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객(天客)
【정견망】
편집자 주: 새로 신설된 ‘션윈관지(神韻觀止)’ 코너의 ‘관지(觀止)’라는 두 글자는 원래 춘추시대 오나라의 현자 계찰(季劄)이 주(周)의 악무(樂舞)를 감상한 일에서 유래했다. 계찰이 감상한 것은 단순히 악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 덕(德)을 본 것이다. 나아가 순(舜)임금의 악무인 《소소(韶箾)》를 감상하고는 그 덕이 천지처럼 광대함을 보고는 마침내 “관지(觀止 더는 볼 필요가 없으니 여기서 그친다는 의미)”라고 감탄했다.
따라서 ‘션윈관지(神韻觀止)’가 담고자 하는 바 역시 무대 위의 예술적 아름다움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예악(禮樂)의 아름다움을 통해 드러내는 우주 최고 표준인 ‘진·선·인(真·善·忍)’의 정신을 체득하는 데 있다. 동시에 여러분들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해 션윈을 관람한 후의 체득을 마음껏 나누기를 바란다.
5천 년은 한 문명에 있어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계적으로 일찍이 수많은 찬란한 고대 문명이 존재했다. 메소포타미아 유역에는 점토판과 도시국가가 남았고, 고대 이집트에는 피라미드와 신들이 남았으며, 고대 그리스에는 서사시, 철학, 예술이 남았다. 그들의 유산은 지금까지도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본래의 언어, 신앙, 제도와 사회생활은 유구한 역사 속에서 각기 다양한 단절과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중화문명(中華文明)은 보기 드문 연속성을 지닌 채 오늘날까지 줄곧 걸어왔다. 조대(朝代)는 거듭 교체되고, 산하는 거듭 주인이 바뀌었으며, 전쟁과 재난 끊이지 않았으나, 한자(漢字)가 전해졌고, 시서(詩書)가 전해졌으며, 예악의관(禮樂衣冠) 또한 전해졌고; 하늘을 공경하고 덕을 닦으며 신(神)·도(道)·천명(天命)에 관한 기억 역시 대대로 전해 내려왔다.
어째서인가? “5천 년 동안 단절되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더 깊이 추구해야 할 질문은 바로 이 5천 년 동안 도대체 무엇을 전해 왔는가 하는 점이다.
만약 단지 몇 가지 오래된 기물(器物)과 기예(技藝) 및 생활방식을 전하기 위함이었다면, 이러한 형식 그 자체만으로는 한 문명이 어찌하여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이어질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기에 부족해 보인다. 한 문명이 진정으로 이어져 온 것은 단지 그 형식이 아니라, 생명의 가장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에 달려있다. 사람은 어디서 왔는가? 왜 세상에 왔는가? 사람은 득실(得失)과 고난 속에서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가? 선악(善惡)을 분별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생명은 최종적으로 어디로 향하는가?
이러한 물음을 따라 중화 문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면, 광활한 시서예악(詩書禮樂)과 신화전설, 역사 이야기 아래 5천 년의 세월을 관통하는 하나의 복류(伏流, 숨은 물줄기)가 마치 늘 흐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때로는 모습을 감추기도 하고 때로는 드러내기도 하지만 진정으로 끊어진 적은 없다. 그것은 때로는 ‘하늘(天)’이라 불리고, 때로는 ‘도(道)’라 불리며; 때로는 시인의 머리 위 한 조각 밝은 달이기도 하고, 때로는 은자가 산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이기도 하며; 때로는 ‘반본귀진(返本歸真)’의 ‘돌아갈 반(返)’ 자 속에 숨어 있기도 하고, 때로는 《서유기》의 구구팔십일난을 거친 후의 공성원만(功成圓滿)으로 변화하기도 한다. 그것은 한 조대 한 조대를 거치며 서로 다른 표현으로 변모하면서도, 늘 같은 방향으로 흐른다.
중화 5천 년 문화가 진정으로 단절되지 않은 것은 어쩌면 바로 이 정신적인 복류 덕분일지도 모른다.
1. 인간 세상에서 하늘로 통하는 길
중국인의 문화는 하늘을 우러러보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전통 중국인의 세계에서 ‘하늘’은 결코 머리 위의 하늘만에 국한되지 않았다. 사람에게는 천명(天命)이 있고, 일에는 천의(天意)가 있으며, 선악(善惡)에는 천리(天理)가 있다. 제왕은 천자(天子)라 불렸고, 사람 노릇을 할 때는 하늘을 공경하고 명을 안다(敬天知命)고 했으며, 사람과 천지의 최고 조화를 ‘천인합일(天人合一)’이라 불렀다. 하늘에 대한 이러한 경외심은 단지 제도와 경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삶 속에도 깊이 스며들어, 중국인이 세계를 인식하고 생명을 갈무리하는 기본적인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고대의 문명 기원에 관한 전설들은 모두 신(神)과 연결되어 있다. 반고가 천지를 열고, 여와가 사람을 빚었으며, 복희가 팔괘를 그렸고, 신농이 백초를 맛보았으며, 창힐이 한자를 만들고, 황제(黃帝)가 화하 문명을 열었다. 오늘날 이러한 상고 시대의 전설을 어떻게 이해하든, 그것들은 적어도 중요한 문화적 기억을 보존하고 있다. 즉, 중화 문명은 애초부터 그 원점을 하늘과 신(神)을 향해 두었다는 점이다. 문명의 기원에서부터 사람의 도덕과 생명관에 이르기까지 하늘과 신은 언제나 그 자리에 함께 있었으며, 이것이 바로 중화 신전문화의 최초의 밑바탕을 이루었다.
만약 생명에게 온 곳이 있다면, 인간 세상에 온 것은 단지 몇십 년의 세월을 보내기 위함만이 아닐 것이다. 생명에는 온 곳이 있는 만큼 돌아갈 곳(歸宿) 또한 있어야 마땅하다. 그리하여 ‘하늘’이 중국인의 도덕 속으로 들어왔고, ‘도(道)’가 중국인의 삶 속으로 들어왔으며, ‘덕(德)’은 한 생명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었다. 사람은 지상에서 살아가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머리 위에 하늘이 있다는 것을 늘 알고 있었다.
이러한 생명의 방향은 나중에 유·석·도(儒·釋·道)에 의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보존되었다. 유가는 먼저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할 것을 가르쳤다. 《대학(大學)》은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에서 시작해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에 이르기까지 학문이 마침내 사람의 마음과 행동에 안착해야 함을 가르쳤다. 부부, 부자, 군신, 친구 등 모든 구체적인 인륜 관계 역시 수양이 이루어지는 곳이 되었다.
도가(道家)는 사람들의 시선을 번잡한 인간 세상의 득실에서 천지와 생명의 본질로 이끌었다. 청정(淸靜), 무위(無爲), 소사과욕(少私寡欲), 반본귀진(返本歸真), ‘돌아갈 반(返)’ 자 하나는 생명이 비록 멀리 걸어 나갔다 하더라도 여전히 본래의 참된 고향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음을 설명해 준다.
불가(佛家)가 중국에 전해진 이후로는 수행(修行), 각오(覺悟), 피안(彼岸), 윤회(輪廻), 생사를 초월하는 관념이 중국인의 정신세계로 한층 더 깊이 들어왔다.
삼가(三家)의 길은 비록 다르지만, 공통으로 중국 문화가 매우 특수한 생명의 방향을 형성하도록 만들었다. 즉, 사람은 세간에서 살아가되 밖으로만 쫓아서는 안 되며, 몸은 속세에 있되 늘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은 경전 속에만 머물지 않고 시서예악(詩書禮樂)으로 들어갔으며, 금기서화(琴棋書畫)에도 스며들었다. 거문고가 ‘아(雅)’로 불리는 것은 단순히 소리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화(和)’라는 글자 때문이다. 사람은 거문고 소리 속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호흡을 조절하며 천지와 상응하는 바를 체득한다.
바둑은 바둑판 하나와 흑백의 알 두 개로 이루어져 있으나 음양(陰陽), 허실(虛實), 진퇴(進退), 취사(取捨), 전반적인 판세를 펼쳐내어 사람이 득실의 경계에서 판세를 관조하고, 멈출 줄 알며, 버릴 줄 알게 배운다.
서예는 점 하나 획 하나로 사람의 심성을 단련한다. 이른바 “글씨가 곧 그 사람(書如其人)”이라 하여 써 내려가다 보면 붓끝과 먹빛에서 드러나는 것 역시 그 사람의 기도와 품격이다.
중국화(中國畵)는 모양이 비슷한 형사(形似)를 최고 경계로 삼지 않는다. 산에는 기세가 있고, 물에는 흐름이 있으며, 대나무에는 절개가 있고, 난초에는 그윽함이 있으며, 매화에는 뼈대가 있다. 화가가 천지 만물을 빌려 찾는 것은 결국 사람의 정신적 경계이다. 거문고는 사람을 화합하게 가르치고, 바둑은 판세를 보게 가르치며, 글씨는 마음을 바르게 하고, 그림은 경지를 보게 한다. 표면은 예술이지만, 그 깊은 곳은 모두 도(道)와 통한다.
문학도 마찬가지이다. 굴원은 추방을 당하면서도 여전히 위아래로 탐색을 거듭했고, 도연명은 관직을 떠나오며 터뜨린 “돌아갈지어다(歸去來兮)”라는 탄식으로 천여 년을 넘어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이백은 푸른 하늘의 밝은 달을 우러러보며 시 속에 선인(仙人)이 있고, 천문(天門)이 있으며, 은하수가 있다. 소동파는 평생 거듭된 유배를 겪었으나 고난이 그의 생명을 점점 좁아지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문장이 점차 천지의 광활함을 지니게 만들었다.
어째서 중국 시가는 달, 구름, 산, 물, 돌아가는 배와 고향을 그토록 좋아하는가? 어째서 ‘돌아갈 귀(歸)’ 자는 중국인의 정신세계에 이토록 반복해서 나타나는가?
고향으로 돌아가고, 전원으로 돌아가고, 은자로 돌아가고, 참됨으로 돌아가고, 돌아가는 것. ‘귀(歸)’ 자 하나를 수천 년 동안 써왔다. 아마도 중화 문화의 깊은 곳에서 사람이 진정으로 그리워하는 것은 단지 인간 세상의 어느 한 처소로서의 고향만이 아니며, 그곳에는 또 다른 더 아득한 고향에 대한 기억이 어렴풋이 보존되어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고난 역시 이로 인해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한 무제의 사신이었던 소무(蘇武)는 오랜 세월 갇혀 있으면서도 굴복하지 않았고, 남송의 악비는 영욕과 생사의 갈림에서 충의(忠義)를 지켰으며, 남송의 문천상(文天祥)은 죽음을 마주하여 “단심을 남겨 역사에 빛나게 하리라(留取丹心照汗青)”는 글을 남겼다. 그들 중 많은 이는 세속적 의미에서의 성공자가 아니었으나, 수천 년 동안 중국인들은 여전히 그들을 경외한다. 전통문화가 한 생명을 가늠하는 척도에는 성공과 실패뿐만 아니라 또한 ‘덕(德)’이 있기 때문이다.
《서유기》는 이러한 생명의 길을 더욱 선명하게 그려내었다. 당승(唐僧) 사도(師徒) 일행은 분명 서천(西天)으로 경전을 가지러 가는 길인데도 반드시 구구팔십일 난을 겪어야만 한다. 만약 목적이 단지 몇 권의 경전을 얻는 것이라면 굳이 그토록 많은 시련을 겪을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난(難)’ 그 자체 또한 길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손오공은 통천(通天)의 능력을 지녔으면서도 길 위의 연마 속에서 자신을 변화시켜야 했고; 저팔계는 식욕, 색욕, 나태함과 탐심을 끊임없이 마주했으며; 당삼장은 믿음과 의심, 삶과 죽음의 고험을 거듭 겪었다. 마지막에 이르러 얻은 것은 단지 진경(真經)만이 아니며, 변화된 것은 생명 자신이었다.
시서예악은 사람을 가르치고, 금기서화는 사람을 기르며, 충효절의(忠孝節義)는 사람을 세우고, 역사와 고난은 사람을 연마하며, 불도(佛·道) 수련은 생명은 수련을 통해 반본귀진(返本歸真)할 수 있다는 것을 더 직접적으로 알려준다. 여기까지 이르러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수천 년 동안 흐려진 그 정신의 복류가 알고 보니 늘 한 글자——’귀(歸)’를 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중화 문화는 겉으로는 인간 세상을 쓰되, 깊은 곳에서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일깨워준다. 인간 세상을 생명의 마지막 고향으로 삼지 말라고 말이다. 세속에서 본래의 참됨[本真]으로 돌아가고, 인간 세상에서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간다. 만약 사람의 생명이 진정 하늘에서 왔다면, 이 귀향길이 마침내 연결하는 것은 인간 세상과 하늘이다.
한 가닥 하늘 길(天路).
2. 하늘 길은 어떻게 끊어졌는가
그러나 근현대에 이르러 이 수천 년 동안 이어진 문화의 맥락은 엄청난 단절을 맞이하였다. 특별히 중국공산당이 정권을 세운 이후 무신론과 계급투쟁이 국가 공식 이데올로기가 되었고, 전통 신앙, 종교, 예교(禮敎) 및 수많은 문화 풍속이 지속적인 개조와 비판을 받았다. 문화대혁명 시기 ‘파사구(破四舊, 네 가지 낡은 것 타파)’가 전국을 휩쓸며 사원, 불상, 고서(古書), 비석, 조상 사당 및 수많은 문화 유물들이 파괴되었고, 수많은 전통 문화의 전승자들 역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하나의 문물(文物)이 과연 단지 하나의 문물에 불과한가?
고대 사원 하나, 불상 하나, 조상이 남긴 비석 하나, 수백 년 된 사당 하나는 당연히 하나의 물건이지만, 그것들의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단지 물건에 그치지 않고, 한 민족이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기억이다. 한 아이가 조상 사당 앞을 지나고, 고대의 사원 종소리 속에서 자라나며, 조상이 남긴 비석을 보고, 노인이 들려주는 수백 년 동안 전해 내려온 이야기를 들을 때 비록 그 누구도 “문화 전승”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어렴풋이 알게 된다. ‘내 앞에는 아주 긴 역사가 있었구나, 나의 생명보다 더 큰 천지가 있구나, 나는 오늘날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구나’ 하고 말이다.
그러므로 사원이 파괴되고, 불상이 부서지며, 조상의 사당이 헐리고, 고서가 불태워질 때 파괴된 것은 단지 일련의 오래된 물건만이 아니었다. 한 민족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두 손으로 직접 만질 수 있는 문화적 기억 역시 그에 따라 거대한 단절을 겪게 된다.
이와 동시에 또 하나의 더 깊은 파괴가 사람의 마음속에서 일어났다. 하늘을 공경함은 미신으로 배척당했고, 신불(神佛)은 부정당했으며, 인과(因果), 천명(天命), 수련, 반본귀진(返本歸真)은 또 다른 한 세트의 설명 체계로 편입되어 사람과 천지, 사람과 신, 사람과 조상 사이에 본래 존재하던 정신적 연계 역시 재해석되거나 심지어 부정되었다. 한편으로는 문화의 ‘형태(形)’을 부수고,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의 ‘정신(神)’을 부정했다. 형태를 부수는 것은 사람들이 과거를 점점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요, 정신을 부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과거를 점점 믿고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더 깊은 단절은 전통문화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마저 변해버렸다는 데 있다.
오늘날의 중국은 고대 의복(古服), 고대 건축, 시사(詩詞) 및 역사 소재가 부족하지 않으며, 수많은 사극과 역사 드라마는 심지어 의관, 건축, 예의에 있어서 극도의 고증을 거치기도 한다. 그러나 만약 여전히 무신론, 유물론, 권력 투쟁과 현대 공리주의의 틀 속에서 옛사람을 이해한다면 기이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즉, 고대의 껍데기에 현대의 영혼이 담기는 것이다.
옛사람이 하늘을 공경하던 것은 흔히 정치적 필요로 설명되고;
신불을 믿던 것은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탓으로 이해되며;
충의는 이익의 계산으로 환원되고;
도를 닦고 부처님을 예배하는 것은 흔히 현실에서 뜻을 이룬 후의 정신적 의탁으로 귀결된다. 옷은 옛사람의 것이고, 궁궐은 옛사람의 것이며, 인물의 이름 또한 옛사람의 것이지만, 진정으로 그러한 사람들의 삶, 선택과 신앙을 받쳐주던 천지관과 생명관은 쏙 빠져나가 버렸다.
그리하여 가장 깊은 문화적 단절은 고대 의복이 사라질 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미 비전통적인 사상 체계만을 가지고 옛사람을 해석할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발생한다.
사찰은 무너졌어도 다시 지을 수 있고; 고서는 흩어졌어도 다시 정리할 수 있으며; 고대 의복은 실전되었어도 다시 복원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사람들의 사상적 틀, 가치 척도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이미 변해버렸다면 비록 옛 것이 다시 눈앞에 놓인다 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모를 것이다.
한 폭의 산수화가 여전히 박물관에 걸려 있어 사람들은 구도, 필묵, 시장 가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지언정 어쩌면 옛사람들이 왜 수많은 산과 구름 사이에 아주 작은 고사(高士) 한 명을 그려 넣기를 좋아했는지, 왜 “숲속에 높은 선비가 있으니 웃고 소리치는 소리가 하늘 저 멀리서 떨어지네(林間有高人,笑語落天外)”라는 구절이 그토록 동경할 만한 생명의 경지로 여겨졌는지를 자연스럽게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진정으로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가려면 천인합일이 무엇인지, 몸을 닦는 것이 무엇인지, 청정(淸淨)이 무엇인지, 고사(高士)가 무엇인지, 반본(返本)이 무엇인지, 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단어들 뒤에 숨은 생명의 내함(內涵)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이미 사라져버렸다면——
그림은 여전히 걸려 있으나, 사람은 더 이상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끊어진 것은 단지 전통문화의 형체만이 아니며, 전통 신앙에 대한 인정만이 아니라, 더 깊은 곳에서 바로 중국인들이 자신의 문명을 이해하는 능력 자체다. 천(天), 도(道), 덕(德), 선(善), 인과, 수련, 반본귀진——이러한 한자들은 어쩌면 여전히 매일 누군가에 의해 쓰이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만약 그것들 뒤에 있는 생명의 내함이 더 이상 이해되지 않는다면, 남겨지는 것은 아마도 친숙하면서도 낯선 한 줄기의 글자들에 불과할 것이다. 5천 년 문명의 땅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이렇게 점차 뿌리 뽑힌 사람이 되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게 되고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도 점점 알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끊어진 하늘의 길”이 지닌 진정한 의미이다.
3. 어째서 5천 년은 하필 오늘날까지 걸어왔는가
그러나 더 깊은 물음은 바로 여기에서 나타난다. 만약 중화 전통문화가 단지 과거에 속한 것에 불과하다면, 그것이 어찌하여 그토록 오랜 세월을 관통하여 오늘날까지 계속 걸어왔단 말인가? 어째서 그토록 거대한 파괴를 겪고 난 후에도 가장 오래된 단어들이 여전히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는가?
‘하늘(天)’은 여전히 있고, ‘도(道)’는 여전히 있으며, ‘덕(德)’은 여전히 있고, ‘선(善)’은 여전히 있으며, 수천 년 동안 쓰여 온 ‘귀(歸)’ 자 역시 여전히 있다. 《서유기》는 여전히 있고, 시서(詩書)는 여전히 있으며, 수련, 인과, 천명, 반본귀진에 관한 문화적 기억 역시 여전히 인간 세상에 흩어져 있다. 이처럼 유구한 연속성이 남긴 것은 명백히 단지 과거만이 아니라, 오늘날에 전해주어야 할 어떤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다시 5천 년을 되돌아보면, 역사는 문득 전혀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 하나하나의 조대들이 마치 저마다의 무대처럼 역사라는 긴 강물 속에서 차례대로 떠올랐다. 제왕장상(帝王將相), 문인은사(文人隱士), 충신의사(忠臣義士), 수도인(修道人)이 하나하나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가 차례로 물러갔다. 유·석·도가 사상적 뿌리를 다지고, 시서예악이 사람의 마음을 도야(陶冶)하며, 충효절의가 선악을 판가름하는 척도를 세웠고, 수련문화가 사람들로 하여금 생명이 반본귀진할 수 있음을 알게 했으며, 신화 전설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일깨워주었다. 이 눈에 보이는 인간 세상 외에 더 높은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다.
한 층 한 층 길을 깔았고, 한 조대 한 조대 연출해왔다.
여기 이르러 하나의 질문은 더 이상 회피할 수 없게 된다. 어찌하여 반본귀진을 말하고 수련을 말하는 문화가, 수련을 점점 더 이해하기 힘든 시대로까지 줄곧 이어져 온 것인가?
정답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들이 점점 물질을 믿고, 점점 신(神)으로부터 멀어질 때; 사람들이 눈앞의 이 한 세상을 생명의 전부로 여기고, 심지어 ‘수련’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이미 이해하기 힘들어진 때에, 5천 년 동안 보존되어 온 그러한 문화적 기억들은 비로소 또 다른 층의 의미를 드러내게 된다. 그것들은 마치 길가에 남겨진 이정표와 같아서, 이정표 그 자체가 귀향길은 아니지만 이미 너무 멀리 걸어온 사람으로 하여금 진정으로 갈림길에 이르렀을 때 여전히 방향을 구별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5천 년의 신전문화는 바로 한 세대 한 세대 대(代)를 이은 전승 속에서 수련을 이해하고 귀향길을 알아볼 수 있는 문화적 기억을 보존해 왔다. 유가는 사람들에게 수신과 덕을 알게 하고, 도가는 반본과 돌아감을 알게 했으며, 불가는 자비, 각오(覺悟), 인과윤회와 생사 초월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심어주었다. 문학, 역사와 신화는 대대로 하늘, 선악, 인과와 생명의 귀숙처에 관한 언어를 보존해 왔다.
더 깊은 곳을 살펴보면, 유·석·도가 남긴 것은 단지 ‘수련’에 관한 막연한 개념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들은 각각 후세 사람들에게 생명이 위로 향상할 때 도달할 수 있는 서로 다른 경계를 보여주었다.
도가(道家)는 청정무위(淸靜無爲)를 말하고, 후천적인 욕망과 집착을 닦아내어 마침내 반본귀진할 것을 말한다. ‘진(眞)’ 자는 도가 문화 속에서 매우 깊은 생명의 내함을 지니고 있다.
불가(佛家)는 자비를 중시하고 선을 닦으며(修善), 인과윤회를 말하고, 집착을 내려놓으며 중생을 널리 제도함을 말함으로써 사람들이 하나의 생명이 선념(善念)을 끊임없이 확대해 나갈 때 도달할 수 있는 경계를 보게 만들어 준다.
유가(儒家)는 비록 인간 세상에 발을 디디고 있으나 수신(修身), 극기(克己), 예를 지키고(守禮), 인을 완성(成仁)함에 이르기까지 위로 나아감으로써 사람들이 득실, 영욕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단속하고 남을 포용하며 마침내 군자(君子) 내지 성인(聖人)의 경지를 추구하게 만든다. ‘인(仁)’의 이면에는 극기와 양보가 있으며, 진정으로 세상 분쟁 속에서 인덕(仁德)을 지켜내는 것 자체가 큰 ‘참음(忍)’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되돌아보면, 5천 년의 문화는 마치 또 다른 층위의 포석을 드러내는 듯하다. 도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이 참됨으로 돌아가는 것인지 알게 하고, 불가는 선(善)이 얼마나 광대하게 닦일 수 있는지 알게 하며, 유가는 인간 세상 속에서 사람의 극기, 관용과 양보를 끊임없이 연마하게 한다. 그것들은 단순히 진·선·인(真·善·忍)과 등치될 수는 없으나, ‘진(真)’, ‘선(善)’, ‘인(忍)’이라는 이 글자들로 하여금 중화 문화 속에서 이미 깊은 생명의 경험을 지니게 만들었으며, 단지 추상적인 도덕 개념에 머물지 않게 했다.
5천 년의 문화는 이미 인류의 언어, 사상, 도덕적 경험, 나아가 생명 경계에 대한 상상력 속에 이러한 내함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초를 다져놓았다. 그러므로 5천 년 신전문화(神傳文化)의 훈도를 거친 한 민족은 사실 이미 ‘진·선·인’ 세 글자를 이해할 수 있는 문화적 기초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과거에 서로 다른 수련의 길, 사상 전통과 사람 노릇의 실천 속에 흩어져 있던 생명의 경계들은 오늘날에 이르러 마치 서로 관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게 된 듯하다.
5천 년이 다져놓은 것은 단지 몇 가지 문화적 개념이 아니라, 한 민족이 더 높은 생명의 법칙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또한 바로 이러한 전통적인 수련 문화와 멀어진 시대에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전해져 진·선·인(真·善·忍)을 가르치고, 수련과 반본귀진을 가르치고 있다. 5천 년 신전문화의 훈도를 거친 민족에게 있어 이러한 언어들은 결코 완전히 낯선 언어가 아니다. 오랜 역사 속에 흩어져 있던 ‘천(天)’, ‘도(道)’, ‘덕(德)’, ‘선(善)’, ‘수(修)’, ‘반(返)’, ‘귀(歸)’ 및 수천 년 동안 참됨으로 돌아가고, 선을 닦으며, 극기하고 양보하며 생명을 향상시켜 온 온갖 실천들은 오늘날에 이르러 마치 서로를 다시 호응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추게 되었다.
이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진·선·인(真·善·忍)이 담고 있는 내함의 광대함을 더욱 체감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5천 년 문화 그 자체는 법(法)이 아니지만, 사람들이 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언어를 준비해 주고 있다. 그것은 귀향길 그 자체가 아니지만, 내내 귀향길에 관한 기억을 보존해 왔다. 5천 년은 과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을 위해 “법을 듣고 알아들을 수 있는” 문화적 기억을 보존해 온 것이다.
여기까지 이르러, 5천 년 동안 잠복해 있던 그 복류는 마침내 오늘날까지 흘러오게 되었다.
4. 션윈(神韻)이 문을 다시 열다
또한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션윈을 바라볼 때 완전히 다른 감동을 느끼게 된다. 큰 막이 열리고 구름과 노을 사이에서 천국 세계가 서서히 펼쳐지며; 음악이 울려 퍼지고 긴 소매가 펼쳐질 때 한당(漢唐)의 기상, 새외(塞外)의 찬 바람, 강남의 물빛 등 매 하나의 조대(朝代)마다, 이야기마다 5천 년의 역사 깊은 곳으로부터 다시 걸어 나온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 세상의 풍경 외에도 중국인들에게 수천 년 동안 친숙했던 또 하나의 천지가 있다. 바로 구름바다의 선산(仙山)과 동천복지(洞天福地)이며, 신선들이 그 사이를 드나들며 마치 도가 문화 속의 그 청정하고 초탈하며 반본귀진할 수 있는 세계를 사람들 눈앞에 다시금 펼쳐 보이는 듯하다. 옛사람들에게 있어 신선 세계는 단지 문학적 상상에 그치지 않았고, “도를 닦아 신선이 됨”, “반본귀진”과 마찬가지로 생명이 속세를 초월하여 더 높은 경계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일종의 인식을 보존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션윈 무대 위의 천상(天上)과 인간(人間)은 서로 단절된 두 개의 세계가 아니다. 신선 세계는 위에 있고 인간 세상은 아래에 있으며; 신불(神佛)이 세상에 내려와 생명은 인간 세상에서 희로애락과 선택, 시련을 겪고, 사람들의 시선은 거듭 하늘을 향해 이끌린다. 5천 년 문화 속에서 그 어렴풋했던 하늘 길은 이렇게 추상적인 글자와 전설에서 다시 볼 수 있는 풍경으로 바뀌었다.
만약 단지 고대의 의관(衣冠), 춤사위와 이야기를 복원하는 것에 그친다면 이것은 여전히 문화적 ‘형태(形)’의 복원에 불과할 뿐이다. 진정으로 어려운 것은 이러한 이미 정신적 배경을 잃어버린 문화적 형식들에 다시 ‘정신(神)’을 불어넣는 것이다.
션윈 무용극 <관화입경(觀畫入境)–그림 속에 빠져들다>은 마침내 이 문제를 의미심장한 하나의 무대 형상으로 바꾸어 놓았다. 고대의 한 여인이 우연한 기회에 그림 속으로 들어가 그림 속 인물들과 조우한다. 무용극이 그리는 것은 옛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오늘날의 관객들에게 이 ‘그림으로 들어감(入畫)’이라는 심상은 마치 또 다른 의미를 띠는 듯하다. 즉, 이미 전통의 바깥에 서 있던 현대인이 자신의 문명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앞서 우리는 그림은 여전히 걸려 있으나 사람은 더 이상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션윈이 하는 일은 바로 이 문을 다시 열어젖히는 것이다.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 보면 보게 되는 것은 단지 몇 벌의 고대 의복과 몇 채의 정자가 아니라, 의복 뒤의 ‘예(禮)’요, 독서 뒤의 ‘수신(修身)’이며, 산수 뒤의 ‘천지(天地)’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분수(分寸)’이며, 사람이 천지 사이에서 지녀야 할 본래의 자리이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전통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고대 의상을 걸치는 것도 아니요, 고대 건축을 재건하는 것도 아니며, 현대인의 사상을 고대의 이야기에 쑤셔 넣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진정한 들어감이란 전통문화를 읽어낼 수 있는 그 두 눈을 다시 되찾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션윈이 일반적인 ‘복고(復古)’와 다른 점이다. 복고는 단지 과거를 회복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회귀(回歸)란 자신이 온 곳과 돌아갈 곳을 다시 찾아내는 것이다. 션윈은 현대인들을 당조(唐朝)로 송조(宋朝)로 돌려보내려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로 하여금 옛사람들의 삶을 다시 살게 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무용, 음악, 색채, 복식(服飾)과 전통 이야기를 통해 그토록 아득해져 버린 문화적 언어들이 다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며, 느낄 수 있는 생명의 풍경이 되게 함으로써 오늘날의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이해하게 만든다. 옛사람들이 왜 하늘을 공경하고, 왜 덕을 중시했으며, 왜 신불을 믿고, 왜 수신(修身)을 했으며, 왜 늘 반본귀진을 갈망했는지를 말이다.
과거, 현재와 미래는 그리하여 더욱 깊은 선으로 다시 연결된다.
5. 문화를 사람의 몸속에서 다시 살아나게 하기
그러나 하나의 문화가 진정으로 부흥하려면 단지 문을 다시 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문화는 결국 사람에 의해 전승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의관은 복제할 수 있고, 건축은 재건할 수 있으며, 악기는 복원할 수 있고, 무용 동작 역시 훈련할 수 있지만, 만약 그 정신을 전승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마지막에 복원되어 나오는 것은 여전히 아름다운 껍데기에 불과할 수 있다.
가장 복원하기 힘든 것은 옷이 아니라 그 옷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이며, 예의가 아니라 마음속으로 진정하게 왜 예의가 있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요, 한 세트의 아름다운 동작이 아니라 그 동작 뒤에 숨은 사람의 심성, 기도(氣度)와 생명의 상태이다.
이러한 각도에서 볼 때, 페이톈(飛天) 예술대학과 페이톈 대학교가 보여주는 교육 방식은 사람들에게 중국 고대의 서원(書院)을 쉽게 연상시킨다. 전통 서원이 길러낸 것은 단지 글을 읽고 시험을 칠 줄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경전, 스승과 벗, 환경과 일상생활은 마침내 그 사람을 빚어내어 학문이 진정으로 생명 속으로 스며들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션윈 예술가들에게 있어 진·선·인은 단지 무대 위에서의 주제가 아니라 그들이 수련 속에서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준칙이다. 그리하여 전통문화는 단지 연구, 모방과 표현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어떻게 사람 노릇을 하고 어떻게 마음을 닦을 것인가 하는 실제 생활이 된다.
전통예술은 이로써 다시 오래된 길로 되돌아간다. 즉, 먼저 그 마음을 닦은 후에야 예술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이미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 한 사람의 내면적 상태가 그의 작품 속으로 스며든다는 것을 말이다. “글씨는 곧 그 사람”이라 하여 깊은 곳까지 써 내려가면 붓끝과 먹빛 속에 이미 그 사람의 심성이 담기게 되고; 그림을 깊은 곳까지 그려내면 산수 사이에 이미 그 사람의 경계(境界)가 담기게 된다.
마찬가지로 한 무용수의 마음가짐 역시 눈빛, 거취, 신법(身法)과 무용 동작을 통해 흘러나오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관객이 느끼는 것은 때로는 단지 동작이 얼마나 아름답게 완성되었는가 하는 점만이 아니라, 그 동작 뒤에 숨은 그 사람이 드러내는 정신적 힘이다.
<관화입경>의 심상은 여기서 두 번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션윈은 관객들로 하여금 그림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가게 만들 뿐만 아니라, “그림 속의 사람”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기르고 있다. 그것이 복원하는 것은 단지 옛사람의 의관과 무용 동작만이 아니라, 바로 그 의관을 입고 그 션윈을 춤춰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이 다시 나타날 때 ‘예(禮)’는 더 이상 일련의 예의 동작에 그치지 않고, 의관은 더 이상 단지 하나의 복장에 그치지 않으며, 도덕은 벽에 걸린 고훈(古訓)에 그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형식들에 진정으로 생명을 부여하는 것은 그것을 전승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심성, 기도와 정신적 상태가 다시 돌아올 때 문화의 ‘정신(神)’ 역시 그 ‘형태(形)’ 속으로 다시 들어오게 된다.
그러므로 전통문화의 진정한 부흥(復興)은 결국 사람의 몸에 귀착된다. 파괴된 것은 물론 형(形)과 신(神)이지만, 두 가지가 다시 만나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이 문화를 전승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문화는 기물 속에 보존될 수 있으나, 오직 사람의 몸속에서만 살아 숨 쉴 수 있다.
6. 순선순미(純善純美)는 어찌하여 사람 마음을 감동시키는가
이미 전통문화와 오랫동안 단절되어 온 현대인이 어떻게 다시 이러한 정신적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까? 이는 반드시 이치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도리어 순선순미(純善純美)한 감동에서부터 시작된다.
음악이 울려 퍼지고 긴 소매가 날리며 무대 위의 색채, 동작, 음악과 스크린이 하나로 어우러져 순수하고 조화로우며 밝은 세계를 구성한다. 사람이 우선적으로 느끼는 것은 대개 어떤 개념이 아니라 일종의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은 단지 시각적인 보기 좋음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 선(善)이 있고, 순수함이 있으며, 사람의 마음을 저절로 가라앉히는 힘이 있다.
옛사람들은 사실 이미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 가장 높은 예술은 결코 사람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예기·악기(禮記·樂記)》에서는 “악이란 덕의 꽃이다(樂者,德之華也)”라고 하였고, 또 “큰 음악은 천지와 더불어 조화를 이룬다(大樂與天地同和)”라고 하였다. 음악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비롯되므로 한 사람의 덕을 드러낼 수 있고, 진정한 음악은 다시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사람의 감정, 좋아하고 싫어함, 생명의 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옛사람들은 ‘악(樂)’을 단지 소리로만 이해하지 않고, 음악, 무용, 사람의 심성과 천지의 조화가 서로 통하는 것으로 바라보았다.
춘추시대 오나라의 공자 계찰(季劄)이 노(魯)나라에 가서 ‘주나라 음악(周樂)’을 감상하며 내내 시를 듣고 춤을 관람했다. 그가 분별한 것은 단지 멜로디와 동작만이 아니라 음악 속에서 풍속을 보고, 정치를 보며, 성왕(聖王)의 덕을 보았다. 순임금의 음악인 <소소(韶箾)>를 보고서 그는 그 덕이 “하늘이 덮지 않음이 없고 땅이 싣지 않음이 없는 것(如天之無不幬也,如地之無不載也)”처럼 광대하다고 감탄하며 마침내 “관지(觀止 여기서 그치겠노라)”라는 말을 했다.
소위 ‘관지’란 무용 기교가 이미 더 뛰어넘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 아니라, 음악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 악무(樂舞) 속에서 성왕의 덕을 보았고, 덕을 통해 천지와 통하는 경계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 일화는 또한 중국 전통예술을 이해하는 열쇠 하나를 남겨주었다.
진정한 ‘관(觀)’이란 결코 형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형체를 통해 신(神)을 보는 것이요;
진정한 ‘악(樂)’이란 소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 덕을 보고 덕을 통해 하늘로 통하는 것이다.
션윈이 보여주는 것은 단지 고대 <소소> 의미에서의 성왕의 덕에 그치지 않으며, 특정한 어떤 고대 예악 형식을 단순히 복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무용, 음악, 색채, 이야기 및 예술가 자신들의 생명 상태를 통해 우주 최고 법칙의 정신인 진·선·인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고대 예악 문화가 사람들을 위해 남겨준 “예술을 투과하여 더 높은 내함(內涵)을 보는” 그 능력이 이곳에서 다시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
옛사람은 음악을 통해 덕을 보았고; 션윈은 순선순미로써 대법을 드러낸다.
왜 어떤 아름다움은 사람들에게 단지 안구 정화나 감탄만을 자아내는 반면, 어떤 아름다움은 사람의 마음 깊은 곳을 울리며 심지어 자신조차 설명하기 힘든 감동을 낳는가? 아마도 진정한 순선순미(純善純美)가 건드리는 것은 단지 사람의 심미(審美)에 그치지 않고, 사람의 선념(善念)과 생명의 본성까지 건드리기 때문일지 모른다. 예술이 욕망을 자극하고 감정을 배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순수하고 선량하며 장엄하고 밝은 모습을 드러낼 때, 사람은 그것을 마주할 때 흔히 자신도 모르게 차분해진다. 그러한 감동은 반드시 이해에서 먼저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생명 속에 원래 존재하던 어떤 것이 부드럽게 건드려진 것과 같다.
이 또한 앞서 말한 “먼저 그 마음을 닦은 후에야 예술로 드러난다”는 것과 서로 맞닿아 있다. 한 사람의 내면적 상태가 예술 속으로 스며들 때, 예술 역시 더 이상 단지 형식이 아니게 된다. 사람의 심성이 순수로 나아가고, 선의(善意)가 눈빛에 담기며, 수양(修養)이 행동에 묻어나며, 내면의 정신 상태가 무용 동작, 음악과 무대 속에 저절로 흘러나올 때 관객이 느끼는 것 역시 단지 기교 그 자체에 그치지 않고, 그 기교 뒤에 숨은 저 순선순미(純善純美)한 생명의 상태가 된다.
만약 사람의 생명이 진정 하늘에서 왔다며, 이처럼 높은 곳을 향하는 순수하고 장엄하며 밝은 모습이 눈앞에 다시 나타날 때 생명 깊은 곳에서는 어쩌면 말로 다할 수 없는 친숙함이 싹틀지도 모른다. 마치 일찍이 본 적이 있는 것 같고, 마치 아주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것 같으며, 마치 오랜 세월 먼 길을 떠돌던 사람이 이국땅에서 문득 고향의 소리를 듣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순선순미가 건드리는 것은 더 이상 심미적인 즐거움에 그치지 않고, 더욱 깊은 기억——머릿속의 어느 조대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생명 깊은 곳에서 자신이 온 곳에 대한 기억이 된다. 션윈은 그 문을 다시 열어젖히고, 순선순미는 오랫동안 문밖에서 서성이던 사람으로 하여금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픈 소망을 다시금 싹트게 만든다.
그러나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귀로의 종점은 아니다.
7. 귀로가 다시 드러날 때
이렇게 5천 년을 되돌아보면, 한때 서로 흩어져 있던 것들이 점차 연결된다. 어째서 중국인들은 수천 년 동안 줄곧 하늘을 우러러보았는가? 어째서 문화 속에서 도(道)와 덕(德)을 그토록 중시했는가? 어째서 시가(詩歌) 속에는 그토록 많은 달, 구름, 선산(仙山)과 귀향이 담겨 있는가? 어째서 수련 문화가 중국인들의 생명관 속으로 그토록 깊이 들어왔는가? 어째서 《서유기》는 반드시 구구팔십일 난을 겪어야만 하는가? 또 어째서 이러한 문화들이 거대한 파괴를 겪은 후에도 여전히 가장 근본적인 것들 중 일부가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는가?
이 5천 년이 진정으로 남기고자 한 것은 결코 단지 과거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생명의 온 곳과 돌아갈 곳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고 있다.
공산당이 조성한 문화의 단절은 사람과 이 기억 사이의 연계를 끊어놓았다. 션윈은 신전문화의 형(形)과 신(神)을 다시 펼쳐 보이고, 순선순미로써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그 기억을 일깨워줌으로써 이미 전통의 바깥에 서 있던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문명 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되찾게 해준다.
그러나 기억 속에 어떠한 길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내는 것이 곧 귀로에서 걷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정표는 사람에게 방향을 알려줄 수 있을지언정 사람을 대신해 걸어줄 수는 없다. 문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수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아름다움은 생명으로 하여금 천향(天鄉 천상의 고향)의 부름을 다시 듣게 만들어 준다. 마침내 하나의 생명이 어떻게 반본귀진할 수 있는지, 어떻게 자신의 온 곳으로 걸어 돌아갈 수 있는지와 진정으로 관련된 것은 궁극적으로 법(法)과 수련이다.
여기 이르러서야 이 세 층의 관계가 비로소 진정으로 하나로 연결된다.
문화는 기억을 보존하고,
순선순미는 기억을 일깨우며,
대법은 귀로를 가리킨다.
그리하여 5천 년의 신전문화가 어째서 오늘날까지 줄곧 걸어왔는지, 또 어째서 오늘날 다시 이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더욱 깊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 역사가 오늘날에 이르렀고, 사람 역시 오늘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대 아래에 앉아 5천 년의 역사를 바라보며 우리가 단지 관객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매 조대는 차례로 막을 내렸고, 매 하나의 역사 인물들은 차례로 무대에서 퇴장했으나 끝에 이르러 바라보면 어쩌면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 자신 역시 바로 이 역사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질문이 조용히 오늘날의 모든 이들의 앞에 남는다.
‘나는 왜 오늘날에 이르렀는가?’
어떤 이는 더 일찍 만나고, 어떤 이는 더 늦게 만난다. 어떤 이는 이미 수련의 길에 올랐고, 어떤 이는 여전히 세상의 번잡함 속에서 헤매고 있으며, 어떤 이는 자신이 도대체 무엇을 찾고 있는지조차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유구한 역사가 진정으로 오늘날을 위해 무언가를 보존해 온 것이라면, 오늘날에 이른 모든 이는 아마도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이번 생에 왜 이곳에 왔는가? 인간 세상의 이 한 과정을 다 거치고 난 후에는 또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5천 년의 문화는 후세 사람들을 과거로 데려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세상에서 이미 너무 멀리 걸어온 생명으로 하여금 하늘을 가장 잊기 쉬울 때 여전히 하늘과 창세주를 알아볼 수 있는 기억을 조금이나마 남겨두기 위함이다.
5천 년 속에 흩어져 있는 그런 ‘천(天)’, ‘도(道)’, ‘덕(德)’, ‘선(善)’, ‘수(修)’, ‘반(返)’, ‘귀(歸)’는 마치 길가에 남겨진 이정표와 같다. 그것들은 유구한 세월을 관통하고, 왕조의 흥망을 겪었으며, 근현대의 파괴와 단절을 겪고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의 기억이 여전히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션윈이 그 문을 다시 열어젖힐 때, 한 사람이 5천 년 문화가 보존해 온 이러한 언어들을 다시 읽어내고 자신이 온 곳과 돌아갈 곳을 추구하기 시작할 때, 그 끊어졌던 하늘의 길은 비로소 다시금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사람들을 과거로 되돌려 보내는 길이 아니라, 생명으로 하여금 자신이 온 곳을 다시 기억해 내게 하고 마침내 귀로를 향해 나아가게 만드는 길이다. 그것은 하늘에서 시작되어, 인간 세상을 거치고, 5천 년의 역사를 관통하여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하늘을 가리킨다. 너무나 오랫동안 잊혀졌던 그곳——자신의 천향(天鄉 천상의 고향)을 향해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