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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 우주의 기상을 남김없이 써낸 《등왕각서》

천객(天客)

【정견망】

왕발(王勃)을 언급할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왕왕 그의 신세나 그의 기구한 만남도 아니요, 바로 저 천고의 명구이다.

“지는 노을은 한 마리 따오기와 나란히 날고 가을 강물은 긴 하늘과 한 빛이다.”

(落霞與孤鶩齊飛,秋水共長天一色)“

이 구절은 너무나 아름답다. 너무 아름다워서 후세의 사람들은 등왕각을 한 번 언급하기만 하면 눈앞에 곧 강과 하늘이 아득하게 넓고, 노을빛이 물에 깔리며, 외로운 따오기가 멀리 나는 듯하다. 왕발은 단지 열네 글자만을 사용해 하늘과 땅 사이에 가장 개활하고, 가장 맑고 깨끗하며, 가장 그윽하고 먼 장면을 표현했다.

나의 《등왕각서(滕王閣序)》에 대한 인상은 사실 매우 일찍부터 있었다. 어릴 때는 마침 고문(古文)이 금지되었던 시기여서 많은 전통문화의 경전들을 공개적으로 읽기 어려웠다. 그러나 아버지는 《중화활엽문선(中華活頁文選)》 중의 한 편을 보존하고 계셨는데, 그것이 바로 《등왕각서》였다.

그때 나는 나이가 아직 어려 많은 구절을 반드시 진짜로 알지는 못했으나, 어떤 문자들은 단번에 마음속에 자라났다. 가장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은 앞서 든 천고의 명구 외에, 나를 더욱 잊지 못하게 만든 것은 문장이 천문(天文)에서 인간세상으로, 성수(星宿)에서 산천(山川)으로, 누각에서 인생으로 써 내려가는 그러한 기상이었다. 그것은 한 채의 등왕각을 단독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천지, 강하(江河), 인물, 운명을 모두 한 편의 문장 속에 거두어들인 것 같았다.

이러한 기상이야말로 《등왕각서》가 진정으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부분이다. 이것은 한 득의한 소년이 연회석상에서 재주를 자랑한 저작이 아니라, 좌절을 겪고 세상 인심의 차고 따뜻함을 맛보았으며 마침 인생의 가장 낮은 골짜기에 처해 있던 한 젊은이가 천지 강산의 사이에서 세운 심지(心志)이다.

왕발은 초당사걸(初唐四傑) 중 한 사람으로, 어려서 이름을 떨쳤고 재기(才氣)가 사람을 압도했다. 소년의 재능은 왕왕 일종의 날카로운 칼끝을 지니기 마련이며, 칼끝이 너무 성하면 운명의 꺾임을 초래하기도 쉽다. 그는 일찍이 문장으로 인해 죄를 얻어 관직 길이 좌절되었고, 인생에서 매우 일찍 실의의 맛을 보았다. 그러므로 《등왕각서》 중에 이와 같이 심오한 구절이 있는 것이다.

“하늘은 높고 땅은 아득하니 우주가 무궁함을 깨닫겠고, 흥이 다하자 슬픔이 오니 성쇠(盛衰)가 운수(運數)가 있음을 알겠다.(天高地迥,覺宇宙之無窮;興盡悲來,識盈虛之有數)”

천지가 높고 멀수록 사람은 더욱 자신이 미미함을 느끼게 되며, 연회가 번화할수록 흥이 다한 뒤에는 더욱 슬픈 마음이 생기기 쉽다. 왕발은 등왕각 위에 서서 강과 하늘이 한 빛깔이고 지는 노을과 외로운 따오기만을 본 것이 아니라, 우주의 무궁함과 인생의 유한함도 보았다.

이른바 ‘성쇠(盛衰)가 운수(運數)가 있다’는 것은 바로 그가 흥망, 득실, 영욕, 운명에 대해 내린 일종의 깨달음이다. 인생에는 기복이 있고, 달에는 둥글고 이지러짐이 있으며, 물에는 차고 비는 것이 있으니, 사람의 상황 또한 영원히 하나의 상태 속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그는 이어서 썼다.

“시운(時運)이 고르지 않고 운명은 어긋남이 많아(時運不齊,命途多舛)”

이것은 의기넘치는 청년의 입에서 나오는 대로 쓴 말 같지 않다. 이 안에는 탄식이 있고, 맑게 깨어있음이 있으며, 또한 인생의 불공평에 대한 일종의 체득과 인정이 있다. 사람의 재능이 반드시 지음을 만나는 것은 아니며, 사람의 뜻이 반드시 곧바로 펼쳐지는 것도 아니요, 인생 또한 줄곧 순탄하여 봄바람에 뜻을 얻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왕발의 소중함은 바로 그가 원망과 탄식 속에 머무르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는 세상일의 성쇠를 보았고, 인생이 뜻대로 되기 어려움을 알았다. 그렇지만 그는 이로 인해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힘이 있는 한 구절을 써내었다.

“곤궁할수록 더욱 꿋꿋해야 하니 청운(靑雲)의 뜻을 버리지 않는다.(時運不齊,命途多舛)”

이것이 진정한 왕발이다.

사람이 순조로운 환경 속에서 포부를 말하기란 어렵지 않다. 어려운 것은 실의 속에서도 여전히 그 의지를 고치지 않는 것이다. 이른바 ‘곤궁할수록 더욱 꿋꿋하다’는 것은 고통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더욱 확고해지는 것이며, 낙담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낙담이 자신을 짓누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른바 ‘청운의 뜻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도 세속적 의미에서의 공명을 추구하는 마음이 아니라, 사람이 곤경에도 굴하지 않고 낮은 곳으로 가라앉지 않으려는 일종의 정신적 기상이다.

때문에 《등왕각서》가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단지 말의 화려함과 풍경만이 아니라, 천지 사이에서 사람이 처한 경지를 써냈기 때문이다. 즉 인생은 무상하고 운명에는 기복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가라앉지 않음을 선택할 수 있다.

문장 속에는 또 이런 한 구절이 있다.

“늙을수록 더욱 굳세어야 하니 어찌 노인의 마음을 알 것이며“

이 구절은 노인을 쓴 것이지만, 또한 왕발 자신을 쓴 것 같다. 왜냐하면 진정한 뜻은 나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심성(心性)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만약 내심에 도의가 있고 추구가 있으며 가라앉으려 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비록 역경에 처할지라도 여전히 위로 상승하는 일종의 힘을 가지게 된다.

왕발의 일생은 매우 짧아 겨우 27세에 세상을 떠났다. 세속의 안목으로 본다면 그의 생명은 너무나 짧고 급해 공업(功業)을 이루지 못했고 벼슬길도 펼치지 못했고, 많은 재능이 아직 완전히 발휘되지 못한 듯하다. 그러나 긴 역사의 안목으로 본다면 그는 또 진정으로 떠난 것이 아니다.

《등왕각서》라는 이 한편 문장으로 인해 이미 그의 생명은 중국 문학과 중화 문화의 장하(長河)속에 고정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왕발과 같은 사람은 단지 ‘개인의 재능’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한 젊은 생명이 극히 짧은 세월 속에서 이와 같이 기상이 홍대(洪大)한 문장을 써낸 것은, 그 속에 쌓인 것이 한 사람의 총명함과 문채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중국 고인(古人)은 늘 “문장은 본래 하늘이 이루는 것이요, 묘수는 우연히 얻는 것이다(文章本天成,妙手偶得之)”라고 말했다. 진정으로 위대한 문화는 왕왕 일종의 신전(神傳, 신이 전함)의 의미를 띤다. 마치 하늘이 후인에게 어떤 문화의 정수를 남겨주려 하여,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사람을 통해 천지, 인생, 우주, 세상일의 규율을 써내고, 보존해 내며, 전하게 한 것과 같다.

왕발은 《등왕각서》 중에서 경치를 썼으나 경치에만 그치지 않았고, 연회를 썼으나 연회에만 그치지 않았으며, 개인의 처지를 썼으나 개인적인 슬픔과 기쁨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천지의 거대함, 인생의 짧음, 성쇠와 영허, 음양소장을 모두 이 한 편의 웅장한 글 속에 융합시켰다. 독자는 이로 인해 중국 신전문화 속의 천도(天道), 운명과 인생에 관한 심층의 표현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등왕각서》가 천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후(不朽)한 까닭은 단지 그것이 사채가 화려해서도 아니요, 단지 왕발이 재능이 남달라서도 아니라, 그것이 더욱 깊은 일종의 문화적 사명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그것은 후인들로 하여금 문자를 통하여 중국 신전문화의 박대정심(博大精深)함을 체득하게 하며, 한 편의 문장 속에서 신전 문자의 장엄함과 위대함을 느끼게 한다.

어떤 이들은 매우 오래 살았으나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고, 어떤 이들은 매우 짧게 살았으나 생명 중 가장 밝은 한 순간을 천년의 빛으로 화하게 했다.

왕발이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천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이 누각에 올라 멀리 바라볼 때 보이는 것은 혹 당시의 지는 노을과 외로운 따오기가 아닐지라도, 여전히 저 한 편의 문장 속에서 하나의 젊은 생명이 천지와 운명과 심지를 향해 응시했던 것을 느낄 수 있다.

“지는 노을은 한 마리 따오기와 나란히 날고 가을 강물은 긴 하늘과 한 빛이다.”라는 구절은 강의 천하 승경을 쓴 것이요, “곤궁할수록 더욱 꿋꿋해야 하니 청운(靑雲)의 뜻을 버리지 않는다.”가 남긴 것은 사람이 곤경 앞에서 머리 숙이지 않는 정신이다.

그리고 “흥이 다하자 슬픔이 오니 성쇠(盛衰)가 운수(運數)가 있음을 알겠다.”는 것은 후인들로 하여금 왕발이 단지 재주와 정서로 경치를 쓰고 지기(志氣)로 스스로 힘쓴 것만이 아니라, 그가 한 바탕 성대한 연회의 번화가 다한 곳에서 세상일의 성쇠와 인생 영허(盈虛)의 규율을 보았음을 알게 해준다.

문장의 결미 처에 있는 “누각 안에 있던 왕자(王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난간 밖의 장강(長江)만이 부질없이 절로 흐르네.”는 이러한 감개를 더욱 깊은 곳으로 밀어 넣는다. 옛날 누각을 세웠던 왕자는 이미 오래전에 없어졌지만, 난간 밖의 장강은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동쪽으로 흐른다. 인간 세상의 번화, 권세와 성대한 모임은 결국 모두 시간과 함께 흩어지기 마련이다. 오직 천지의 도(道)와 문화의 맥(脈)만이 세월을 넘어서 후인에게로 계속 흘러갈 수 있다.

부록: 《등왕각서》 전문 번역

남창(南昌)은 옛 고을 이름이고, 홍도(洪都)는 새로운 부(府)의 명칭이다. 별로는 익수(翼宿)와 진수(軫宿)에 해당하고 땅은 형산(衡山)과 여산(廬山)에 접해 있으며, 삼강(三江)을 옷깃으로 하고 오호(五湖)를 띠로 둘렀으며, 형초(荊楚)를 끌어들이고 구월(歐越)을 당기고 있다. 만물의 화려함은 자연의 보배로서 용천검(龍泉劍)의 광채가 견우성과 남두성의 자리를 쏘았고, 사람의 걸출함은 땅의 영험(靈驗)함으로 서유(徐孺)가 진번(陳蕃)의 걸상을 내리게 하였다. 큰 고을이 빽빽하게 이어졌고 뛰어난 인물들이 별처럼 치달리며, 누대와 해자는 오랑캐와 중국 사이에 걸쳐있고 손님과 주인은 모두 동남(東南) 지방의 훌륭한 이들이다.

도독(都督) 염공(閻公)의 고상한 명망으로 깃발과 창을 갖추고 멀리에서 부임했으며, 신주(新州)로 가는 우문(宇文)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휘장 수레를 잠시 멈추었다. 열흘만의 휴가에 훌륭한 벗들이 구름처럼 많고, 천리에서까지 맞이함에 뛰어난 인사들이 자리에 가득하다. 솟아오르는 교룡과 나는 봉황의 모습은 문장의 대가인 맹학사(孟學士)이고, 자전(紫電)과 청상(淸霜)의 명검 같은 기상은 무림(武林)의 보고(寶庫)인 왕장군(王將軍)이다. 가친께서 현령(縣令)이 되시어, 뵈러가는 길이 명승지를 지나게 되었는데, 어린 내가 어떻게 알았으리오, 직접 훌륭한 송별의 자리를 만나게 될 줄을.

때는 9월이고 계절은 가을로, 장마물이 마르니 차가운 못은 맑으며, 노을빛이 엉기니 저녁 산은 자줏빛이다. 큰 길에 말들을 정돈시키고 높은 언덕에서 경치를 살피다가, 등왕(滕王)이 노닐던 긴 모래섬을 대하고 선인(仙人)이 전에 머물던 곳을 만나게 되었다. 중첩된 산봉우리는 푸르게 솟아서 위로 하늘을 찌르고, 나는 듯한 누각은 단청이 (물결에) 흘러 아래로 굽어보니 땅이 보이지 않는다. 학이 노니는 언덕과 오리가 헤엄치는 물가는 섬들을 모두 둘러쌌고, 계수나무 전각과 목란 궁궐은 산세에 따라 펼쳐져 있다.

화려한 문을 밀치고 조각한 수키와를 굽어보니, 산과 들은 아스라이 시야에 가득하고 내와 못은 멀리 보니 눈을 놀라게 한다. 여염(閭閻)의 집이 땅에 가득하니 종을 울리고 보정(寶鼎)을 늘어놓고 먹는 집들이며, 큰 배들이 나루에 혼잡하니 청작(靑雀)과 황룡(黃龍)을 그린 배들이다. 무지개 사라지고 비가 개이니 햇볕은 하늘을 뚫는데, 지는 노을은 한 마리 따오기와 나란히 날고 가을 강물은 긴 하늘과 한 빛이다. 고깃배에서 저녁에 노래 부르니 울림이 팽려(彭彭)의 물가에까지 다 이르고, 기러기 떼가 추위에 놀라니 소리가 형산(衡山) 남쪽의 포구에서 그친다.

길게 읊조리고 머리 숙여 읊으니, 멋진 흥취가 갑자기 일어난다. 상쾌한 퉁소 소리가 울리자 맑은 바람이 생기고, 고운 노래 소리가 모이자 흰 구름이 멈춘다. 수원(睢園)의 푸른 대나무는 기상이 도연명(陶淵明)의 술잔을 능가하고, 업수(鄴水)의 붉은 연꽃은 빛이 왕희지(王羲之)의 붓을 비춘다. 네 가지 아름다움이 모두 갖추어졌고 두 가지 어려움도 함께 이루어졌으니, 중천(中天)에까지 눈길을 보내고 휴가의 날에 즐거운 노닒을 만끽한다.

하늘은 높고 땅은 아득하니 우주가 무궁함을 깨닫겠고, 흥이 다하자 슬픔이 오니 성쇠(盛衰)가 운수(運數)가 있음을 알겠다. 태양 아래에 있는 장안(長安)을 바라보고 구름 사이에 있는 오군(吳郡)의 도회지를 가리킨다. 지세가 다하여 남쪽 바다는 깊고,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 높으니 북극성(北極星)은 멀다. 관문(觀門)과 산을 넘기 어려우니 누가 길 잃은 사람을 슬퍼해 주겠으며, 물에 뜬 부평초가 서로 만나니 모두 타향의 나그네들이다. 황제의 궁궐을 그리워하나 보이지 않고, 선실(宣室)에서 황제를 모시는 것은 언제쯤이나 될까?

아아! 시운(時運)이 고르지 않고 운명은 어긋남이 많아, 풍당(馮唐)은 쉽게 늙었고 이광(李廣)은 봉해지기 어려웠다. 장사(長沙)에서 가의(賈誼)를 좌절하게 하였으나 훌륭한 군주가 없어서가 아니요, 바닷가로 양홍(梁鴻)을 숨게 하였으나 어찌 좋은 세상이 없어서였겠는가. 믿는 것은, 군자(君子)는 가난을 편안하게 여기고 통달한 사람은 천명을 아는 것이다.

늙을수록 더욱 굳세어야 하니 어찌 노인의 마음을 알 것이며, 곤궁할수록 더욱 꿋꿋해야 하니 청운(靑雲)의 뜻을 버리지 않는다. 탐천(貪泉)을 떠서 마셔도 상쾌함을 느끼고, 곤경에 처해 있어도 오히려 기뻐한다. 북해가 비록 머나 회오리바람으로 이를 수 있고, 젊은 시절은 이미 가버렸으나 노년이라도 아직 늦지는 않았다. 맹상(孟嘗)은 고결하였으니 그저 나라에 보답하려는 마음만 지녔고, 완적(阮籍)은 제멋대로였으니 어찌 길이 끝난 곳에서 울었던 것을 본받으리오.

나는 삼척(三尺) 띠의 낮은 관리였고, 일개 서생(書生)이라서 밧줄을 청할 길이 없으나 종군(終軍)의 약관(弱冠)의 나이와 같고, 붓을 던질 생각이 있으니 종각(宗慤)이 긴 바람을 타고자 한 일을 사모한다. 백 살까지 벼슬을 버리고 만 리에 계신 부모님을 아침저녁으로 모시고자 하는데, 사현(謝玄)의 보배로운 나무는 아니나 맹자(孟子)의 좋은 이웃을 만났도다. 훗날 정원을 지나면서 공리(孔鯉)의 대답으로 받들고자 하는데, 오늘 아침에 소매를 받들고 용문(龍門)에 의탁하였음을 기뻐한다. 양득의(楊得意)를 만나지 못하여 구름 위로 솟는 기상의 <대인부(大人賦)>를 어루만지며 홀로 애석해하다가, 종자기(鍾子期)를 이미 만나니 흐르는 물[유수곡(流水曲)]을 연주한들 어찌 부끄럽겠는가.

아아! 명승지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고 성대한 잔치는 다시 만나기 어려우니, 난정(蘭亭)의 모임은 이미 끝났고 금곡원은 빈터가 되었다. 작별할 때가 되어 글을 올리는 것은 성대한 송별연에서 은혜를 받았음을 행운으로 여김이요, 높은 곳에 올라 부(賦)를 짓는 것은 바로 여러 공(公)들에게 바라는 바이다. 감히 비천한 정성을 다하여 공손히 짧은 서문을 짓는다. 같은 운자로 함께 시를 지으니 사운시(四韻詩)가 모두 이루어졌다.

등왕(滕王)의 높은 누각이 강가에 임해 있는데, 패옥(佩玉)과 방울소리의 가무(歌舞)도 끝났다. 그림 그린 마룻대에 아침에 나는 것은 남포(南浦)의 구름이요, 붉은 발을 저녁에 걷으니 서산(西山)에는 비가 내린다. 한가로운 구름은 연못에 그림자 드리운 채 날마다 유유히 지나는데, 만물이 바뀌고 별자리가 옮겨가 몇 차례나 가을이 지났는가. 누각 안에 있던 왕자(王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난간 밖의 장강(長江)만이 부질없이 절로 흐르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