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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말이 있다: 천지는 넓고, 인간이 아는 것은 적다 — 《유양잡조(酉阳杂俎)》 속 중국식 포용

장수객(長袖客)

【정견망】

당나라에는 아주 기이한 책 한 권이 있다.

책장을 펼치면 방금 전까지 신선, 귀신, 꿈과 기문이술(異術)을 읽다가도, 몇 장 넘기지 않아 느닷없이 새가 둥지를 짓는 법,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습, 이국적인 식물의 잎사귀 모양을 마주하게 된다. 더 나아가면 장안의 어떤 사찰에서 오도자(吳道子)가 벽에 남긴 그림을 보게 되거나, 먼 곳에서 온 나그네를 따라 바다 건너 나라와 그곳에 전해지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만당(晚唐) 시대 단성식(段成式)의 《유양잡조》이다.

책 이름부터가 꽤나 의미심장하다. ‘유양(酉阳)’은 보통 고대 장서(藏書)의 전설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된다. 정전(正典)에 편입되지 못하고 시대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지식들은 세상 밖으로 비어져 나와 깊은 산속에 숨겨진 듯하다. ‘조(俎)’는 본래 고기를 담던 고대의 제기(祭器)이니, ‘잡조’는 온갖 사물이 한상에 어지러이 차려진 것을 뜻한다. 이렇게 보면 《유양잡조》라는 이름에는 이미 그 성격이 은은하게 담겨 있다. 기이한 책과 진귀한 소문들을 한상에 차려낸 것처럼, 천지간에는 인간이 다 헤아리지 못할 일이 너무나 많지만, 우선 그것들을 이곳에 담아 훗날의 사람들을 위해 남겨둔 것이다.

오늘날의 지식 분류법에 따른다면, 이 내용들이 한 책에 실릴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귀신은 신화에, 새와 짐승은 동물학에, 풀과 나무는 식물학에, 사찰 벽화는 미술사에, 이국 풍속은 민족학에 속할 테니까. 하지만 단성식에게는 직접 눈으로 본 것이든 남에게 들은 것이든, 경서에 쓰여 있든 쓰여 있지 않든, 심지어 당시로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든 모두 기록될 수 있었다.

경전이 천지를 재단할 수는 없다

차근차근 읽어나가다 보면, 이러한 ‘잡다함’의 이면에 아주 깊은 태도가 숨겨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고대인들은 세상을 마주할 때 급하게 경계를 긋고 ‘경계 안쪽만이 진실이고, 바깥쪽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지 않았다.

단성식 스스로도 이를 명확히 밝혔다. 《유양잡조》에는 초목과 조수를 다룬 두 권의 특별한 편명인 《광동식(廣動植)》이 있다. 그는 서두에서 천지가 낳은 만물이 너무나 번다하여 《산해경》이나 《이아(爾雅)》조차 이를 다 담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선인들이 기록하지 못한 것, 경사(經史)가 언급하되 불완전하게 다룬 것, 그리고 자신의 눈과 귀로 보고 들었으나 아직 책에 등장하지 않은 것들을 기꺼이 수집하려 했다.

이 몇 마디 말은 곰곰이 음미해 볼 가치가 있다. 《산해경》과 《이아》는 당시에도 이미 오래되고 중요한 전적이었지만, 단성식은 경전에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그것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생각은 정확히 그 반대였다. 천지 만물이 몇 권의 책으로 다 담길 수 없다면, 책에 없는 것 역시 관심을 기울일 가치가 있다는 것이었다.

천지가 먼저 있고, 인간의 지식은 나중에 있다. 책은 인간이 천지를 이해하도록 돕는 도구일 뿐, 거꾸로 천지를 재단하는 척도가 될 수는 없다.

믿지도 버리지도 않는 태도

그리하여 《유양잡조》에서는 오늘날 보기에는 꽤나 흥미로운 풍경이 자주 펼쳐진다. 정확한 관찰, 검증되지 않은 전문(傳聞), 그리고 오래된 상상이 하나의 기록 안에 나란히 보존되는 것이다.

오징어를 예로 들어보겠다. 단성식은 오징어가 큰 물고기를 만나면 갑자기 먹물을 넓게 뿜어내어 “자신의 몸을 섞고(以混其身)”, 이를 통해 자신을 숨긴다고 썼다. 오늘날 우리는 오징어와 꼴뚜기 같은 두족류가 실제로 먹물을 뿜어 방어하는 능력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곧이어 그는 강동(江東) 사람들의 말을 기록한다. 어떤 이가 오징어 먹물로 계약서를 썼는데 1년이 지나자 글씨가 사라졌다는 이야기이며, 심지어 진시황이 동쪽으로 유람할 때 계산 주머니를 바다에 떨어뜨렸는데 나중에 오징어로 변했다는 전설까지 이어진다.

성격이 완전히 다른 내용들이 이렇게 나란히 남겨져 있다.

단성식은 독자들에게 이 모든 것을 동일한 성격의 사실로 믿으라고 요구하지도 않았고, 그중에 전설이 섞여 있다고 해서 기록 전체를 내다 버리지도 않았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기록’하는 것이었다. 인간이 무엇을 관찰했고, 무엇을 들었으며, 무엇을 믿었는지 먼저 남겨두었다.

천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중 어떤 것이 정확한 자연 관찰이고 어떤 것이 오래된 전설인지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바로 그들이 애초에 그것을 보존해 주었기 때문에, 후인들도 다시 인식하고 판단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책 속에는 오늘날 읽어도 판가름하기 어려운 일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유양잡조》의 기록에 따르면, 범양(范陽)의 한 산인이 자신은 ‘수화(水畫, 물그림)’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람들이 마당에 네모난 연못을 파고 물을 가득 채우게 한 뒤, 붓과 먹을 들고 수면 위에서 붓을 휘둘렀다. 당시 곁에 있던 사람들은 물빛이 흐려질 뿐 아무런 그림도 보지 못했다. 이틀 뒤, 그는 비단(絹)을 연못 속에 집어넣었다가 잠시 후 꺼내들었는데, 비단 위에는 고송(古松), 괴석(怪石), 인물과 가옥이 나타나 있었다. 사람들이 그 비밀을 캐묻자, 그는 그저 안료를 통제하여 가라앉지도 흩어지도 않게 할 수 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오늘날의 우리는 이것이 명맥이 끊어진 기예인지, 어떤 눈속임 술수인지, 아니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부풀려진 이야기인지 당연히 알 수 없다. 단성식 역시 후대를 위해 최종적인 판정을 내려주지 않았다. 그는 그저 그것을 기록해 두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가 들리는 대로 다 믿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단성식은 매우 뚜렷한 주관과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다. 장안 사찰의 벽화를 기록할 때 그는 어느 벽면을 누가 그렸는지, 인물은 어떠하고 화조는 어떠한지 세심하게 적었으며, 명가의 작품이라고 해서 무조건 찬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영수사(永壽寺) 삼문 동쪽에 있는 오도자의 그림에 대해 그는 담담하게 “마치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하다(似不得意)”라는 한마디를 남겼고, 자성사(資聖寺)에 이르러서는 오도자, 루릉가(盧楞伽), 한간(韓幹), 변란(邊鸞) 등의 작품과 그 우열을 상세히 기록했다.

오도자의 그림을 보고 감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분별력 없이 무엇이든 믿는 사람일 리는 없다.

따라서 《유양잡조》가 보여주는 것은 맹신이 아니라 매우 절도 있는 태도이다.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마음껏 판단하되, 잠시 판단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해서 급하게 삭제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맹신하지도 않고, 경솔하게 버리지도 않는다.

이질적인 것을 포용하는 기상

이러한 태도는 단성식이 미지의 영역을 대할 때뿐만 아니라, ‘이(異, 다름과 기이함)’를 마주할 때도 여전히 드러난다.

《유양잡조》에는 나중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이야기 하나가 실려 있다. 바로 ‘엽한(葉限)’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단 네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남인상전(南人相传, 남쪽 사람들이 서로 전한다).” 진·한 시대 이전, 강남에 엽한이라는 소녀가 있었는데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가 죽은 뒤 계모에게 학대를 받았다. 그녀는 붉은 지느러미와 금빛 눈을 가진 작은 물고기를 길렀는데, 나중에 계모가 그 물고기를 죽였다. 그러나 물고기의 뼈에는 신기한 힘이 있어 엽한이 비옷과 금신발을 얻고 ‘동절(洞節)’ 축제에 갈 수 있도록 도왔다. 그녀가 급히 떠나면서 금신발 한 짝을 흘렸고, 나중에 왕이 그 신발을 단서 삼아 그녀를 찾아냈다는 이야기이다.

오늘날의 독자들은 이 대목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신데렐라’를 떠올리게 된다. 《엽한》은 이 때문에 세계의 ‘신데렐라형’ 이야기를 연구할 때 자주 언급되는 초기 텍스트가 되기도 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단성식이 이 이야기가 어디서 왔는지 특별히 밝혀두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의 집안에서 일하던 하인 이시원(李士元)이 들려준 이야기였다. 이시원은 본래 옹주(邕州) 동족(洞族) 출신으로 “남중(南中)의 괴이한 일들을 많이 기억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남쪽 변방의 출신으로 지방 소수족의 문화적 색채를 띤 이야기가 중원의 경전에 속하지 않는다고 해서 문화 밖으로 배척되지도 않았고, 그 안에 신비한 물고기와 물고기 뼈, 신기한 금신발이 나온다고 해서 기록할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도 않았다. 단성식은 그 이야기를 듣고는 그대로 남겨두었다. 1천여 년이 지난 후, 당시 남방에서 구전되던 이 이야기는 세계 민담 연구의 소중한 사료가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중화 문명의 포용성이 가진 매우 흥미로운 단면이다. ‘다름(異)’이 곧바로 ‘적(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유양잡조》에는 돌궐(突厥)의 조상 전설과 제사 풍습이 기록되어 있고, 이국땅의 물산과 외국 승려가 들려준 바다의 기이한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 멀고 먼 곳의 사람들이 중원 사람들의 방식대로 살아야만 그의 책에 들어올 자격을 얻는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문화적 심리는 사실 당나라 전체의 기상과도 일맥상통한다. 불교는 인도에서 전해질 수 있고, 호악(胡樂), 호무(胡舞), 향료, 의복과 온갖 이국적인 물산이 중원으로 들어올 수 있으면서도, 중국 고유의 예악, 윤리, 문자 전통은 그대로 이어졌다. 서로 다른 것들이 서로 접촉하고, 흡수하고, 전환되면서도, 반드시 상대를 먼저 소멸시켜야만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중화 문명의 포용은 서로 다른 민족과 문화에 대한 포용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더 깊은 차원을 품고 있다. 바로 미지가 존재함을 허락한다는 점이다.

천지는 넓고, 인간은 작다

현대 과학은 증거, 관찰, 검증, 그리고 반복을 요구하며, 이것이야말로 과학의 가장 귀중한 장점이다. 문제는 과학적 방법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우리 스스로 무의식중에 ‘현재 증명할 수 없다’를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로 바꾸어 버리는 데 있다.

사실, 이 둘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나는 아직 모른다”는 것은 인간의 인식을 말하는 것이고,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천지 그 자체를 단정하는 것이다. 앞말에서 뒷말도 넘어갈 때, 그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것은 바로 인간이 자신의 인식의 한계를 자각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중국의 옛사람들은 이에 대해 늘 소박하고도 삼가는 태도를 유지했다. 공자는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는다(子不語怪力亂神)”고 했지, 천지간에 귀신이 결코 없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논어》에는 또 “제신여신재(祭神如神在, 신을 모실 때는 신이 진정 계신 것처럼 한다)”와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 한다(敬鬼神而遠之)”는 말이 있다. 특히 ‘경이원지(敬而遠之)’라는 네 글자에는 대단히 절제된 균형감이 담겨 있다. 좇아 빠져들지도 않고, 경솔하게 부정하지도 않았다. 인간은 먼저 인간의 도리를 다하고, 아직 온전히 인식하지 못한 천지에 대해서는 일말의 경의를 남겨두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의 이면에는 사실 겸비함이 자리하고 있다.

단성식은 《산해경》과 《이아》 모두 천지의 조화를 다 담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아무리 위대한 전적이라도 온 세상 천지를 다 담을 수는 없으며, 아무리 박학한 사람이라도 우주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옛사람들은 《산해경》의 기이한 짐승, 《수신기(搜神記)》의 신이함, 《유양잡조》 속의 귀신과 꿈, 초목과 조수, 이국 풍속과 기인기사들을 대대로 보존해 왔고, 훗날 《태평광기(太平廣記)》가 전대의 수많은 이문(異聞)을 집대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모든 이야기의 진위를 보증해 준 것이 아니라, 단지 잠시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것들을 인간의 기억에서 모조리 지워버리지 않았을 뿐이다.

오늘날 《유양잡조》를 다시 펼치면, 그 안에는 당연히 전설도 있고 고인의 오해와 오늘날에도 판가름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책 속에는 정확한 자연 관찰, 이미 사라진 장안의 사찰과 당나라 벽화, 남방 민족의 오래된 전설, 그리고 당나라 사람들의 눈에 비친, 중원보다 훨씬 광대했던 세계가 함께 보존되어 있다.

이 기이한 책이 우리에게 남겨주는 것은 1천 년 전의 기문(奇聞)에 그치지 않고, 세상을 마주하는 하나의 태도이기도 하다. 아는 것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관찰하고,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급하게 부정하지 않으며, 나와 다른 것을 마주해도 먼저 배척하지 않고, 경험의 범위를 넘어선 것에도 자리를 조금 내어주는 것.

인간의 지식은 결국 인간의 지식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확장될 수 있지만, 온 세상 천지를 재단하는 척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옛사람들이 그토록 많은 ‘다름’을 품어줄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들이 언제나 이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천지 사이에 서 있을 뿐 본래 아주 작으며, 산천의 저편에는 또 다른 산천이 있고, 우리가 보는 것의 저편에는 여전히 미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다.

천지는 넓고, 인간이 아는 것은 사실 아주 적다.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질문]

현대 사회의 빠른 정보 속도 속에서, 우리는 가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나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것’을 쉽게 배척하곤 하는데. 혹시 일상에서 잘 설명되지 않지만 나름의 가치나 신비로움을 품고 있다고 느낀 경험이 있으신가요?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