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문(斯文)
【정견망】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어떤 널빤지를 보았다. 농촌에서는 화장실에 널빤지를 괴는데, 그것들은 코를 찡그리며, 화장실의 악취를 참고 있다. 창고의 널빤지 위에 물건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들이 겨울에는 춥게 느끼고 여름에는 축축하게 느낀다. 어느 노부인의 부엌에는 널빤지 위에 반찬이 남아 있었다.
널빤지가 내게 말했다. “반찬이 다 쉬었고 맛이 좋지 않아, 주인은 냄새를 못 맡고 아직도 남겨놓네, 에이!” 어쨌든 각 널빤지는 나름대로 생명의 감각이 있다.
마침내, 나는 어느 널빤지를 보았는데 그것은 매우 즐겁고, 매우 영성이 있고, 말하는 걸 아주 좋아했다. 그것은 사고의 전환도 매우 재미있었다. 나는 그것에 대해 글을 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정은 이렇다. 내가 집에 있는 흰색 널빤지를 품에 넣고 동수에게 가져가려고 했다. 버스에 오른 후 널빤지가 기사 뒤쪽 칸막이에 부딪혔다. 나는 얼른 널빤지가 닿는 곳을 보고 또 널빤지를 보았다. 나는 뜻밖에 품속의 널빤지의 생명표현을 보았는데 그것은 신나게 버스 안의 사람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 느낌은 마치 한 아이가 막 바깥세상을 보고 궁금해서 고개를 내밀고 흥분된 시선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헤아리는 것 같았다. 다시 햇빛을 보는 듯한 정열적인 느낌이 들어 매우 흥미로웠다.
동수 집에 와서 나는 그것을 진상 소책자를 제본할 때 깔판으로서 사용하려고 평평한 곳에 놓았다. 그것 옆에 다른 널빤지가 하나 있었다. 내가 다른 널빤지를 이용해 소책자를 제본했을 때, 무심코 가져간 널빤지가 나를 쳐다보며 “당신은 왜 나를 사용하지 않아요?”라고 조급하게 외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내가 나무판자 두 개의 위치를 바꾸어 그것을 사용했을 때 나무판자는 안심하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또 말했다.
“스테이플러 튕기는 소리가 좀 커서, 머리가 띵하고 흔들려 좀 어지럽네요.”
그래서 나는 소리가 작은 스테이플러로 바꿨는데 이번에 그것이 만족했다.
곧 나는 이 널빤지가 너무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수가 그것을 사용할 때 그것은 동수를 훑어보고는 말했다.
“이 사람은 깔끔한 사람이고, 따뜻하네요.”
나는 속으로 웃었다. 나무판자의 말이 옳았기 때문이다.
내가 다시 동수의 집에 갔을 때 널빤지는 “하이 주인님, 보고 싶었어요.” 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이런 인사법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는데, 널빤지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집에서 작은 주인이 이렇게 인사하잖아요? ‘하이 마미, 보고 싶어요!’”
나는 어이가 없어서 집 안을 둘러보았는데, 나무판자와 집안의 물건들이 이미 익숙해져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이것은 원래 사교성이 뛰어난 생명으로 의사소통 능력이 매우 뛰어난 것 같았다.
나중에 내가 또 동수 집에 갔을 때 동수가 판자를 사용하자 판자가 내게 말했다.
“이 주인은 성질이 좀 급해요.”
내가 동수에게 말해주자 동수는 “그것의 말이 옳으니 주의해서 고쳐야 겠어요.”라고 말했다.
나무판자가 듣고는 기뻐하며 말했다.
“물 흐르듯 선(善)을 따르니 참 좋군요!”
널빤지의 말은 정말 의외였다. 그것은 매우 영민하고 말을 잘하며 열정적인 성격인 것 같다. 다른 널빤지는 그것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말을 황금처럼 아끼는 것이다. 내가 가져간 널빤지가 살그머니 말했다.
“저 형님(판자)은 말은 잘 안 하지만, 제가 말하는 걸 싫어하진 않아요. 당신이 말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지, 주인을 따르려 하는 한번 물어보세요.”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 주제는 상당히 재미있었다.
며칠 후 내가 나무판자를 보면서 또 그것의 열정을 만날 줄 알았는데, 뜻밖에 나무판자에 큰 변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함축적이면서도 묵직하고 조용하며 말이 없었다. 나는 매우 의외로 느껴 의념으로 그것에게 물어보았다.
“왜 이렇게 많이 변했니?”
판자가 말했다.
“형님(다른 판자)이 나와 무릎을 맞대고 긴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것을 알려줬는데 ‘말이 많으면 실수도 한다는 것을 깨닫고 말을 아끼기로 했어요.”
나는 찬탄했다.
“며칠 안 보는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구나, 너의 변화는 실로 예상 밖이다. 너는 자기가 본 것에 고집하지 않고 깨달음이 강하니 보통 생명이 아니로구나.”
내 칭찬에 널빤지가 말했다.
“여기서 나는 강자 중에 강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러면서 “겸손함을 배워야 하고, 수구(修口)해야 하며, 천박하게 말해선 안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라고 말했다.
이번에 나는 더욱 놀랐다.
“내가 너를 이곳으로 데려왔는데 네게 환골탈태한 변화가 있구나. 내 상상을 초월했어. 이곳이 정말 너를 제고시키고 있구나, 원래 우리 집 베란다에서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게 아닌가 싶다.”
널빤지가 말했다.
“베란다에서 나는 여전히 나였어요. 이곳에선 주위의 물건들이 법(法)에 쓰이고 있어요. 어떤 것은 영성(靈性)이 비범하고 시야가 넓으며 깨달음이 깊고 인내심이 있어요. 그것들이 내게 일종 충격을 주어 생명의 의의는 서로 다르며 생명의 경계(境界)가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했어요. 그래서 주인에게 감사드립니다. 저 큰 형님(판자)은 정말 많은 도리를 깨우쳐 주었어요. 나는 여전히 즐겁고 행복합니다. 다만 넘치는 즐거움이 함축된 대견함과 겸손함으로 변하게 하는 법을 배워 고맙게 생각합니다.”
내가 말했다.
“네 말 속에는 이미 생명이 승화된 후의 이치가 담겨 있구나. 생명의 상태가 제고된 것을 축하한다. 어느 생명이나 다 이런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란다.”
나무판자는 나를 보고 또 다른 나무판자를 보더니 말했다.
“형님이야말로 진정으로 명백한 생명입니다. 그것은 보통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전생을 알고 있고 자기 삶의 일부 과정을 알고 있습니다. 내 변화는 형님의 가르침에서 시작됩니다. 형님은 아주 사심이 없습니다. 자신의 생명 과정을 내게 알려주었고, 자신이 알게 된 도리를 알려줘서 나는 많은 일을 똑똑히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운이 좋게도 비범한 동료를 만났고, 남다른 주인을 만났습니다.”
내가 말했다.
“생명의 내원은 모두 보통이 아니다. 금생에 너는 널빤지지만 전생이나 그 이전 생에는 아마 너도 사람이었을 것이다. 금생에 대법을 알게 되었고 주인이 정법(正法) 일을 하도록 협조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널빤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수긍했다.
나는 또 다른 함축적이면서도 침중한 그 널빤지를 보았다. 나는 그것의 생명 상태가 미혹을 타파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전생을 알고 있었는데, 일생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그 삶의 경험이 파란만장한 삶의 과정임을 통찰했다.
그것은 한때 꽃사슴으로 환생해 녹용을 채취할 때도 아팠고 살해당했을 때도 두려움과 고통이 컸다. 또 참새로 전생해 바깥에 있는 쥐덫에 걸려 죽은 적이 있는데 죽기 전에 선배가 알려준 굴렁쇠의 양곡을 먹지 말라는 말을 떠올리며 후회막급이었다. 쥐덫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죽이고 싶지 않지만 네가 직접 올라온 것이니 나를 탓하지 말아라.”라고 했다.
또 사람으로 전생한 적이 있는데 말을 해서 남을 화나게 한 적이 있어서 악인의 칼에 죽었다. 그래서 “천박하면 화를 자초하고 말이 많고 탈이 많다”는 이치를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종이·스탠드 등으로도 환생했고, 삶의 역정이 아주 풍부했다.
이번 생에 목판으로 전생해 주인의 진상 소책자 제본을 돕고 있는데, 시간이 흐르자 점차 자신의 전생 및 더 나아가 몇 세(世)를 기억하게 되었다. 그것은 생명의 경험을 총결하고 눈앞의 기회와 인연을 소중히 여길 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내가 가져 온 널빤지에게 건넨 이야기는 모두 선(善)을 권한 과정이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동수의 집안에 있는 물건들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저것들이 동수가 대법 일을 하는 것을 보고 대법 음악을 듣는 것도 생명의 정화이자 제고이다. 만물에는 영(靈)이 있고, 생명에는 또 눈이 있다. 그것들이 알고 있으니, 내가 축복하지 않아도 그것들은 복이 있고, 좋은 미래가 있을 것이다.’
내가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그것들은 일제히 나에게 말했다.
“당신의 축복에 감사드립니다”
뜻밖에 그것들이 일제히 말하는 가운데 에너지가 있었다.
사존께서는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능력이 있게 된 후에는, 당신 방안의 책상, 의자, 걸상, 그 벽, 무엇이든 모두 당신과 말을 하고, 모두 당신과 소통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 무슨 물건이든 다 생명이 있다.”(《2015년 뉴욕법회설법》)
목판의 영성과 변화에 대하여, 목판의 비범한 면에 대하여, 나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생명에는 그 과정과 마음가짐이 있고, 명백한 면이 있다. 중생은 평등하니 모두 불성(佛性)과 마성(魔性)이 있으며, 사물에 대한 이해력도 다르다. 생명은 그 겪어온 과정이 쉽지 않기 때문에 더욱 바른 길을 걸어야 한다.
나는 오래 전부터 전해오는 많은 전설들을 생각했다. 그것들의 유사한 점은 이렇다. 모두 신이 사람을 만들고 만물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중생의 생명요소 속에는 우주의 특성 진선인(真善忍)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생명은 선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중생은 생명의 과정 속에서, 선덕(善德)을 쌓거나 악업(惡業)을 쌓으면 생명의 경지(境地)가 승화하거나 하강할 수 있다. 그러니 기회가 있다면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말고 진리를 알아야 하고 정도(正道)를 걸어가야 하는데 생명의 여정을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5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