은 후손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악한 무리로 변하게 할 것이다. 우리는 과연 선(善)을 드높이고 있는가, 아니면 사람을 망쳐서 짐승으로 만들려 하는가? 우리의 이른바 학문과 총명함이 마귀에게 이용당하고 조종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역사를 거꾸로 쓰거나 사악한 가치관을 입증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재고해야 한다. 우리의 재능을 정말로 민족 도덕을 파멸시키는 데 사용해야 하겠는가? 우리가 학문을 연구하고 인생의 시간과 가치를 쏟는 것이 진정 이 무서운 목적을 위해서란 말인가?
난세의 난제는 오직 덕(德)으로만 풀 수 있다
노식(盧植)은 동한(東漢)의 대유학자다. 그가 하는 말을 보면, 황제를 폐하고 세우는 국가의 제일 큰 대사에 직면해서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회피하지도 않는다. 언어는 단아(端雅)하지만 논점은 분명하며, 동탁(董卓)의 그릇된 이론을 직설적으로 반박했다. 그는 동탁에게 제왕을 선택하는 것, 즉 누가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는지 판단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위엄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덕행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역사상의 선례들은 모두 제왕 본인이 심각하게 실덕(失德)하여 천하의 신뢰를 잃었기에 폐위된 것이므로, 소제(少帝)는 이 조건에 부합하지 않으며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식의 말은 덕(德)이야말로 대사를 판단하는 핵심 원칙임을 말하고 있다. 주의할 점은, 노식이 여기서 군신 관계나 장유유서 등 예법을 먼저 내세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진정으로 학문을 아는 사람이라면 예(禮)란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일상의 규정이며,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업무를 보고 교제하며 생활하는 데 편리하게 하고, 존경과 안부, 우정과 선의 등을 표현하기 편리하게 하는 통용되는 규칙임을 분명히 알기 때문이다. 민족이 다르고 왕조가 다르면 구체적인 표현 형식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예라는 외적 형식은 변할 수 있지만, 도덕을 유지하는 작용과 덕을 핵심으로 하는 원칙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비상시기나 극단적인 상황에서 제왕이 심각하게 실덕하여 국가와 백성을 위태롭게 하고 자격을 상실했을 때에는 군신의 예는 잠시 접어둘 수 있다. 신하는 제왕의 종묘 앞에서 신하의 신분이 아니라 제왕의 선조를 대신해 제왕을 가르치는 신분으로, 매우 정식적이고 엄숙하게 천지와 제왕의 선조에게 제사 지내고 고하며 제왕의 폐립을 집행할 수 있다. 이는 반드시 당당하게 종묘와 천지, 그리고 여러 대신 앞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역사상 비상시기에 실제로 이런 선례가 있었고 신하도 제왕을 폐할 수 있었지만, 반드시 심각한 실덕이 있는 경우여야 하며 반드시 공개적이고 엄숙하게 집행되어야 했다. 조금의 불공정함이나 자신을 위한 사심이 있어서는 안 되며, 그렇지 않으면 모든 이에게 간파될 것이다.
따라서 한 개인이 단지 칼자루를 쥐었다고 해서 세상을 속이고 사람들을 굴복시키려 하며, 제멋대로 이 큰 정사를 순조롭게 마치려 한다면,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그것이 찬역(篡逆)임을 알 것이다. 하물며 소제는 아직 어떠한 실덕 행위도 없었다. 그러므로 동탁의 행위는 의심할 여지 없이 군신의 의리를 어긴 모반이며, 그가 이 일을 성사시키든 아니든 도리에 어긋난 짓을 저지른 불의한 무리로 욕을 먹게 될 것이다. 그래서 동탁이 결국 이 일을 성사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곧 천하 영웅들이 의로운 기치를 들고 공동으로 토벌하는 국적(國賊)이 되었으며 사람마다 그를 욕했다. 사람들이 감히 화를 내면서도 말을 못 하든 아니든 간에, 사회 전체가 덕을 아름답게 여기고 자발적으로 의리를 받들었기에 자연스럽게 그의 행위가 불의한 짓임을 판단한 것이다. 예와 법은 필요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사람이 되는 도리는 변할 수 없다. 그러기에 고대인들은 사리에 밝게 살았다.
동탁은 황제를 폐한 후 매일 경계하며 잠자리조차 편안하지 못했고, 언제든 암살당할 것을 대비해야 했다. 이렇게 단지 폭력으로 얻은 정권이 오래갈 수 있겠는가? 추앙하고 본받을 가치가 있겠는가? 분명히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무력이 존재하는 작용을 부정하는 것인가? 물론 아니다. 그래서 《삼국연의》는 적절한 시기, 즉 유비(劉備)가 촉에 들어갈 때 군사 방통(龐統)을 통해 덕으로써 무력을 사용하고 역취순수(逆取順守 편법으로 권력을 얻어 바르게 지킴)하는 비상한 이치를 강설하여 우리의 의혹을 풀어준다.
《삼국연의》를 보면 예(禮)가 문제를 토론하는 핵심이 아니라 덕(德)이야말로 핵심임을 알게 될 것이다. 학식 있는 군자들은 이 점을 매우 분명히 알고 있다. 덕이라는 원점으로 돌아가 사물을 가르쳐야만 모든 난상과 왜곡된 논리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고 그릇된 이론을 타파할 수 있다. 이는 고대인들이 공자의 ‘위정이덕(爲政以德)’ 가르침을 유연하게 운용하여 국가 대사를 처리할 줄 알았음을 설명한다. 도덕이야말로 예를 포함한 모든 사물을 판단하는 근본 표준이며 모든 정사가 돌아가는 핵심임을 알았던 것이다. 이러한 견식이 있어야 교조주의에 흐르지 않는다. 현대의 수많은 법률, 교육, 사회, 경제 문제도 고대인의 선악 도덕관으로 가늠해 본다면 바로 문제의 핵심을 잡고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현(聖賢)의 책을 읽는 것은 고리타분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리타분함을 깨뜨리고 우리 민족 문화의 진상을 복원하는 길이다.
그렇다면 노식의 목숨은 어떻게 되었을까? 책에는 신하들이 간언하며 저지하기를 “노 상서는 해내(海內)에 명망이 높으니 지금 먼저 해치신다면 천하가 놀라고 두려워할까 걱정됩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에 동탁도 감히 손을 쓰지 못했다. 천하의 도의(道義)를 대표하는 군자를 공공연히 살해하는 것은 천하 사람들에게 자신이 도의와 적이 되었음을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것과 같다. 이는 즉시 전국 각 주군(州郡)의 토벌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오히려 황제를 폐하려는 자신의 음모에 방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548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