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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시화(詩話)

신월(新月)

【정견망】

바둑은 마치 고인(古人)들을 위해 맞춤 제작된 전용 도구 같다.

문인이 바둑을 멀리하면 신채(神采)가 좀 줄어들고,
무장이 바둑을 멀리하면 모략(謀略)이 좀 줄어들며,
은자가 바둑을 멀리하면 한가롭고 편안함이 좀 줄어들고,
제왕이 바둑을 멀리하면 그릇이 좀 줄어든다…….

고인들은 바둑을 사랑하여 너무나 많은 이야기와 이유가 있었고, 그중의 정화는 대개 시문(詩文)에 응축되어 있다.

일곱 살의 이필(李泌)은 재상 장열(張說) 및 당 현종의 ‘시험 문제’를 마주했을 때, 전혀 허둥지둥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앞에서 대국하는 두 사람을 한참 바라보더니 천천히 시를 읊었다.

네모난 것은 의를 행하는 것 같고,
둥근 것은 지혜를 쓰는 것 같으며,
움직임은 재능을 달리는 것 같고,
고요함은 뜻을 얻은 것 같다

方若行義,
圓若用智,
動若騁材,
靜若得意.

‘방·원·동·정(方圓動靜)’을 제목으로 삼은 이 바둑 시는 현종을 놀라게 했고, 조야(朝野)를 경악케 했다.

사람의 처세가 도의에 부합하는 것은 바둑판의 ‘네모짐(方)’ 같아서 강직하고 구차하지 않아야 하며, 지혜를 운용하는 것은 바둑돌의 ‘둥글음(圓)’ 같아야 하니 둥글고 원융하게 통달하여 판 전체를 고려하는 것을 상(上)으로 삼아야 한다. 이 시는 바둑으로 사람을 비유하여 그 격국이 매우 광대하니, 어린 아이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바둑을 두면서 인생을 논하는 것은 통달한 이요, 대국 중에서 “산과 강을 바둑판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것은 또 어떠한 영웅인가. 삼국시대 동오의 손책(孫策)은 여범(呂範)과 바둑을 두며 천하의 격국을 종횡으로 논했다. 바둑이 끝나자 여범은 심복하여 그에게 귀순하기로 결심했고, 단숨에 손오(孫吳)의 기업(基業)을 이룩했다.

“헤어진 뒤 대나무 창가에 눈 내리는 밤, 등불 한 자니 명암 속에 오나라 그림을 복기하네”

(別後竹窗風雪夜,一燈明暗覆吳圖) (두목, 《중송절구(重送絕句)》)

손책과 여범이 대국할 때 남긴 ‘기보화도(棋譜畫圖)’는 ‘오도(吳圖)’를 바둑의 별명으로 만들었고, 이 별명 속에는 천하를 품고 있다.

당태종 역시 바둑을 사랑했는데, 그의 바둑 시는 생사를 초월하고 하늘을 찌르는 듯한 호기(豪氣)가 있다.

“병법의 다스림은 오직 승리에 있고,
땅을 나누되 공을 탐하지 않는다네.
반쯤 죽은 돌은 포위 속에서 끊기고,
온전히 산 돌은 바깥에서 따로 나뉘네.
기러기 떼의 대형은 가짜 날개가 아니요,
진법의 기운에는 원래 뜬구름이 없도다.
손오(孫吳)의 뜻을 음미하니,
마음이 편안해져 속세의 티끌이 가라앉네.”

治兵期制勝,裂地不要勳。
半死圍中斷,全生節外分。
雁行非假翼,陣氣本無雲。
翫此孫吳意,怡神靜俗氛.

(《오언영기》)

바둑을 두면 정신이 즐거워지고 속세의 티끌을 가라앉힐 수 있지만, 역시 맞수가 있어야 한다.

“바둑판의 판세가 다 풀려 흩어질 때면,
긴 길을 가듯 발걸음을 천천히 늦춘다네.
고개를 끄덕이며 비로소 계책을 얻고,
손을 거두며 의심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네.
적막 속에 남겨진 풍경과 친해지고,
정신을 모아 지나간 생각 속으로 빠져드네.
바둑판에 얼마나 많은 뜻이 숨어 있는지,
말없이 마주하여 둘이서 서로를 알아보네.”

拂局盡消時,能因長路遲。
點頭初得計,格手待無疑。
寂默親遺景,凝神入過思。
共藏多少意,不語兩相知.”

(석자란釋子蘭, 《관기觀棋》)

이기기를 너무 많이 하면 재미가 없고, 지기를 너무 많이 하면 풀이 죽는다. 만약 기력(棋力)이 비슷하다면 비록 몰래 감춘 뜻이 아무리 많아도 양쪽 모두 마음속으로 환하게 알 수 있다. 이처럼 상대이면서 동시에 지음(知音)이 되는 특수한 체험은 마치 주유가 제갈량을 만난 것과 같으니, 이것이 바로 바둑 대국의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만약 바둑 친구가 약속을 어기고 오지 않는다면 또 어떤 느낌일까?

“황매화 피는 시절 집마다 비 내리고,
푸른 풀 우거진 연못가엔 곳곳마다 개구리.
약속하고 오지 않아 밤은 이미 반을 넘었는데,
한가로이 바둑돌 두드리니 등잔불 꽃이 떨어지네”

黃梅時節家家雨,青草池塘處處蛙。
有約不來過半夜,閑敲棋子落燈花.

(조사수, 《약객방(約客訪)》),

주인은 친구가 사정이 있어 바둑 약속을 지키지 못한 헛헛함을 읊조리고 있다. 가만히 읽어보면 사람을 안개비 내리고 개구리 우는 전원 속에 있게 만드는 특수한 매력이 있는 듯하다. 바둑 친구는 오지 않고 바둑에 대한 갈증은 풀리지 않았으니, 그리하여 오직 한가로이 바둑돌을 두드리며 남은 판을 만지작거릴 뿐이다. 생각해보면, 이토록 한가롭고 고요한 작은 시를 지어낸 이는 결코 약삭빠르게 계산만 하는 바둑 선수(棋手)는 아닐 것이다.

어떤 이들은 바둑을 두는 것이 오직 마음을 기쁘게 하기 위함이지만, 어떤 이들은 바둑판을 전장에 비유한다.

“마침 공무도 없고 손님도 쉬는 때라,
자리에서 병법을 논하며 두 바둑판을 견주어 보네.
마음은 거미줄처럼 푸른 하늘을 노닐고,
몸은 매미 껍질처럼 마른 가지로 화했네”

偶無公事客休時,席上談兵校兩棋。
心似蛛絲遊碧落,身如蜩甲化枯枝.

(황정견, 《혁기이수정임공점(弈棋二首呈任公漸)》)

기사들은 승부를 다투는 과정에서 정신을 가다듬고 깊이 사색하여, 몸은 마치 마른 가지 같은 매미 탈바꿈처럼 변하고 오직 띄엄띄엄 들리는 바둑돌 놓는 소리만 들린다. 그러나 바둑판 위에는 이미 풍운이 일고 전화(戰火)가 빗발친다. 이 고요함과 움직임 사이에서 바둑판의 변화무쌍함이 펼쳐진다.

어떤 이는 기사의 이러한 특수한 상태를 마치 참선에 들어간 노스님에 비유했다.

“반 판 바둑 쓸쓸한데 스님은 참선에 들었고, 소나무 부딪치는 소리 한 자리에 학은 무리에서 떠나네(半局棋枯僧入定,一聲松響鶴離群).”(애성부艾性夫, 《소사추야(蕭寺秋夜)》) 흥미롭게도 바둑에는 ‘겁(劫)’이라는 전문 용어가 있는데, 이는 수도자가 수행의 길에서 마난(魔難)을 만나 관문을 통과하고 겁난을 건너는 뜻과 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물론 경계가 다른 사람은 바둑을 두는 목적 역시 천차만별이다. 소옹(邵雍)은 사람 마음의 변화가 바둑 두는 것에도 반영됨을 보았다.

“가슴과 마음(배심)을 해치면 진정 두려운 법이거늘,
입술과 이빨(순치)의 근심은 그래도 고칠 수 있네.
남을 헐뜯고 음해함을 계책으로 잘 쓰면 잘 둔다 하고,
은밀하게 교활한 짓을 부리는 것을 기틀을 안다 하네.
보거라, 오늘날 장안의 저 거리에 섰는 자들을,
판을 바꾸어 선들 어찌 이런 일이 없겠는가.

腹心受害誠堪懼,唇齒生憂尚可醫。
善用中傷爲得策,陰行狡獪謂知機。
請觀今日長安道,易地何嘗不有之.

(《관기장음(觀棋長吟)》)

도덕의 타락은 사람들로 하여금 전략과 속임수, 지혜와 교활함의 구분을 혼동하게 만든다. 세상사람들이 명예와 이익을 다투고 서로 속고 속이는 것은 바둑 속에도 반영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상 인심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러나 바둑은 본래 다툼을 위해 사람에게 전해진 것이 아니다. 전설에 의하면, 요(堯)임금이 아들 단주(丹朱)가 현명하지 못하여 번뇌하던 중 두 선인(仙人)이 바둑 두는 것을 보게 되었고, 선인들이 바둑을 요임금에게 전해주어 이 방법으로 단주를 가르치고 그의 성품을 수양하게 했다고 한다.

“아직 서로 다투는 마음을 버리지 못했고,
승패에 대한 마음을 잊기 어렵네.
한 줄기 현묘한 길을,
끝내 깨달아도 찾는 이 없네”

未去交爭意,難忘勝負心。
一條玄妙路,徹了沒人尋.

(소옹, 《관기觀棋》)

바둑은 본래 한 줄기의 현묘한 길이요, 천도(天道)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명리와 이익 속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니, 어찌 그 속의 오묘함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바둑의 참된 비결은 묘하고 신통하지만,
한 판 대국이 끝나는 새 몇 차례 봄이 지났구나.
동굴을 나와 세상에 적수가 없건만,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 때는 넉넉히 용서하며 살아가려네.”

爛柯真訣妙通神,一局曾經幾度春。
自出洞來無敵手,得饒人處且饒人.

비록 이미 천하무적의 기사라 할지라도 여전히 선한 마음과 관용을 품고 바둑 실력을 끊임없이 갈고닦으며 도덕을 높일지언정 승부를 다투기 위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아마도 바둑이 신과 통하는 도(通神之道)일 것이다.

《서유기》에도 바둑을 노래한 시가 있다.

바둑판은 땅이요 바둑돌은 하늘이며,
색은 음양을 본떠 조화가 온전하네.
현묘하고 변화무진한 곳에 이르러 바둑을 두니,
당일의 도끼자루 썩은 신선을 우스갯소리로 칭송하네.

바둑의 19줄은 중심의 천원(天元)을 제외하고 총 360목으로 주천(周天)의 수를 담고 있으며, 바둑돌은 흑백으로 나뉘어 음양을 상징하니 바둑은 마치 하나의 작은 세계와 같다. 이 작은 세계 속에서 어리석은 자는 다투고, 지혜로운 자는 손으로 대화하며, 현명한 자는 근심을 잊고, 통달한 자는 정을 도야하며, 수도자는 도를 깨닫는다. 반면 선인(仙人)들은 대국을 두어 한 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세상은 이미 도끼자루가 썩어 문드러지고 푸른 바다가 뽕밭으로 변하는(滄海桑田) 오랜 세월이 흐른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