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충(文忠)
【정견망】
어찌 조사를 뵈올까, 본래 면목을 알아야 하리.
나는 본래 수행인이니, 삼세동안 정기를 갈고닦았네.
중간에 일념을 잃어, 이 백년의 꾸짖음을 받았구나.
옷자락을 여미고 진상(真相)을 예배하니, 감동하여 눈물이 빗발치듯 흐르네.
雲何見祖師,要識本來面。
我本修行人,三世積精煉。
中間一念失,受此百年譴。
摳衣禮真相,感動淚雨霰
이상은 북송의 대문호 소동파의 시 《남화사(南華寺)》의 일부분이다. 우리가 궁금한 것은 소동파는 어떻게 삼세(三世)의 기억을 알 수 있었을까?
1. 전생은 오계 화상
소동파의 전생은 오계(五戒) 화상이었다.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균주(筠州)의 선승 혜홍(惠洪)은 《냉재야화(冷齋夜話)》에 당시의 증거를 기록해 두었다.
북송 신종(神宗) 원풍(元豐) 7년(1084년), 소식은 유배지 황주에서 균주로 동생 소철을 보러 갔다. 소철도 같은 시기 그곳에 유배되어 있었다. 소철의 두 친구인 운암(雲庵)선사와 총선사(聰禪師)가 똑같은 꿈을 꾸었는데, 세 사람이 오계 화상을 마중 나가러 가는 꿈이었다. 소철은 깜짝 놀라며 손뼉을 치며 신기해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동파가 사람을 보내 편지를 전해왔고, 세 사람은 20리를 마중 나갔다.
만나서 그 똑같은 꿈에 대해 이야기하자, 소식은 더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자신은 8~9세 때 전생이 섬서(陝西)의 승려였다는 꿈을 꾼 적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어머니가 그를 임신했을 때 어떤 승려가 찾아와 투숙하는 꿈을 꾸었는데, 그 승려는 용모가 빼어났고 한쪽 눈이 멀었다고 했다.
운암은 이 말을 듣고 거듭 신기하다고 외쳤다. 그는 자신의 스승인 오계선사가 바로 섬서 사람이며, 역시 한쪽 눈이 멀었고, 50년 전에 현지에서 입적했다고 했다. 그때 소식의 나이는 49세로 오계 화상의 환생과 신기하게 맞아떨어졌다. 이제 그는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2. 오계의 파계는 일생에 갚기 어려워
오계 화상은 계율을 어기고 죽었다. 그는 일찍이 자신의 제자에게 버림받은 아이를 거두어 기르게 했는데, 소녀가 16살로 자라자 오계는 한순간 그릇된 생각을 품고 마성(魔性)에 지혜를 빼앗겨 색계(色戒)를 범하고 말았다. 곧바로 사형인 도명(道明)에게 들통나 몹시 부끄러워하며 스스로 좌화(坐化 앉은 자세로 입적)했다. 혜안으로 이를 추적한 도명은 그가 내세에 불법을 비방할지도 모른다고 여겨, 곧바로 원적(圓寂)해 뒤쫓아가 불인(佛印) 화상으로 환생함으로써 오계의 불성을 일깨워주고자 했다. 그 후 두 사람은 줄곧 좋은 친구였고, 불인의 끊임없는 일깨움 속에서 소동파는 불법에 대한 신앙을 굳건히 했다.
1084년 49세의 소식은 균주로 돌아와 전생의 잘못을 깨달았다. 1094년, 한림원학사 겸 단명전학사였던 소식은 죄인의 몸으로 정주에서 영주로, 다시 혜주로 유배되던 중 처음으로 남화사(南華寺 조계사로도 불리며 선종의 육조 혜능이 있던 사찰)를 참배했다. 선종의 육조 혜능의 썩지 않는 육신을 참배하고 삼세의 인과를 깨달은 그는 눈물을 비처럼 흘리며 글의 머리에 적은 《남화사》 시를 지었다.

북송의 조맹부가 그린 소동파(대북 고궁박물원)
그는 자신의 평생 고난과 역경이 모두 전생의 한순간 잘못과 파계 때문이라고 여겼으나, 반드시 전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비록 파계를 하지 않았더라도 소식의 일생은 고난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 또한 수행의 일생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전생의 파계가 고통을 배가시켰을 뿐이다.
그는 일세(一世) 파계의 잘못을 참회하고, 죄업을 치르고, 만회하면 내세에 불교 선종의 문에서 다시 수행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여겼고, 예로부터 모두 그렇게 여겨왔다. 하지만 그 결과는 결코 사람의 마음으로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그는 불교 선문(禪門)에서 영원히 쫓겨났다.
그는 수행인의 한 차례 파계는 평생의 곤고함으로 갚아야 한다고 여겼고, 세상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정답은 결코 그렇지 않다! 한 차례 파계로 죄업을 갚는 데 천 년이 걸리며, 지금도 여전히 갚고 있다!
3. 소식의 후세가 저 유명한 허운 대사인가?
근대의 유명한 허운(虛雲) 대사는 남화사를 재건해 선종의 조정(朝庭)을 부흥시켰다. 1951년 중국공산당의 반혁명 진압 운동 시기, 112세의 허운은 중공 당국으로부터 쇠몽둥이와 나무 몽둥이로 4차례나 구타당해 오관(五官)에서 피를 흘리고 여러 곳이 골절되었음에도 죽지 않아 당국을 놀라게 했다. 1959년 120세로 입적할 때 영롱하고 투명한 사리를 만들어냈으니 명실상부한 고승(高僧)이었다.
역사 문화 속에는 줄곧 허운이 소동파의 환생이라는 설이 전해 내려왔고, 이에 따라 ‘오계 화상-소식-허운’이라는 윤회의 궤적이 필연적인 결론인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잘못된 이해이며, 오계와 허운은 세계(世系)의 연관이 없다. 왜 그런가?
사부님께서는 《2004년 뉴욕국제법회설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아는가? 과거의 수련 중에서 만약 이 수련인이 이 방면에 계율을 범했다면 영원히 다시는 수련할 수 없었다. 바로 이처럼 엄중하다.”
[역주: 원문에서 “영원히”는 “영세(永世)”이다.]
이는 바로 과거 우주 운행의 법칙이었다. 그렇다면 계율을 어긴 오계 화상이 어떻게 다시 선종으로 돌아와 정과(正果)를 수련할 수 있겠는가? 불교의 수련 법문에서는 더 이상 그를 제도하지 못하며, 오직 속인의 형식으로 역사 문화 속의 고난 중에서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윤회 세계(世系)의 복잡함은 마치 커다란 나무의 가지와 잎들 같다. 사람은 주원신(主元神), 부원신(副元神), 기타 영체(靈體)를 가지고 있는데, 도가의 삼혼칠백(三魂七魄) 설에 따르면 소식은 죽은 후에 크고 작은 여러 혼백 영체로 나뉘어 각각 나뉘어 환생한다. 이 모두 일찍이 자신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과연 어느 것이 주체(主體)란 말인가?
4. 환생의 주체, 사명의 대응
누가 역사가 그에게 부여한 재능을 일깨워주었으며, 역사에 대응하는 사명을 떠맡았는가? 특히 오늘날 대법을 실증하는 데 쓰였다면, 그가 바로 역사상 자신의 주체이며, 다른 혼백들은 단지 일찍이 그의 신체(身體)를 빌려 무위(無爲) 속에서 수행한 것에 불과할 뿐이다.
소동파는 생애 마지막 해에 《자제금산화상(自題金山畫像)–금산 화상에 스스로 제목을 달다》라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네 평생의 공업(功業)을 묻노니,
황주(黃州), 혜주(惠州), 담주(儋州)로다.”
황주는 소식이 ‘오대시안(烏臺詩案)’이란 문자옥 이후 처음 유배된 곳이다. 황주에서 관운은 뜻대로 되지 않았으나 시문(詩文)은 풍성해져 호방파 송사(宋詞)를 개척했고; 영남(嶺南) 혜주에서는 농업을 장려하고 수리를 일으켜 한 지방을 이롭게 했으며; 바다 멀리 외딴 섬인 해남(海南) 담주에서의 공업(功業)은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으로, 문단에서 문필을 놀리는 동시에 원주민들에게 농경(農耕)을 가르치고 문화를 전수해 해남 최초의 유생 무리를 길러내고 해남 최초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해냈다.
“대나무 지팡이에 짚신 신으니 말을 탄 것보다 오히려 가벼우니,
그 누가 두려워하리오?
도롱이 하나 걸치고 안개와 비를 맞으며 일생을 맡기노라.”
(소동파의 《정풍파(定風波)》)
필자는 그 도롱이와 짚신을 신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 당시 숙세(宿世)의 인과를 느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내가 바로 ‘오계 화상-소동파’의 주체였던 것이다. 원래 이번 생에 전방위로 문필을 이용해 대법을 실증하는 것으로, 고난 속에서 넘치는 낙관과 활달은 모두 역사 속 문화 속에서의 수행이 다져놓은 것이었다. 또한 법난(法難)이 닥쳤을 때 왜 해남에서 그렇게 간략하면서도 두터운 분위기로 나를 맞이해 주는 장면이 있었는지도 깨달았다. 방 안이 사람들로 가득 찼고, 어떤 사람은 내가 그들을 일깨우러 올 것을 미리 꿈꾸기도 했다… 당시 나는 깜짝 놀라 함정으로 오인하기도 했다. 왜 이번 한 세(世)에 한쪽 눈이 20년 동안 멀었는지도 더욱 깨달았다. 알고 보니 오계 화상이 파계한 죄업은 천 년이 지나도 다 갚지 못했던 것이다.
5. 자심생마(自心生魔)의 사전 경고
어떤 동수는 흥분하여 자신이 역사 속의 어떤 유명 인사이거나 무슨 큰일을 했던 사람이라고 떠벌린다. 그러나 당신은 역사 속의 자신과 연결됨과 동시에 그의 역사적 죄업도 이어받는다는 것을 모른다. 공(功)과 과(過 허물)가 상쇄되는, 그것은 신(神)이 최후에 당신을 평가할 때 가늠하실 것이다. 수련 중인 사람은 이런 것을 고려해서는 안 되며, 수련 중의 공과(功過)는 당신에게 상쇄되도록 주어지지 않는다. 공적(功績)은 미래 당신의 세계를 원만시킬 수 있지만, 죄과(罪過)는 반드시 상환해야 한다. 소식은 일찍이 황주에서 돈을 내어 후원자를 모아 물에 빠져 죽을 뻔한 버림받은 아이 수백 명을 구출해 현지의 가난한 이들의 악습을 바로잡았는데, 이 공덕으로도 역사상 파계한 죄업을 조금도 상쇄하지 못했다.
《전법륜》 ‘자심생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학습반에서도 현재 자신이 괜찮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으며 그 말하는 태도마저 다르다.”
동수들 사이에 나타나는 개별적인 자심생마 현상은 그 근본에 있어서 모두 위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위배한 것이다. 나는 여러 명의 자심생마한 동수들, 혹은 심각한 자심생마 성향을 가진 동수들을 목격했다. 그들이 말하는 태도는 이미 마성(魔性)에 의해 침식되었고, 눈빛 속의 자대(自大), 자만, 득의양양한 빛은 사실 마가 자랑하는 것이다.
그들은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修在自己,功在師父)”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당신의 역사적 성취가 모두 신(神)의 도움이었고, 당신의 현실적 성공이 모두 사부님의 안배와 보호 하에 이루어진 것임을 안다면, 또 무슨 자만할 것이 있겠는가? 성공은 안배된 것이고, 실패는 노력이 부족했거나 마성이 제거되지 않았고 자신이 잘하지 못한 데 기인한 것임을 깨닫고, 모든 성공을 사부님과 대법에 돌리며 겸손하게 앞으로 나아간다면 자심생마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법에서 말씀하신 “소능소술(所能小術)에 집착”하는데, “이런 유의 사람이 자심생마하기가 가장 쉽고, 떨어지기가 가장 쉽다.”라는 구절을 오해해, ‘천목이 열려야만 자심생마에 걸리고, 천목이 열리지 않으면 자심생마에 걸리지 않는다’고 여긴다. 사실은 천목이 열리지 않았더라도 뼛속까지 교만한 사람 역시 똑같이 조금씩 자심생마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는데, 바로 그 마에 의해 단단히 통제되기 때문이다.
6. 구세력의 박해를 타파하고 역사의 사명을 저버리지 말아야
사부님께서는 《북미 제1기 법회설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렇게 풍우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위덕을 세웠고, 비로소 후세사람들에게 말할 만한 것, 가르칠 만한 것을 남겨주며, 그가 갖가지 시달림을 받으면서 걸어지나온 교훈과 경험을 후세사람들에게 남겨준다. 그가 비로소 위덕을 구비했는데”
필자가 이해하기로는, 미래 우주를 위한 참조(參照)를 남겨놓기 위해 구세력도 후인을 경각(警覺)시킬 수많은 역사적 교훈을 안배했다. 왜냐하면 사람은 고난과 곤경 속에서 반성하는 데 익숙하며, 부면(負面) 교훈이 주는 경각심의 힘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구세력이 안배한 마난과 박해를 승인하지 않고 타파하며,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정법(正法)의 길을 걸어가는데 그렇다고 해서 역사적으로 약정(約定)한 사명마저 포기해서는 안 된다.
《각지 설법 14》〈2016년 뉴욕법회설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실은 일부 사람이 제구실을 못 하는 것으로, 사전에 이 일을 하겠다고 서원을 하고도, 그가 오지 않았고, 할 사람이 없기에, 사부 자신이 하는 것이다.”
실천 속에서 여러분이 볼 수 있다시피, 정법 업무를 감당하는 것은 많은 경우 모두 새로 배운다. 어떤 이들은 빨리 배우고 쉽게 익히며, 나중에 자신이 역사상 그런 일들을 해보았기에 빨리 배운 것은 역사적 다져놓은 것이 있었기 때문임을 깨닫곤 한다. 또 어떤 동수들은 역사상 자신이 다져놓은 것임을 알면서도 대법을 실증하는 데 유용한 기능에 대해서는 오히려 배우려 하지 않고 하지 않으며, 가장 간단하고 마음 편하고 쉬운 방법을 선택해 법을 실증하려 한다. 이렇게 진정으로 노력하고 정진할 수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정진할 수 없다. 왜냐하면 배우려 하지 않고 더 나아가 감당하려 하지 않는 것 자체가 게으름, 두려움 등의 마성이 침투한 것이기 때문인데, 어떻게 정진할 수 있겠는가?
어떤 이는 자신이 어느 역사 명인(名人)의 후신임을 알고, 마음속으로는 역사적 영광을 누리면서도, 그 단락의 역사가 그에게 부여한 기능을 거두지 못하는데, 하물며 그 단락 역사가 그에게 다져준 기능을 이용해 법을 실증하라는 것임에랴. 사명을 욕되게 하는 것 자체가 각종 마장(魔障)에 의해 침식된 것이며, 남겨지는 것은 오직 교훈일 뿐인데, 즉 후인을 경각시키는 부면적인 교훈일 뿐이다. 하지만 당신이 바라는 것이 바로 이러한 부면(負面)적인 교훈이란 말인가?
이상은 개인적인 체득이니 타당하지 않은 곳이 있다면 여러분이 바로 잡아 주기 바란다. 역사의 교훈을 돌이켜보면, 수행인이 계율을 어긴 죄업은 이토록 심중하여 천 년이 지나도 여전히 다 갚지 못하는데; 역사적 사명의 다져줌이 이토록 두터우니, 일단 일깨워지면 오직 더욱 힘써 잘해야만 비로소 서약과 사명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6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