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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췌진 (20): ‘옥불탁, 불성기(玉不琢, 不成器)’와 ‘군자불기(君子不器)’

왕사미

【정견망】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을 이루지 못한다(玉不琢, 不成器”라는 속담은 《예기(禮記)》 〈학기(學記)〉에서 유래했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을 이루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옛날의 제왕이 나라를 세우고 백성을 다스릴 때 교화와 배움을 최우선으로 삼았다.[玉不琢,不成器;人不學,不知道。是故古之王者建國君民,教學爲先.]”

즉, 옥석은 원석 그대로 두고 갈고닦지 않으면 아름다운 기물(器物)이 될 수 없으며, 사람은 반복해서 배우지 않으면 도리를 깨달을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고대의 군주가 나라를 세우고 백성을 다스릴 때 가르치고 배우는 정치를 가장 먼저 내세웠는데, 이는 군자가 백성을 교화하여 사회에 좋은 풍속을 형성하는 중요한 경로였기 때문이다.

남송(南宋)의 왕응린(王應麟)이 지은 《삼자경(三字經)》에서는 이 구절의 ‘도(道)’를 ‘의(義)’로 바꾸어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을 이루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의로움을 알지 못한다(玉不琢, 不成器, 人不學, 不知義).”라고 했다. 청조(淸朝)의 왕상(王相)은 이 책에 주해를 달아 《삼자경훈고(三字經訓詁)》를 펴냈다. 그는 강희(康熙) 병오년(1666년) 12월, 본문 앞에 붙인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송대 유학자 왕백후(王伯厚, 왕응린) 선생이 집안 사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삼자경》을 지었는데, 말은 간결하나 뜻은 길고, 문사(文辭)는 명료하나 도리는 분명하다. 천지인 삼재(三才)를 꿰뚫고 경서와 사서를 드나드니, 참으로 어린이가 학문을 배우는데 입문하는 경로이자 큰 학문의 시작점이라 할 만하다.”[1]

이 책에서 왕상은 해당 구절을 다음과 같이 주해했다. “의(義)는 도의를 뜻한다. 《예경 학기》에서 이르기를 ‘옥불탁 불성기, 인불학 부지도’라 했다. 비록 아름다운 옥이 있더라도 쪼고 갈지 않아 기물을 이루지 못하면 쓰일 곳이 없다. 이는 사람에게 비록 훌륭한 자질이 있더라도 부지런히 학문을 닦지 않으면 의리와 도덕을 알 수 없어, 끝내 온전한 인간(成人)이 될 수 없음과 같다.”

이를 통해 이 책이 아동의 계몽과 배움을 돕는 교재이며, 이치와 도의를 알아야 비로소 온전한 인간이자 인재, 즉 ‘그릇(器)’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시에 왕상은 이것이 단지 “입문의 경로이자 큰 학문의 시작점”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더 높은 차원의 큰 학문은 어떻게 성취해야 할까.

《예기》 〈학기〉의 편말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군자가 말하기를, 큰 덕은 한 가지 일만 맡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大德不官), 큰 도는 한 가지에만 국한되지 않으며(大道不器), 큰 신의는 말단적인 맹약에만 믿음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大信不約), 큰 때는 동시에 동시에 오지 않는다(大時不齊). 이 네 가지를 깊이 살필 수 있어야 비로소 배움에 뜻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삼왕(三王)이 강에 제사 지낼 때 모두 하수(河)를 먼저 하고 바다(海)를 뒤에 하신 것은, 하수는 근원이고 바다는 말단이기 때문이다. 이를 일컬어 근본에 힘쓴다(務本)고 한다.”

즉, 학문을 할 때는 근원을 추적해 그 근본을 탐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학문의 방법과 가치관의 지향점이다. 학문의 기점을 위로 상달(上達)하여 무형의 ‘도(道)’를 탐구하는 데 둘 것인가, 아니면 아래로 하달(下達)하여 유형의 ‘그릇(器)’을 빚는 데 둘 것인가 하는 큰 문제를 논하고 있다.

공자는 《논어(論語)》〈위정〉에서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君子不器).”라고 했다. 후대 학자들의 주석과 해석은 분분하다. 조위(曹魏)의 하안(何晏)이 주를 달고 북송의 형병(邢昺)이 소를 내어 만든 《논어주소(論語注疏)》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정의(正義)에서 말하길, 이 장은 군자의 덕을 밝힌 것이다. 그릇(器)이란 사물의 형상에 붙은 이름이다. 형태를 가진 그릇이 완성되면 저마다 그 용도가 한정된다. 마치 배와 노는 강을 건너는 데 쓰이고 수레와 가마는 육지를 다니는 데 쓰이는 것과 같아서, 역할을 바꾸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군자의 덕은 이처럼 제각기 하나의 용도만을 고수하는 기물과 같지 않다. 기미를 보아 움직이므로 베풀어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음을 말한다.”

남송의 주희(朱熹)가 편찬한 《논어집주(論語集註)》에서는 이를 이렇게 풀었다.

“그릇이란 저마다 그 쓰임에 적합할 뿐 서로 통용될 수 없다. 덕을 성취한 선비는 본체가 갖추어지지 않은 바가 없고 쓰임이 두루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니, 단지 한 가지 재능이나 한 가지 기술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해석 중에서 ‘그릇’에 대한 성찰은 대개 기물이나 어떤 특정한 방면의 전문 지식, 기술 등에 치우쳐 있다. 비록 ‘그릇’이라는 글자의 표면적 의미에는 가깝지만, 이로 인해 사람들은 마치 안개 속에 빠진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군자는 굳이 전문가가 될 필요가 없으며, 도덕을 성취하면 만능이 되어 모든 것에 다 통한다는 식으로 오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는 글자 자체의 연구에 너무 매몰되어 본래의 맥락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도(道)와 기(器)를 서로 연관 지어 바라보면 그 맥락이 선명해진다. 도와 기는 고층 공간에서부터 표면 공간에 이르기까지 존재하는 수많은 층차(層次·단계)의 상태를 개괄적으로 나누어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주역(周易)》 〈계사상(繫辭上)〉에서는 “형상 위의 것을 도라 하고, 형상 아래의 것을 그릇이라 한다(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라고 했다. 즉 무형이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도라 하고, 유형이라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릇이라 한다는 뜻이다. 공자의 32대손으로 당대(唐代) 경학자이자 역학자인 공영달(孔穎達)은 《주역정의(周易正義)》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도는 형체가 없는 것의 이름이고, 형(形)은 물질적 바탕(質)이 있는 것의 명칭이다. 무릇 형체 있는 것은 무형에서 생겨나고, 형상은 도에 의해 정립된다. 그러므로 도가 먼저이고 형상이 나중이니, 도는 형상의 위에 있고 형상은 도의 아래에 있다. 따라서 형상의 경계 밖으로 올라간 것을 도라 하고, 형상의 경계 안으로 내려온 것을 그릇이라 한다.”

여기서 형이상의 도가 ‘무형(無形)’이라는 것은, 실제로는 그 물질적 형태와 성질이 위로 갈수록 점점 더 옅어지고 투명해진다는 뜻이다. 이는 자신이 있는 층차와 관련이 있다. 자신이 있는 공간보다 높은 층차의 존재는 보이지 않으므로 흔히 무형이라 여기지만, 더 높은 차원에서 내려다보면 다르다. 낮은 공간에서 ‘무형’이라 생각했던 것도 엄연히 그 나름의 형체와 질량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2]

현대 과학의 인식과 결합해 보아도 물질은 분자, 원자, 양성자 등 더 작은 미시적 입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입자 층차가 곧 하나의 공간을 이룬다. 더 미시적인 공간으로 들어갈수록 입자의 형태와 질량은 옅어지고 맑아지는데, 이는 무형의 도에 더 가까워지는 과정이다. 반대로 더 거시적인 공간으로 나올수록 입자의 형태와 질량은 무겁고 두터워지며,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유형의 그릇으로 향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도와 기는 사실 끊어지지 않고 연속되어 있는 것이며, 인간이 인위적으로 특정 공간의 입자 수준을 기점으로 삼아 경계를 나누었을 뿐이다.

인간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사람들이 형성한 온갖 관념과 품성 역시 일종의 ‘그릇’이 가진 유형의 표현이 아니겠는가. 이성을 잃은 격앙된 태도, 폭력성 등 극단적인 감정의 표출은 곧 탁하게 뭉쳐진 하나의 형기(形器)다.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하고, 극단으로 치달으며, 심지어 폭력적 성향을 띠면서까지 ‘정치적 올바름(PC)’의 이념과 행위를 추구하는 것 또한 일종의 형기적 표현이다. 물질적 형질이 이처럼 무거워지고 탁해진다는 것은 곧 인간의 도덕과 경지가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형태다.

반면 불가(佛家)에서는 ‘공(空)’을 말하고 도가(道家)에서는 ‘무(無)’를 말한다. 무형은 층층의 도를 향해 승화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마땅히 자신의 양지(良知)와 자선(慈善)을 지켜내며 평온하고 온화한 심태로 나아가야 한다. 《시경 소아(小雅)》 〈소명(小明)〉 편에 나오는 시구처럼 말이다.

“아, 너희 군자들이여
늘 편안히 처하려고만 하지 말라
네 직분을 공경히 수행하며
정직한 이들과 함께하라
신께서 이를 들으시고
네게 큰 복을 내리시리라”

嗟爾君子 無恆安處。
靖共爾位 正直是與。
神之聽之 式穀以女。

주해:
[1] 南宋王應麟著,清朝王相注解《三字經訓詁》,正文前說明原文:【宋儒王伯厚先生作三字經以課家塾,言簡義長,詞明理晰,淹貫三才,出入經史,誠蒙求之津逮,大學之濫觴也。】
[2] 王舍微,《中國古代經典章句評注:“修己以敬” 與“君子不器” 》,正見網2025年02月20日, https://www.zhengjian.org/node/295165 ;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