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망】 유안세(劉安世)의 자는 기지(器之), 호는 원성(元城), 독이노인(讀易老人)이었으며 북송 후기의 유명한 대신이었다. 그는 유학사에서 ‘원성학파’를 열었고 원성 선생으로 존칭된다. 그의 원성학파는 특별히 ‘성실’을 강조해 망언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믿음과 부지런함, 근신을 중시했다. 배움과 수행은 모두 중단할 수 없다고 여겼고 도덕 원칙을 반드시 철저히 관철했다.
그가 조정에서 관리로 있을 때 성실의 원칙을 굳게 지켰다. 당시 북송 후기여서 조정의 권력 쟁탈이 끊이지 않았고 바른말을 하는 사람이 갈수록 적어졌다. 하지만 그는 일을 논하는 데 있어 권력의 높음을 피하지 않고 직언 간언해 ‘전상호(殿上虎: 대궐의 호랑이)’로 불렸다. 그는 이 때문에 여러 번 귀양을 갔다. 하지만 여전히 바른말을 했고 심지어 여러 번 어려움을 겪거나 생명 위험에 직면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다 좋게 풀렸는데 이 때문에 그는 또 ‘철한(鐵漢: 무쇠사나이)’라고 칭해진다. 오늘 그와 관련된 윤회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유안세가 한번 귀양 간 후 대낮에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어느 도사가 찾아왔다. 깬 후 며칠 안 되어 집에서 온 편지를 받았는데 부인이 사내아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그가 헤아려 보니 아이가 태어난 날이 바로 그가 꿈에 도사를 본 그날이었다. 그는 매우 놀랐다. 얼마 후 아이를 보았는데 꿈에서 본 도사와 어렴풋이 닮았다. 그래서 그는 이 아이는 분명 그 도사가 환생해 온 것으로 생각했고 이름을 ‘경도(景道)’라고 지었다. 그는 다른 아이들보다 이 아이를 많이 총애했다.
나중에 유안세가 바른말을 하다가 재차 귀양을 갔는데 영남으로 갔다. 당시 경도는 9살이었는데 갑자기 병에 걸리더니 오래되지 않아 죽어버렸다. 유안세는 매우 비통해했다. 그는 어느 남해 도사가 신통 법술이 있는데 망령을 불러올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그를 공경히 모셔와 법사를 열어서 요절한 아이와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과연 아이의 망령을 불러왔는데 망령은 유안세에게 말했다. “당나라 때 내가 도사였는데 당신은 당시 치청(淄靑)의 절도사였다. 당신이 잘못 쏜 화살이 내 팔에 맞았고 나는 피를 흘리며 죽었기에 내게 빚을 진 것이다. 현재 당신이 나를 9년간 키워준 은혜로 이미 반을 갚았다.” 유안세는 전생 인연을 알고 슬픔에서 빠져나왔다. 아울러 피를 내어 불경을 베껴 쓰기 시작해 그를 초조해 원한을 풀기를 희망했다.
출전: <규차지(睽車志)>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69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