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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해삼국 (17): 조조 단독 암살 의거로 천하에 이름을 떨치다

유여(劉如)

【정견망】

오부(伍孚)가 조정에서 역적을 제거하려다 현장에서 의롭게 죽은 뒤, 조조가 그 뒤를 이었다. 이는 결국 전국이 공동으로 역적을 토벌하는 봉기로 이어졌다. 이 대규모 봉기는 조조가 발기했는데, 비록 동탁을 최종적으로 제거하는 목적에는 도달하지 못했으나, 여러 제후 앞에서 유비, 관우, 장비 세 영웅의 위명을 떨치는 무대가 되었다. 저자의 눈에 이 세 사람이야말로 전국 봉기의 주인공이다. 사수관(汜水關)에서 화웅의 목을 베고 호뢰관(虎牢關)에서 여포와 싸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이 세 사람 덕분이었으며, 그들이 없었다면 실패는 자명한 일이었다.

제후들의 무능한 모습은 오직 세 영웅의 신위(神威)를 돋보이게 할 뿐이다. 아울러 조조의 의용(義勇), 뛰어난 기지, 그리고 영웅은 출신을 따지지 않는다는 흉금과 견식 역시 충분히 드러났다. 말하자면 한 차례의 봉기 대전은 주요 인물을 부각했을 뿐만 아니라 각로(各路) 제후들의 뜻과 경지를 남김없이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제후 연맹군은 결국 중도에 그만두어 이기고도 진 셈이 되었고, 동탁이 천자와 백성을 협박해 장안으로 천도하며 낙양성을 불태워 잿더미로 만드는 것을 수수방관했다. 이는 실로 천의(天意)였으니, 동탁이 하늘의 벌을 받기 전,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는 전형적인 틀을 완전히 정형화해야 할 운명이었다. 천자는 이때부터 권신을 따라 떠돌아다니게 되었고, 이로써 유비가 굴기하여 한실(漢室)을 보좌해 나라를 구하기를 기다리는, 그리하여 마침내 삼국이 형성되는 ‘연(演)’ ‘의(義)’란 큰 연극이 후세에 ‘장편 사극’으로 남게 되었다.

먼저 조조가 어떻게 동탁을 암살하려 했는지 살펴보자.

보도를 빌려 조조가 승상부에서 동탁을 죽이려 해

조조와 원소(袁紹)는 모두 조정의 금군(禁軍) 교위였다. 원소는 앞서 동탁이 황제를 폐위하는 것에 반대했다가 일찍이 낙양에서 쫓겨나 발해(渤海)에 머물고 있었다. 오부가 동탁에게 살해당한 후, 그는 동탁의 전권에 분노하여 더는 참지 못하고 사람을 보내 사도 왕윤(王允)에게 비밀 편지를 전했다. 사도가 조정의 중신으로서 동탁의 악행을 보고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고 질책하며, 그가 앞장서서 계책을 도모해 함께 역적을 토벌하자고 권했다. 당시 동탁이 군신들을 감시하고 있었기에 왕윤은 마음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동탁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그는 생일잔치를 핑계로 신뢰하는 주요 신하들을 집으로 초대해 재앙을 제거할 모의를 했는데 조조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오랫동안 상의해도 뾰족한 수가 없자 통곡하기 시작했다.

이때 조조가 용감하게 나서서 왕윤의 집에 가전(家傳)되는 극히 날카로운 보도를 빌려 홀로 동탁을 암살하겠다고 자원했다. 그는 그동안 동탁 앞에서 비위를 맞춰온 것이 사실 마음을 굽혀 아부한 것이며, 동탁의 신임을 얻어 국적(國賊)을 제거할 기회를 엿보기 위함이었다고 말했다. 이제 이미 효과를 거두어 동탁이 그를 매우 신뢰하여 곁에 두고 있으니, 언제든 동탁의 상부에 드나들며 즉시 기회를 봐서 그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왕윤은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보도를 아까워하지 않고 즉시 조조에게 건네주었으니, 이것이 조조 암살 행동의 연유다.

조조의 말은 그가 역적을 토벌하고 재앙을 없애려는 의로운 거사가 치욕을 참으며 중임을 맡는 두 번째 의를 실행하는 방식에 속함을 나타낸다. 그는 오부가 실패해 목숨을 잃은 후, 동탁의 경계심이 극도로 강하고 호위가 엄중한 상황에서 홀로 분연히 이토록 위험한 행동에 나섰다. 단지 이 점만 보더라도 그는 결코 삶을 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라, 의로움과 용맹을 모두 갖추고 기지로 변화에 대응할 줄 아는 영웅임을 단정할 수 있다. 이 암살 시도 과정은 매우 상세하게 묘사되어 동탁의 경계심을 부각할 뿐만 아니라 조조의 냉정과 기지 또한 충분히 보여준다.

조조는 보도를 품고 승상부에 들어가 동탁을 모셨는데, 암살을 꾀했기에 자연히 조금 늦게 도착했다. 그러자 동탁은 조조에게 왜 늦었느냐고 추궁했다. 조조는 자기가 타는 말이 너무 늙고 여위어 걸음이 느렸다고 기지 있게 대답했다. 동탁은 그가 주저 없이 대답하는 것을 보고 경계심을 풀었으며, 이미 양자가 된 여포(呂布)를 불러 조조에게 하사할 좋은 말을 고르게 했다. 조조는 가장 실력 있는 여포가 동탁을 떠나고 동탁이 너무 살이 쪄서 누워 쉬는 틈을 타 칼을 뽑아 동탁을 찌르려 했다. 그런데 동탁이 거울 속에서 이를 발견하고는 조조에게 무엇을 하려느냐고 물었다. 조조는 즉시 임기응변하여 무릎을 꿇고 보도를 바치는 것으로 바꾸었다. 그는 동탁의 힘이 매우 세서 오부도 그렇게 실패했음을 알고 있었고, 여포도 말을 골라 곧 돌아올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보도였기에 조조는 단지 칼을 뽑았을 뿐 아직 손을 쓰지 않았고, 말 또한 빈틈이 없었다. 동탁은 비록 의심스러웠으나 화난 기색을 드러내지 못한 채 여포에게 말을 내주게 했다. 조조는 말을 손에 넣자 다시 빠르게 결단을 내려, 동탁에게 말을 시험해 보겠다고 속인 뒤 급히 말을 타고 채찍을 휘둘러 궁을 빠져나왔다. 고향으로 돌아가 의군(義軍)을 모으고 각지의 제후들에게 호소하여 공동으로 역적을 토벌하기 위해서였다.

전국 수배령으로 의거가 천하에 알려져

동탁은 조조가 도망친 것을 보고 암살 기도를 확신하여 크게 노했다. 이에 천자의 명의를 빌려 전국에 조조를 체포하라는 방을 내렸다. 또한 천금의 상금을 걸고 만호후(萬戶侯)에 봉하겠다고 했으며, 도망을 돕거나 숨겨주는 자는 조조와 같은 죄로 다스리겠다고 했다. 조조가 체포를 피하는 것은 하늘의 도움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조조가 기지를 발휘해 온 힘을 다해 목숨을 보전하려 한 행위는 결코 죽음을 두려워해서가 아니었다. 헛되이 죽지 않고 유용한 몸을 남겨야만 힘을 비축하여 다시 악을 제거할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특수한 시대에 이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전형적인 보국(報國)의 방식이었다. 그가 일찍이 생사를 내려놓고 생사는 명에 달려 있음을 알지 못했다면, 정말로 혼자 암살하러 가지 못했을 것이다. 일단 실패하면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조조가 이런 깨달음조차 없었다면 암살하러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그가 중모현(中牟縣)까지 도망쳤을 때 현령 진궁(陳宮)에게 발각되어 옥에 갇히는 것을 보게 된다. 만약 진궁이 황금과 만호후의 작위를 탐내어 그를 서울로 압송해 상을 받으려 했다면, 조조는 정말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비록 역사는 다른 인물이 조조를 놓아주었을지도 모르나, 진상이 어떠하든 조조의 암살 거동은 대중의 인정을 받았다. 따라서 이는 하늘의 뜻에 순응하고 사람의 마음에 부합하는 의로운 거사였기에 지방 관리의 도움을 받아 죽을 운명을 면한 것이다. 진궁은 바로 이러한 양식 있는 지방 관원을 대표한다. 그는 연의 속에서 조조를 구해내고 현령이라는 관직을 버린 채, 함께 추격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조조를 따라 봉기하는 인물로 배치되었다.

소설 연의에서도 저자는 조조가 진궁에게 발각되었을 때를 묘사한다. 진궁이 상금을 받기 위해 상경하겠다고 거짓으로 겁을 주며 정말로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일 때도 조조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아래 원문을 보자.

밤이 깊어 현령이 측근을 불러 몰래 조조를 데려다 후원에서 심문하며 물었다.

“내 듣기에 승상(동탁)이 그대를 박하게 대하지 않았거늘, 어찌하여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가?”

조조가 말했다.

“연작(燕雀)이 어찌 홍곡(鴻鵠)의 뜻을 알겠는가! 그대가 이미 나를 잡았으니 마땅히 압송하여 상이나 받아라.”

현령(진궁)이 좌우를 물리치고 조조에게 말했다.

“나를 얕잡아보지 마시오. 나는 속리(俗吏)가 아니며 다만 주군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오.”

조조가 말했다.

“내 조상 대대로 한나라의 녹을 먹었으니, 나라에 보답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짐승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내가 몸을 굽혀 동탁을 섬긴 것은 틈을 타 그를 도모하여 나라를 위해 해를 제거하려 함이었소. 이제 일이 성사되지 못했으니 이는 하늘의 뜻이오!”

현령이 물었다.

“맹덕(孟德)은 이번 길에 어디로 가려 하시오?”

조조가 말했다.

“고향으로 돌아가 조서(矯詔)를 만들어 천하 제후를 불러 군사를 일으켜 함께 동탁을 베는 것이 나의 소원이오.”

이 대목은 조조가 감히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며(舍生取義) 절대 후회하지 않는 심지를 매우 분명하게 말해준다. 그가 몸을 굽혀 동탁을 섬긴 목적이 나라를 위해 해를 제거하는 데 있었으니, 진심이 아니었다면 암살을 시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적을 죽이는 데 성공하지 못한 것이 천의라고 믿는 마음 또한 이때 밝혀진다. 과연 그는 풀려난 뒤 정말로 고향으로 돌아가 의로운 깃발을 치켜들었다.

조조는 비록 암살에 실패했으나, 마침 동탁의 악행이 가득 차 사람마다 그를 미워하는 천상(天象)에 순응했다. 따라서 동탁이 전국에 대대적인 체포령을 내린 것은 고난 속에서 조조의 심지를 시험하는 동시에, 조조의 의로운 거사를 전국에 공포한 셈이 되어 자연히 조조의 의거가 천하 인심을 얻게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전국 각 제후와 관리들의 지지와 호응을 얻어 대규모 전국 군사 연맹을 순조롭게 결성할 수 있었다. 이번에 조조는 하늘의 뜻에 순응하고 사람의 마음에 부합했기에 자연히 천시(天時)와 인화(人和)의 이점을 겸비하게 되었다.

다음 단계인 제후 연맹의 봉기에서는 유비, 관우, 장비의 위명이 집중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봉기는 물론 결실을 보지 못했으나 유비 삼 형제는 마치 잠룡이 솟구치듯 똑같이 천하에 이름을 떨치게 된다.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550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