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미(子微)
【정견망】
(4) 진마사를 창건해 불법을 널리 알리다
송첸감포는 처첩 무리가 있었는데 사실 각 세력의 조합이었다.
네팔에서 온 척존공주는 불교를 독실하게 믿었는데 절을 지으려 했으나 지은 절은 밤이면 악귀에 의해 무너지고, 또 어떤 사람들은 악귀가 시방세계의 신불을 욕하는 소리를 들었다. 척존공주는 고민이 많았는데, 한번은 꿈에 척존공주가 하늘나라의 성전聖殿을 보았고 자신과 다른 선자(仙子)가 부처님 앞에서 명령을 받아 인간 세상의 설역고원에서 불법을 떨치려고 했다. 그후 그 선자와 손을 잡고 걸어 내려왔다.
잠에서 깬 후, 척존공주는 꿈의 장면을 살피며 문득 그 선자가 대당 공주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꿈에서 척존공주를 점화하여 공주는 자신과 문성공주가 설역고원에서 불법을 전파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문성공주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문성공주가 절을 지을 장소를 정해 주면서 절을 짓는 일이 탄력을 받게 되었다.
문성공주는 일정한 간격으로 행차하여 티베트 민가에 들어가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도와주었다. 문성공주는 티베트의 지형을 샅샅이 탐사하면서 티베트 지형의 험악함과 마녀가 시체를 말리는 자세여서 토번제국과 민중에게 불리하다는 것 알았다. 마찰 지형의 관절에 다다를 때마다 문성공주의 몸이 감지했다. 그녀는 마찰의 관절을 진정시키고 그 통로를 차단하여 그 에너지가 땅과 소통하지 못하게 하고, 암흑에너지가 몰락해야만 불교가 융성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문성공주는 척존공주와 협력해야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교를 굳게 믿었던 그녀들의 공통된 믿음이 그녀들을 가깝게 만들었다. 절의 건설이 점차 일어나 티베트의 진마사(鎮魔寺 마를 진압하는 사찰) 장소는 모두 문성공주가 선정했다. 여섯 개의 사원을 지은 후, 문성공주는 진마사를 그만두면 자기에게 자식이 생길 것이고, 문성공주는 열악한 풍수를 바꿀 것인지, 아니면 자식을 가질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태종의 당부가 귓가에 맴돌았다.
“이족을 교화하고 개인의 득실을 염려하지 말라.”
공주는 자신이 황제의 당부를 완수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문성공주는 진마사를 계속 짓기로 했다. 12개의 진마사가 완성되자 문성공주는 토번의 풍수가 바뀌려고 하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마녀의 심장 자리는 아직 눌려지지 않았다.
라싸에는 송찬간보가 척존공주를 위해 사원을 짓고 석가모니의 금신불상을 모신다는 설이 널리 전해졌다. 어떤 사람들은 그 간보가 문성공주에게도 사원을 지어주고 동토 대당에서 가져온 불상을 봉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논의 중에 절을 짓기 시작했는데, 그 자리는 와당호(臥堂湖)에 메워 절을 짓고 대소사(大昭寺)를 지었는데, 경내에 봉안된 석가모니상이 지하 마녀(魔女)의 심맥(心脈)을 향하고 있었다. 후에 소소사(小昭寺)를 지었는데, 그 안에는 문성공주가 가져간 석가모니 금신상(金身像)이 봉안되어 있었다.
토번은 여러 파벌의 힘이 복잡하고 본교 교인들이 기고만장하여 12개의 진마사를 짓는 과정은 본질적으로 불교와 본교 싸움의 과정이었다. 척존공주와 문성공주가 불화를 겪었다는 얘기도 있고, 찬보가 척존공주를 편애해 당나라 공주를 냉대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는 겉으로 드러난 미스테리일 뿐 실제 상황은 두 공주가 송찬간보를 보좌하면서 불교를 전파한 것이다.
《도덕경》은 말한다. “다투지 아니하므로 그와 다투지 못한다.” 문성공주는 다투지 않는 이치를 깨닫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겸손하게 대해주며 평화로운 마음으로 대해 번거로움도 없앴다.
불교에서는 문성공주가 불상과 불경을 가져가는 것 외에 사찰 건축 방식도 전해주었다고 한다. 문성공주가 설계해서 소소사(小昭寺)를 세웠으며, 대소사는 척존공주(尺尊公主)가 구체적으로 시공했으나 문성공주(文成公主)가 사찰 장소 선정과 사찰의 설계에 참여하였다. 문성공주는 한지(漢地 한인 지역)의 ’14가지 사찰법규 시행법’을 토번에 전하기도 했다.
문성공주는 라싸 주변의 산을 보았는데 어떤 산은 매우 험했다. 가부좌 중에서 문성공주는 산 뒤에 나타나는 생명의 형상을 보았는데, 어떤 것은 기포(氣泡) 같고, 어떤 것은 흉악한 동물이고, 어떤 것은 흉기에 대응하는 것을 보았다. 문성공주는 이들 산에 대해 묘련妙蓮, 보산寶傘, 우시해라右施海螺, 금강金剛, 승리당勝利幢, 보병寶瓶, 금어金魚 등 불가 보물의 이름을 붙였는데, 이 산들이 명명된 후 불교 호법(護法)이 찾아왔고 천계의 법보(法寶)가 산맥으로 들어갔다. 천인(天人)이 이렇게 감응한 것은 사실 천계(天界)의 보호이자 신불(神佛)의 자비였다.
송첸감포는 불교를 적극 지지하였고, 문성공주와 함께 경건하게 예불하였고, 왕이 경건하게 부처에게 경의를 표하였으며, 한인 지역의 불상, 불경, 불사의 모형과 제도 및 당 승려가 토번에 들어가면서 불교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얼굴에 적갈색으로 칠하는 것을 좋아하는 토번의 풍습을 문성공주가 싫어하자 송첸감포는 얼굴에 칠을 금지했다. 찬보는 점차 난폭하고 질투하는 본성을 바꾸었으며 황실의 자제들을 당나라에 유학 보내기도 했다.
(5) 두터운 불연으로 일방(一方)에 복을 짓다
문성공주는 자신의 지식과 식견으로 토번의 민심을 세심하게 살피고 송첸감포를 도와 나라를 다스렸다. 문성공주는 송첸감포의 신임을 얻었지만, 공주는 명성을 구하지 않고 주변 신하들에게 선하게 대해 토번 왕조 대신들의 찬사를 받아 많은 티베트인들이 그 혜택을 받았다.
문성공주는 중원 특유의 의술·건축술·인쇄술·양조법·점술·음양오행·팔괘 등을 토번에 전하기도 했다. 공주와 함께 티베트에 들어간 장인들은 중원 지역의 농기구 제조, 방직, 견직물, 건축, 제지, 포도주 양조, 도자기 제조, 제분, 야금 등의 생산 기술을 토번에 전수했다. 토번의 농업 기술은 비교적 조잡하고 물과 토양이 쉽게 유실되었다. 당의 농업 기술이 도입된 후 토번 사람들은 도랑을 파기 시작했고 들판 사이의 길이 종횡으로 펼쳐져 곡물 생산량이 크게 증가했다.
문성공주가 티베트에 들어온 40년 동안 한 모든 노력은 토번의 경제, 문화, 정치 방면을 크게 향상시켰고 토번은 대당을 수호하는 중요한 변방이 되었다. 태종 대에 토번은 줄곧 당을 따랐고, 정관 19년, 태종이 요동을 치고 돌아오자, 송찬감포는 록동찬을 파견하여 축하하고, 표를 올려 사위로 칭하고 황금 거위 한 마리를 바쳤다.
정관 22년, 장사長史 왕현책王玄策이 사신으로 서역으로 가는 도중 중천축(中天竺)에서 약탈을 당했다. 토번은 정병을 보내 왕현책과 함께 천축을 쳐서 크게 부수고 사자를 보내어 승리를 바쳤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토번은 당과 화목하게 지냈고, 양쪽 사절의 왕래가 빈번했는데, 이는 당이 문물을 가르친 공이 아닐 수 없다.
송첸감포는 문성공주를 위해 포탈라궁을 짓기도 했는데, 1000칸의 궁실이 화려하고 웅장했다. 문성공주가 가져간 석가모니 불상은 이후 대소사에 모셔져 티베트 사람들에게 ‘행복의 원천’으로 여겨져 수천 년 동안 절을 받아왔다.
문성공주는 보살같은 자비심으로 이 오랑캐의 나라를 다스리고, 중화문화로 이 낙후된 나라를 변화시키며, 이방(異邦)과 중화문화를 결연시키고, 훗날 티베트가 중원 정권에 귀속될 수 있도록 최초의 포석을 깔았다.
높고 우뚝한 대당, 만국이 우러러보니
문성공주, 만고에 명성 떨치고
설역의 빛은 신(神)을 위해 노래하노라
巍巍大唐,萬國敬仰
文成公主,萬古流芳
雪域之光,爲神歡唱
이 글로 천 년 전의 대당(大唐)을 생각하고, 또 이 글로 흘러간 세월을 그리워한다.
주:
몇 년 전 나는 한 동수를 만났는데 그녀가 일찍이 척존공주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 년 후 나는 우리 지역의 한 동수가 역사 속의 문성공주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두 공주는 모두 천계(天界)에서 온 고급 생명인데, 척존공주는 천계 구중궁(九重宮)의 선녀였고, 문성공주는 천계의 여신으로 봉황을 타고 천궐(天闕)을 왕래했다. 송첸감포는 한때 천계의 수문장이었다. 그들은 천명(天命)을 받고 인간 세상에 와서 티베트에서 불법을 널리 펼쳤다.
문성공주는 티베트 지형의 풍수를 보았고, 척존공주는 진마사를 지어 티베트의 열악한 풍수를 바꾸고 공동으로 불법(佛法)의 전파에 기여했다.
우주가 멸(滅)의 시기가 되어, 상생상극의 이치는 구세력에 의해 극단적으로 사용되었고, 당시 티베트에서는 진마사가 지어질 때마다 문성공주가 신체상으로 감당해야 했다. 본교의 법사는 그 사악한 지령을 받아 독한 맹세를 해서 마녀의 관절이 눌리는 동시에 문성공주의 상응한 관절은 쇠약해지고 무력해지게 했다.
오늘에 이르러 과거 문성공주는 오늘날 대법제자가 되어 수련의 길에서 매우 정진하며 걷고 있지만, 신체는 어깨, 팔꿈치, 손목, 무릎 관절, 발목에 하중을 견디지 못한다. 내가 본 것은 바로 이 부위에 모두 속박하는 것들이 있었다.
역사가 최후에 이르러 모든 방해와 속박은 결국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며, 사명을 짊어진 대법 수련자의, 신(神)의 몸은 다시 만들어지고, 대궁(大穹)이 다시 조합되니 신기원(新紀元)은 이미 도래했다.
중생의 희망, 신의 희망이 바로 눈앞에 있다!
천지창생(天地蒼生)은 신의 배치와 창세주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5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