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점점 사라져가는 수공업 기술

정사(靜思)

【정견망】

“가위 갈아요, 식칼 갈아요~~~” 창밖에서 들려오는 구성진 외침 소리는 마치 시간의 문을 여는 열쇠와 같아,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한참을 서 있었다. 기억 속에는 어린 시절의 화면들이 떠올랐다. 어릴 때는 늘 다양한 외침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떡이나 단술을 파는 소리도 있었고, 가위나 식칼을 가는 소리도 있었는데, 소리가 높고 낭랑하면서도 결코 사람을 짜증 나게 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러한 외침 소리는 언제부터인가 점차 들리지 않게 되었고, 그와 함께 사라진 것은 바로 그 전통적인 수공업 기술들이다.

가위 갈기

필자의 기억 속 그 칼 가는 사부(師傅 숙련공)는 늘 구식 봉황표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자전거에는 긴 나무 벤치가 걸려 있었다. 사부님은 외침 소리를 내며 골목 안을 유유히 달리고는 했다.

왜 긴 벤치를 가지고 다녔을까? 사실 이 벤치에는 큰 비밀이 숨겨져 있다. 벤치의 한쪽에는 두 개의 숫돌이 고정되어 있는데, 하나는 거칠게 갈 때 사용하고 다른 하나는 세밀하게 갈 때 사용한다. 옆에는 작은 물통도 걸려 있는데, 칼을 갈 때 물로 열을 식혀야 하기 때문이다. 벤치의 다른 한쪽에는 작은 바구니가 걸려 있고 그 안에는 망치, 창도(戧刀), 솔, 물걸레 같은 칼 가는 도구들이 들어 있었다.

창도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일종의 쇠대패인데, 주요 역할은 칼날을 얇게 깎아내는 것이다. 가위 가는 일이 아주 간단하고 기술이 별로 필요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어느 정도 숙련된 기술이 없으면 정말로 가위를 제대로 갈아내기 어렵다.

가위 갈기는 오래된 업종으로, 아마 칼이 생겨나면서 칼 가는 사람도 생겨났을 것이다. “만약 솥이나 그릇을 때우는 사람을 부르려 하거나…… 도검을 갈거나 거울을 닦으려 할 때, 때때로 거리를 지나는 자가 있으면 곧 그를 부르면 된다.”(《몽량록(夢粱錄)》) 송대(宋代)에는 가위 가는 수공업자들이 골목골목을 누볐기에 언제든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만 당시의 칼 가는 사람도 이토록 힘껏 외쳤을지는 모르겠다. “가위 갈아요, 식칼 갈아요~~~”

땜장이(鋦匠)

“금강사(金剛鑽)가 없으면 도자기 일에 덤비지 마라.” 오늘날까지 유행하는 이 속담 뒤에는 이미 사라져 버린 오래된 업종인 땜장이가 있다. 아마 연배가 좀 있는 분들은 드문드문 못이 박힌 사발이나 항아리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치 긴 지네처럼 생긴 그것은 옛날에 깨진 그릇을 수리하던 수공업 기술이다.

옛날 땜장이들은 손재주가 좋아 그 ‘금강사’에 의지해 깨진 도자기에 작은 구멍을 뚫고 구리 못을 살며시 박아 넣었다. 이것은 ‘위험성’이 매우 높은 기술로, 수공업자는 이렇게 균열을 따라 도자기를 복원했다. 비록 그리 미관상 좋지는 않았지만, 일반 가정에서는 주로 절약과 실용을 중시했다. 정성스러운 수리를 거쳐 백자 고약을 바르면 깨진 사발도 다시 몇 년은 더 버틸 수 있었다.

중국 고대에는 각 업종마다 나름의 조사(祖師)를 모셨는데, 땜장이의 조사는 당대(唐代) 시인 호령능(胡令能)이었다. 이 고인(古人)을 말하자면 그의 사적은 매우 전설적이다. 호령능은 젊었을 때 솥이나 그릇을 수리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했지만, 한결같이 도(道)를 추구했다. “차나 과일을 만나면 반드시 열자(列子)에게 제사 지내며 총명함을 구했다.”(《당시기사(唐詩紀事)》) 그의 정성이 신선을 감동시켰는지, 어느 날 호령능은 신기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한 백발 노인이 날카로운 칼을 들고 그의 배를 가르더니 책 한 권을 뱃속에 넣었고, 꿈에서 깨어난 후 호령능은 뜻밖에 시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더욱 불가사의한 것은 그가 수도(修道)에 관한 일도 훤히 꿰뚫게 되었다는 점이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호정교(胡釘鉸)’라 불렀다.

그의 시는 동심으로 가득 차 있다.

“머리 헝클어진 아이가 낚시를 배우며,
이끼 낀 풀숲에 비스듬히 앉았네.
지나가는 이가 길을 묻자 멀리서 손짓하니,
물고기가 놀랄까 봐 대답도 못 하네.”

蓬頭稚子學垂綸
側坐莓苔草映身
路人借問遙招手
怕得魚驚不應人

짧은 28자로 그의 티 없이 깨끗한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다. 후세의 땜장이들이 이 호정진인(胡鼎眞人)을 조사로 받드는 것은, 아마 역사상 시도 잘 쓰고 도자기 수리도 잘하는 수도인을 다시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통 제조(箍桶)

지금의 혼수와 달리 옛사람의 혼수에는 각종 나무통이 빠지지 않았다. 물통, 세숫대야, 변기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나무통들은 대부분 통 제조공들이 수작업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 기술은 목공 일에 속하지만 일반 목수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통 제조의 정수는 테(箍)를 두르는 기술에 있는데, 테를 잘 둘러야만 나무통이 튼튼하고 물이 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나무통 몸체의 금속 고리가 바로 테다.

통을 만들 때 장인은 먼저 테를 통 입구에 끼운 다음 점차 안으로 두드려 넣는다. 테가 조여질수록 판재도 틈새 없이 압착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나무통은 며칠 더 햇볕을 쬔 후 마지막으로 오동나무 기름을 발라야 비로소 물이 한 방울도 새지 않게 된다. 예전에는 딸을 시집보내려는 집마다 질 좋은 구리 테를 몇 쌍씩 맞추곤 했다.

테가 사람의 손에서는 그저 나무통을 조이는 고리일 뿐이지만, 신선의 손에 들어가면 그것은 대단한 법보(法寶)가 된다. 《서유기》에서 여래불(如來佛)은 관세음보살에게 몇 개의 금고(金箍)를 주어 제멋대로인 요괴들을 항복시키게 했다. 서천으로 경을 얻으러 가는 길에 손오공은 줄곧 금고를 벗고 싶어 했으나 흉성(凶性)이 제거되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81난을 겪고 공행(功行)이 원만해져서야 비로소 머리 위의 금고가 자동으로 사라졌다. 또한 마성(魔性)이 깊은 홍해아(紅孩兒)에게는 관세음보살이 단번에 다섯 개의 금고를 사용하여 마성을 봉인하고 정법(正法)에 따라 수련하게 했다.

마무리

산업 시대가 도래하면서 전통 업종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고, 많은 직종이 불가역적으로 사람들의 시야에서 점차 사라져 갔다. 우리가 우연히 그것들을 마주할 때면 늘 격세지감과 함께 막연한 상실감을 느끼곤 하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과거와 전통에 대해 가지는 일종의 그리움일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5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