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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다 다시 살아난 소녀

과객(過客)

【정견망】

2022년 17세의 한 소녀가 과도한 공부 스트레스로 수면제 한 병을 통째로 먹고 뇌세포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현대 의료 장비의 도움을 받아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지만 의사들은 그녀의 뇌사(腦死)를 선언했다. 슬픔에 잠긴 소녀의 부모는 감동적인 결정을 내렸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딸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한 것이다. 이식수술을 위한 준비가 끝나갈 무렵, 한 여의사가 나서 소녀를 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뇌사란 생명의 끝이 아니라 희망의 출발점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녀의 치료를 받은 며칠 후, 소녀는 마침내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이는 현대 의학에서 죽은 사람을 살린 하나의 기적이다. 이 사건을 깊이 연구하면 현재 의료계의 사망 기준이 바뀔 수 있고 이는 관련 업계의 이익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의도적으로 진상을 은폐하는 등 다양한 주장이 나왔다. 고대 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단지 깊은 혼수상태에 빠진 것뿐이다.

생물이 생명을 잃는 것을 가리켜 사망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모든 생명 유기체 발전의 필연적인 귀착처다.

의학 기술의 발달로 심장 박동, 호흡, 혈압 등 환자의 생체신호는 일련의 약물과 첨단장비를 통해 역전시키거나 장기간 유지할 수 있다. 뇌사는 뇌간 기능을 포함한 모든 뇌 기능의 비가역적인 중단을 의미한다. 지금 의학계에서는 일단 뇌사가 발생하면 어떤 의학적 방법을 사용해도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없다고 본다.

하지만 뇌사라는 하나의 지표만으로 사람이 정말로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엄격하지 않으며 큰 사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고 몸도 살아 있는데 왜 죽었다고 하는가? 어쩌면 누군가가 당신의 장기에 관심을 갖기 때문일 텐데 당신이 다리를 삐끗해도 뇌사로 치료받을 수 있다.

고대 민간에는 현대적인 검사 장비가 많지 않아, 사망의 기준은 주로 호흡 정지와 심장 박동의 정지였다. 만약 사람의 심장이 여전히 뛰고 있다면 그가 아직 살아 있다는 말이다. 맥박을 느낄 수 없고, 코로 숨을 쉬지 못하고, 몸이 뻣뻣하고, 체온이 없고, 소생술 후에도 일정 기간 맥박이나 호흡이 없으면 사망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고인(古人)의 지혜는 표면적으로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들은 망자가 다시 돌아올 기회를 주기 위해 흔히 일주일이 지난 후에야 땅속에 묻었다.

실제로 죽은 것으로 판명됐던 많은 사람들이 영안실에 머무는 7일간 기적적으로 살아났음을 실증하는 사례들이 많이 있다.

고인(古人)은 사람에게는 혼백(魂魄)이 있다고 보는데, 혼(魂)이 날아가고 백이 흩어지면 이 사람이 죽는다고 믿었다. 하지만 큰 덕(德)을 쌓은 소수 사람들은 기연(機緣)이 맞아떨어지면 다시 이승으로 돌아올 수 있는데 혼백이 제자리로 돌아온 후 이 사람은 곧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우리는 소나 돼지 같은 일부 동물들도 도살되어 그 몸이 조각난 후에도 일부 근육 조직이 여전히 활동하고 규칙적으로 떨리는 것을 발견한다. 많은 동물의 심장은 몸을 떠난 후에도 한참 계속 뛰다가 멈춘다. 이는 이 동물의 주체(主體)는 죽었지만 그것의 육체 세포는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포는 생물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 입자로서 그것이 활력을 유지하고 육체가 온전하기만 하면, 이 생명의 혼백이 돌아오면 계속 살아갈 수 있다.

현대 의학에서 말하는 뇌사란 사실 뇌세포가 실제로 죽었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뇌세포에서 활성 전류를 더는 감지할 수 없다는 뜻이다.

뇌는 사람의 원신(元神)이 내보낸 우주 정보를 처리하고, 이런 정보를 후천적으로 학습된 행동과 언어로 처리한 후 표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사람들은 이 처리 과정을 발견했고 이를 뇌파(腦波)라 부른다.

만약 이 사람의 혼백이 완전히 신체를 떠나 그 어떤 생명체도 뇌에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뇌는 정지 상태에 처해 의학적으로 뇌파를 관찰할 수 없고 곧 그가 뇌사했다고 본다.

사람의 신체에는 현대 의학이 인정하지 못하고 감히 연구하지 못하는 많은 생명체들이 확실히 존재하는데 삼혼칠백(三魂七魄) 등등이다. 이들은 흔히 동시에 인체를 떠날 수 없으며 얼마간 뇌에 일부 영향을 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뇌에 여전히 미약한 활동이 감지될 수 있는데 그럼 현대 의학에서는 이 사람은 아직 죽지 않은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앞서 사람에게는 세 개의 혼이 있다고 했는데 지혼(地魂)은 주로 대뇌 중심에 있는 니환궁에 머물며, 육체의 진정한 주재자로 주원신(主元神)이라고도 한다. 천혼(天魂)은 주로 심장에 머물며 주원신이 나쁜 일을 하지 못하도록 돌보는데 부원신(副元神)이라고도 한다. 인혼(人魂)은 주로 하복부에 머물며 육신의 다양한 기능을 책임진다.

삼혼(三魂)은 모두 독립된 생명체로, 만약 지혼이 몸을 떠나면 이 사람은 곧 천혼이 책임진다. 어떤 사람들은 몽유병 중에 이런 상황이 나타날 수 있는데 꿈에 한 일을 주원신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일부 알츠하이머병 노인도 주원신이 신체를 떠나는데 또는 명부(冥府 저승 관아)에 가서 심판을 받아도 부원신이 이 신체를 관할하지만 무관심하고 게을러서 사람이나 길을 알아보지 못할 수 있다.

천혼이 몸을 떠나는 이런 상황은 흔치 않은데 천혼은 지혼을 돌보는 것이 쉽게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나쁜 일을 할 때면 종종 격렬한 사상투쟁이 발생하는데 기어코 나쁜 일을 하려고 하면 다른 사상염두가 그가 나쁜 일을 하는 것을 저지한다. 이것이 바로 천혼이 하는 역할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늘 특수한 상황이 있으며, 수련인의 몸에서는 종종 천혼이 육체를 떠나는 일이 발생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어떤 기공사들이 수련을 아주 잘했는데, 애석하게도 그들이 수련한 것은 천혼 즉 부원신이라 일단 부원신이 수련 성취하면 곧 몸을 떠날 수 있다. 이 사람은 부원신의 보살핌 기능이 사라져 흔히 신속히 타락하는데 남을 속이거나 빼앗는 등 무슨 짓이든 다 한다.

어떤 악인은 자신을 단속하지 못하는데 무슨 나쁜 일을 하고 싶으면 아무런 사상압력도 없다. 부원신이 사람을 돌보지 않기 때문이다. 부원신이 그를 구할 수 없다고 여기면 곧 그를 떠날 것이다.

그렇다면 지혼(地魂)이 독자적으로 몸을 떠날 수 있을까? 사람에 말하자면 이것은 대단히 두려운 경험인데 몸이 완전히 통제 불능이 되고 호흡도 없고 심장 박동도 없지만 자신은 모든 것을 똑똑히 알 수 있다.

주원신과 부원신이 동시에 떠나면 다만 인혼(人魂)만 남아 신체를 관리하는데, 이 상황이 바로 의학에서 말하는 식물인간 상태로, 신체는 아직 살아 있지만 단지 살아있는 살덩어리일 뿐 주재자가 없다. 식물인간의 육체는 망가지지 않았고, 회복도 가능하지만, 단지 되돌아온 생명체는 원래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의 원래 혼은 일찌감치 전생(轉生)해서 떠나가고 이 빈 껍질을 다른 ​​생명체가 차지할 수 있다.

수련인이 만약 원신이 몸을 떠날 수 있을 정도로 수련하면, 떠난 후의 신체는 흔히 그것을 관리하는 주원신이나 부원신이 없는 상태에 처한다. 이것을 과거 수련계에서는 “식신(識神)은 죽고 원신(元神)이 산다”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식신이란 바로 주원신이다. 먼저 주원신이 완전히 작용하지 못하게 만든 후에야 부원신이 출규(出窺)하기 때문인데 이때 이 신체에는 주원신도 없고 부원신도 없게 된다.

이때 신체는 여전히 ​​인혼이 관리하고 있으며 호흡도 있고 심장 박동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부원신이 돌아오지 못한다고 느끼게 되면 그도 떠날 것이다. 그가 떠난 후 칠백(七魄)도 따라서 떠나는데 이 사람이 정말로 사망한다.

사람의 장기가 이식될 수 있는 이유는 이 장기의 세포가 죽지 않았고 해당 장기를 통제하는 다른 종류의 신(神)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고인은 오장신(五臟神)을 말했는데 매 장기마다 이런 생명체가 존재하며 심장이 신체를 떠나도 뛸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신이 아직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진정하게 죽은 사람은 장기를 기증할 방법이 없고 장기를 기증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생명의 최후 시각에 여전히 ​엄청난 고통을 감당하고 있다.

거부반응은 장기이식에서 흔히 발생하는데 새로운 신체가 이식된 장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장기가 새로운 신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것의 예전 주인은 이미 전생해서 떠나갔고 남은 그것이 여전히 살아가려 하며 새로운 신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새로운 신체를 배척하는 것이다. 그나마 가까운 가족 사이의 장기이식 성공률이 높은 이유는 바로 미시적인 수준에서 그 세포가 새로운 주인의 세포와 잘 융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상에서 환자는 혈액형이 다르면 수혈받을 수 없는데 그렇지 않으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 서로 다른 혈액형은 애초 서로 다른 종족에 속해 있었다. 나중에 서로 다른 종족이 서로 결혼하고 혼합되었다. 수많은 사전문명(史前文明)을 거친 후 우리 이번 차례 인류 문명시기에 들어와서는 이미 난잡해졌다. 또 원래 순수 A형과 순수 B형이 섞인 AB형도 있다. 또한 희귀한 혈액형도 있다. 진정으로 순수한 혈액형은 3가지 밖에 없다. 갈색 인종은 애초 다른 인종에서 분화되어 나온 것이다.

혈액형 거부반응은 고급 생명이 인류에게 정해준 마지노선으로 백인, 흑인, 황인은 서로 결혼할 수 있지만, 당신의 원래 생명 내원을 대표하는 혈액형은 그런 몇 가지뿐이다.

고인은 시신을 온전히 남기는 것을 아주 중시했다. 우리가 공능(功能)으로 발견한 바에 따르면 사람의 삼혼(三魂) 중 지혼(地魂)이 명부에 가서 심판 받은 다음 그의 생전 업력에 근거해 육도윤회의 배치가 있다. 천혼(天魂)은 다음 전생을 기다리기 위해 사당이나 위패에 올라갈 수 있다. 그는 층차가 아주 높아서 일반적으로 육도윤회에 들어가지 않으며 줄곧 인도(人道)에서 서로 다른 인체에 올라가 머물 수 있다. 인혼(人魂)이 저승에 온 후 그가 생전에 무엇이었으면 이곳에서도 줄곧 그런 모양이다. 전쟁 중에서 일부 팔다리를 잃은 사람들은 오직 찾아서 같이 묻기만 하면 그는 곧 완전한 사람이 된다. 만약 찾아오지 못하면 그는 저승에서도 팔다리가 없는 불구의 귀신이 된다.

천목이 열린 사람들이 병원 근처를 가면 불구의 몸에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는 수많은 아기들을 볼 수 있다. 이는 바로 낙태로 조성된 것이다. 낙태를 하는 사람들은 종종 이런 업력 때문에 다년간 불운을 겪는다.

삼혼이 없는 신체에 육체 세포의 사망이 더해져서 세포가 일단 썩으면 삼혼이 돌아와도 아무 쓸모가 없다.

민간 전설에는 일종의 천년강시(千年僵屍)가 있고, 호남성 서쪽 지방에는 시체를 몰고간다는 전설이 있으며, 서양 영화에는 좀비작품이 있다. 사람이 사망한 후 육신이 부패해도 여전히 활동하는 이런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사회 상태는 함부로 파괴할 수 없는 것으로 육체 세포가 사망하면 누구도 활력을 회복할 능력이 없다.

과학자들이 만든 복제(클론)인간이란 천혼과 지혼이 없는 인체에 속한다. 이렇게 되면 누구나 들어가서 그것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지금 각종 원인 때문에 복제인간 항목은 정체되어 진전하지 못하는데 사실 다른 공간에서 고급 생명이 인류가 이런 실험을 하도록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고급 생명이 그것에게 원신을 주지 않으면 그것은 저령(低靈)이 차지하게 되고 성장한 후 온갖 나쁜 짓을 다 저지를 수있다. 이렇게 되면 심각한 사회문제를 조성할 것이다.

우리 다시 원신이 몸을 떠난 이야기를 해보자. 예전 수련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 지점에 도달해서 떠났다. 그의 원신이 출규(出窺)한 후 다른 공간이 너무 아름다운 것을 보고는 너무 좋아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곧 그곳에 머무른다.

수련이란 반드시 끝까지 닦아야만 정과(正果)를 성취할 수 있고 원만(圓滿)했다고 할 수 있는데 중도에 포기하면 기껏해야 삼계 내의 천상(天上)에서 몇백 년을 머물 수 있을 뿐이며 여전히 전생해야 한다. 실로 몹시 애석하다.

수련의 기연(機緣)은 아주 얻기 힘든 것으로 일단 소중히 여길 줄 모르면 아마 영원히 다시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수련 중에 겪은 고험을 나눠보고자 한다. 나는 수련하면서 원신이 출규할 수 있었다. 초기에는 삼계 중하층 공간에 가서 놀거나 그런 명계(冥界 저승) 등을 갈 수 있었지만 어쨌든 싸늘하고 음침해서 별로 편하지 않았다. 나중에 층차가 높아짐에 따라 삼계에서도 고층 공간에 갈 수 있었는데 그곳은 정말 아름답고 티끌 하나 없었다. 우리가 집을 꾸밀 때 대리석과 수정을 사용하면 아주 깨끗한 느낌이 나지만 천상에서는 어디를 가든, 심지어 도로조차, 최고급 옥과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다. 또 스스로 밝고 부드러운 빛을 낼 수 있는데, 그곳의 꽃이며 풀은 모두 찬란한 보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부드럽고 살아 있는 보석이다. 인간 세상의 보석은 바로 그곳에서 떨어져 내려온 것으로 죽은 후 경직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 직면하면 위험이 아주 큰 데, 일단 그곳의 아름다움에 빠지면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삼계 내 천상의 아름다움은 그저 인간 세상과 비교될 뿐이며, 삼계 밖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천양지차로 전혀 같은 개념이 아니다.

수련 중의 안일함 역시 일종의 관문인데 고험이 꼭 마난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수련이 너무 어렵고 너무 고통스럽다며 더는 수련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수련이 어렵다고 하는데, 정말 그 어떤 일보다 더 어렵다. 만약 인간 세상의 일보다 쉬웠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수련 성취했을 것이며, 당신이 수련할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수련에서 닦는 것은 마음이며 일단 사람 마음을 내려놓으면 수련은 사실 아주 쉬운 것이다. 당신이 어렵다고 느낀다면 분명 내려놓지 못하고 집착하며 내려놓지 못한 그런 사람 마음이 있을 것이다. 당신이 더 버틸수록 그 관(關)은 더 커지는데 그것은 당신 마음의 체현이며 당신이 집착을 내려놓으면 그 관은 곧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2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