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중(文中)
【정견망】
고적 《집선록(集仙錄)》에는 백일비승(白日飛昇· 대낮에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한 여선(女仙) 이진다(李真多)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진다는 신선 이탈(李脫·세상에서 ‘이팔백’이라고도 부름)의 여동생이다. 이탈은 오랫동안 서촉(西蜀) 금당산(金堂山) 용교봉(龍橋峰) 아래에서 도술을 수련하여, 역대 촉 사람들이 모두 그의 발자취를 본 적이 있다. 추산해 보면 그는 인간세상을 왕래한 지 이미 800여 년이 되었기에, 사람들은 그를 ‘이팔백(李八百)’이라 불렀다.
전해지는 바로는, 주 목왕(周穆王) 시기에 이팔백이 광한(廣漢) 서현산(棲玄山)에 와서 수련하여 구화단(九華丹)을 연성한 후, 오악(五岳)과 십동(十洞)을 200여 년 동안 구름처럼 떠돌아다녔다고 한다. 나중에 또 바다에서 비양군(飛陽君)을 만나 수목(水木)의 도를 전수받았고, 다시 이 산으로 돌아와 약을 연마했다. 단(丹)이 완성된 후 그는 또다시 수백 년 동안 떠나갔는데, 때로는 몸을 숨기고 때로는 나타나며 시정(市井·시장 거리)과 조정 사이를 왕래했다.
나중에 그는 다시 용교봉에 올라 구정금단(九鼎金丹)을 연마했다. 단이 완성되었을 때는 그가 처음 수도(修道)를 시작한 지 이미 800년이 지난 뒤였다.
이팔백이 일찍이 세 번이나 이 산에서 수련했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 이곳을 ‘삼학산(三學山)’이라 불렀고, 또 ‘현산(賢山)’이라고도 불렀다. 금단이 완성된 후 그는 약효를 검증하기 위해 단약을 절벽 바위 위에 발랐다. 그러자 거친 바위가 뜻밖에 아름다운 옥으로 변해 빛깔이 수정처럼 맑고 온윤(溫潤)하며 투명했다. 약을 시험했던 곳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남아 있다. 전설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절벽을 깎아 옥을 취하려 할 때, 자주 바람과 번개를 일으켜 안색을 변하게 함으로써 경계를 표시했다고 한다.
이진다는 어릴 때부터 오빠를 따라 수도했으며 면죽(綿竹)에 거주했다. 현지에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녀가 수련한 유적이 남아 있다. 그녀는 때때로 부산(浮山) 부근을 왕래했는데, 후인들은 그곳을 ‘진다화(真多化)’라고 불렀다. 이 지역의 원명은 ‘부산화(浮山化)’였는데, 산의 형태가 마치 지폐(地肺)가 수면에 떠 있는 것과 같다고 하여 얻어진 이름이다.
타고난 선녀의 자태, 수백 년 동안 용모가 변하지 않아
이진다는 어릴 때부터 타고난 선녀의 자태가 있었고 현묘한 이치에 마음을 도취하여 세속을 흠모하지 않았다.
이팔백이 ‘조원묵정(朝元默貞)’의 수련 요결을 그녀에게 전수해 주었다. 그녀가 이것에 의거해 수백 년을 수련한 후에도 용모는 뜻밖에 여전히 스무 살 전후의 젊은 여자와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기질은 결코 범속한 소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집선록》에서는 그녀를 “신기가 장엄하고 엄숙하고 풍골이 영웅의 위엄이 있어, 약한 여자의 태도와 달랐다. 사람이 보게 되면 감히 똑바로 보지 못했다(神氣莊肅,風骨英偉,異於弱女之態。人或見之,不敢正視).”라고 표현했다.
나중에 태상노군(太上老君)과 현고삼사(玄古三師)가 강림해 그녀를 제도하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도를 직접 전수했다. 최종적으로 이진다는 오빠인 이팔백보다 먼저,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백일비승(白日飛昇)하여 떠나갔다.
진다화 옆에는 하나의 깊은 못(潭)이 있는데, 못물이 일 년 내내 적홍색을 띤다. 전설에 따르면 그곳은 고대 선인이 단사(丹砂)를 연제하던 샘의 근원이라고 한다.
부산은 또 만안산(萬安山)이라고도 부르는데, 산 위에는 ‘이사정(二師井)’이 있어 우물물이 병을 치료할 수 있다. 이진다가 일찍이 오랫동안 이곳에서 수련했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 곧 그녀의 이름으로 이곳을 명명했다.
한편 이팔백은 나중에 다시 십방(什邡) 선거산(仙居山)으로 가서 계속 수련하여, 최종적으로 3월 초여덟 날에 백일승천했다.
수련하면 왜 반로환동할 수 있는가?
《집선록》을 통해 보자면 이진다가 수련한 것은 마땅히 도가(道家)의 신선 수련법에 속하며, 아울러 생명의 본체(本體)에 직접 작용하는 수련이기에 신체 상태를 변화시키고 반로환동(返老還童)하는 효과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 역사상 유사한 기재는 결코 드물지 않다.
예를 들어 당나라의 저명한 서예가 안진경(顏真卿)은 역사 서적에 그가 해를 입어 사망했다고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오랫동안 또 다른 종류의 설법이 전해 내려왔는데, 그가 나중에 깊은 산에 들어가 수도하여 여러 해 동안 수련한 후에도 여전히 그의 행적을 본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설들이 현대인의 인지에 완전히 부합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그것들은 모두 하나의 고대 관념을 공동으로 반영한다. 즉 진짜 수련은 단지 장수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가장 아름답고 가장 순정한 상태로 회귀하게 하는 것이다.
대법 사부님께서 일찍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보기에 그 진실한 아미타불은 마치 20세 전후의 모습이고, 관음보살은 17,8세의 모습이며, 대세지(大勢至)는 바로 15,6세의 모습이다.”(《각지 설법1》〈베이징국제교류회설법〉)
이것은 많은 사람 마음속의 전통적인 인상과 다소 차이가 있다.
사람들의 관념 속에서 신선은 대개 마땅히 머리가 하얗게 세고 선풍도골(仙風道骨)을 지닌 노인의 형상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역대 예술 작품 속의 신불(神佛)의 형상도 대부분 성숙하고 신중하며 심지어 노태가 완연한 모습으로 조소되었다.
그러나 수련계의 인식에 따르면 생명이 진짜 정화와 승화를 거친 후, 본체의 상태는 바로 젊은 것이다.
신불은 당연히 마음대로 형상을 변화시킬 수 있지만, 그 진실한 생명 상태는 도리어 흔히 청춘과 활력으로 가득 차 있다.
다만 세상 사람들이 지혜와 연령을 함께 연결 짓는 것에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백발의 신선 할아버지가 더 쉽게 받아들이지만, 17~8세의 신선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워할 뿐이다.
하지만 신불은 비록 젊을지라도 결코 세간 젊은이들의 경박한 상태가 아니라, 장엄하고 자비로우며 위덕(威德)을 갖춰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속으로 공경하여 우러러보게 한다.
오늘날의 수련은 더욱 얻기 어려워
고대의 수련은 극도로 지극히 어려웠다.
많은 수도인은 대개 깊은 산속에 은거하여 수백 년 심지어 천년 이상 고생스레 수련해야만 비로소 성취가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주정법(宇宙正法) 시기에 창세주께서 우주대법(宇宙大法)을 가지시고 중생을 구도하러 오시어, 인류를 위해 진정으로 반본귀진(返本歸真)하여 천국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하나의 탄탄대로를 열어주셨다.
진정으로 수련하는 많은 대법제자들이 오랫동안 수련을 견지한 후, 모두 또래 사람보다 더욱 젊고 건강하며 활력이 넘치는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유감스러운 것은 사악한 당의 지속적인 박해와 거짓 선전 아래, 많은 사람이 현실 이익의 득실을 걱정하기 때문에 감히 진상을 알지 못하고, 더욱이 감히 수련에 가까이 다가오지 못한다는 점이다.
만약 이로 인해 만고에 만나기 어려운 기연을 놓친다면,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큰 유감일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