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단(顏丹)
【정견망】
사람 일생의 공명이록(功名利祿), 부귀영화는 모두 덕(德)에서 온다. 전세에 얼마나 많은 덕을 쌓았는가에 따라 후세에 그와 상응한 생활을 지낼 수 있다. 일세(一世)에 덕을 쌓고 선을 행한 후, 물질, 재부(財富), 관직, 앞날에서 보상을 획득하는 것도 있으니, 이는 현세보(現世報)의 한 가지 표현이다.
“천금을 다 흩뜨려도 다시 돌아오리라(千金散盡還復來)”라는 이백(李白)의 시를 읽으면서도 그 진정한 내포를 체회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어쩌면 아래 몇몇 청대(清代) 인사들이 선한 염원을 내어 아낌없이 베푼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계발(啟發)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다.
곤경에 처한 이들을 도운 수재가 과거 길이 통달
사명(四明, 지금의 영파寧波)에 장(張) 씨 성을 가진 한 수재(秀才)가 있었는데, 관학(官學)에서 20여 년을 고독하게 공부했으나 늘 진사(進士)에 합격하지 못해 과거의 길 위에서 배회하며 줄곧 출세할 기미가 없었다. 나중에 그는 강서(江西)로 유람을 갔다가 뜻밖에 천금(千金)의 재부를 획득했다. 당시 그는 이 돈을 가지고 자신에게 관직을 하나 얻으려고 생각했다. 그는 그리하여 고향으로 돌아왔고 관학에서 계속 공부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한 후 어느 날, 그는 우연히 가문의 한 부인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매우 절개가 있어서 비록 남편을 잃었으나 홀로 어린아이를 양육하고 병든 시어머니를 돌보고 있었다. 그때는 마침 전란이 있어서 물자가 부족해 쌀값이 폭등하여, 남자가 있는 가정마저도 지탱하기 어려웠는데 하물며 그 고아와 과부는 어떠했으랴. 장 수재는 이 장면을 보고 즉시 삼백금을 꺼내 그 부인 일가의 생활을 도와주었다.
나중에 이웃 마을에 또 척(戚) 씨 성을 가진 한 가구가 새로 왔는데, 피난을 온 탓에 몸에 한 푼의 돈도 없어 일가족이 의식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거처할 곳도 없었다. 더는 버틸 수 없게 되자 곧 자신의 아이를 팔아버릴 생각이었다. 장 수재가 이 일을 알고 또 삼백금을 가져다 보내주었다.
본래 관직을 얻는 데 사용하려 했던 천금은, 장 수재가 주머니를 털어 너그럽게 구제하기를 두 차례 가한 탓에 이미 남은 것이 얼마 없었다. 어떤 이는 그를 비웃으며 그가 자신의 힘을 헤아리지 못한다고 말했고, 또 어떤 이는 그를 돕고 싶었으나 마음은 간절해도 힘이 부족하다고 여겼다.
장 수재는 방법이 없어 할 수 없이 다시 관학으로 돌아가 계속 독서했다. 그런데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단번에 진사에 합격했고, 조정에 의해 현령(縣令)의 관직을 위임받았으며 나중에는 군수(郡守)까지 지냈다.
왕씨가 조씨를 도와주니 수년 후 우연히 만난 조씨가 은혜를 갚아
강남(江南) 일대에 두 젊은이가 있었는데 한 명은 조(曹) 씨이고 한 명은 왕(王) 씨로, 두 사람은 원래 서로 알지 못하다가 나중에 도리어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당초 강녕(江寧, 지금의 남경)에 살던 조 씨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따라 풍파를 겪으며 절강 친척에게 의탁하려 했으나, 뜻밖에도 친척을 찾지 못했고 아버지 또한 길에서 사망했다. 그는 몸에 한 푼의 돈도 없어 할 수 없이 구걸로 생계를 유지했다. 아버지의 시신을 고향으로 보내 안장하기 위해, 그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자신의 상황을 말하며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뻗어 약간의 노자를 주기를 희망했다.
나중에 그는 왕 씨를 만났고, 왕 씨는 그의 처지를 매우 동정했다. 이에 두말하지 않고 네 꿰미의 엽전을 그에게 주었다. 조 씨는 매우 감격하여 염원대로 아버지의 시신을 고향에 모시고 가서 장사 지냈다.
눈 깜짝할 사이에 10년이 흘렀고, 조 모는 고향에서 하는 사업이 번창했다. 그는 집안에 나날이 풍요로워지는 재물을 보면서 당시의 은인인 왕 씨를 생각하곤 했으며, 자신이 미처 보답하지 못한 것에 대해 유감으로 여겼다.
왕 씨는 영파 사람인데, 어떤 해에 고향이 외래 병선(兵船)에 의해 함락되었고 그의 집안 재물 또한 남김없이 약탈당했다. 그리하여 그는 처자식을 데리고 한 길로 강녕까지 도망쳐 왔는데, 몸의 돈은 금세 다 써버렸고 눈을 떠 보니 오직 구걸에 의지해 살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때 길에서 조 씨를 만났다. 조 씨는 왕 씨가 이토록 초라해진 것을 보고 역시 크게 놀랐다.
왕 씨가 자신의 처지를 말하자, 조 씨는 즉시 그를 집으로 데려갔다. 당시는 이미 한동(寒冬)에 이르렀기에 먼저 왕 씨 일가 사람들에게 겨울옷을 갈아입히고, 그러고 나서 또 방 한 칸을 얻어 그들이 거주하도록 공급했으며, 나아가 자기 집의 스무 마지기(二十畝) 전지를 주어 그들 일가가 안심하고 이곳에서 생활하도록 할 생각이었다.
아마도 그가 은혜를 알고 보답한 것이 하늘을 감동시켰기 때문인지, 그는 또 뜻밖에 한 필의 재부를 얻게 되었다. 이어서 그는 그중 일부분을 또한 왕 씨에게 주었다. 이로써 왕 씨의 처지는 철저히 역전(逆轉)되어 더는 일가족이 먹고살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왕 모 자신조차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니, 단지 과거 한 차례 마음에 두지 않은 선행이 도리어 자신을 도와 인생 중에서 가장 큰 난관을 넘기게 했다.
수재가 거지에게 한 푼을 주니 염라대왕이 이승에 돌려보내
항주(杭州)에 한 수재가 있었는데, 비록 경전을 공부했으나 한 가지 좋지 못한 기호가 있었으니, 평소에 술 마시기를 좋아했고 술에 취하면 사람을 욕하곤 했다. 시간이 오래 지나자 심지어 습관이 되었다.
어떤 해 원단(元旦)에 그가 문을 나섰다가 마침 구걸하고 있는 한 부인을 만났다. 그 부인은 해지고 부서진 옷을 입고 있어 보기에 심히 가련했다. 그녀가 길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했으나 뜻밖에 단 한 사람도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 수재가 이를 보고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생겨나지 않을 수 없었으니, 그리하여 주저하지 않고 소매 안에서 한 푼의 돈을 꺼내 부인에게 건네주었다.
나중에 한번은 그가 병으로 인해 혼절해 죽어버렸다. 가족들은 모두 그가 구제받지 못할 것으로 여겼으나, 뜻밖에 그가 또 갑자기 깨어났다. 그는 가족들에게 말하기를 자신은 음조 지부(陰曹地府 저승의 관아)에 갔었으며 염왕(閻王)을 만나기까지 했다고 했다. 염왕은 그가 행실이 경박하여 일생 저지른 나쁜 일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판관(判官)에게 그 수재의 선악장부(善惡賬簿)를 들추어 조사하게 했는데, 결과적으로 도리어 그 안에 한 가지 선행이 기재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염왕은 또 사람에게 명해 그의 선악의 일을 달아보게 했는데, 그가 일생 행한 선과 악의 분량이 대등한 것을 발견했다.
염왕이 깜짝 놀라 판관에게 도대체 그 수재가 어떤 좋은 일을 했기에 나쁜 행실을 완전히 상쇄할 수 있었는지 물었다. 판관은 그가 일찍이 구걸하는 한 부인에게 한 푼의 돈을 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부인은 세간의 속인이 아니라 바로 관음보살(觀音菩薩)의 화신이었다. 다른 이들은 모두 보고도 못본 체했으나 오직 그 수재만이 기꺼이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염왕은 이 말을 듣고 나서 그 수재가 다시 이승에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고 수명을 연장해 주었다.
수재는 깨어난 후 더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는 줄곧 선을 행하고 덕을 쌓았으며, 또 여러 해를 더 살고 나서야 세상을 떴다. 얼마나 많은 돈과 재물을 베풀었는가는 차치하고, 관건은 사심없이 돕고 타인을 구하고자 했던 그 일념(一念)을 움직인 점에 있다. 일념(一念)이 선을 위하면 반드시 남은 경사와 나중의 복이 있다!
참고자료: 《북동원필록(北東園筆錄)》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