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행(躬行)
【정견망】
중국 전통문화에서 많은 이들은 《서유기》가 ‘취경(取經)’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깊은 한 층에서는 ‘닦음[修]’을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언제나 단순히 ‘경서(經書)’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승 사도(師徒)가 그저 영산(靈山)에 도착해 경전을 보따리에 싸서 왔던 길로 되돌아왔을 뿐이라면, 《서유기》는 그저 신비한 요괴 이야기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진짜 위대하게 만든 것은 바로 그 81가지 난이다.
황풍령(黃風嶺)의 공포가 없었다면, 화염산(火焰山)의 마음고생이 없었다면, 백골정(白骨精)의 유혹이 없었다면, 여인국에서 정관(情關)이 없었다면, 진짜와 가짜 미후왕을 분별하는 마음의 시험이 없었다면, 그리고 길 위에서의 굶주림과 추위, 오해, 헤어짐과 생사가 없었다면, 그 ‘진경(真經)’은 결국 단지 한 권의 책에 불과했을 것이다. 책 위의 글자는 누구나 읽을 수 있지만, 경전 속의 ‘도(道)’는 반드시 사람이 살면서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육유가 “종이 위에서 얻은 것은 결국 얕으니, 이 일을 온전히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몸소 행해야 한다(紙上得來終覺淺, 絕知此事要躬行)”라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많은 때 우리는 스스로 다 안다고 착각한다. 책 몇 권을 읽고, 강의 몇 번을 듣고, 도리 몇 구절을 깨닫고 나면 스스로 ‘깨달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진짜 인생이 닥쳐 누군가에게 오해를 받을 때, 이익에 유혹당할 때, 감정에 흔들릴 때, 고통에 핍박당할 때, 운명에 의해 절벽 끝으로 내몰릴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결코 진짜 ‘행할 수 있 것’이 아님을 말이다. 그러므로 《서유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경’이 아니라 ‘난(難)’이다. ‘난’이야말로 사람을 단련하는 용광로이기 때문이다.
손오공은 왜 마지막에 부처가 될 수 있었을까? 그가 일흔두 가지 변화를 부릴 줄 알아서가 아니라, 마침내 미쳐 날뛰는 마음을 거두고, 쟁투하려는 마음을 버리며, 억울함을 참아내고, 타인을 보호하며, 신념을 지키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저팔계는 왜 끝내 손오공처럼 되지 못했을까? 그는 늘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에서 흔들렸기 때문이다.
사오정은 왜 평범해 보이면서도 끝까지 갈 수 있었을까? 왜냐하면 진정한 수행은 많은 순간 천지를 뒤흔드는 대단한 것이 아니라, 묵묵히 감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승에게 가장 어려웠던 것 역시 요괴가 아니었다. 명백히 길 위에서 고통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서천(西天)을 믿고, 명백히 여러 차례 속임을 당하면서도 여전히 선(善)을 믿으며, 몸에는 신통 하나 없이 거듭 위험한 지경에 빠지면서도 끝내 본심(本心)을 저버리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큰 수행이다. 때문에 당대 고승 황벽(黃檗)선사는 “한 차례 뼈를 깎는 추위를 겪지 않고서야,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 향을 얻을 수 있으리오(不經一番寒徹骨, 怎得梅花撲鼻香)”라고 말한 것이다.
고난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사람이 진정으로 이해하기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이 참음이고, 무엇이 자비이며, 무엇이 내려놓음이고, 무엇이 견정(堅定)함이며, 무엇이 신앙인지 말이다. 마치 폭풍우를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 입으로 말하는 ‘강인함’이 그저 개념에 불과한 것과 같다. 진정으로 심연(深淵)에서 걸어 나온 사람은 비록 침묵하며 말 한마디 없더라도, 몸에서 저절로 우러나는 힘이 있는 법이다.
진짜 위대한 수련 문화가 모두 ‘말’을 강조하지 않고 ‘행동’을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가령 파룬궁에서는 착실한 수련(實修)를 말하듯, 법리는 말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수련인의 일사일념, 일언일행 속에 녹아들어야 한다. ‘경서’는 그저 문(門)일 뿐이며, 진정으로 걸어가는 것은 수련인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시 《서유기》를 돌아보면 깨닫게 된다. 81난은 취경의 길에서 ‘장애물’이 아니었다. 정반대로, 경서 속의 도는 바로 이 한 겹 한 겹의 마난(磨难) 속에서 수련인에 의해 깨달아지고 실증된 것이다.
경서는 동토(東土)로 가져갈 수 있지만, 진경(真經)은 여든한 가지 고난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생명 속으로 단련되어 들어간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