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인간 시리즈-천지지행
작가:소연(小莲)
<머리말>
망망한 사람들(人海) 속에서 우리는 각자 자신의 일을 위해 바쁘게 보내고 있지만 기쁨과 슬픔은 늘 동시에 우리 곁에 찾아온다. 우리는 한 번쯤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 우리 주변에는 늘 이렇게 뜻대로 되는 일도 있지만 번거로운 일들이 함께 발생하고 있는 것인지? 왜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를 번거롭게 하는 사람을 만나는지, 우리는 또 남에게 어떤 번거로움을 안겨 주면서 사는 것인지, 이 모든 것이 우연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인지, 또 사람의 일생이 이렇게 존재해야 하는 것인지, 죽을 때까지 지속되는 것인지……
아마 누구나 이러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 비록 나이는 같지 않지만 사회 각 계층에서 기본적으로 모두 명리에 담담하고 세상과 다툼이 없는 사람을 말이다. 인간 세상의 일체 영광, 치욕, 얻고 잃음에 대해 그들은 중요하게 보지 않고, 사당의 박해를 받더라도 여전히 그렇게 단호하며 아울러 그들 주위 사람들에 대해 자비롭고 상화로운 사람들……
도대체 어떤 힘이 그들을 이렇듯 남다른 경지에 이르게 했는가? 그들이 숭상하는 “眞善忍”의 정신은 도대체 어떤 경지인가?
나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본문에다 이에 대한 설명을 하려 한다. 나는 망망한 우주에서 그에 걸맞은 내포는 나는 근본적으로 깨닫지도, 알지도 못한다. 그래서 나의 글이 앞으로 더 훌륭한 글을 이끌어낼 수 있는데 약간의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본문은 나의 경험담이기에 아는 사람들이 나올 수 있어서 글 중의 인물과 지명은 부득이 하게 가명을 썼다.
제1장 원래 고결은 하늘에서 온 것이다
제2장 세속에 떨어져 파묻히다
제3장 오늘 법을 얻고 미혹을 타파하다
제4장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홍원을 이루다
제5장 신우주의 연대에 돌아가다(결속어)
제1장 원래 고결함은 하늘에서 온 것이다
머리말: 퇴근 무렵 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비에 가려 희미하게 보이는 저 산과, 가까운 곳의 빌딩, 그리고 알록달록 비옷을 입은 사람들의 그림자를 보니 불현듯 창작 충동이 일어났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이 일에 대해 쓰고 있다.
우리의 생존방식은 이런 것이 아니어야 한다. 즉, 하루 종일 명리를 위해 고달프게 뛰어다니지 않고, 더구나 시시각각 생로병사에 얽매여 있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아주 높은 층차에서 왔으며, 그곳은 이곳보다 비할 바 없이 아름답고 비할 바 없이 진실한 곳이며 영원한 곳이다.
제1절 멀고 먼 하늘
우리는 저마다 자신이 온 생명내원이 있고 망망한 우주에는 층차 또한 많아 갠지스 강의 모래 숫자보다 많다. 그러므로 제각각 모두 생명의 존재의미에 대한 이해가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는 그의 생명의 특점과도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천상에 있는 신들의 존재에 대해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이해한 만큼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글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명백하게 이해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나는 대궁의 어느 층차부터 시작하여 되도록 상세하게 쓸 것이다.
천상의 부처 세계는 번성하여 영화로우며 다채롭다. 시초에 내가 존재하던 그 경지에는 산과 물이 있고, 꽃이 있으며 하늘과 땅이 있었다.
그 곳의 일체는 아래의 생명에 대해 말하자면 모두 “공”과 같고, 그들은 임의적으로 형태와 상태를 개변하는데 일체는 모두 투명하지만 모두 각종의 색상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무척 세밀하고 부드럽고 불국 성지의 자비를 뿜고 있다. 이런 것들은 사람의 언어로 형용할 뿐인데 사실 사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범위를 멀리 초월한 곳이다.
구체적으로 말하겠다.
나의 그 불국에서 한 범위가 나 자신의 것이다. 그 곳에서 “창상지변”의 변천은 수시로 있을 수 있었는데, 내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산과 바다가 서로 변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여기 인류의 눈에는 몇 십 만년 심지어 더욱 먼 연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지만 천상에서 이런 일들은 단지 물질이 존재하는 상태와 방식을 개변하는데 불과하다. 이는 불국 세계의 다채로움과 아름다움을 체현한다. 물론 임의대로 할 수 있다고 하여 제멋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어떠한 생명이든 존재하는 각종 상태는 모두 생명의 경지와 연관된다.
예를 들어 <<서유기>>에서 손오공은 72가지로 변하고 저팔계는 36번 변한다. 이 경지에 있는 산은 정말이지 너무나 크고 큰 것이 우리 인류가 알고 있는 최대 범위의 우주보다 더욱 더 크다. 산에는 아주 많은 나무와 화초가 있지만 모두 투명하면서도 색상이 있다. 나의 그 곳에는 많고 많은 높은 산들이 있고 그 산 위에는 또 일부 동굴이 있다. 이는 우리가 하고 있는 조각과 같은데 어떤 것이 좋으면 어떻게 만든다. 이 일체는 모두 불력[佛力]으로 만든 것이다. 사실 그런 것 모두에는 영체가 있는데 특히 불국 세계의 일체. 그들은 또 자신의 존재 방식과 상태가 있다. 인간세상에서 우리는 두 산이 한 곳에 만날 수 없지만 두 사람은 언젠가는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사실 이 말은 불국에서는 확실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두 산은 한 곳에 있기 힘들지만 함께 있으려고 하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늘에서 대 법회를 열 때 어느 부처님이 설법하거나 혹은 많은 부처님과 다른 형상의 생명들이 전반 대궁과 그 범위 내의 중생 등을 위해 중대한 문제를 놓고 함께 연구한다(천상에서는 “연구”란 단어로 함축할 수는 없지만 이를 형용할 명사가 없다) 이때 이런 산들은 어린 아이 혹은 작은 옥석 등 각종 형상으로 변해 법을 들으러 온다. 이는 우리 이 공간 사유방식에 습관된 생명을 놓고 말하면 다소 불가사의하다. 그러나 내가 본바에 의하면 확실히 이러하다.
산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쓰고 물에 대해 쓰겠다. 우리가 바다를 형용할 때 늘 “푸른 물”이란 단어를 쓴다. 우리는 샘물을 형용할 때 늘 “한 줄기 맑은 샘”이라고 한다. 천상의 불국 경지에서 물은 투명하고 깨끗하다. 그러나 물은 여러 가지 이다. 비록 일반적으로 액체 상태이지만 우리 여기에서 표현되는 상태는 그것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인데 왜냐하면 지구의 인력 때문이다.(표면적 원인일 뿐 사실 수련계에는 이에 대해 다른 견해가 있음) 그러나 여기서는 근본 이런 설이 없다. 물은 공중에 떠 있을 수도 있고, 자신이 일정한 범위의 길을 따라 흐르며 심지어 높은 곳으로도 흐른다!
하늘에도 바다와 호수가 있는데, 사실 바로 “별처럼 총총히 널려 있는” 장식과도 같다. 바다와 호수 중에는 각종 동물과 식물이 있으며 그 종류도 아주 풍부하다. 부동한 불국에서의 물질 종류도 똑같지 않다. 예를 들어 내가 있는 경지 중의 바다에는 금룡이 있는데 그의 온 몸은 모두 투명하고 모두 금빛을 뿜지만 용의 꼬리 부위 한 조각은 핑크색 부호가 있다. 동일한 불국의 다른 한 여부처의 세계에서 금룡의 머리 부위에는 한 조각 투명한 초록색이 있다.
생명은 다채롭기 때문에 가끔 강 사이에서도 아주 즐겁고 재미나게 “논다”. 예를 들어 한번은 법회를 열 때 부처님은 강에게 한 번 “공연”하라고 했다. 매개 강줄기와 호수들 마다 부처님께서 지혜로 연화해 낸 환경에서 “각자가 신통을 부렸다”. 일부 강은 곧은 산 아래에서 산봉우리를 향해 치솟아 올라가고 또 천천히 질서있게 천천히 내려왔다. 일부는 인간세상의 폭포처럼 호탕하게 단번에 천리 길로 내려가기도 한다. 일부 호수는 아름다운 공중에서 눈부시게 빛났다. 인간세상의 단어로 형용한다면 시적인 감정을 가진 소녀와 같았다. 일부는 미풍 속의 구름처럼 가볍게 이동하고 일부는 우리 과학자가 알고 있는 검은 굴과 같이 일체를 흡수하는데 마치 용량이 끝없는 듯 했다……
하늘에도 각종 동물과 식물이 있는데 모두가 아주 선량하고 온순하다. 아마도 일부 사람들은 동물이 선량하고 온순하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인데 식물의 선량함과 온순함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천상의 식물들은 전혀 지상의 관념으로 생각할 수 없다. 천상에서 식물은 모두 무척 아름다워 독과 가시가 없다. 연꽃을 말하면 나의 그 경지에서 연꽃은 그것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펼쳐 보일 수 있고 각종 모습과 형상으로 변화한다. 심지어 공중에서 자유롭게 펼치고 무궁한 자태를 뽐낸다! 천상의 과실을 만약 우리 사람이 먹었다면 필히 장생불로 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완전히 고 에너지 물질로 구성된 것으로 여기에 가져오면 공과 같은 것으로서 무척 소중한 것이다.
지금까지 불국세계의 상황을 간단하게 이야기 했는데, 아래에는 시초에 우리가 어떻게 존재했는가에 대해 말하겠다.
시초에 우리는 아주 많이는 모두 법왕이고 심지어 대궁의 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생을 잘 관리해야 할뿐만 아니라 또 그 층 우주의 존재를 수호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을 무척 많이 써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아주 큰 영예를 향유하고 있었는데, 중생은 우리에 대해 무척 무척이나 존경하였다!
천상 생명의 존재는 무척 큰 의미가 있는데 우리 사람의 관념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부동한 경지의 생명의 생존 질량은 다르고 존재하는 의미도 다르다.
파룬궁 창시인은 예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실 부처도 부처 세계에서 설법한다. 그의 그 한 경지 속에서 중생들이 응당 준수하고 따라야 할 도리 외에도 그는 주요하게 부동한 천국세계의 부처가 수련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심을 감동시킨다. 천국 세계의 중생들도 듣고 나서 눈물을 흘릴 것이다.”(<<법륜불법--싱가폴 법회 설법>>)
천상의 일체는 모두 영원한 아름다움과 행복인데 정말로 고해[苦海]를 벗어났다. 천상에는 인간세상의 정은 없지만 오히려 더욱 고상하고 순정한 자비를 갖추고 있다.
여기까지 쓰다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도리에만 입각해서 쓴다면 여러분들은 아마도 좀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는데, 그렇다면 나는 간단하게 예를 들어 천국의 정황에 대해 쓰겠다.
그 당시 나는 아주 높은 층의 연꽃 위에 앉아있었고 신체는 비할 바 없이 투명하고 세밀했다. 늘 천상에서 설법하고 그 층의 중생을 위해 많은 걱정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즐거움과 행복한 일 역시 아주 많고도 많았다. 한 번은 다른 세계의 일부 부처님들과 함께 법회를 열고 있을 때 중생들로 하여금 상계의 나날을 소중히 여기게 하려고 불법신통으로 낮은 층차의 정경을 천상의 중생에게 보여주었다. 낮은 층차(그 당시에는 인류 이 공간이 없었다)의 일체는 모두 영원하지 않았고, 중생의 생사 시간 역시 아주 짧았다. 후에 중생의 시야를 넓히기 위해 한 부처님은 그 세계의 무척 수승하고 아름다운 정경을 이곳 중생에게 보여주었다. 그 당시 중생들은 정말로 시야를 크게 넓힐 수 있었다! 인류의 언어로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답고 장엄했다. 여기에는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각종 기이한 것들이 있었다. 그 법회가 끝날 때 아주 많은 선녀들이 꽃을 뿌렸는데
7색의 기이한 꽃들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만 가지 노을빛이 공중에 비끼네
불국 정토는 더욱 성결해 보이고
아름다움은 비할 바 없고 법광 속에 젖어 있네
였다.
부처님은 자비하기 때문에 그는 중생을 위해 일체를 내려놓아도 움직이지 않는다. 이것은 내가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하겠다.
(계속)
발표시간:2007년 6월 15일
정견문장: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7/6/15/444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