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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의 고통 – <고가(古歌)>

성진(星辰)

【정견망】

높은 밭에 밀을 심으니,
끝내 이삭을 맺지 못하네.
사나이가 타향에 있으니,
어찌 초췌하지 않으리오.

高田種小麥,終久不成穗。
男兒在他鄉,焉得不憔悴。

이 <고가>는 한대(漢代)의 악부고시(樂府古辭)로 전해지며, 작자는 고증할 길이 없다. 이 시는 언어가 소박하고 민간 가요에 가까우며, 알맞지 않은 땅에 밀을 심어 이삭을 맺기 어려운 것에 비유하여 나그네가 정처 없이 떠돌며 겪는 산전수전의 고생과 시름을 호소하고 있다.

“높은 밭에 밀을 심으니, 끝내 이삭을 맺지 못하네.”

이른바 ‘높은 밭(高田)’이란 지세가 높아서 충분한 관수를 받기 힘든 척박한 밭을 가리킨다. 고대 농업 조건에서 이러한 땅에 밀을 심으면 수분과 토양 조건이 적합하지 않을 때 정상적으로 성장하여 알찬 이삭을 맺기가 매우 어렵다.

농가에서는 땅의 높낮이, 건조하고 습한 정도, 그리고 기후 조건에 따라 적합한 작물을 선택하는데, 이는 오랜 노동 속에서 축적해 온 경험이다. 환경과 경작 기술의 변화에 따라 농작물의 성장 조건도 변하지만, 이 민요는 전문적으로 농사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 생활 경험을 빌려 환경이 생명의 성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도리를 설명하고 있다. 알맞지 않은 땅에 심으면 곡식이 여물기 어렵고, 사람이 고향을 떠나도 쉽게 초췌해진다.

“사나이가 타향에 있으니, 어찌 초췌하지 않으리오.”

앞의 두 구절은 비유이고, 뒤의 두 구절이 비로소 시의 진정한 주제를 밝히고 있다. 사람이 고향을 떠나 멀리 떠돌며 심지어 외국에서 생활할 때 발을 붙이고 뿌리를 내리기가 대개 쉽지 않다. 언어, 문화, 풍습, 생활 방식이 각기 다르고 친족이나 집안의 뒷받침도 부족하여 많은 일을 홀로 감당해야 한다.

생활 습관과 문화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사소한 일도 남이 보기에는 매우 중요할 수 있으며, 현지인이 당연하게 여기는 예의도 외지인에게는 매우 낯설 수 있다. 그러므로 타향에 살고 있을 때는 현지 풍속과 예의를 존중해야 할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조정해 새로운 생활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이 속에는 한 사람의 소양이 드러나기도 하고, 서로 다른 문화와 생활 습관 사이의 마찰과 조화가 담기기도 한다.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는 사람은 해외에 사는 동향인들이 의식주에 걱정 없고 삶을 잘 꾸려간다고 여길지 모르나, 그들이 겪는 내면의 고생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익숙한 밥을 먹지 못하고 정겨운 고향 사투리를 들을 수 없으며, 명절 때마다 곁에 가족의 동반이 없고, 어려움을 겪을 때 의지할 친족과 친구도 없는 것—이러한 사소해 보이는 일들이 날마다 쌓여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독으로 변해간다.

그러므로 시에서 “어찌 초췌하지 않으리오”라고 한 것은 도리가 있다. 여기서 ‘초췌함’이란 단순히 겉모습의 피로와 생활의 곤궁함뿐만 아니라, 내면이 의지할 곳을 잃어버린 후의 쓸쓸함과 슬픔을 뜻한다.

사람은 왜 특정한 장소와 특정한 사람에게 유독 익숙하고 친근함을 느낄까? 수련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각자의 생명은 아마도 서로 다른 천체와 서로 다른 우주 체계에서 왔을 것이며, 애초에 서로 간에 차이가 존재했다. 생명이 인간 세상에 와서 이 낯선 환경에 들어설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부적응과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다.

고대인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분을 매우 소중히 여겼다. 인생에서 어떤 친구는 비록 안 지 얼마 되지 않았어도 마치 오랜만에 다시 만난 것처럼 느끼게 하며, 그들과 함께 지낼 때 자연스럽고 친근한 따뜻함이 솟아난다. 아마도 이 생명들은 원래 같은 체계에서 왔으며 서로 간에 오랜 인연이 있었기에, 금생에 만났을 때도 구면인 듯한 느낌이 생겨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 층면에서 볼 때, 이 시는 사람에게 안정과 행복을 얻으려면 결국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그곳에는 익숙한 산천과 친근한 고향 사투리가 있고, 인간 세상에서 생명이 지닌 뿌리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의 더 깊은 의미에서 볼 때, 인간 세상은 우리의 진정한 고향이 아니다. 우리는 본래 천국 세계에서 온 생명이니, 인간 세상에 오는 것은 나그네가 먼 길을 떠나는 것과 같고 마치 밀이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은 땅에 심어진 것과 같다. 인간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명예와 부를 누릴지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고독하고 방황하며 의지할 곳 없음을 느낄 수 있다.

진정한 행복은 아마도 단순히 인간 세상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아니라, 생명이 온 길을 찾아내어 마침내 자신이 진정한 천국 세계로 돌아가는 것일 것이다. 생명이 최초로 머물던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비로소 더 이상 천하를 떠도는 나그네가 아니며, 영원한 평안과 행복을 진정으로 체감할 수 있다.

“사나이가 타향에 있으니, 어찌 초췌하지 않으리오.”

이 두 구절은 인간 세상 나그네의 향수를 노래한 것이지만, 어쩌면 생명이 천국의 고향을 멀리 떠난 뒤 겪는 그 아득하고 깊은 그리움의 정이 아니겠는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