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劉曉)
【정견망】
현대인들은 세간에 미혹되어 매일 명리를 위해 분주히 살아가지만, 사람의 생사와 부귀는 모두 인과(因果)를 따르는 것임을 모른다.
명대 원요범(袁了凡)이 지은 《요범사훈(了凡四訓)》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간에서 천금의 재산을 누리는 자는 틀림없이 천금의 인물이며, 백금의 재산을 누리는 자는 틀림없이 백금의 인물이다. 굶어 죽어야 할 자는 틀림없이 굶어 죽을 인물이다. 하늘은 단지 재질에 따라 도탑게 할 뿐이지, 어찌 지극히 작은 사사로운 뜻을 더한 적이 있겠는가. 예컨대 자식을 낳음에, 백 세(百世)의 덕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백 세의 자손이 있어 이를 보존하고, 십 세의 덕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십 세의 자손이 있어 이를 보존하며, 삼 세와 이 세의 덕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삼 세와 이 세의 자손이 있어 이를 보존한다. 그 홀연히 대가 끊겨 후사가 없는 자는 덕이 지극히 엷기 때문이다.”
즉, 사람이 전생과 금생에 쌓은 도덕적 행위가 사람의 금생(今生)과 자손 후대의 부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금생에 관직에 오른 자, 재물을 소유한 자들은 모두 전생에 쌓은 복덕(福德)으로 말미암은 것이지만, 만약 금생에 마음대로 망령되이 행동하고 심지어 악한 일을 끝까지 저지른다면, 복덕이 다 소모된 후 기다리는 것은 금생과 후세 자손의 악보(惡報)뿐이다.
1. 위중달이 중생을 위한 일념으로 이부상서에 이르다
북송 휘종 대관(大觀) 3년(1109년), 봉현 소당(奉賢蕭塘) 사람 위상달(衛上達)이 진사에 급제했다. 휘종은 그의 이름이 그리 듣기 좋지 않다고 여겨 그에게 위중달(衛仲達)이라는 이름을 새로 하사하고, 한림원(翰林院)에 보내 직무를 맡겼다.
한림원에서 근무하던 초기, 어느 날 밤 위중달의 혼백(魂魄)이 명부(冥府)로 끌려갔다. 명관(冥官·저승 관리)은 사람에게 선과 악 두 권의 장부를 꺼내오게 하여, 그의 선행과 악행을 조사하게 했다. 명리(冥吏·저승 서기)가 가져와 보니, 그의 악행을 기재한 장부는 뜰에 가득 쌓였으나 선행 장부는 겨우 작은 한 권에 불과했다.
명관은 안색을 바꾸고 사람들에게 저울을 가져와 달아보게 했다.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선행 장부를 놓은 저울판은 아래로 뚝 떨어졌고, 악행 장부를 놓은 저울판은 높이 치솟았다는 점이다. 명관은 기뻐하며 말했다. “그대는 돌아가도 좋다.”
위중달은 다소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
“제 나이가 아직 마흔도 되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이토록 많은 악한 일이 있습니까?”
명관이 대답했다.
“일념이 바르지 못하면 즉시 기록되는 것이지, 잘못을 저지르기를 기다렸다가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위중달이 또 그 작은 한 권에 기록된 것은 무슨 일인지 묻자, 명관이 말했다.
“조정에서 일찍이 토목공사를 크게 일으켜 삼산(三山)에 돌다리를 축조하려 했을 때, 그대가 상소하여 축조하지 말 것을 간했으니, 이것은 그대가 보낸 글이다.”
위중달은 이상하게 여겼다.
“제가 비록 상소하여 권하긴 했으나 조정에서 듣지 않았으니, 근본적으로 일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했는데 어찌 이토록 커다란 선의 힘(善力)이 있을 수 있습니까?”
명관이 설명했다. “조정에서 비록 (그대 의견을) 따르지는 않았으나, 그대의 간언은 이미 만민에게 이어졌다. 만약 조정이 따랐다면 그대의 선의 힘이 어찌 여기에 그쳤겠는가? 그대는 심지어 득도하여 신선이 될 수 있었을 터인데, 어떻게 또 그대를 불러올 수 있겠는가? 다만 그대의 악념(惡念)이 너무 많아 선의 힘이 이미 절반으로 감소되었을 뿐이다. 그대는 이 선의 힘으로 인해 향후 큰 관직을 하겠지만, 더 높은 관직은 없을 것이다.”
훗날 위중달은 관직이 이부상서(吏部尚書)에 이르렀다.
《요범사훈》에서는 이에 대해 평하기를, “뜻이 천하 국가에 있으면 선이 비록 적을지라도 크고, 진실로 한 몸에만 있으면 비록 많을지라도 작다”라고 했다. 이는 마음이 천하 창생에 가닿아 있다면 하나의 선한 생각이 비록 작을지라도 도리어 커다란 공덕(功德)이 된다는 뜻이다. 만약 선한 일을 오직 자기 한 사람에게만 이롭도록 하기 위해 한다면, 비록 선한 일을 아무리 많이 할지라도 그 공덕과 의의는 매우 미미하다.
2. 임호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다
명조(明朝) 복건 사람 임호(林鎬)는 공과급사중(工科給事中)을 지냈다. 진한(秦漢) 시기에도 이미 급사중이라는 관직이 있었는데, 명태조 주원장 시절에 급사중 제도에 대한 중대한 조정을 진행했다. 최초로 급사중의 정원을 12명으로 확정하고 이, 호, 예, 병, 형, 공의 6과로 나누어 매 과마다 2명씩 두어 6부에 대응하게 했으며, 품계를 정7품으로 정했다. 주요 직책은 관련 부서의 주장(奏章·상소문)을 심의하고 황제의 뜻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황제가 교통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섬대(陝岱)를 개착하라는 지지를 내렸는데, 임호는 이 일이 군사를 수고롭게 하고 대중을 움직이게 하여 지극히 부당하다고 확신해, 황제에게 상주해 개착을 멈출 것을 청했다. 훗날 그는 다른 일로 인해 절강 용천현(龍泉縣)의 현령으로 좌천되었는데, 부임하는 도중에 상한(傷寒 추위를 심하게 타는 급성 감염병)을 얻어 숨이 끊어졌다. 그러나 신체는 여전히 따뜻했기에 가족들은 감히 그를 염하지 못했다.
임호의 원신(元神)이 체외로 이탈한 이틀 동안, 그는 명부의 저승사자에게 이끌려 어느 붉은색 관청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 안에 구류된 사람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그는 자색 도포를 입은 한 명관(冥官)이 말하는 것을 보았다. “임호의 선악부를 가져오라.”
이윽고 명리(冥吏)가 두 권의 장부를 가져왔다. 명관은 그것들을 각각 탁자 위에 놓인 저울의 양 끝에 올려놓았는데, 선사(善事) 장부가 상대적으로 아주 가벼웠다. 갑자기 한 노옹(老翁)이 하늘에서 내려와, 손에 든 노란 문서를 천평 위에 던지니 선사 장부가 단번에 아래로 뚝 떨어졌다. 명리가 무릎을 꿇고 고했다. “태상노군(太上老君)께서, 임호가 일찍이 황제에게 노역을 중단할 것을 간언해 만민을 구제했으므로 대선(大善)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당시 그의 상소문입니다.”
명리의 보고가 끝난 후, 땅에 엎드려 있던 임호는 명관이 하는 말을 들었다.
“아무개는 입옥하고, 아무개는 축생으로 변하게 하며, 임호는 혼을 돌려보내라.”
귀차가 신속히 임호를 명부 밖으로 데리고 나와 양간(陽間 이승)으로 돌려보냈다. 길에서 임호가 자색 도포를 입은 명관이 누구인지 묻자, 송나라 때 정승을 지낸 범중엄(範仲淹)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귀차가 주먹으로 그를 땅에 쳐누르자 임호는 한 번 눈을 떴고, 자신이 이미 양간으로 돌아와 전신에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음을 발견했다. 가족들이 그에게 어찌 된 일인지 묻자, 그는 자신이 겪은 일들을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만민을 구제한 한 편의 옛 상소문(舊疏)이 이토록 커다란 힘을 지니고 있다면, 친히 백성을 살려낸 관리는 어떠하겠는가?
의심할 여지 없이, 관리로서 한 가지 일을 함에 만 백성에게 이롭다면 반드시 커다란 복보를 얻을 것이요, 반대로 한다면 악보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