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 대법제자 고광(古光)
【정견망】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던 해에 나는 열두 살이었다. 문화대혁명은 전통문화와 고대 서적을 전부 금지했다. 때문에 나는 어른들이 해주는 옛날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내가 가장 기뻤던 일은 바로 어르신들의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들은 시신을 빌려 혼이 돌아온 사연을 적어본다.
이야기 1: 점쟁이가 일본 유학생으로 바뀌다
이 이야기는 1931년에서 1936년 사이에 일어났다. 심양(瀋陽) 교외(당시 심양은 봉천이라 불렀다)에 사는 절름발이 점쟁이 한 사람이 있었는데, 마흔세 살 되던 해에 죽었다. 죽은 후에 그의 원신이 두 사람에 의해 공중에서 떠밀려 비행하는 것처럼 귓가에 바람소리가 휙휙 울렸다.
점쟁이가 큰소리로 말했다.
“당신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갑니까? 내가 떠나면 부모님은 어떡하란 말입니까?”
그 두 사람은 대답도 안 하고 날아갔다. 한참 후 그 중 한 사람이 “도착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은 그를 내려놓으라고 했다. 두 사람이 손을 놓자 점쟁이는 허공에서 떨어졌고 기겁을 하며 “어어” 하고 눈을 떴다. 그는 방안에 누워 있었는데 방은 매우 넓고 화려했다.
그의 옆에는 나이가 좀 많은 40대와 스물다섯 안팎의 단아하고 예쁜 여자 둘이 있어 도합 세 명이었다. 그때 나이 많은 여자가 다른 두 여자에게 말했다.
“드디어 깨어났구나.”
그녀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이 많은 여자가 말했다.
“일단 너희 둘이 먼저 있어라. 나는 잠을 좀 자야겠다. 나는 벌써 3일 밤낮을 자지 못했다.”
여자가 간 후 점쟁이가 남은 두 여인에게 물었다.
“여기가 어딥니까? 방금 간 여인은 누굽니까?”
그러자 두 여자는 놀라 서로를 쳐다보고는 방바닥에 누워있는 점쟁이에게 말했다.
“우리가 누군지 아세요?”
그러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한 여인이 말했다.
“당신 병이 정말 심한가 봐요. 가장 친한 친척도 모르시다니. 방금 나가신 분은 당신 어머님이자 우리 두 사람의 시어머니잖아요, 이제 생각나시죠?”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점쟁이는 아직도 절뚝거리는지 자신을 보려고 부축해 달라고 하여 걸어보려고 했다. 땅에 내려갔지만 그는 자신 절룩거리지 않는 것을 발견하였다. 거울 앞으로 가서 비쳐보니 젊은 총각이 된 자신을 발견하였다.
원래 이 젊은이는 흑룡강 모아산(帽兒山) 부근의 부잣집 자제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가족들이 혼사를 준비하는데, 일본으로 유학갈 기회를 만나 결혼을 포기하고 일본 유학을 갔다. 유학 중 일본 처녀를 사귀었다. 유학을 마친 뒤 하얼빈 역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친한 일본인 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일본인 아가씨와 일본인 친구와 함께 흑룡강(黑龍江)을 찾아갔다. 일본인 친구는 그에게 모아산 역장을 맡겼다. 유학생이 집에 돌아오자 가족들이 그의 결혼을 준비했고 때문에 동시에 중국과 일본에서 두 명의 신부를 데려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반 년 만에 이 유학생이 큰 병을 앓았고 이제 막 깨어났는데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일본어도 할 줄 모르고, 모든 친척, 친구, 동료들도 모르기 때문에, 모두 그가 기억을 잃었다고만 생각했다. 병에 걸리기 전에 그는 일본 처녀를 아주 좋아해서, 자주 데리고 나가서, 일본어로 웃고 떠들고 다녔다. 병이 나은 후 그는 완전히 변해서 늘 중국 처녀와 나들이를 했다. 때문에 두 부인 모두 그가 예전과 너무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들에게 말했다.
“나는 원래 그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집은 심양 외곽에 있고, 집에 부모님도 계시고, 집안이 매우 가난합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두 노인이 그립다”고 말했다. 그는 두 부인의 도움으로 심양의 부모에게 편지 한 통과 은표 500냥을 부쳤다.
그의 어머니가 편지와 은표를 받았을 때 마침 영감은 집에 없었다. 아들이 죽은 후부터 노인네는 살기 위해 심양의 한 극장에 가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다. 노부인은 편지와 은표를 가지고 극장에 가서 노인을 찾았고, 노인은 난로에서 무엇을 끓이고 있었다. 노부인은 편지를 꺼내어 영감에게 “아들한테 편지가 왔다.”고 했다.
그러자 노인은 부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편지를 찢어 난로에 던져버리고는 말했다.
“아들의 시체도 다 썩었을 텐데 어떻게 편지를 보내? 아들 생각에 미친 거야?”
그리고는 불을 질렀다.
그러자 할머니가 울상이 되어 영감의 등을 한 대 때리며 말했다.
“이 망할 영감이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편지를 태우다니. 그 편지가 진짜든 가짜든, 아들이 죽든 살든 간에, 그 편지 속 오백 냥 은표는 진짜란 말이야.”
영감은 듣고 너무 충동적으로 그 편지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편지를 태운 것을 후회했다. 후회가 되었는지 화가 치밀었는지 영감은 백일도 안 되어 죽었다.
다시 흑룡강으로 돌아보자.
두 부인은 점쟁이에게 물었다.
“편지와 돈을 모두 보낸 지 4개월이 지났는데 왜 답장이 없을까요?”
그러자 점쟁이가 말했다.
“우리 집에 큰일이 났을 것이오. 내가 가서 일을 잘 처리한 후 돌아오겠소.”
그는 중국인 아내를 데리고 모아산에서 기차를 타고 심양으로 갔다. 차에서 내린 후 안내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길을 묻지도 않고 바로 교외로 나가 집에 가보니 어머니만 계셨는데 지금은 시력이 좋지 않았다.
점쟁이가 사정을 설명하는데 할머니는 감히 알아보지 못했다. 아들은 벽에 걸려 있는 액자 속의 사진을 보고 “이 사진에는 아들이 아는 사람은 내가 다 알고 있다”며 “내가 다 말하면 그래도 나를 아들로 인정 안하시겠습니까?”라고 했다. 그는 그 사진 속 사람과 그들의 사정에 대해 일일이 말하고, 자신의 옛날 경험을 말해주었다. 마침내, 노부인은 그를 아들로 인정했다.
이야기 2: 유의가 유홍으로 변하다
장강 북쪽 500킬로미터의 지방에는 유(劉)씨 성을 가진 집이 있는데, 형은 유인(劉仁), 동생은 유의(劉義)라 했다. 그들 집 앞에는 강이 하나 있었는데, 유의는 어려서부터 강 위에 다리를 놓겠다는 뜻을 세웠다. 형제가 장가들고 분가한 후 유의는 모든 재산을 다리 건설에 사용했지만, 다리는 절반만 만들었을 때 모든 돈을 써버리고 돈이 없어 공사를 중단했다. 유의는 이 중도에서 멈춘 공사에 하루 종일 근심하다 죽었고(사실 수명이 다하여) 젊은 아내와 어린 아들을 남겨두었다.
유의가 죽은 후 다리를 건설할 마음을 품었는데 이 선념(善念)이 신명을 감동시켰다. 이에 유의가 하루빨리 소원을 이룰 수 있도록 시신을 빌려 영혼이 돌아오도록 주선했다. 장강 변두리에 사는 어느 큰 집안의 성이 역시 유 씨였는데 집안이 아주 부자였다.
삼형제에겐 오직 한 명의 후손만이 있어 유홍(劉鴻)이라 했다. 그가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 큰 병에 걸려 거의 다 죽어갈 때, 신은 유의더러 이 몸으로 부활하도록 안배했다. 그래서 유의는 곧 유홍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과거 유홍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사람들은 그가 과거의 기억을 잃었다고 말했다. 유홍의 병이 나은 후, 형제 셋은 아주 기뻐하였다. 즉시 술상을 차려 축하하고, 형제 셋이서 저마다 아들을 며느리를 구해 장가보내려 했는데, 어느 집에서 구해온 며느리가 낳은 아이면 그 집의 손자로 삼기로 정하여 서로 다투지 않기로 했다. 이 유씨네는 장가도 가고 술자리도 차려서 정말 경사스럽고 떠들썩했다.
그러나 유의는 다리를 놓는 일에만 급급해 밖으로 나가 기분을 풀겠다고 부탁했고, 허락을 받아 은자와 많은 수행원을 데리고 무사히 유의의 고향으로 내려왔다. 유홍이 큰 예물을 가지고 와서 유의의 처자를 만났다. 만난 후 유홍은 유의와 의형제인데 이번에 특별히 형님을 찾아뵙게 되었다고 말했다.
유의의 아내는 유의가 돈 없이 다리를 놓다가 급박하게 죽었는데 이미 반년이 넘었다고 말하고 나서 두 사람은 동시에 눈물을 흘렸다. 유홍은 유의를 만나지 못한 이상 형의 소원을 들어주겠다며 다리를 계속 다 놓고 날을 잡아 공사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다리가 완성되자 모두들 다리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어떤 사람은 선인교(善人橋), 어떤 사람은 인의교(仁義橋)라고 불렀는데, 유홍은 내가 다리 이름을 지어주겠다고 하며 이 다리를 양세교(兩世橋)라고 불렀다.
다리를 다 건설한 후, 유홍은 유의의 아내를 위해 사합원(四合院) 저택을 짓고, 소와 말과 상등(上等)의 논밭을 사들여 안배한 후, 두터운 선물을 들고 형인 유인 부부를 찾아갔다. 유홍의 도움은 유씨 일가족을 크게 감동시켰다. 유홍이 소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세 노인은 매우 기뻐했다.
유홍은 다리를 다 짓고 집에 돌아온 후 늘 멀리 나가려고 했다. 노인들은 유홍의 아내 셋이 차례로 아이를 낳기까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나중에 아이를 낳았는데 모두 남자 아이였고, 세 노인은 모두 손자를 갖게 되었다. 유홍이 다시 나가려 하자 그때서야 노인들이 응낙했다. 유홍은 떠난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전설에 의하면 그가 신선을 만나 선인과의 인연을 완성했다고 한다.
이것은 바로 이렇다.
재산을 다 써가며 고생스럽게 추구하다
시신을 빌린 혼이 돌아와 다리를 놓았구나
신명(神明)의 도움으로 소원을 완성하고
무념무집으로 속인의 일을 마쳤구나!
家財散盡苦追求
借屍還魂把橋修
了卻心願神明助
無念無執凡事休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54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