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견(石堅)
【정견망 2026년 7월 25일】
나는 어릴 적 외가에서 자랐는데, 외할아버지는 과묵하셔서 나를 교육하는 책임은 외할머니의 몫이 되었다. 그때 나는 매우 개구쟁이였고 스승과 어른을 공경하지 않았으며 곡식을 아낄 줄 몰랐다. 외할머니는 종종 벼락장군(뇌공, 雷公)으로 나를 겁주곤 했다. “너 그러다간 하늘의 벼락을 맞을 거야.”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왜 그랬을까? 첫째, 나는 벼락장군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깊이 의심했기 때문이다. 둘째, 설령 진짜로 존재한다 하더라도 개구쟁이인 것은 십악대죄가 아니니 설마 벼락장군 그분이 직접 나설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서, 특히 내 아이를 가진 후에는 오히려 경외심이 생겼다. 특히 심각한 교통사고를 겪고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일을 겪은 후에는 더욱 신불(神佛)의 보호를 받고 있음을 느꼈고, 옛사람들이 말한 선악에는 반드시 응보가 있다는 이치 역시 당연히 존재할 것이라 여기게 되었다. 옛 고서를 펼쳐보면 더 이상 예전 이야기들이 허황되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몇 분의 지혜와 몇 분의 이치(理趣)가 더해진 것을 느낀다.
《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에는 다음과 같은 낙뢰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한 외상 치료 의사가 있었는데, 그는 의술에 매우 능통했지만 종종 치료할 때 몰래 사람에게 독을 먹이고 부상자의 돈을 갈취했다. 만약 그의 요구를 채워주지 않으면 반드시 그에게 독살당했으며, 다른 의사들이 와도 그가 놓은 독을 해독하지 못했다.
어느 날, 그 의사의 아들이 갑자기 하늘의 벼락을 맞아 죽었으나, 의사 자신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말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하늘은 왜 그를 벼락으로 치지 않고 그의 아들을 쳤을까? 혹시 하늘의 형벌이 불공평한 것이 아닌가?”
기효람(紀曉岚)은 이에 대해 이렇게 평론했다. “저지른 죄가 극형에 이르지 않으면 자식에게 연루되지 않고, 사람이 극도로 악해지지 않으면 후세에 화를 미치지 않는다. 하늘이 그의 아들을 벼락으로 친 까닭은 바로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재앙이 자손에게까지 연루된다는 이치를 알게 하려 함이다.”
하늘의 벼락은 악인을 징벌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깨달을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벼락을 맞기 전에는 대개 징조가 있다고 한다. 절강(浙江)에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남의 돈이나 물건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데 능숙했다. 섣달그믐날, 그의 7 살 된 아들이 갑자기 엉엉 울며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떤 푸른 얼굴의 무서운 도깨비가 하늘에서 내려와 아버지 머리 위에 작은 깃발을 꽂고는 그냥 갔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은 벼락을 맞아 죽었다. 죽을 때 그의 손에는 물건을 사고 남은 은화가 들려 있었다.
이 전후 사정을 아는 한 이웃이 말했다. “교외의 한 농부가 어린아이에게 시장에 가서 닭을 팔게 했는데, 그가 그 아이를 속여 아주 싼값에 그 닭을 샀습니다. 아이가 돌아간 후 부모에게 꾸중을 듣고 순간 억울함을 견디지 못해 그만 강에 뛰어들어 자살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양공신(梁恭辰)의 《북동원필록초편(北東園筆録初編)》에서 나온 것인데,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늘 노인들에게 들었는데, 벼락을 맞는 사람은 음사(陰司)에서 먼저 그의 머리 위에 작은 깃발을 꽂아둔다고 한다. 일찍이 어떤 사람이 아침에 세수를 하다가 세숫대야에 비친 그림자 속에서 자신의 정수리에 깃발이 꽂혀 있는 것을 보고는 혼비백산했다. 마침 그때 그는 자신의 조카를 독살하고 재산을 가로채려던 참이었는데, 이 깃발을 보자마자 즉시 그 생각을 거두고 그로부터 조카를 선대(善待)했다. 나중에 뜻밖에도 사형(赦免)을 받아 하늘의 벼락을 면했다고 한다.” 과연 하늘의 형벌도 사람이 참회하고 개과천선할 기회를 허락하는 것 같다.
북위(北魏) 태무제(太武帝) 탁발도가 불법을 파괴했던 이야기는 모두가 잘 알 것이다. 많은 사람이 그에게 불법을 파괴하지 말라고 간언했다. 그것은 엄청난 죄업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막무가내로 제 고집대로 밀고 나갔다. 어느 날, 탁발도가 머무는 궁실이 벼락을 맞아 병풍이 무너지는 바람에 탁발도는 거의 압사당할 뻔했다. 이는 마치 하늘이 이 군왕에게 다시 경고를 내린 것인 듯했다. 그러나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그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452년 봄, 탁발도는 궁중에서 갑자기 사망했으니 나이 겨우 45세였다.
이러한 ‘벼락에 맞아 죽는’ 이야기는 고대에 매우 많았으니, 이를 보면 하늘의 형벌이 지극히 공평함을 알 수 있다. 물론 하늘의 벼락은 악인을 징벌할 뿐만 아니라 요괴를 죽이기도 한다.
원매(袁枚)의 《자불어(子不語)》에는 다음과 같은 일이 기록되어 있다. 건륭(乾隆) 정해년(丁亥年) 여름, 안현(安縣)의 어느 집이 하늘의 벼락을 맞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집에 파손된 곳은 전혀 없었고, 다만 방 안의 묘한 악취가 도무지 가시지 않았다.
열흘 후, 많은 친지와 친구들이 그 집을 방문했는데, 이때 누군가가 천장 안에서 느닷없이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천장을 뜯어내고 살펴보니, 그 안에는 놀랍게도 석 자(약 90cm)가 넘는 죽은 두꺼비가 들어 있었다. 이 두꺼비의 모습이 아주 기괴했는데, ‘종영모(綜纓帽, 관모의 일종)’를 쓰고, ‘오단화(烏緞靴, 검은 비단신)’를 신었으며, 몸에는 ‘현사배독(玄紗褙褡, 검은 비단 조끼)’을 걸쳐 사람인 양 의복을 갖춰 입고 있었다. 이때서야 사람들은 그날 하늘의 벼락이 쳐서 죽인 것이 바로 이 사람 행세를 하던 두꺼비 요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런 이야기는 다 옛날이야기들뿐인데, 왜 요즘에는 이런 일을 들어보지 못했지?” 사실, 지금도 존재한다. 선양시(瀋陽市) 캉핑군(康平縣)의 많은 현지인들은 현(縣) 법원의 부원장 천징창(陳景強)이 하늘의 벼락을 맞아 죽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명혜망(明慧網)의 보도에 따르면, 2010년 2월 10일 천징창은 왕진펑(王金鳳), 리샤오핑(李曉平) 등에게 징역 3년에서 7년을 부당하게 선고했다. 그들은 단지 파룬궁을 수련하며 ‘진·선·인(真·善·忍)’의 원칙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을 뿐이었다. 천징창의 보응은 아주 빠르게 찾아왔다. 3월 하순, 그가 조직폭력배 조직으로부터 뇌물을 수탁한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마침 그때 천징창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나중에 그는 돈을 써서 관계를 손보고 결국 징역 3년에 집행유예 3년, 그리고 파면 처분을 받는 데 그쳤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4년 8월 15일 아침 5시가 조금 넘어, 천징창은 저수지로 낚시를 하러 가는 길에 느닷없이 벼락을 맞아 즉사했다.
오늘날의 중국 사회에서 ‘벼락을 맞아 죽는다’는 말은 더 이상 사람들이 깊이 있게 탐구하고자 하는 화제가 아니라, 일종의 농담이자 저주, 그리고 무신론에 기반한 풍자로 변해버렸다. 도덕적 차원에서 볼 때 이는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선과 악의 선택은 대개 찰나의 생각 사이에 이루어지지만, 이 한 끗 차이가 어쩌면 완전히 다른 두 가지 미래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