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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애심법: 장성청운 (상)

글/석방행

【정견망】

바로 다음 시와 같다.

만리장성 만 리나 되는데
화하를 이어온 천년의 장벽
풍운이 모여 금조(今朝)가 되니
법을 위해 와서 맑은 운율 드날리네

萬里長城萬里長
綿延華夏千年牆
風雲際會爲今朝
爲法而來清韻揚

중국에서는 많은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거실이나 사무실 벽에 만리장성의 거대한 그림을 걸어놓는다. 그 뜻은 사업이 흥성하고 기업이 굳건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만리장성 일부

장성(長城)은 춘추전국 시대부터 건설이 시작되었고 역대로 보수와 파괴를 거쳤다. 비록 많은 곳은 이미 허물어져 없어졌지만 그 정신은 이미 염황자손(炎黃子孫)의 뼈와 피 속에 녹아들었다.

2020년 겨울 나는 남해(南海)에서 한번은 홍곡(鴻鵠) 누님과 이야기할 때 진시황이 6국을 통일하고 장성을 건설한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내 머리 속에는 구불구불한 장성이 떠올랐다. 그것은 2천여 년 간 우뚝 선 아름다움과 웅혼함이 나를 향해 자기의 자태를 드러낸 듯 했다.

이것을 생각하자 나는 현재의 장성이 단속(斷續)적이고 많은 곳은 허물어져 절벽이 되고 끊어져 있음을 알고 있다. 머릿속에 갑자기 내가 학생 시절에 본 적이 있는 두 구절의 철리(哲理)가 담긴 말이 떠올랐다.

“폐허는 자기장과 같아서 한쪽 극은 고대, 다른 극은 현대이다. 심령의 나침반은 이곳에서 감응이 강렬하구나(廢墟是磁場,一極古代,一極現代。心靈的羅盤在這裏感應強烈)”

“폐허가 없으면 어제가 없고 어제가 없으면 오늘과 내일은 말할 나위도 없다. 폐허는 교과서로 우리더러 지리를 역사로 읽게 한다.(沒有廢墟就無所謂昨天,沒有昨天就無所謂今天和明天,廢墟是課本,讓我們把一門地理讀成曆史。)”

당시 이 두 구절에 대한 매우 감촉이 컸다. 20여 년이 지나 다시 회상하면서 특히 장성과 연결되니 더욱 깊은 감촉이 있었다.

장성을 말하자면 역대로 늘 파괴되었다. 더욱이 중공이 집권한 후로는 파괴가 더 심했다. 문화혁명 중에는 일부러 파괴한 것도 있는데 그것들의 목적은 바로 역사를 단절시켜 사람들이 자기 민족의 과거를 알지 못하게 만든 것으로 이렇게 하면 현재의 일체에 대해 그것들이 마음대로 주입시키고 통제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또 이 때문에 비로소 “반우파투쟁”, “문화혁명”, “파룬궁 박해”등 일련의 운동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의 최종적인 목적은 사람의 도덕을 훼멸하고 사람의 신에 대한 바른 믿음(正信)을 파괴하고 사람과 신의 내재적 연계를 파괴하려는 것이다.

(사람은 수련을 통해 신이 될 수 있지만 신이 만약 하늘의 법을 범하면 떨어져서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람에게 전통이 없고 도덕규범이 없으며 신과의 연계가 단절될 때면 사람의 내심은 각종 욕망이나 심지어 마귀에 점거되는데 그러면 그 사람의 미래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의 장성은 내 마음속에서 더는 벽돌로 이루어진 방어 공사가 아니라 국가와 백성의 운명과 긴밀히 연관된 살아 숨쉬는 생명이 되었다! 하물며 장성은 역사적으로 매우 긴 시간 국가의 국경과 영토, 국력 등의 상징이었음에랴! 기왕 살아 있는 생명이라면 이속에는 자연히 중화 2천여 년의 황조(皇朝)체제를 통해 자연적으로 연결하고 이어받고 있다. 그것은 오늘날 창세주께서 인간세상에서 우주대법을 널리 전하시도록 바탕을 까는 무수한 인연과 각종 문화를 위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장성에 대해 쓰려는 이유이다.

중국 역대 장성 총 그림. 편집: 중국 장성학회(中國長城學會)

장성에 관해서 나는 글로만 접한 게 아니라 직접 가서 두 눈으로 본 적이 있다. 처음 본 것은 2001년 10월 28일인데 당시 나와 모친은 파룬따파가 중공에 의해 박해받는 진상을 알리기 위해 천안문에서 현수막을 펼치러 갔는데 가는 기차간에서 장성을 보았다.

두 번째는 2011년 산서(山西)의 안문관(雁門關)에 갔으며 운전하며 달리는 도로상에서 여러 단락의 장성을 만났다.

또 2015년 산동 청도(淸島)에서 제(齊)나라 장성을 보았고 2019년에는 단동(丹東)에 가서 호산장성(虎山長城)을 보았다.

장성을 언급하면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바로 높고 구불구불 이어지는 성벽이 떠오른다. 이는 중원왕조와 이민족을 가로막은 것으로 이곳은 한번은 전장이 되었따가 또 잠시 후에는 중원과 이민족이 교류하는 즐거운 땅이 되었다. 민족들 사이에 전쟁과 교역 등 상호 교류하고 상호 융합하면서 신이 인간에게 전해준 문화가 신의 질서 있는 배치 하에 점차 천하에 널리 퍼져나갔고 팔방에 명성을 떨쳤다.

장성과 관련된 건축 유적은 중국 여러 성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 춘추 전국 시기에서 현재까지 2천여 년을 겪으며 너무나 많은 역사를 보았고 특히 중화 전체 황조의 역사(즉 진시황부터 청나라 말기까지)를 전부 목격했다. 이 기간에 사람들이 잘 모르는 얼마나 많은 기복과 메아리가 있었고 또 감동적인 역사의 장면을 연출했겠는가!

우리는 부동(不同)한 조대(朝代)에는 모두 신이 다져준 부동한 문화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 부동한 지역 역시 이와 같다. 무엇 때문에 부동한 왕조마다 복식과 머리 장식이 다른가, 부동한 지역마다 언어와 생활 습관이 다른가? 다시 말해 시간적으로 말하면 장성의 문화는 2천 여 년을 이어왔는데 지역으로는 15개 성과 자치주에 연관되고 그 외 호남, 사천 경내의 묘강장성(苗疆長城 남장성南長城)을 포함한다.

이렇게 시간을 경도로 하고 지역을 위도로 하여 입체적 좌표에 두면 장성 문화에는 매우 농축된 신전문화의 역사와 내포가 있다.

우리가 장성을 보면 그것이 이어온 웅장함과 장려한 아름다움, 오랜 시간 등 아주 역사적인 것을 구비했다는 느낌을 준다. 오늘 우리는 여러분과 다른 각도에서 장성과 그 자체가 포함한 문화를 체험해보기로 하자.

며칠 전 나는 총아(聰兒)에게 말했다.

“우리 기회가 있으면 장성에 한번 가보는 게 어때. 고성의 벽돌이라도 한번 만져보고 싶어.”

나는 왜 이런 말을 했는가? 나는 과거에 여러 번 장성의 다른 부분을 가본 적이 있지만 나는 그중에 숨어있는 의미와 증거, 창세주와의 연분을 상세히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금년 연말연시에 어느 날 머릿속에 갑자기 장성과 관련하여 사람들이 잘 모르는 역사와 법을 찾으러 다닌 경험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장성의 유래를 더 잘 쓰기 위해(장성 역시 하나의 생명이며 그 유래는 절대 방어라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오랜 역사 중에 일찍이 잘 배치된 것이다. 그곳에 무엇 때문에 배치가 있는가. 내가 말하려는 것은 그 유래이다) 총아에게 이런 말을 했던 것이다.

나중에 일부 기연(機緣)이 성숙하지 않아 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 글이 발표된 이후에 기회가 있으며 여전히 부족한 느낌을 보충하고 싶다.

아래에 먼저 장성의 유래를 말해보자

장성은 천년을 이어온 위대한 공정으로 그 내력에는 아주 큰 의미가 있다. 어느 아주 높은 경계 위에서 수많은 신들이 장차 인간 세상에서 인간에게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 고려하고 있었다. 용족(龍族)을 관리하는 한 신이 마침 이곳을 지나다가 이 장면을 보고는 뭇신들에게 말했다.

“내가 부동한 시기에 부동한 층차의 용족 생명을 파견해 부동한 역사시기에 인간으로 내려가는 것을 위탁했는데 한편으로는 신의 조화를 나타내기 위함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동한 시기에 신이 인간에게 개창해준 문화 내포를 연결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때 마침 창세주께서 이곳을 지나가시다 이 신의 제의가 괜찮다고 보고 상세히 이 일을 배치한 것이다.

인간 세상에서 우리는 춘추시대에서 명청(明淸) 시기까지 줄곧 화하(華夏) 대지위에는 길이도 다르고 질적으로 도란 장성이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것을 보았다.

명나라 중기 전에 조선의 평양에 한 높은 관리가 있었다. 그는 사람이 아주 정직했고 집에는 열 살쯤 되는 어린 딸(이름은 운시韻詩)과 전서(田舒)라는 8살 된 조카딸이 있었다. 이 두 소녀는 함께 자랐으며 매우 사이가 좋았다. 이 관리는 집안에 몇 명의 무술 고수를 길렀는데 집안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 우두머리는 이름이 임용(任勇)이라는 사람인데 검술이 아주 대단하고 또 매우 어질고 의리가 있어 주인에 대한 충심이 강직했다. 한번은 관리가 조정에서 몇몇 소인들에게 죄를 지었는데 이 소인들이 모의하여 관리의 한때의 잘못을 핑계로 어지를 내려 그들 온 집안을 처단하려고 했다. 관리는 소문을 듣고 임용 등 무사들에게 어린 딸과 질녀를 데리고 밤중에 빠른 말을 타고 명나라 거용관에 있는 친구에게 호송하게 했고 아울러 편지 한통을 가지고 가도록 했다.

임용 일행은 감히 태만하지 않고 즉시 여정을 떠났다. 얼마 후 관병들이 관리의 관저를 포위하고 손을 쓰기 시작했다. 나중에 죽은 사람을 확인해보니 대관의 어린 딸, 외질녀 및 몇 명의 정원지기가 실종된 것을 알았다.

그러자 국왕은 간신들의 부추김 하에 이들을 쫓아사 살해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임용과 함께 운시와 전서를 호송하는 사람들은 용감하게 싸워 관병의 겹겹의 포위를 돌파했고 기타 몇 명의 호위무사들은 차례로 피살되었다. 압록강변에 도달했을 때는 오직 임용 한 사람만 남았다. 눈앞에 큰 강이 있고 뒤에서 추격병이 쫓아오는 순간 임용은 자신이 탄 말에게 말했다.

“만약 하늘이 이 아이들의 운명을 여기서 끊어지지 않게 하신다면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자 이상하게 뒤에 추격병이 도착하려는 순간 말이 용감하게 도도히 흐르는 강물로 뛰어들었다. 이때 강 속에서 몇 개의 모래톱이 생겨났고 말을 이 모래 톱을 딛고 강을 건넜다. 이때 또 광풍이 일어나 뒤에서 추격하던 관병에게 불어 말 위에 앉아 있을 수 없게 했고 그들은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돌아간 후 이 정황을 국왕에게 보고 하자 그 몇 명 간신은 또 몇몇 악독한 고수를 명나라에 파견해 임용과 운시 및 전서를 죽일 기회를 엿보게 했다.

호산장성

임용은 압록강을 건너 호산장성(虎山長城)에 도착했다. 어느 주점에 도착해 그곳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있는데 한 노인이 다가왔다. 입은 옷을 보니 조선인도 아니고 중국인 모습도 아니며 이민족의 옷을 입고 있었다. 노인은 아이들을 보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이 자라서 큰 처녀가 되면 가욕관에 가서 나의 두 딸을 찾아 보거라. 너희는 그들과 매우 큰 인연이 있단다.”

이 말을 들은 임용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노인은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오늘 큰 마을을 찾지 말게. 빨리 아이들을 남자로 분장시키고 자네는 중원 사람 옷으로 갈아입게. 밀정들이 자네를 알아보지 못하게 내가 얼굴을 좀 발라주겠네. 설사 명나라에서라도 가는 곳마다 반드시 조심해야 하네.”

임용은 얼른 노인의 뜻에 따라 짐을 정리하고 노정이 매우 고되다고 느껴 조급히 거용관을 향해 달려가지 않았다.

산해관
거용관

하지만 임용이 제아무리 주의했어도 한 가지를 소홀히 했는데 말안장을 중국방식으로 바꾸는 것을 깜빡 잊었다. 결과 사람들이 보고 이상히 여겼다. 조선 밀정이 이 일을 그 살수들에게 보고했고 임용 일행이 산해관에 도착했을 때 살수들은 독이 묻은 표창으로 임용을 명중시켰다. 다행히 그 노인이 제때 달려와서 두 소녀는 다치지 않았고 노인은 임용 등을 거용관 부근의 어느 도관(道觀)으로 보내어 수양을 시켰다.

이 도관에는 출가한 노 여도사가 있는데 매우 선량하고 열심이었다. 동시에 의술에 정통하여 일반적인 병은 손만 대면 곧 낫게 할 수 있었다.

그녀의 딸(총아)이 세 살 때 어느 세상 밖 고인을 따라 무당산에 가서 무예를 배웠으며 이때 스승의 명을 받들어 하산하여 한 가지 큰일을 완성해야 했다. 그 일이 무슨 일인지 스승은 말해주지 않았다.

여 도사는 삼년 전 13살된 남자아이를 구해준 적이 있는데 이 아이는 강도에게 눈에 해를 입은 채 장성 아래 버려졌는데 여도사가 보고 그를 도관으로 구해가지고 돌아와 세심하게 치료하고 돌보았다. 아이의 눈은 되찾지 못했지만 귀는 매우 민감하여 심지어 귀로도 “볼” 수 있었다. (우리처럼 일반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초능력으로 보는 것이다)

노인이 임용 그들과 이곳에 머문 후 여도사가 전심전력을 다해 치료했기에 상처는 기본적으로 치료되었지만 내장은 독이 퍼져 이미 힘이 다했다. 보기에 3~5일 정도 밖에 살지 못할 것 같았다.

어느 날 임용은 정신이 들어 다른 사람의 부축 하에 문입구로 갔다. 이때 총아가 밖에서 말을 타고 돌아왔다. 총아의 모습은 이러했다.

예리한 칼을 들고 말에서 내리니
바람이 불어와 망토를 날리는구나
두 눈은 번개처럼 번짝이며 자태가 근사하며
산에서 내려와 인연을 맞으러 오는구나

手持利刃胯下馬
風吹鬥篷展瀟灑
雙目如電英姿颯
下得山來緣接洽

노인은 총아를 보자 매우 기뻐하며 얼른 총아를 맞아들이고 대문을 닫아 걸게 했다. 노인은 정원에 앉아 모든 사람을 소집한 다음 말했다.

“여러분을 이곳에 모이게 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당신들 금생에 장성을 따라 창세주를 찾아야 합니다.”

임용은 그 말에 허약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창세주를 찾아야 합니까?”

노인이 웃으며 손을 공중으로 한번 휘두르자 공중에 어떤 장면이 나타났다. 어느 경지의 생명에 패괴(敗壞)가 일어났고 창세주께서 나타나 세상에 내려가 인간세상에 와서 창생을 구하려 하시자 뭇신들이 창세주를 따라 내려오기를 발원하는 장면이 보였다.

사람들이 이 막을 보았을 때 약속이나 한 듯이 무릎을 꿇어 엎드렸다.

노인이 말했다.

“내가 알기로 창세주께서는 장차 인간 세상에 와서 넓은 우주 중생을 구도할 대법을 전하시려 하니 당신들은 이런 한 가지 방식으로 창세주와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이 때 여도사가 노인에게 물었다.

“당신께선 어디서 오셨습니까?”

노인이 말했다.

“나는 가욕관 밖 서역(西域)에서 왔소. 우리 집에 딸이 둘 있는데 몇 년 전 어느 날 내가 한 신인(神人)을 만났습니다. 이 신인이 나에게 알려주기를 반드시 장성을 따라 압록강으로 가서 여기서 몇 명 쫓겨 다니는 사람과 당신들을 만날 것이며 당신들 몇 명이 함께 장성을 따라 가욕관으로 가서 창세주를 찾으라고 했습니다. 또한 부동한 시기에 장성을 구성하는 요소와 한 단락의 연분을 해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총아가 말했다.

“그럼 당신 말씀은 우리 몇 명이 모두 함께 길을 떠나 가욕관으로 창세주를 찾아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노인이 말했다.

“바로 당신들이고 나는 아니오. 가는 동안에 많은 위험을 지나야 하는데 나는 단지 당신들이 꼭 필요할 때 나타날 수 있소.”

총아는 생각해보고 사부가 자기가 하산할 때 한 가지 큰일을 하라고 한 것을 생각하며 아 마 이 일인가보다 했다.

그 눈이 먼 남자아이가 말했다.

“부동한 시기에 장성을 구성한 요소가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노인은 웃으며 하늘을 향해 두 손을 합장하고는 한마디 말을 중얼거렸다. 잠시 후 운룡雲龍, 채룡(彩龍), 신룡(神龍) 등 십여 마리의 용이 분분히 나타났다.

노인이 차례로 소개했다.

“이 용은 춘추 시기 연나라 국경을 관리하던 용이며 저 용은 진시황 시기의 용이고, 이 용은 한나라 시기 장성의 용이며…… 장성을 만든 본의는 변방을 수호하는데 있기 때문에 각 조대에 건설한 장성에는 자연히 그 조대의 신이 부여한 문화 내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군사방면과 농경 내지 문화 교류 등의 일입니다. 부동한 시기마다 다른 것으로 만일 부동한 시대의 장성의 벽돌을 함께 놓아두면 능력 있는 사람은 장성의 벽돌을 통해 대응한 부동한 왕조의 많은 요소를 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당신들은 창세주를 찾는 과정에서 심성의 경지가 끊임없이 제고될 것이며 더욱 많고 보다 높은 요소와 신들이 장성의 내포에 참여해 스며들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창세주께서 대법을 널리 전하는데 길을 닦기 위한 것인 동시에 창세주께서 인간세상에 대법을 널리 전할 때 구도받기 위한 것입니다.”

말을 마치고 노인은 임용에게 말했다.

“자네는 여기서 잘 요양하시오. 나는 산해관 해변에 가서 발해 용왕을 만나야 합니다. 그를 만나 할 일이 있습니다.”

말을 마치고 노인은 총아와 맹아를 불러 길에 올랐다. 임용은 총아가 떠나는 뒷모습을 보고 영문 모를 감동과 아쉬움을 느꼈다. 그가 처음 총아를 보았을 때 그녀가 매우 의롭고 보통인물이 아님을 알았다. 그는 그녀를 마음에 들어 했다. 다만 무예 연마에만 습관이 되어 그는 자기 내심의 느낌을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 점은 문인들과 달랐다.

한편 여도사는 임용의 내심 깊은 곳에서 감동과 실망을 눈치 해고 한쪽에서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이게 운명인가!’

그날 밤 임용은 세상을 떠났다. 두 소녀는 은인이 세상을 떠나자 울며불며 슬퍼하며 매달렸다. 여도사가 옆에서 달랬다. “나중에 너희들은 그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너희들도 아마 나보다 먼저 볼 것이다.”

운시는 며칠간의 만남 중에 총아가 노 여도사가 출가 수행하기 전의 딸임을 알고 말했다.

“그럼 장래 저희가 당신과 당신 따님을 만날 수 있나요?”

여도사는 아이의 뜻을 알고 말했다.

“그건 인연을 따라야지. 목숨을 구해준 은인과 우리 딸 사이의 연분이 어떤지… ”

전서는 시기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만약 그들이 나중에 한 가족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노도사가 말했다.

“때가 되어 방해가 되지 않을까 염려되는 구나. 하지만 또 사람에게 달려 있기도 하지. 이루어질지 아닐지는 중요하지 않고 만일 창세주께서 세상에 법을 전할 때를 만나 그 법의 인연을 소중히 할 수 있고 각자 해야 할 일을 다 하면 된다.”

그녀들이 여기서 얼마나 슬퍼했는지 말할 필요가 없다. 노인은 총아와 맹인 소년을 데리고 함께 산해관 해변에 도착했다.

산해관 노용두(老龍頭) 해상의 일출

노인은 총아와 맹아에게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장차 만날 일을 대하라고 했다. 그리고 노인은 해변에서 가부좌했다. 잠시 후 한 가닥 운무가 닥쳐오더니 노인 일행 세 사람은 운무에 둘러싸였다. 운무가 흩어지자 그들은 이미 용궁에 도착해있었다.

여기서 그들은 발행용왕 및 황해, 동해, 남해 용왕을 보았다. 노인은 그들과 익숙한 듯 매우 반갑게 인사를 했다. 총아는 그들을 보고 매우 기뻐했으며 차례로 맹아에게 여러 용왕의 생김새의 차이를 설명해주었다.

한참 떠들썩하고 난 후 발해용왕이 노인에게 말했다.

“천계(天界)에서 헤어진 후 지금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흘렀군요. 현재 이미 많은 기회와 인연이 닿았으니 노인께서는 신의 안배 하에 몇 사람을 점화하여 장성을 따라 법을 찾는 길을 걷도록 해야 합니다. 나는 장성의 기점과 관련이 있는 신인데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장성은 부동한 지역의 벽돌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지만 만일 신의 배치와 보우가 없었다면 절대 장래 창세주께서 인간 세상에 대법을 널리 전할 때 사람들이 어떻게 그 2천여 년의 장벽을 넘어 신이 인간에 남겨준 전통문화의 정수를 깨닫고 찾아올 수 있겠습니까?

부동한 역사시기의 문화는 부동한 신이나 또는 부동한 천체의 고층 생명이 남겨놓은 것입니다. 이는 모두 창세주께서 인간 세상에 대법을 전하는데 기초를 다지기 위함입니다. 비록 황해용왕과 동해 용왕 남해 용왕은 거리가 여러 장성에서 매우 멀지만 그들은 사실 부동한 시기에 장성을 호위한 적이 있었습니다. 모두 창세주께서 대법을 전할 때 길을 닦기 위해 바탕을 깔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인 것이었습니다.”

이때 황해용왕은 제나라 장성을 수호하는 상태를 보여주었고 동해용왕은 호북과 사천 경내의 ‘묘강장성’(속칭 남장성)이라고 불리는 것을 보호하는 상태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남해 용왕은 동북과 내몽골 등지를 넘어 금계호(金界壕 금나라 시기에 지어진 장성)의 상태를 드러내었다.

이들 몇몇 용왕이 상태를 나타내는 한편 총아는 한쪽에서 맹인 소년에게 정형을 묘사해주었다. 맹인 소년은 자세히 들었다. (사실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볼 수 있었지만 어떤 사람에게도 그의 진실한 상태를 드러낼 수 없었다.)

이때 어느 작은 용이 왔는데 이 용은 매우 사랑스러웠다. 발해용왕은 그를 보고 노인에게 말했다. “제 아들이 장성 및 당신들과 연분이 있으니 오늘 함께 데리고 법을 찾으러 길을 떠나시지요.”

노인이 좀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용왕도 그들과 동행 중에 이미 아이가 둘 있는데 여기에 어린 용을 더한다면 그들을 번거롭게 할 것임을 알았다.

황해 용왕 역시 이유를 알고는 말했다.

“내게 마침 여자 호법(護法)이 하나 있는데 그녀더러 이 어린 용을 돌보게 하겠소. 하는 김에 두 아이들도 돌보게 하죠.”

이에 여자 호법이 나와서 그들과 인사를 했다. 작별할 때 발해용왕은 사람들에게 법을 찾는 길에 무엇을 만나더라도 반드시 믿음이 굳건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잠시 후 그들은 또 해변으로 돌아왔고 여기서 그들은 맹강녀(孟姜女) 사당(역주: 맹강녀는 만리장성에 부역을 나간 남편을 만나러 장성에 갔다가 남편이 죽은 사실을 알고 너무나 비통하게 울자 그 정성에 감동한 장성이 스스로 무너졌다는 전설이 있다)에 도착했다.

(계속)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66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