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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수련이야기】 묘장왕(妙莊王) 딸의 수련전기 (16)

【정견망】

“만약 삼계와 인간의 역사상의 일체가 모두 우주의 정법을 위하여 배치된 것이라면, 그럼 역사란 단지 대법을 위하여 역사 과정 중에서 중생과 인류 및 사람의 사상방식과 문화를 육성했을 뿐이다. 이리하여 대법이 널리 전해질 때 사람의 사상으로 하여금 능히 법을 이해하고 무엇이 법이고 무엇이 수련이며 무엇이 중생을 구도하는 것인가 하는 등등과 각종 수련형식을 알게 하였다. 만약 이렇다고 한다면, 역사상의 일체 수련과 신앙 그것은 우주가 장래에 세간에서의 정법을 위하여 문화를 다져놓은 것이 아닌가? 무엇이 사람이 신으로 되는 길인가? 하늘의 신들은 내가 사람에게 하늘로 올라가는 한 부의 사다리를 놓아주었다고 모두 말하고 있다. (《역시 방할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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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남해에서 청수하던 관음이 중원 백성의 고통을 제도하다

다시 관세음보살을 이야기하자면 과위를 증득한 연대(蓮臺)에서 한마음으로 관자재(觀自在)하며 묘장왕 등 사람들을 제도했다. 그 이후 선재, 용녀와 함께 자죽림 속에서 소요자재(逍遙自在)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문발타(沙門跋陀)라는 승려가 서방 부처님 나라에서 보살계(菩薩戒)를 받고는 큰 원력을 발해 동토(東土 중국)에 가서 가르침을 전하고자 했다. 그는 수년간 공력을 기울여 겨우 동토에 도착해 각지를 운유하며 중생들에게 불법(佛法)을 널리 알렸다.

하지만 첫째, 언어장벽 때문에 동토 사람들은 그가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고 아무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둘째로 동토 사람들이 불교가 있는 줄도 몰랐고 승려에 대해 모두 이단 좌도(左道)로 간주했다. 때문에 설사 말이 통한들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이런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는 비록 중원 각지를 널리 다녔지만 결국에는 곳곳에서 사람들의 비방만 받았다. 이에 그는 지금 곧 서쪽으로 돌아가려 했고 가는 길에 명산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 남해에 도착해 관세음보살이 이곳에 계신다는 말을 듣고 곧 찾아뵙고 모든 것을 가르침을 받고자 했다.

보살은 그가 세운 뜻에 크게 기뻐하며 동토의 사정에 대해 물었다.

사문발타가 말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저쪽에는 병란(兵亂)이 끊이지 않고 각종 재앙이 많아 인심이 험악하고 다툼이 빈번합니다. 제자가 저들에게 법을 말해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제자를 악인(惡人)으로 여겨 도처에서 비방을 받았습니다. 제자가 이런 모욕을 받는 것은 그래도 견딜 수 있지만 다만 저 운운중생(芸芸眾生)이 가여울 뿐입니다. 마겁(魔劫)이 닥쳤음에도 스스로 미혹에 집착해 깨닫지 못하고 제도하고자 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할 수 없이 서쪽으로 돌아가 여래(如來)께 묘법을 청해 들은 후 다시 동쪽으로 가서 그들을 점화하고자 합니다. 마침 이곳을 지나가다 특별히 보살님을 참배하러 온 것이니 부디 보살님의 자비와 큰 법력으로 미망에 빠진 이 중생들을 감화시켜 첫째로는 고액(苦厄)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둘째로는 불법(佛法)을 널리 알릴 수 있기를 바라나이다.”

관세음보살이 말했다.

“선재, 선재로다! 이것은 너의 공행(功行)이 아직 깊지 못하고 언어장벽에 가로 막힌 까닭이다. 지금 너는 여래께 예를 올리고 나중에 다시 동쪽으로 떠나거라. 나는 본래 고통에 빠진 중생의 목소리를 듣고 저들을 구할 뜻을 지녔으니 기왕 이런 사정이 있음을 안 이상 절대 좌시할 수 없구나. 내가 중원에 한번 가봐야겠다.”

사문발타는 보살의 자비에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곧 서쪽으로 떠났다. 관세음보살은 곧 선재(善財)와 용녀에게 영산(靈山)을 지키라고 분부하고 자신은 노파로 변신해 남해를 중원(中原)으로 가는 길에 나섰다.

관세음보살은 거지 할머니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가는 길에 탁발을 하면서 또 일부 어리석은 백성들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각 지역의 풍속을 보니 곳곳마다 달ㄹ라서 진실로 선량한 곳도 물론 존재했지만 오히려 악한 곳이 다수를 차지했다. 저쪽 지역의 남자들은 그대로 성인(聖人 역주: 공자를 말함)의 교화를 받아 예의를 알았지만 여자들은 오히려 전혀 몰랐다.

물론 상하 두 층으로 나누어 말할 수 있는데 고귀한 여인들은 자연히 명문가 출신이라 일반적으로 시서(詩書)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남을 부리는데 익숙하고 평소 교만하고 사치스런 습관이 몸에 배어 수많은 악업(惡業)을 저질러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반면 하층 여인들은 성인의 가르침에 대해 전혀 들어본 적도 없으니 일체 행동은 자연히 말할 나위도 없었다. 반역하고 불효하며 서로 다투거나 죽이는 등 하지 못하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과보(果報)를 모르니 더욱 불쌍했다.

관세음보살은 큰 자비를 내어 먼저 하층의 어리석은 이들에게 설법(說法)하기로 결심했다. 그녀가 법가(法駕)를 몰아 중주(中州) 경계에 이르렀을 때 태실산(太室山)의 동굴(石屋)을 자신이 현화(顯化)할 장소로 정하고 한밤 꿈속에 주변 백성들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내일 관세음보살이 이곳을 지나며 연법(緣法)이 있는 자들을 점화해 일체 고액(苦厄)에서 구원할 것이다. 너희들은 주의해서 맞이하되 절대 이 인연을 놓치지 마라. 만약 나를 만나지 못한다면 모두 너희들의 성심(誠心)이 부족한가 봐야 하며 오직 성심으로 대한다면 자연히 나를 만날 것이다.”

말을 마친 후 그녀의 장엄한 보상(寶相)을 드러낸 후 서서히 사라졌다.

이튿날 이곳 백성들이 서로 대화하면서 모두들 어젯밤에 같은 꿈을 꾸었다면서 모두들 아주 기이하게 여겼다. 많은 의견이 나왔지만 대체로 큰 희망을 품고 보살께서 강림하시길 기다리는 것을 벗어나지 않았다. 또 보살이 화현(化顯)하되 절대 본래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신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번에 대체 어떤 인물로 변신해서 중생을 점화하러 오실지는 몰랐다. 이 때문에 또 많은 지엽적인 문제들이 생겨났다.

그들이 보살의 모습을 모르니 낯설고 의심스런 사람만 보면 혹 보살로 여기고 모두들 그를 둘러싸고 예배를 올리곤 했다. 종종 절을 받은 사람은 이유를 몰라 당황하다가 나중에 서로 진상을 듣고 웃곤 했다. 이렇게 여러 날 소란을 피웠고 또 적지 않은 오해가 발생했지만, 여전히 보살을 친견하지 못했다. 그러자 모두들 마음에 도리어 의심이 심해졌고 설령 낯설고 의심스러운 사람을 봐도 함부로 보살로 여기고 예를 올리지 못했다.

이때 관세음보살은 여전히 가난한 노파의 모습으로 산을 내려와 시내에 들어가 음식을 구걸했는데 아무도 그녀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 해에 마침 가뭄이 들어 입하(立夏)이후 이미 40여 일간 비가 오지 않았다. 때문에 밭에 심은 묘가 모두 말라가고 있었다. 농부들이 온갖 고생을 다해 밤낮으로 물을 퍼 넣었으나 결국에는 소용이 없었고 재앙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다. 만약 하늘이 계속 비를 내리지 않는다면 수확을 거두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에 농부들의 근심걱정이 많은 것은 당연하고 설사 도시에 사는 사람들조차 다가올 흉년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이 발우를 들고 사람들에게 탁발할 때면 약속이나 한 듯이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이렇게 가물어서 이미 금년 수확을 기대하기 어려워요. 앞으로 닥칠 어려움을 걱정하고 있는데 어디 남는 물건이 있어 할멈에게 주겠소?”

보살이 크게 탄식하며 말했다.

“가뭄은 비록 천재(天災)라 할 수 있지만 결국은 사람에게 원인이 있다네. 당신들 이 지역의 백성들이 만약 천지를 공경하고 널리 착한 일을 하면서 살육을 줄이고 부처님께 귀화했다면, 하늘이 어찌 이런 재앙을 내려 여러분들이 고통을 겪게 했겠는가? 바로 나처럼 가난한 노파가 이곳에서 반 나절동안 수십 가구를 다녔지만 쌀 한 톨도 얻지 못했으니, 이 지역 백성들에게 선한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구려. 사람에게 선한 마음이 없어서 이런 가뭄의 재앙을 받는다면 그 누가 마땅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소?”

이때 마침 유세현(劉世顯)이란 노인이 하나 있었다. 그는 노파의 이 말을 한번 듣고는 곧 마음이 움직였다. 이에 속으로 생각했다.

‘이 노파가 혹 보살의 화신이 아닐까? 내가 한번 대화를 나눠봐야 겠다.’

이에 곧장 손을 맞잡고 예를 올린 후 말했다.

“할머니 말씀이 정말 맞습니다. 하지만 할머니 말씀대로 이곳 백성들이 이전에 적선(積善)을 하지 않아 지금의 가뭄을 겪는다면 설사 모든 사람이 지금부터 잘못을 고친다 해도 이번 가뭄에서 벗어날 순 없을 겁니다!”

보살이 말했다.

“그건 그렇지 않아요. 하늘의 마음은 가장 인자한 것으로 선행에 복을 주려는 마음이 악을 징벌하려는 마음보다 3할은 많소. 오직 사람이 진심으로 죄를 뉘우칠 수만 있다면 하늘이 용납하지 않을 이유는 절대 없소. 다만 이 지역 백성들이 오늘부터라도 지난 허물을 뉘우치고 한마음으로 선행할 것을 맹세하기만 한다면 지금 이 가뭄을 구할 수 있소!”

유세현이 이 말을 듣고는 더는 이유를 따지지 않고 엎드려 절을 올리며 말했다.

“관세음보살께서 현화(顯化)해서 주신 많은 가르침을 받았음에도 제자가 속인의 눈으로 자비로운 용안을 몰라 뵙고 하마터면 기회를 놓칠 뻔 했습니다. 다행히 법어(法語)를 듣고 심규(心竅)가 문득 열리니 엎드려 바라건대 보살께서 큰 자비로 법력(法力)을 널리 베푸소서. 단비를 내리시어 가뭄을 구제해주신다면 제자가 스스로 절을 지어 보살님을 공양하고 어리석은 이들을 널리 권해 그들의 마음이 선을 향하게 하고 함께 자리로 돌아가게 하겠나이다. 보살의 자비로운 방편을 바라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보살이 말했다.

“유씨 성을 가진 이여, 네가 모처럼 진심으로 여러 사람을 대신해 구원을 청하니 네 사심 없는 마음을 알 수 있구나. 내 어찌 네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 있겠느냐? 다만 내가 이 지역 백성들을 보니 우둔함이 특히 심하구나. 내일 오시삼각(午時三刻 역주: 고대의 한 시진은 지금의 2시간으로 매 시진을 8각으로 나눴다. 따라서 오시 3각은 11시 45분에 해당한다)에 내가 현화해 법력을 펼쳐 큰 단비를 내려 저들에게 불법(佛法)의 무변함을 친히 보여주고 저들의 믿음을 굳어지게 할 것이다. 그 후에 네가 다시 잘 권유한다면 그럼 쉽게 감화될 것이다.”

유세현이 다시 절을 올리고 일어나보니 보살은 이미 사라졌다. 그는 곧 자신이 보살을 만날 이야기를 널리 선전했다.

그러자 모두들 의심하면서 말했다.

“벌건 대낮에 보살님이 현신하셨는데 어찌 당신만 뵙고 우리는 뵙지 못했다는 말인가?”

그러자 유세현이 말했다.

“뵙기는 아마 다 뵈었을 것이오. 다만 속인의 눈으로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오. 방금 전 그 탁발하던 할머니가 바로 보살의 화신이었소!”

여러 사람이 이 말을 듣고 방금 전에 보기는 분명히 보았지만 아무도 그 가난한 할멈이 바로 관세음보살임을 몰랐던 것이다! 이에 어떤 사람은 태산을 눈앞에 두고도 몰라 뵈고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을 원망했고, 어떤 사람은 보시를 베풀지 않아 좋은 인연을 맺지 못한 것을 원망했다. 모두들 낙담한 심정은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이때 유세현이 다시 말했다.

“보살님은 자비로운 구고(救苦)를 목적으로 하십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사소한 일에 속하니 절대로 여러분의 죄를 더하는 게 아닙니다. 오직 나중에 성심껏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보살님이 내일 오시 삼각에 보상(寶相)을 드러내 단비를 내려주신다고 하셨으니 그때 가급적 보살님의 자비로운 모습을 뵙고 함께 은혜를 받도록 합시다!”

모두들 이 말을 듣고는 다시 기뻐했다. 이때부터 소문이 널리 퍼졌고 얼마 후 온 성안 사람들이 다 알게 되었다. 또 한 사람이 열 사람에게 전하고 열 사람이 백 사람에게 전하니 이날 저녁이 되자 인근 여러 고을에서도 모두 이 소식을 알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다음날 새벽이 되자 그야말로 농부는 농사일을 멈추고, 부인은 베 짜기를 멈추고, 상인은 장사를 멈추고 모두들 경건하게 향을 올리고 촛불을 켜고는 전적으로 오시 삼각에 관세음보살의 법신이 현신하시길 기다렸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들 목을 높이 쳐들고 먼 하늘을 쳐다보았는데 감히 눈 한번 깜빡일 여유도 없었다.

날이 점점 밝아질 때가 되자 태실산 정상에 한 조각 흰 구름이 유유히 피어오르더니 점차 퍼지면서 갈수록 넓어졌다. 문득 흰 구름 사이로 하늘이 한 갈래 열리더니 산꼭대기 위에 1장 6척(丈六)의 금신(金身 역주: 장육금신은 불체佛體를 상징함)이 나타났다. 머리에는 비단으로 된 모자를 쓰고 몸에는 가사를 걸쳤으며 손에는 양지 같은 백옥정병을 들었다. 병 안에 버들가지를 받쳐 들었고 맨발로 빛나는 바위 위에 서 계셨다.

모두들 이 장면을 보고는 일제히 엎드려 절을 올리면서 입으로는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또 묵묵히 소원을 발하면서 모두들 그 자리에서 귀의하고자 했다. 이들이 일제히 절을 올리고 나서 보살이 손에 버드나무 가지를 잡고 감로에 묻혀 동서남북 사방 밭을 향해 한차례 흩뿌리는 것을 보았다.

말로 하면 좀 이상한데, 갑자기 사방에서 구름이 몰려들더니 큰비가 쏟아지듯이 내려왔다. 족히 한 시간을 내린 후 비로소 구름이 걷히고 비가 멈췄다. 파란 하늘이 다시 나타났고 보살의 법상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이 일이 있은 후 그곳 백성들은 과연 모두 불법을 공경하며 믿었다. 유세현은 재물을 기부해 태실산 보살이 현신하신 곳에 절을 세우고 대사의 상(像)을 조각해 공양했고 보살이 쉬던 석굴의 이름을 관음동(觀音洞)으로 개칭했는데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끝)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4/10/26/86977.html

역주: 이상이 2004년 중문 명혜망에 올라온 자료의 전부다. 원래 글은 청나라 만타라실주(曼陀羅室主)가 쓴 《관음보살전기(觀音菩薩傳奇)》로 총 40회 분량이다. 이를 명혜망에서 16회분으로 압축해 《불가인물참고자료》로 올렸다. 명혜망에는 7회로 나눠 연재했으나 번역본은 16회로 나눠 연재한다. 관세음보살이 동토 곳곳에서 중생을 구도한 더 자세한 일화를 알고 싶으면 원래 소설을 참고하기 바란다. 참고로 한글 번역본은 아직 없으며 이 글이 초역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