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하늘이 사랑한 아들 칭기스칸 시리즈 1 -【칭기스칸】 초원에서 태어나 역경 속에서 성장

에포크타임스 문화팀

【成吉思汗】降生草原 绝境中成长

칭기스칸(에포크타임스 제작)

13세기 남송이 강남에 안거하고 서하와 금(金)나라가 마치 솥의 세 발처럼 병립하던 광활한 북방 대초원에서 독수리 한 마리가 신속하게 일어나 서서히 막북(漠北)초원을 통일해 초원제국인 ‘대몽골국(大蒙古國 몽골어로는 예케 몽골 올루스라 한다)’을 건립했다. 테무진이란 이름의 이 몽골 영웅을 존중해 ‘칭기스칸(成吉思汗)’이라 부른다. 이어서 그와 그의 자손들은 몽골 철기(鐵騎)를 이끌고 3차례 서정에 나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했고 심지어 오늘날의 러시아, 폴란드, 헝가리 일대의 유럽까지 진동시켰다

몽골의 원정에 따라 유럽의 과학기술, 전쟁, 의상, 상업, 음식, 예술, 문학 및 음악 등 여러 방면에서 모두 몽골인 및 중화문화(中華文化)의 영향을 받았고 또 르네상스 시기에 변화가 발생했다. 바로 몽골인과 중화문화가 유럽에 끼친 거대한 영향 때문에 영국의 저명한 작가 제프리 초서는 《캔터베리 이야기》 중에서 칭기스칸과 그가 이룩한 성과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이 고귀한 군왕은 칭기스칸이라 하며 그의 시대에 위명이 멀리까지 퍼졌는데 지금까지 그 어떤 지역이나 지방에서도 이렇게 걸출한 만물의 주인이 출현한 적이 없었다.”

蒙古王成吉思汗(王双宽制图/大纪元)

몽골왕 칭기스칸[왕쌍관(王雙寬)/에크프타임스]

조상부터 내려온 예언

몽골족의 조상은 돌궐의 한 지류로 중국 북방의 오랜 민족에 속한다. 원래는 흑룡강 상류에서 유목을 위주로 살다가 나중에 점차적으로 드넓은 몽골고원으로 퍼져나갔다. 이곳은 지대가 높고 추운 곳이라 매년 결빙기가 4~5개월에 달하고 가장 추울 때는 평균 기온이 영하 25도까지 떨어진다. 오대와 요송금(遼宋金) 시기에는 말겁자(襪劫子), 매고실(梅古悉), 모갈실(謨葛失), 모할석(毛割石), 모게실(毛揭室), 맹고자(萌古子), 몽국사(蒙國斯 멍구스), 몽고사(蒙古斯), 몽고리(蒙古裏), 맹골자(盲骨子), 몽골(朦骨) 등으로 불렸고 원대에 들어와 몽골(蒙古)이라 불렸다. 라시드 앗딘의 《집사(集史)》에서는 몽골이란 단어를 “연약하고 순박하다”는 뜻으로 이는 애초에 깊은 산속 궁벽한 곳에 살던 원시 몽골부족의 연약하고 순박한 상황과 잘 부합한다.

남송 시기에 몽골은 여러 부족이 난립하면서 마친 모래처럼 통일을 이루지 못했다. 명의상으로는 모두 금나라에 속해 있었지만 수시로 반란을 일으키거나 투항하곤 했다. 이들이 사는 지역이 높고 추운 곳이라 금나라도 땅을 빼앗을 생각을 하지 않았고 주로 장성을 수리하거나 건설하는 식의 방어조치만 위주로 했다. 또 금나라의 관심은 남송에 대한 공격에 쏠려 있었기 때문에 몽골 부락들이 발전할 수 있는 공간을 주었다.

이때 몽골의 주요한 부락은 키얀(乞顏), 타타르, 메르키트, 케레이트와 나이만 등 20여 개였다. 세상 밖에 유리된 몽골 유목민족은 주로 사냥과 무역, 방목과 전쟁으로 생활했다. 재부(財富)를 얻기 위해 몽골 각 부락 사이에는 늘 잔혹한 전쟁이 진행되었고 몽골 남자들은 모두 사냥꾼이자 전사가 되어야 했다. 칭기스칸의 선조들 역사 마찬가지였다.

칭기스칸의 10대조 보돈차르(孛端察兒)의 어머니는 알란 고아로, 그녀는 도분 메르겐과 결혼해 두 아들을 낳았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과부가 된 알란은 어느 날 밤 텐트 천창(天窗)으로 하얀 빛이 들어와 금빛 신인(神人)으로 변하는 꿈을 꾸었다. 그 후 알란은 임신을 하여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바로 보돈차르다. 보돈차르는 기이한 외모에 과묵하여 가족들은 그를 바보라고 불렀지만, 알란만은 “이 아이는 절대 바보가 아니다. 후손 중에 반드시 크게 귀한 이가 나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알란이 세상을 떠나자 보돈차르의 두 형은 재산을 분배하면서 그에게 말무리나 식량 등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보돈차르는 괘념치 않고 오히려 빈천과 부귀는 모두 운명이라 여겼다. 형들을 떠난 그는 청백색 말을 홀로 타고 반도 지역의 발리툰 알란(八裏屯阿懶)이라는 곳으로 가 푸른 매를 날려 들짐승을 사냥하며 연명했다. 그의 사냥 생활은 마치 하늘이 돕는 듯 매우 순조로웠다.

몇 달 후, 수십 가구가 두이롄 산(都亦連山)에서 이주해 와 보돈차르와 이웃해 살게 되었으나 서로 친밀하게 지내지는 않았다. 어느 날, 둘째 형이 갑자기 동생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져 직접 찾아와 집으로 돌아가자고 권했다. 돌아가는 길에 보돈차르가 둘째 형에게 말했다. “퉁지리후루(統急裏忽魯) 냇가의 저 무리는 흩어진 백성들로, 위아래도 없고 우두머리도 없습니다. 군사를 일으키면 그들을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둘째 형은 그 말을 깊이 새겨듣고, 집으로 돌아가 장정들을 뽑은 뒤 보돈차르의 지휘 아래 기습을 감행하여 과연 그들을 귀부시키는 데 성공했다.

테무진 탄생의 이적(異象)

키야트 부족은 몽골족의 가장 원시적인 부족으로, 훗날 ‘황금 씨족’인 보르지긴(孛兒只斤) 가문이 여기서 파생되었다. 역사상 키야트 부족에는 여러 분파가 있었지만, 진정한 ‘황금 씨족’에 속하는 성씨는 주르킨(主兒勤) 씨, 타이치우드(泰亦赤烏) 씨, 보르지긴 씨 등 몇 개뿐이었다. 보돈차르가 단독으로 씨족을 세운 후 처음으로 보르지긴 씨라 칭했는데, 즉 이 성씨는 ‘보돈차르’라는 존호에서 유래한 것이다. 《몽골비사》에는 “보돈차르가 보르지긴 씨가 되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보돈차르가 보르지긴 씨의 시조(始祖)다. 그가 죽은 뒤 키야트 부족의 세력은 그의 손자와 증손자 대에 이르러 크게 확장되었고, 귀부하는 자들이 점점 늘어났다. 테무진의 4대조인 카불 칸 시기에는 ‘키야트’를 ‘보르지긴’ 앞에 두어 ‘키야트 보르지긴’이라 표기했다. 칭기스칸(테무진) 시대 이후에야 비로소 보르지긴을 단독 성씨로 사용해 그 존귀함을 드러낸다.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 칭기스칸의 아버지 예수게이(也速該)가 키야트 부족 보르지긴 씨의 수장이자 몽골 부족 연맹장으로 있던 시기가 되었다. 몽골의 용사였던 예수게이는 강직하면서도 부드러움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어느 날 그가 오논 강가에서 매사냥을 하던 중, 올쿤우트 부족에서 아내를 맞아 돌아가던 메르키트 부족인 예케 칠레두와 마주쳤다. 그는 절세미인인 칠레두의 아내 호엘룬에게 첫눈에 반해 삼형제와 함께 마차를 뒤쫓았고, 초원에서 신부를 얻는 두 번째 방식인 ‘약탈혼’을 감행했다. 예케 칠레두는 이들을 따돌리려 애썼으나 소용없었고, 결국 호엘룬은 예수게이의 두 번째 아내인 ‘호엘룬 우진(訶額侖兀真)’이 되었다. ‘우진’은 한어(漢語)로 부인이라는 뜻이다. 예수게이의 첫 번째 아내 이름은 소치겔(索濟格勒)이었으며, 벡테르라는 아들이 있었다.

1년 후, 젊은 호엘룬이 첫 번째 아이를 낳았는데, 갓 태어난 아기는 “손에 붉은 돌 같은 핏덩이를 쥐고” 있었다. 당시 예수게이는 타타르(塔塔爾)인을 상대로 또 한 차례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과거 그의 숙조부 암바카이(俺巴孩)가 타타르인에게 포로로 잡혀 금나라로 넘겨졌고, 금나라 사람들은 반역이라는 명목으로 그를 나무 당나귀에 못 박아 죽인 일이 있었다. 몽골 여러 부족은 이 피의 복수를 위해 타타르 및 금나라와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다. 1155년 예수게이가 일으킨 이 전쟁에서 그는 테무진 우게(鐵木真兀格)라는 수장을 죽였다. 부족으로 돌아온 예수게이는 자신의 무공을 기념하기 위해 아들의 이름을 테무진이라 지었다. 이후 호엘룬은 카사르(合撒兒), 카치운(合赤溫), 테무게(帖木格) 등 세 아들과 딸 테물룬(帖木侖)을 더 낳았다.

테무진이 태어날 때의 이적이 한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 우량카이(兀良合) 부족의 대장장이 자르치우다이(劄兒赤兀歹)가 갓난아기를 직접 보러 와 담비 가죽 강보를 만남의 선물로 주며, 자신도 막 아들 젤메를 낳았으니 장차 그가 자라면 테무진의 ‘안다(伴當 의형제)’로 삼아달라고 말했다. 분명 자르치우다이는 비범한 안목과 혜안으로 테무진의 일생이 평범하지 않을 것임을 알아본 것이다.

어려서 받은 계몽 교육과 제왕의 운명

테무진은 어릴 적부터 이야기 듣기를 좋아해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들과 자주 어울렸다. 예수게이의 심복인 차라카(察剌合), 무칼리(木華黎)의 아버지 등이 그 예다. 그들은 국가의 흥망, 전쟁의 모략, 약육강식 등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며 선악과 시비를 분별하도록 도왔는데, 이는 테무진이 받은 계몽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테무진은 어렸을 때 이야기 듣는 것을 아주 좋아해서 이야기 재주가 뛰어난 이들과 자주 어울렸는데, 예를 들어 예수게이의 심복인 바룰다이 씨족의 차라카(察剌合), 바아린(巴鄰)부의 우순(兀孫), 그리고 잘라이르(劄刺兒)부의 쿠온 호아(古溫豁阿, 무칼리의 아버지) 같은 이들이었다. 그들은 국가의 흥망, 전쟁의 계책, 칼과 도마 위의 고기와 생선(刀俎魚肉) 같은 신세 등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가 선악(善惡)과 시비(是非) 및 옳고 그름을 판변하는 것을 도와주었는데, 이것이 대략 테무진이 받은 계몽 교육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되었다.

차라카는 테무진을 예뻐하여 아들 문리크(蒙力克)에게 그를 돌보게 했다. 문리크는 당시 몽골 부족의 유명한 관상가 코르치(豁兒赤)를 알고 있었는데 그를 청해 테무진의 관상을 보여주었다. 코르치는 테무진을 보자마자 제왕의 운명을 타고났다고 말하며, 이후 자주 찾아와 테무진을 가르쳤다. 테무진은 돌궐어, 몽골어, 동호어(東胡語 역주: 동호는 선비, 오환, 거란족 등을 말한다)를 배우며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 모든 것은 천명(天命)을 이어받을 테무진을 위해 하늘이 안배한 것이었다.

한번은 유목지를 이동하던 중 아버지 예수게이가 어린 테무진을 잃어버리는 사고가 났는데, 타이치우드 부족이 그를 발견하고 수장 타르구타이(塔兒忽台)가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한동안 거두어 주었다. 이후 테무진은 자신의 부족으로 돌려보내졌고 예수게이와 타이치우드 부족은 교류를 시작했으나, 훗날 연맹장 자리를 두고 경쟁하면서 틈이 생겼다.

운명의 황후를 만나다

9살이 되던 해, 몽골의 관습에 따라 테무진은 아버지를 따라 어머니 호엘룬의 가문으로 미래의 아내를 구하러 갔다. 도중에 그들은 옹기라트(翁吉剌惕) 부족의 데이 세첸(德薛禪, ‘대현자’라는 뜻)을 만났다. 데이 세첸은 테무진을 보자마자 그의 인품이 비범함을 알아채고 “눈에 불이 있고, 얼굴에 빛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몽골인들이 기백 있는 젊은이를 칭찬할 때 쓰는 관용어다. 그는 곧바로 예수게이를 ‘사돈’이라 부르며, 간밤에 자신이 꾼 꿈 이야기를 꺼냈다. 그 꿈은 키야트 부족의 수호신이 탁몽한 것으로, 하얀 해동청(海東靑 매의 일종)이 해와 달을 쥐고 날아와 자신의 손에 앉는 길조(吉兆)였다며, 이는 바로 예수게이와 테무진 부자의 방문과 테무진의 비범한 미래를 예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꿈으로 인해 데이 세첸은 테무진 부자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테무진보다 한 살 많은 딸 보르테를 보여주었다. 이 총명하고 아름다운 보르테 아가씨가 바로 훗날 칭기스칸의 황후이자 훌륭한 내조자가 된다. 1178년, 그녀는 18세의 나이에 테무진과 결혼해 슬하에 4남 5녀를 두었으며, 네 아들 주치, 차가타이, 우구데이, 톨루이는 모두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테무진의 지혜로운 참모로서 테무진의 마음속에 매우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

당시 테무진 역시 ‘얼굴에 빛이 나고 눈에 불이 있는’ 보르테를 첫눈에 마음에 들어 하며 즉시 청혼했다. 데이 세첸은 이를 허락했고, 예수게이 또한 데이 세첸의 식견이 넓어 스승으로 삼을 만하다고 여겨 흔쾌히 찬성하여 쌍방은 우선 약혼을 맺었다. 몽골의 규율에 따라 테무진은 데이 세첸의 집에 남아 생활하며 노동을 했고, 예수게이는 약혼 예물을 남기고 홀로 돌아갔다.

成吉思汗和他的祖先Tumanba Khan、孛儿帖以及他的九个儿子。(公有领域)

칭기스칸과 그의 조상인 투만바 칸(Tumanba Khan), 보르테 및 그의 아홉 아들. (공유 영역)

아버지의 피살

집으로 돌아가던 중 허기를 느낀 예수게이는 마침 초원에서 연회를 열고 있는 타타르인 무리를 발견했다. 자신이 8년 전 그들의 동족인 테무진 우게 등을 죽인 적이 있어 신분을 숨겨야 함을 알면서도, 그는 말에서 내려 현지 풍속에 따라 연회에 참석했다.

곧 타타르인 중 하나가 예수게이를 알아보고 몰래 그의 음식에 독약을 탔다. 예수게이는 심각한 중독 상태에서 간신히 탈출하여 사흘 만에 자신의 부족 영지로 돌아왔다. 그는 사람을 시켜 데이 세첸의 집에 있는 테무진을 급히 부르고 심복 문리크에게 남은 가족을 부탁한 뒤 세상을 떠났다.

테무진이 서둘러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아버지의 시신만 남아 있었고, 아버지는 두 명의 아내와 10살도 안 된 7명의 아이들(그중 벡테르와 벨구테이는 이복형제)을 남겼다. 보르지긴 씨가 수장을 잃자 민심은 흩어졌고, 원래 예수게이에게 의탁했던 타이치우드 부족은 두 과부와 일곱 아이가 쓸모없다고 여겨 식량 제공마저 거부했다. 급기야 부족이 이동할 때 이들을 버려두고 예수게이의 백성과 가축마저 다수 끌고 가버렸다. 당시 차라카만이 나서서 약자를 괴롭히는 행위에 항의하다가 칼에 찔렸고, 테무진은 이를 목격하고도 속수무책이었다.

또한 시종이었던 토두안 코르친마저 무정하게 테무진 가족을 떠나려 했다. 테무진이 울면서 만류했지만, 그는 “깊은 연못이 말라버렸고 단단한 돌이 깨졌거늘 남아 있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말하며 무리를 이끌고 떠나버렸다.

강인한 호엘룬은 마지막 노력을 기울였다. 그녀는 말을 타고 죽은 남편의 깃발을 휘두르며 자신들을 버리고 가는 사람들을 뒤쫓았다. 마음속으로 부끄러움을 느낀 절반의 사람들이 임시로 영지에 돌아왔으나, 어둠이 내리자 그들 역시 하나둘씩 몰래 빠져나가 결국 테무진의 가족만 남게 되었다. 이 가족은 진정한 곤경에 빠졌다.

诃额仑和四个养子。(<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Hoelun_Ujin.jpg" rel="nofollow noopener noreferrer">KoizumiBS/Wikimedia Commons提供</a>)

호엘룬과 네 명의 양자. (KoizumiBS/Wikimedia Commons 제공)

역경 속에서 강인한 의지를 단련

그러나 유능한 호엘룬의 노력 덕분에 이 가족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아이들을 먹여 살리고 훌륭한 대장부로 키우기 위해, 호엘룬은 오논 강 상하류를 밤낮으로 누비며 팥배나무 열매, 들과일, 산부추, 들부추 등을 채집하고 땅을 파서 오이풀 뿌리와 솜방망이 등을 캐냈다. 철든 테무진과 동생들은 바늘을 구부려 낚시를 하고 강을 막는 그물을 엮어 크고 작은 물고기를 잡았으며, 나무 화살을 만들어 쥐를 잡는 등 어머니의 짐을 덜어주었다. 다행히 예수게이가 임종 전 부탁했던 심복 문리크와 그의 아버지 차라카가 가능한 한 도움을 주었고, 문리크의 충성심과 선량함은 테무진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훗날 문리크는 테무진의 새아버지가 되고 몽골 제국 개국의 일등 공신이 되었으며, 테무진은 항상 그를 극진히 예우했다.

얼마 후, 타이치우드 부족 수장 타르구타이는 테무진이 어른이 되어 복수할 것을 우려해 후환을 없애고자 무리를 이끌고 테무진을 잡으러 왔다. 테무진은 말을 타고 빽빽한 숲속으로 도망쳤고, 타이치우드인들은 숲을 겹겹이 포위했다.

숲에서 사흘을 숨어 지낸 후 밖으로 나가려 했으나, 말안장이 떨어져 나가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가슴걸이와 뱃대끈이 그대로 매여 있는데도 안장이 떨어진 것을 본 테무진은 하늘이 나가는 것을 막는다고 여겨 다시 숲 깊은 곳으로 돌아가 사흘을 더 머물렀다. 다시 나가려 할 때 숲 입구를 거대한 돌이 막고 있는 것을 본 그는 “이 또한 하늘이 막으시는 것인가?”라며 다시 숲으로 돌아가 사흘 밤을 지냈다.

9일이 지나 테무진은 이미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상태였다. 결국 그는 “이렇게 소리 소문 없이 죽느니 차라리 걸어 나가자”라고 결심하고 숲 밖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타이치우드인들에게 붙잡힌 그는 두 손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나무틀에 채워져 스스로 먹거나 마실 수 없게 되었고, 매일 다른 가정이 그를 감시했다. 그들은 테무진의 의지를 꺾고 훗날 제왕이 될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를 단념시키기 위해 그를 조리돌림했다.

하지만 어린 테무진은 굴복하지 않고 치욕을 견뎠다. 구금된 기간이 얼마였는지는 사료에 명확히 기록되지 않았으나 수년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훗날 타이치우드인들이 연회를 여는 틈을 타 테무진은 자신을 감시하던 젊은이를 기절시키고 탈출했다. 수색을 피하기 위해 그는 기지를 발휘하여 강물 속에 누워 나무칼이 물결에 떠다니게 두고 얼굴만 내밀어 숨었다. 이후 그를 감시했던 적이 있는 마음씨 착한 타이치우드 노복의 도움으로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

적대 부족을 두렵게 하여 어떻게든 의지를 꺾으려 하게 만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적대 부족 내에서조차 돕고 말과 식량을 내어주게 만든 것은 테무진의 뛰어난 점, 즉 강인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비범함은 훗날 점차 빛을 발하게 된다.

탈출한 테무진은 어머니와 동생들을 찾아 재회한 뒤 부르칸 칼둔(Burkhan Khaldun) 산으로 숨어들어 마멋과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다. 그 기간 동안 이복형제 벡테르가 거듭 도발하자, 젊은 테무진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를 활로 쏴 죽였다. 이 일로 어머니 호엘룬에게 크게 질책을 받았으나, 벡테르는 임종 전 그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이복동생 벨구테이를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다. 테무진은 크게 뉘우쳤고, 이때부터 형제들은 한마음으로 대업을 도모하게 되었다. 벨구테이 역시 몽골 개국 공신이 된다.

가혹한 생활과 시련은 테무진 형제의 의지를 단련시켜 그들을 빠르게 성장시켰으며, 이러한 굳건한 의지는 성인이 된 테무진이 초원에서 우뚝 서는 중요한 원동력 중 하나가 되었다.

不儿罕合勒敦山(Burkhan Khaldun mount)(<a href="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Burkhan_Khaldun_mount3.jpg" rel="nofollow noopener noreferrer">Ganzorig Gavaa/Wikimedia Commons提供</a>)

부르칸 칼둔 산 (Ganzorig Gavaa/Wikimedia Commons 제공)

참고자료:
《蒙古秘史》
《元史》
《成吉思汗與今日世界之形成》
《中國曆代戰爭史》(元朝)台灣出版

 

원문위치: https://www.epochtimes.com/gb/20/7/30/n12294991.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