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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해삼국 (16): 조정에서 도적을 죽이려 했던 충의를 겸비한 오부(伍孚)

유여(劉如)

【정견망】

동탁이 군주를 시해하고 황제를 능멸하며 경성에서 공공연히 백성을 학살한 것은, 스스로 천하의 도의(道義)와 적이 되었음을 선포하고 누가 죽여도 마땅한 ‘국적(國賊)’의 자리에 자신을 놓은 것과 같았다.

금군 월기교위(越騎校尉) 오부(伍孚)가 참다못해 가장 먼저 일어섰다. 성패와 상관없이 그의 의거는 전국 각 주군이 일제히 호응하여 봉기하게 만드는 도화선이 되었다. 즉, 대규모로 ‘의를 연기(演義)’할 시기가 완전히 성숙한 것이다. 오부의 뒤를 이어 조조가 나섰고, 조조가 실패하자 문관인 왕윤(王允)이 대업을 이어받았다. 무장이 앞장서고 문관이 계책을 써서 마침내 간신을 처단한다.

충신이 의를 받드는 두 가지 방식

이 과정은 한조 신하들이 충의(忠義)를 실천하는 두 가지 기본 인식과 방식을 보여준다. 하나는 오부나 앞서 동탁의 폐위 현장에서 피를 뿌린 상서 정관(丁管)처럼 죽음으로써 의를 이루는(以死就義) 결연한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똑같이 사생취의(舍生取義)하되 쉽게 목숨을 버리지 않고, 치욕을 참으며 중임을 맡아 힘을 기르고 때를 기다려 결국 악을 제거하는 방식이다. 조조와 왕윤, 그리고 훗날의 관우와 유비 등이 이에 해당한다. 두 방식 모두 인간사에서 긍정되지만, 후자는 실천하기가 훨씬 어렵고 상황도 복잡다단하다. 《삼국연의》는 이 두 방식을 충분히 보여줌으로써 후세 사람들이 상황에 따라 다양한 참조와 선택을 할 수 있게 합니다.

중국 전통문화에서 가정에서는 효(孝)를 다하는 것을 중시하고, 국가에 대해서는 충(忠)을 다해 나라에 보답하는 것을 중시한다. 여기서 효가 자녀의 도리라면, 충은 신하의 도리다. 신하의 충성에는 국가와 백성을 위해 도의를 지키는 것과 군주를 보필함에 있어 처음과 끝이 한결같아서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不離不棄)’ 함의가 담겨 있다.[‘충(忠)’은 ‘종(終)’과 발음이 통한다.]

그러나 동한 말기 삼국시대처럼 황제에게 실권이 없을 때는, 사람들이 신하의 신분으로 천하를 이끌고 헌제를 호위하며 백성을 보호하지만 그 중점은 ‘충’보다는 ‘의(義)’에 있다. 실질적인 주인 없어 온전히 충성을 다하기 어려운 시대적 배경 때문이다. 사실상 이 시대는 신하의 명의를 빌려 도의를 받듦으로써 ‘의’의 내함(內涵)을 전면적으로 드러낸 시대이다.

먼저 오부가 의를 취한 방식을 살펴보자.

오부가 앞장서 동탁을 암살해 충의를 완전히 하다

“월기교위 오부는 자가 덕유(德瑜)인데, 동탁의 잔혹함을 보고 분한 마음을 참지 못했다. 일찍이 조복(朝服) 안에 작은 갑옷을 입고 단도를 숨겨 기회를 엿보았다. 어느 날 동탁이 입조하자 오부가 각하(閣下)에서 맞이하다 단도를 뽑아 찔렀다. 동탁이 힘이 세어 두 손으로 붙들자 여포가 들어와 오부를 거꾸러뜨렸다.

동탁이 ‘누가 너를 반역하게 했느냐?’ 묻자 오부가 눈을 부라리며 크게 외쳤다.

‘너는 나의 임금이 아니요, 나는 너의 신하가 아닌데 어찌 반역이라 하는가! 너의 죄악이 하늘에 가득하여 누구나 너를 죽이려 한다! 너를 거열(車裂)형에 처해 천하에 사죄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동탁이 대노해 그를 끌어내 살을 저미는 형벌에 처하니 오부는 죽을 때까지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

오부는 암살에 실패해 현장에서 죽었으나, 나라를 위해 간신을 처단하는 충신의 바른 이치를 말했다. 동탁은 스스로 천하의 주인이라 여겼기에 반역이라 칭했으나, 오부는 명확히 짚어주었다.

“너는 나의 주군이 아니고 나는 너의 신하가 아니다. 군신 관계가 아닌데 어찌 반역인가. 나는 그저 죄악이 가득한 너를 죽이려는 것일 뿐이다.”

이 말은 그를 죽이는 것이 하늘을 대신해 도를 행하는 것으로 백성을 위한 의거(義擧)임을 천명한 것이다.

오부(伍孚)는 그 자리에서 죽음으로 의를 지켰으니, 첫 번째 방식으로 천도를 행하여 충신이 나라에 보답하는 의로운 장거를 실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목숨을 바쳐 군주 개인을 향한 신하로서의 처음과 끝이 한결같은 본분을 완수했으니, 그의 일생은 모두 한나라에 봉헌되었고 한 헌제(漢獻帝)에게 부끄럽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의 행위는 완벽한 충의양전(忠義兩全, 충성과 의리를 모두 온전히 함)으로 간주할 수 있다. 헌제 시기의 연의(演義)의 거대한 물결은 그로부터 촉발되었으나, 후대 사람들은 시(詩)의 형식을 통해 그를 한말(漢末)의 충신으로 규정했다.

사실 충(忠)의 관점에서 본다면, 훗날 치욕을 견디고 무거운 책임을 지며 마음을 굽혀 비위를 맞추고 초선(貂蟬)을 동탁(董卓)에게 바쳐 미인계로 동탁을 제거한 왕윤 역시 마찬가지로 헌제를 떠나지 않고 보필했으며, 마지막에는 죽음으로써 헌제를 지켰다. 이 두 사람은 천하 백성을 대신해 도의를 실천하는 동시에, 군주를 향한 일면의 충성 또한 완수해 낸 이들이다.

충의 기본 내함: 진심으로 정도(正道)를 수호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개념을 명확히 해두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충(忠)’이라는 글자가 신하의 본분이 되어 완벽하게 봉행되려면, 덕이 있거나 적어도 하(夏) 걸왕(桀王)이나 상(商) 주왕(紂王) 같은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은 군주를 상대할 때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충이란 의리(義理)의 일종으로, ‘중(中)’과 ‘심(心)’으로 구성되어 있어 그 기본 내함이 사람으로서 중정(中正)하고 사심이 없어야 하며 진심을 다해 노력해야 함, 즉 진심으로 정도를 수호해야 함을 나타낸다.

이 글자는 주로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신하에게 쓰이기 때문에, 충신이 국가를 마주하고 군주를 섬길 때는 두 가지 층차의 의무가 나타난다. 먼저 정직하고 사심 없는 마음으로 국가와 백성에게 보호와 사랑의 책임을 이행하는 것이며, 동시에 군주 개인에게 마음과 힘을 다해 처음과 끝을 한결같이 보필하는 것이다. 국가와 백성을 수호하는 것은 대의(大義)이고, 군주 개인에 대한 것은 상대적인 소의(小義)인데, 둘 다 의리이므로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충과 의는 본래 일체이기에 군주가 백성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를 보필하여 충성을 다하는 것이 곧 가문과 나라를 지키는 일이 되어 자연스럽게 큰 의리에 부합한다.

그러나 만약 군주가 백성을 잔혹하게 해치고 천리가 용납하지 않는다면 그는 더 이상 천하의 군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때 그를 보필하여 충성을 다하고자 한다면 중정한 도리로써 간언하고 그를 바로잡아 정도(正道)로 돌아오게 하여 백성을 대신해 그를 가르치는 방법뿐이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없음에도 그의 곁에 남아 온 힘을 다해 그를 계속 돕는다면, 이는 국가와 백성을 해치고 악인을 도와 나쁜 짓을 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군주가 잔혹하거나 극도로 혼용한 소수의 특수한 상황에서는 군주 개인에 대한 극단적인 충성이 오히려 정도를 등지고 편착됨 없이 공평무사하다는 충이란 글자 본연의 뜻을 훼손하게 된다.

진심을 다하는 마음(心)이 가운데 중(中) 자 아래에 위치한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한마음 한뜻으로 정도(正道)를 받들어 실천하게 하려는 것이다. 군주가 잔혹하고 바르지 못한데 어디에서 진정한 충성이 나올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상조 말기의 역사는 ‘조주위학(助紂爲虐, 주왕을 도와 악을 행하다)’의 이야기를 연출해 일상적으로 쓰이는 성어가 되었고, 타인의 악행을 돕지 말라는 경고가 되었다. 따라서 폭군이나 혼군을 만나면 역사를 거울삼아 군주 개인을 향한 충성을 잠시 내려놓고, 국가와 백성을 향한 의리만을 논할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이외에도 중국에는 ‘진충보국(盡忠報國)’이라는 성어가 있어 신하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은 나라에 보답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기 위함이며, 정도를 통해 나라에 보답하고 백성을 보호한다는 최종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일깨워준다. 충과 의는 반드시 일체여야 한다.

한말 삼국이 형성되는 과정은 참으로 매우 특수했다. 신하들의 행위와 선택을 보면, 군주 개인을 대함에 있어 충성을 다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비록 직접 보필할 수는 없었으나 헌제(獻帝)의 품성과 명분이 여전했기에, 의로운 깃발을 들 때는 반드시 한실(漢室)을 정통으로 삼아 정당한 명분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의를 다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결국 천도를 행해 공공의 적이자 국적(國賊)을 제거하는 것이 핵심이었으며,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황제 개인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보필하고 싶어도 보필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곁을 떠나지 않고 처음과 끝을 한결같이 하는 것은 이미 현실적인 조건을 상실한 상태였다. 그러나 충 자의 기본 함의로 볼 때, 진심으로 정도를 수호하기만 했다면 넓은 의미에서 진정한 충신이라 할 수 있다.

오부와 왕윤은 헌제에 대해 충의양전을 완벽하게 실천한 두 명의 전형적인 충신이다. 이 두 사람은 정상적인 군주가 정치를 하던 시기 신하들의 보편적인 덕행을 대변한다. 그러나 왕조의 말기에는 대개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구하는 도의가 우선시되기 때문에, 삼국의 무대에서는 오직 모든 이들이 보편적으로 따랐던 정의(正義)의 도리만이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오부의 암살 시도는 비록 성공하지 못했으나, 전국적인 기병(起兵)과 동탁 토벌의 도화선이 되었으며 조조(曹操)의 다음 암살 행동을 촉진했다.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550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