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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수련이야기】묘장왕(妙莊王) 딸의 수련전기 (5)

【정견망】

“만약 삼계와 인간의 역사상의 일체가 모두 우주의 정법을 위하여 배치된 것이라면, 그럼 역사란 단지 대법을 위하여 역사 과정 중에서 중생과 인류 및 사람의 사상방식과 문화를 육성했을 뿐이다. 이리하여 대법이 널리 전해질 때 사람의 사상으로 하여금 능히 법을 이해하고 무엇이 법이고 무엇이 수련이며 무엇이 중생을 구도하는 것인가 하는 등등과 각종 수련형식을 알게 하였다. 만약 이렇다고 한다면, 역사상의 일체 수련과 신앙 그것은 우주가 장래에 세간에서의 정법을 위하여 문화를 다져놓은 것이 아닌가? 무엇이 사람이 신으로 되는 길인가? 하늘의 신들은 내가 사람에게 하늘로 올라가는 한 부의 사다리를 놓아주었다고 모두 말하고 있다. (《역시 방할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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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꿈에 부처님을 뵙고 기쁘게 나가길 바랐으나 부친의 명을 어겨 정원으로 쫓녀나다

이때 묘선공주의 나이는 비록 일곱 살에 불과했지만 근기가 아주 심후(深厚)하고 천성이 유독 두터웠다. 모친이 아픈 것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근심이 가득해 하루 종일 자신의 수명을 줄여서라도 모친의 수명을 연장시켜달라고 신께 기도드리고 천지에 호소했다. 하지만 보덕황후는 수명이 이미 다했기에 아무리 기도를 해도 끝내 조금도 효과가 없었다. 세 공주는 밤낮으로 모시고 탕약을 올리면서 한시도 모친 옆을 떠나지 않았다.

보덕왕후는 묘선공주의 손을 잡고는 맥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얘야! 엄마는 네가 자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중간에 너를 떠나는 것이 너무나 가슴이 아프구나! 엄마가 죽은 후 부디 부왕을 잘 모시고 평소처럼 그렇게 고집을 부려 부왕의 상심이 크시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여기까지 말한 후 갑자기 목이 막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묘선공주는 이 말을 듣고 마치 화살이 심장을 뚫은 것처럼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바로 이 순간 보덕왕후도 영원히 세상과 작별했다!

당시 모두들 묘선공주를 깨우며 슬퍼서 통곡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묘장왕을 제외하면 묘선공주의 슬픔이 가장 컸다. 그녀는 모진 슬픔 속에 오히려 한 가닥 선기(禪機)를 깨달았다. 바로 모친이 나를 낳고 길러주시느라 지금까지 키우면서 온갖 고생을 겪어 그 은혜가 깊고 무겁지만 자신은 조금도 보답하지 못했는데 지금 자신을 떠나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무거운 죄업(罪業)을 어떻게 해야 없앨 수 있단 말인가?

그녀의 신령한 기틀이 움직이자 곧 자비로운 부처님을 떠올렸다. 그녀는 불법(佛法)은 삼계와 시방세계를 초월할 수 있으니 일체 고통받는 중생을 구도해 함께 낙토(樂土)에 올라갈 수 있게 해주는 신통을 가장 잘 갖췄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모친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깊이 사색하고 자신의 죄업을 참회하자면 오직 이 한 가닥 길에서 위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마음을 품자 그녀는 곧 수행에 뜻을 두어 불문(佛門)에 몸을 바치고자 했다. 당시 아직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진 않았고 단지 하루 종일 경전을 읽고 예불하면서 오랫동안 늘 경전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공교롭게도 과부가 된 이모가 있었는데 아주 경건하게 부처님을 신봉했다. 지금은 궁중에서 그녀의 보모로 있었다. 두 사람은 함께 훌륭한 벗이자 동반자가 되었고 갈수록 청수(淸修)의 의지가 강해졌다.

하지만 묘음과 묘원 두 공주는 그녀들의 이런 행동을 보고 큰 불만을 가졌고 뒤에서 어리석다고 비웃었다.

“왕궁에서 태어나 큰 부귀를 누리면서도 오히려 복을 누릴 줄 모르고 반대로 공상에 빠져 있으니 남들의 비웃음을 사지 않겠는가?” 때로는 묘장왕 앞에서도 수다를 떨었다.

처음에 묘장왕은 마음이 답답하고 어지러워 이런 작은 일을 고려할 여유가 없었고 그저 일종의 심심풀이로 보았다. 매미를 구하고 개미를 장례 지내다 뜻밖의 위험이 나타났지만 그래도 그녀를 내버려두었다. 하지만 이 묘선공주가 일찌감치 불문(佛門)에 몸을 바치고 끝까지 수련하기로 발원한 것은 오히려 전혀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묘선공주는 침대에서 비몽사몽 어슴푸레한 순간 문득 3칸 실내에 온통 큰 광명이 비치는 것을 깨달았다. 광명 속에 부처님의 장엄한 보상(寶相)이 나타나셨다. 장육금신(丈六金身)의 머리 위로 사리(舍利)가 빛을 발했으며 발아래로는 연꽃이 땅을 가렸다. 묘선은 이 장면을 보자 몸을 일으켜 절을 올리며 부처님께 미혹의 나루터에서 길을 가르쳐 달라고 청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진겁(塵劫 속세의 겁난)이 채 가시지 않았고 아직 고난을 당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도(道)를 이룰 수 있겠느냐? 오직 마음을 굳게 먹고 고생을 견디며 수지(修持)해 나가면 마음의 경계가 자연히 점차 맑아져서 깨끗한 거울처럼 맑아질 때가 되면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묘선이 또 도를 이룰 날짜를 묻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르다, 일러! 오직 네가 수미산 위의 백련화(白蓮華)를 얻고 누군가 네게 백옥(白玉)의 정수병(净水瓶)을 줄 때가 되면 그때가 바로 네가 도를 이룰 때다. 기억하거라, 기억해!”

이 말을 마치자 금빛이 수렴되고 눈앞에 나타났던 모든 광경이 다 사라진 것을 느꼈다. 묘선 자신은 여전히 비몽사몽간에 침대 위에서 자고 있었다. 묘선은 방금 부처님이 나타나 특별히 자신을 점화하러 오셨음을 알았고 신심이 더욱 굳어졌다.

묘선공주는 불조(佛祖)란 두 글자가 마음에 맴돌아 곧 몸을 일으켜 공손하게 하늘에 절을 올리고 점화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린 후 침대로 돌아갔다.

이렇게 쉬면서 다시 잠을 청하는데 부처님 말씀이 자꾸 떠오르면서 수미산 백련의 일이 떠오르면서 뜻밖에 소득이 있었다. 분명 전에 부친께서 루나부율(楼那富律)이 이것을 지목하며 이마에 난 흉터를 치료할 수 있다고 해서 가섭 장군을 파견한 적이 있다고 하셨다. 그럼 정말 이 진귀한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번에 또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이 백련화는 아무래도 나 자신의 운명과 깊은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속인을 초월해 성인이 되려 한다면 이 보물을 찾지 않고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녀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어느새 수탉이 세 번 울고 동녘이 하얗게 밝아 왔다. 그녀가 깊이 잠든 게 아니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침 보모도 일어나 안으로 들어왔다. 세수를 마친 묘선공주가 밤에 있었던 일을 보모에게 상세히 들려주었다. 그녀는 이 말을 듣고는 어안이 벙벙하여 기쁨에 겨워 합장하면서 끊임없이 불호(佛號)를 외웠다.

그녀는 원래 부처님을 경건하게 믿고 있었는데, 지금 묘선이 도를 이룰 가망이 있다는 말을 듣자 “한 사람이 도를 이루면 키우던 닭이나 개도 승천한다”는 생각에 만약 묘선이 장차 정과(正果)를 얻게 된다면 자신에게도 상당히 좋은 점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녀가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그 후 묘선공주의 마음속에는 또 수미산의 백련화 한 송이가 공연히 떠올랐고, 그 꿈속에서도 때때로 불쑥불쑥 나타났다. 하지만 그녀는 또 생각했다.

‘나는 궁중 깊숙한 곳에 있어서 한 발자국도 밖에 나가지 못하고 수미산은 또 천리 먼 길인데 설사 그 백련화가 있더라도 어떻게 손에 넣을 수 있단 말인가? 만약 타인의 힘에 의지하려 한다면 이는 자신의 공덕으로 칠 수 없으니 곤란하구나.’

그러다 문득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아니다, 아니야! 도를 닦는 사람에게 어렵다(難)는 글자란 없다. 상황이 더욱 어려울수록 장차 난관을 타파해야 하며 그래야만 비로소 밝은 길이 있을 수 있고, 피안으로 넘어갈 수 있다. 비록 천겁만난(千劫萬難)의 상황일지라도 안일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한 걸음씩 걸어가면 법의 인연이 올 것이다. 천리 멀리 떨어졌다고 말하지 말자. 언젠가는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며 아무리 괴로워도 소원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고 곧 모든 잡념을 완전히 버리고 오로지 한마음으로 불가(佛家)의 경전을 연구하며 인연이 오기를 기다렸다.

세월이 빨리 흘러 어느덧 날이 가고 해가 바뀌어 묘선공주는 이미 열여섯 살이 되었다.

그녀의 공행(功行)은 자연히 날로 진보해, 정수(靜修)에서 내관(內觀)의 경지에 이르렀고 더욱 진보해 입정(入定)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때가 되자 마음이 더욱 맑고 밝아져 한 점의 티끌도 묻지 않았다.

뜻밖에도 이에 이르자 마장(魔障)이 중첩되어 나타났다. 무슨 말인가? 원래 보덕왕후의 상을 치른 후, 묘장왕은 첫째와 둘째 두 공주의 나이가 들어 차례로 부마 한 명씩을 뽑았는데, 일문일무(一文一武)로 모두 나라에서 이름난 영준한 청년들이었다. 하지만 묘장왕은 셋째 묘선공주의 혼사만큼은 더욱 각별히 신경을 썼다. 왜냐하면 앞서 보덕왕후와 이야기했던 것처럼 나라를 물려줄 아들이 없으니 부마로 잇게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마침 묘선공주의 나이가 결혼적령기가 되자, 묘장왕은 이 일을 급히 처리하려 했다. 한편으로는 대신들에게 좋은 신랑감을 물색하게 했고 다른 한편 딸에게 이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묘선공주는 그녀의 혼담이란 말을 듣자마자 깜짝 놀라 한 마디로 부왕의 의사를 거절했다.

자신은 평생 도를 닦으며 고난과 재액에서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며 본인은 절대 남에게 시집가기를 원치 않는다고 했다. 또 이미 부처님 앞에서 불문에 몸을 바치겠노라고 소원을 빌었으니 만약 맹세를 어기면 영원히 즐거움 없는 지옥에 떨어져 만겁에도 돌아올 수 없다고 했다. 그녀의 이 말에 묘장왕은 화가 나서 눈을 부릅뜨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한참 후에야 겨우 그녀에게 말했다.

“너는 너무 고집 피우지 말거라! 세상에 그 누가 좋은 집에서 금슬 좋게 살기를 바라지 않겠느냐? 어찌 기존의 부귀영화를 내버려두고 즐기지 않으면서 오히려 그 허무맹랑한 도를 닦고 무슨 성불(成佛)의 이치를 바란단 말이냐? 너는 지금 잠시 불경(佛經)에 빠져 본성이 가로막혀 이렇게 됐겠지만 결국에는 후회할 수밖에 없단다. 그러니 내 말을 따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묘선이 또 말했다.

“저는 이미 끝까지 수행하리라 확고한 뜻을 세웠습니다. 하나는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갚고 아바마마와 돌아가신 모후를 대신해 공덕을 쌓아, 장차 함께 정각(正覺)에 오르고자 함이며, 둘째로 저 자신의 악업을 참회하고 없애, 중생을 대신해 모든 고뇌를 받기를 원합니다. 결코 후회하는 마음이 생기진 않을 겁니다. 부디 아바마마께서 제가 뜻을 이룰 수 있도록 더는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말아 주소서.”

묘장왕은 이에 이르러 자신도 모르게 화를 내며 말했다.

“이건 모두 보모의 유혹한 것이리라. 보모가 공주에게 권유해 사흘 안에 명령을 따르게 하라. 만약 사흘 안에 공주의 마음을 돌려 왕명을 따르게 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반드시 너희 둘 다 죄를 받을 것이며 절대 용서치 않을 것이다!”

보모가 그러겠노라고 수락하자 묘장왕은 옷소매를 뿌리치며 떠났다. 보모는 비록 이것이 아주 어려운 문제인 줄 알았지만 어찌 또 왕명을 어길 수 있겠는가? 다만 공주에게 애타게 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철석같은 마음을 누가 알았으랴! 아무리 권해도 전혀 따르지 않았다.

보모가 애가 타서 말하자, 그녀는 굳센 의지로 이렇게 말했다.

“천 개의 칼로 갈기갈기 살을 찢을지라도 모두 분부대로 따르겠지만 혼사 문제는 절대 따를 수 없습니다.”

그러자 보모도 별 생각 없이 처벌 받을 준비만 할 따름이었다.

사흘이란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묘장왕이 보모에게 사람을 보내 물어보자 보모는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자 묘장왕이 사납게 말했다.

“아마도 이 천한 계집이 고생을 겪지 않고서는 끝내 깨닫지 못하겠구나!”

이에 묘선공주를 어화원(禦花園 궁중화원)에 보내 꽃을 관리하는 잡일에 종사하게 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따로 처벌을 내리게 했고 잘못을 뉘우치고 왕명을 따르기 전에는 공주라는 호칭도 부르지 못하게 했다. 잡일을 하는 궁녀와 똑같이 대하게 했다.

이 말에 모두들 깜짝 놀랐지만, 묘선공주는 오히려 태연하게 보모와 함께 정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새벽부터 일어나 감히 게으름을 피하지 못했는데 물을 길어 꽃에 주고 땅을 쓸고 탁자를 씻는 일 등 어느 것 하나 스스로 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왕실 정원은 면적이 아주 넓고 커서 제대로 정리하기란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 보모가 요리를 도와줘 힘이 훨씬 덜 들었다.

하지만 공주는 필경 귀하게 자란 몸이고 줄곧 구중궁궐에서 무슨 일이든 남의 시중을 받으며 스스로 고생할 필요가 없었으니 어찌 이런 고생스런 일을 한 적이 있겠는가? 며칠 지나지 않아 손과 발에 못이 박이고 기진맥진해졌다.

묘장왕(妙莊王)이 차마 이렇게 나온 것은 그녀가 분명 이런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고생을 겪고 나면 자연히 마음을 돌리게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묘선공주는 의외로 남달랐다. 그녀는 자신은 진(真)을 닦는 사람이니 반드시 수많은 마난(魔難)을 겪고 겁수를 채운 후에야 비로소 정과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받는 고통은 단지 마난의 시작에 불과하며 그다지 큰 곤경이라 할 수 없다. 요만한 것도 견디지 못한다면 영원히 도를 이룰 희망이 없을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마음을 돌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에 대한 믿음이 더 단호해졌다. 몸은 비록 많이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오히려 한가했다. 나중에는 일하는 게 습관이 되어 고생이라고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묘장왕은 또 늘 사람을 시켜 그녀의 행동을 암암리에 살피게 했는데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울화가 치밀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묘장왕의 생일이 되었다. 묘선공주는 새벽에 대궐에 들어가 부친의 생신을 축하드렸다. 묘장왕은 그녀가 비구니처럼 거친 옷을 입고 머리를 산발한 모습을 보고 행동하는 것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또 그녀의 초췌한 모습을 보고는 그래도 친딸인지라 차마 볼 수 없었다. 당장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한숨만 살짝 내쉬었다! 잠시 후에 말했다.

“얘야! 네가 이렇게 고생을 겪었으니 뭘 좀 깨달았느냐?”

묘선공주가 말했다.

“저는 고생한 게 없습니다. 제가 겪은 모든 것은 사람이 살면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 무슨 고초라고 할 게 없습니다. 제 심경을 말씀드리자면 늘 맑고 깨끗하여 본래 몽폐(蒙蔽)된 것이 없기에 깨달았다고 말할 게 없으니 부왕께서 정확히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묘장왕은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냉소적으로 한마디 했다.

“그럼, 좋다! 아마도 네가 아직 고생을 충분히 겪지 못한 것 같구나! 잠시 후에 네 두 언니와 부마들이 모두 축수(祝壽)하러 오면 내가 정원에서 연회를 베풀 것이다. 잘 분비하고 만약 조금이라도 차질이 생기면 네가 책임져야 한다. 안 가고 뭐하고 있느냐!”

묘선공주는 명령을 받고 정원으로 돌아가서 곳곳을 쓸고 정리했다. 원래 이 정원은 그녀가 관리한 이래로 모든 꽃과 나무들이 모두 생기가 넘쳤고 또 여러 정자나 누대며 전각들도 모두 질서정연하게 청결하게 정리되었다. 오늘 한 번 더 청소하자 정말이지 창이 너무 깨끗해서 티끌 하나 묻지 않았다. 그녀는 보모와 함께 길을 치우고 묘장왕 등이 이곳에 와서 연회를 열기를 기다렸다.

정오가 되자 은은한 음악이 들리며 일부 궁녀들의 앞장서고 듣고 뒤에 한바탕 웃음소리가 이어지자 그들이 온 것을 알았다. 바로 다음과 같았다.

깨끗한 수련은 나의 소원이오
부귀는 사람을 교만하게 하네

清修由我願
富貴讓人驕

이후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다음 회를 보라.

역주: 원래 이 문장은 청나라 만타라실주(曼陀羅室主)가 쓴 《관음보살전기(觀音菩薩傳奇)》로 총 40회 분량이다. 이를 명혜망에서 10회분으로 압축해 《불가인물참고자료》로 올린 것이다. 명혜망에는 7회로 나눠 연재했으나 한글본은 10회로 나눠 연재한다.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4/10/22/8697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