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서(嶽西)
【정견망】
“억지로 하면 실패할 것이고,
잡으려 하면 잃을 것이다.
(爲者敗之, 執者失之).”는 《노자·도경·제29장》에 나온다.
대략적인 뜻은 다음과 같다. 매사에 억지로 망령되이 행하면 흔히 실패로 나아가고, 무엇에 과도하게 집착하면 최종적으로는 도리어 잃기 쉽다는 말이다.
이 구절에 대해서는 예부터 의견이 분분했다. 사람마다 서 있는 각도가 다르기에 이해 또한 자연히 같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속인의 기점에서 본다면, 많은 일이 일단 천리에 위배되거나 규율에 위배되어 강행하게 되면 실패는 왕왕 필연적인 것이다. 또한 명(名), 리(利), 정(情), 욕(欲)에 과도하게 집착하면 흔히 집착 속에서 원래 가졌던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예를 들어 《삼국연의》의 유비는 관우의 복수를 위해 천하 형세를 돌보지 않고 자칭 70만 대군을 이끌고 동오(東吳)를 공격했다. 이것은 사실 일종의 “억지(強爲)”다. 비록 제갈량이 극력 권고하며 말렸을지라도 유비의 결정을 바꿀 수는 없었다. 결국 이릉(吏陵)에서 패전했으니, 그야말로 “위자패지(爲者敗之)”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서유기》 중 관음선원의 늙은 방장은 가사에 강렬한 탐념을 내어 심지어 가사를 얻기 위해 당승(唐僧)을 해치려 했다. 결과적으로 가사를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목숨을 잃었다. 이것은 바로 “집자실지(執者失之)”의 체현이다.
하지만 노자 본인은 수도인이다. 그렇다면 그의 말을 만약 수련인의 각도에서 서서 이해한다면 더욱 깊은 층차의 함의가 있게 된다.
수련의 각도에서 보면, 사람이 만약 강렬한 사람마음(人心)과 집념을 품고 무엇을 추구한다면 왕왕 도리어 얻지 못한다. 진정으로 집착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사람마음을 내려놓는 것이다.
수련인이 원만(圓滿)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관건은 마음을 닦는 데 있으며, 단지 표면상의 “유위(有爲)적인 일”을 하는 데 있지 않다. 마치 어떤 이들이 절을 짓고 불상을 조성하며 각종 형식적인 일들에 집착하면서도, 진정으로 자신의 심성(心性)을 닦는 것은 소홀히 하는 것과 같다. 만약 사람마음을 제거하지 않고 집착을 내려놓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표면적인 “선한 일”을 할지라도 반드시 진정으로 자신을 제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오늘날의 대법제자에게 있어서는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잘해야 할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을 잘 닦는 것이다. 만약 단지 일하는 것만 중시하고 마음 닦는 것을 소홀히 한다면, 마찬가지로 진정한 원만에 도달할 수 없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스위스법회 설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에서 가리키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다 하는 것은 결코 물질적인 것을 무조건 내려놓아야 비로소 내려놓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정반대로 만약 당신이 물질상의 것을 모두 내려놓았지만 당신이 마음속으로 내려놓지 못하고 아주 아쉬워서 떼어놓지 못하며, 또한 늘 생각이 나서 때로는 이로 인해 수련에까지 영향을 받는다면, 나는 그것은 내려놓은 것이 아니며 그것은 강제로 내려놓은 것이라고 말한다.”
진정으로 내려놓는 것은 사람마음이지 물질 자체가 아니다. 즉 득실에 집착하지 않고 명리정에 끌려 다니지 않아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내려놓음”인 것이다.
대법은 원융(圓融)하다. 속인의 이치(理)는 사실 단지 대법 최저 층차 중의 작은 체현일 뿐이다. 그러므로 세간의 많은 전통문화 속의 도리는 대법과 상통하는 곳이 있지만, 대법은 동시에 더욱 높고 더욱 깊은 법리가 존재한다.
속인은 세간에 살며 자연히 추구가 있기 마련이다. 추구하는 과정에서 천리에 역행하여 망령되이 행하지 않고 과도하게 집착하지 않는다면 사실 이미 매우 고귀한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수련인에게는 요구가 더욱 높다. 단지 억지로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진정으로 집착을 내려놓고 법을 스승으로 삼아(以法爲師) 법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해야만 진정으로 원만을 향해 걸어갈 수 있다.
노자는 신(神)이며 그가 사람에게 남겨준 말 속에는 인간의 이치뿐만 아니라 수련의 이치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노자가 법을 전한(傳法) 자체 또한 오늘날 정법(正法)을 위해 문화적 기초를 다진 것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법을 얻고 진정으로 원만을 향해 가고자 한다면, 최종적으로는 대법을 수련해야지 단지 노자의 이치 속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