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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거봉진- 윤회학자

탄거봉진- 윤회학자

작자 ; 소연

【정견망2006년08월05일】지금은 인류 역사상 무척 중요한 시기로, 인간 무대의 줄거리는 전 세계적으로 파룬궁 수련생이 뜻을 합해 평화적, 비폭력적 방법으로 중공의 폭정을 폭로하는 것이다. 중공의 폭정을 폭로하는 데는 방식이 다양한데, 그것 또한 평화적이고 비폭력적 방법을 이용한다. 사실 인류 사회가 어떻게 발전하는가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안 믿어지면 여러분은 한번 기대해 보시라.

최근 몇 년 동안 중공의 폭정을 폭로할 때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이 많이 나타났다.(그들이 쓴 책을 포함) 그들의 용기와 의지는 비범한데 고지성 변호사, 신호년 교수가 이에 해당하며, 파룬궁 수련생들 중에는 더욱 많은데 명혜, 정견망을 훑어보면 이런 사람에 관련된 자료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파룬궁 수련생이 만든 책이나 문장을 읽으면서 그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평화적인 심태, 비범한 담락, 불굴의 의지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다. 고지성, 신호년 교수의 경우 비록 파룬궁 수련자는 아니지만, 그들 또한 중공의 폭정에 불굴의 풍모를 나타내는 것이 확실히 존경할 만하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그들은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이 일을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신호년 교수의 저서 <누가 신중국 인가> 가 발간된 후 국내외에 비상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지금 중국대륙은 정보가 차단되어 있어서 대륙 민중들 대부분은 이 책이 발간된 것을 모르고 있다. 만약 언젠가 대륙 민중들이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나이 든 사람들은 중공의 진상을 알게 되어 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너무나 많아 속아왔기 때문이다. 책에는 중국근대사의 진실을 적나라하게 즉, 중공의 실체를 그대로 서술하고 있어 중공으로서는 반박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공산악당을 해체하는 다른 책은 <9평공산당>이다. 이 책은 2004 년 11월 대기원 인터넷 판에 게재된 후 전 세계적으로 반향과 진동을 불러 일으켰다. 이에 따라 탈당의 거대한 조류를 형성시켜 중공을 두려움으로 몰아넣어 하루도 지탱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 책이 출간된 뒤 중공은 책내용에 대해 지금까지 한마디도 언급하지 못하고 있으며 다만 구평을 전하는 사람들을 마구 잡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은 구평을 본 후 정말로 공산악당의 허울을 벗기는 책이라고 생각하며, 아주 작은 사건이더라고 모두 확실한 근거가 있다고 느낀다.

어떤 사람은 그러한 국가 기밀을 어떻게 당신들의 손에 넣어 이런 글을 쓸 수 있는지 묻는다. 또 일부 국내외 인권옹호론자들과, 민주화 세력인(고지성같은) 그들의 용기와 기백은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해 한다.

이에 대해 명백해지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본 차례 인류문명의 역사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알아 보기로 하자. 파룬궁 수련자로서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본 차례의 인류문명 역사는 모두 대법을 위해 온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우주의 부동한 층차가 모두 나쁘게 변하면서 편차가 생겨, 우리 모두 사부님을 따라 우주의 부동한 층차에서 내려와 인간에게 문화를 개창했으며, 오늘 우리가 법을 얻고 반박해 중 법을 실증하는 상태를 다져주었다. 이는 왜 많은 사람들이 속인 사회의 학문을 높다고 여기지 않는지, 또 속인이 고등교육을 받아도 왜 높게 쓸 수 없는가에 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비록 이 영역에서 직책의 차이는 있어도 어떻게 역사의 진상을 찾아낼 수 있으며, 이를 믿을 수 있게 하는 데는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가령 한사람이 천상에서 내려오기 전 자신이 인류문명의 최후에 법을 얻어 조사정법을(助師正法 사악을 폭로하고 제거하는 것은 당연히 포함하여) 하겠다는 발원을 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가 이 방면에 뛰어난 재주가 있다면 인류문명 역사에 꾸준히 전생하면서 누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인류에게 문화를 남겼을 것이다. 중국, 황황 24사(게다가 청사고《清史稿》를 더하면 25사가 된다) 이 사서의 기록에는 중화발전의 발자취가 있는데 사기나 자치통감 등의 작가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는 역사만 예를 든 것인데, 사실 사회의 어느 방면에서든 이와 같지 않겠는가? 그들은 종전의 역사를 쓰고 정리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경험을 후인에게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역사일 수 있겠는가? 이번 시기에 한 생명이 당시 서약한 것을 이행할 때 또 그의 도덕 표준의 제고에 따라 그 고급 생명은 그것을 찾게 한다(사실 많은 경우 전세의 기억을 회상하는 것이며 또 역사의 물증과 증인을 찾기도 하는데 이는 단지 한 사람의 표면적 원인이다) 역사적 사실은 이로 인해 쓰여져 사악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정교한 문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신의 안배가 있어 지혜를 주는 요소와 현실적인 수요도 있다.

현 시기의 생명으로서 우리가 종전에 누구였는지 중요하게 보지 않으며 지금 우리는 직간접적으로 중공의 폭정을 폭로하여 사악을 제거하는 능력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말할 뿐이다. 민국시기의 많은 사정들은 우리들의 전생에서 직접 겪은 것이다. 단지 어떤 사람이 기억하거나 혹은 표면적 원인으로 증거를 찾을 수 있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또한 중공의 황언을 폭로하는데 사용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렇게 말하면 문자를(음악과 회화나 매체) 사용할 수 있어 직접 혹은 간접으로 법을 실증하며 사악을 폭로하는 명인과 학자들을 “윤회학자”라고 부르는게 합당할 것이다.

발표시간:2006년 8월 5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6/8/5/3886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