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인간 시리즈:천지지행(5) 제2절 변이관념을 복으로 여기다
작가:소련
제2장 인간세상에 떨어져 속세에 물들다
제2절 변이관념을 복으로 여기다
현재 사람들의 도덕 관념의 변화는 아주 심하다. 만약 불법[佛法]이 인류에게 창조한 표준으로 가늠한다면 현재 인류의 각종 표현은 이 표준을 이미 멀리 멀리 이탈했다.
일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 이 사람은 괜찮다. 회사에서 이웃들은 모두 내가 좋다고 말한다.” 나의 한 친척도 이렇게 말한 적 있다.”아주머니(나의 어머니)는 그들이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다고 하는데(파룬궁을 수련하면 좋은 사람이 된다는 말을 가리킴) 그럼 우리 수련하지 않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네요?!”
사실 엄격하게 말하면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 중에도 극히 개별적인 사람들이 수련하지 않는 속인과 별 차이 없이 행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전혀 진정으로 배운다고 말할 수 없다! 진정으로 파룬궁을 배우는 사람들은 엄격하게 우리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행하고 있다. 최소한 고대인이 말한 것처럼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말한다. 현재 사람들은 서로 만나서 하는 첫 한 마디가 늘 이렇다. “친구, 요즘 어디서 횡재하고 있어!” 혹은 “요즘 돈 많이 벌었지!” 항상 “돈”이란 글자를 떠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무슨 좋지 않는 것이 있는가, 현재 이 사회는 돈 없이 되겠는가 한다.
나는 웃으면서 천천히 이렇게 말해준다. “사실 “돈”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한 사회의 발전이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한 가지 표준은 바로 사람들의 생활 수준의 높낮이로 평하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 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는데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것은 “인성”人性”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일에서 금전과 물질 이익을 중하게 본다면 돈 버는 기계와 무슨 차이가 있는가? 만약 사람마다 모두 돈을 중하게 보고 사람의 도덕면의 제고를 홀시 한다면 사람은 언젠가는 도덕의 붕괴와 극단적인 이기주의에서 훼멸될 것이다.”
신문 광고 등 매체에서 본 생활 속의 몇 가지를 예로 들겠다.
한 여인이 돈을 중하게 보면 쉽게 사기 당하고 결국에는 순결을 잃고 타락하고 만다.
법관이 금전을 중하게 보면 판결할 때 누가 그에게 돈을 더 많이 주는 가에 따라 누가 승소하게 판결할 것인 즉 이렇게 하면 돈이 없으면 이치적으로 옳아도 패소하고 만다. 사회를 해치는 큰 도둑이라고 하여도 돈만 있다면 이길 수 있다.
한 의사가 돈과 재물을 중하게 본다면 그 환자가 돈이 없으면 죽기를 기다리며 또 그 환자를 상관하는 사람이 없다.
한 상인이 돈과 재물을 중하게 본다면 천리를 거스르는 어떠한 일이든 해낼 수 있다. 무슨 독이 든 쌀, 독 분유, 가짜 담배, 가짜 농약 등등 헤아릴 수 없다.
한 국가 간부가 금전을 중하게 보면 그는 손 안의 권리를 이용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고 재물을 모을 것이다… …
이런 유형의 문제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럼 어떤 사람들은, 우리 또한 누구를 해친 적이 없는데 우리가 어찌 인류가 마땅히 갖추어야 할 표준에 도달할 수 없다고 하는가 하고 말한다.
사실 이런 심태가 바로 본문의 제목이다. 즉 변이관념을 복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사람은 멀고 먼 세월 속에서 끊임없이 윤회하고 환생하고 있으며 인류에게 끊임없이 문화를 다져주고 있다. 동시에 생생세세 속에서 또 끊임없이 좋지 못한 관념을 누적하고 있다. 이는 금덩이 한 개에 끊임없이 동, 철, 나무 부스러기와 흙을 덮는 것과 같다. 끊임없이 좋지 못한 더 좋지 못한 것으로 감싸서 결국 사람의 진정한 본성은 점차적으로 소실된다. 그러나 사람은 오히려 그 이기적이고 더러운 후천(끊임없이 인간세상 속에서 윤회 환생 하는 중에 형성된 것을 포함)의 “가짜 나”를 자신으로 여긴다.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이 “가짜 나”가 형성한 관념으로 시비와 좋고 나쁨을 가늠한다. 이렇게 현재의 사회는 이런 모습으로 변했다.
물론 이 사회가 이렇게 된 데는 또 한 가지 요소가 있는데 제1장 제3절에서 우리가 말했던 낡은 좋지 못한 그 신들은 자신의 사심 때문에 아주 좋지 못한 배치를 했다.
아래에 나를 예로 하여 이 면을 설명하겠다.
명예에 대한 집착
역사상에서 나는 윤회 전생할 때 국왕, 재상, 시인, 원사, 화가, 영웅 등이 된 적이 있고 이들은 중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 당시 조정이든 민간이든 주위에서 자신에 대한 좋은 평가를 늘 들었다. 그 당시의 생은 재차 윤회한 후 이런 관념을 남겨주는데 자신은 느끼지 못한다.
이익에 대한 집착
사실 이익은 금전을 포함한다. 더욱 넓게 말하면 바로 사심이다.
“사심”은 생명이 최대로 변이한 곳이다! 생명은 마침 사심이 있어 비로소 변이가 생겼고 우주의 큰 범위로 이탈이 생긴 것이다! 생명은 마침 사심이 있어 층차가 내려갔고 생존의 환경은 비로소 좋지 못해졌다. 사심이 있어 생명은 비로소 마땅히 갖춰야 할 존재 표준을 잃어 결국에는 역사에 의해 도태되었다!
나를 놓고 말하면 자신은 이전에 환생할 때 보석 상인이었고 가게를 열었다. 물론 거리에서 작은 물건도 팔아보고 구걸 등등도 해보았다. 그러한 이기적이고 자신만 위하는 것이 점차적으로 아주 많이 형성되었다. 때문에 금생에 가끔 돈과 재물에 집착하며 가끔 또 많은 사심도 있다.
정에 대한 집착
정은 일체 감정을 포함한다.
인류 이 공간에서는 “정”을 위해 산다. 그러나 만약 이 정이 아주 무겁거나 혹은 있어서는 안 된다면 이는 무척 마땅치 못한 것이다.
나는 이전에 큰 관리로 있었을 때 늘 3처4첩을 거느리고 친구가 가득하였으며 모친도 귀한 대접을 받았다. 현재도 가끔 이 속에 빠져 있어도 모르고 있다.
이상은 우리가 이런 변이된 관념을 자연적으로 추구하는 내원과 표현으로 여기고 있음을 개괄적으로 설명했다. 아래에서 “사람”의 정상 상태의 표현을 말하겠다.
우리가 울면서 이 세상에 왔을 때 우리가 곧 인간세상에서 이 일생 일세의 생활을 시작해야 함을 의미한다.
어릴 때 친구들과 함께 놀 때 예의로 남에게 양보함을 알아야 하고 되도록 울지 않고 떠들지 않는 아주 조심스러운 애가 되어야 한다.
학교 다닐 때 문화인이 되어야 하는데 예의를 알고 일에 부딪쳤을 때 남을 위해 생각하고 치욕을 견디고 책임을 질줄 알아야 한다. 물론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집에 돌아가서는 부모를 도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 일들을 해야 한다.
직장을 가지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은 후 시민으로서, 남편으로서 혹은 아내로서, 아버지로서 혹은 어머니로서 마땅히 책임과 사명을 다 해야 한다. 물론 불륜이나 혹은 회사에서 자신의 일을 잘 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면 안 된다.
총체적으로, 한 사람이 무슨 일을 고려할 때 출발점이 자신의 개인의 득실과 감수를 고려하지 않고 남의 득실과 감수를 늘 고려하고 또 모든 일에 자비롭고 상화로운 심태에서 출발한다. 남이 자신보다 잘 하는 것을 보았을 때 지금 사람처럼 그렇게 목숨 걸고 질투하지 않고 남을 위해 기뻐한다. 자신의 정당한 직업에서 노력하고 창조하며 어느 날 돈을 못 벌어도 자신은 마음이 평온할 수 있다. 자신이 한 시간에 백만원을 벌어도 자신은 여전히 마음이 고요한 물과 같다. 이러한 삼태를 우리는 생각해 보라, 우리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일체들은 우리의 선한 마음과 정당한 노력 하에 잃을 수 있겠는가? 반대로 만약 우리가 부딪치는 모든 일에 대해 마음이 평온하지 않고, 눈에 차지 않고 하루 종일 남을 괴롭히려고 한다면 우리의 신경은 피곤하지 않겠는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병이 생기지 않는가? 왜 일부 사람들이 행한 것들은 그렇게도 무척 말이 아니며 결국에는 각종 좋지 못한 일이 나타나는가? 심지어 생명을 잃는데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까지 쓰면 어떤 친구들은 꼭 이렇게 말할 것이다. 왜 나는 계속 선을 행하는데 무슨 좋은 점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많은 번거로움이 오는가?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웃으면서 대답할 수 있다. 그것은 왜냐하면 첫째, 당신이 선행을 한 것은 구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절에 가서 부처님께 향을 올리는 것과 같다. 부처님이 영험한지 영험하지 않는지를 우리는 먼저 말하지 않겠다. 이 사회의 일체는 균형이 잘 되어 있으며 사람의 일생의 좋고 나쁨은 사람 자신의 이번 생과 전생에서 행한 좋고 나쁜 일의 많고 적음에 의해 결정된다.
현재 과학에서 한마디 말이 있는데, 물질은 불멸이고 오로지 전환할 수 있다고 한다. 일정한 조건 하에서 다른 물질과 에너지로 전환한다. 좋은 물질, 백색물질인 덕이 많아지면 그는 이 일생에서 복이 많아지고 나쁜 물질, 업력이 많아지면 그럼이 사람은 재난이 많아 생활이 빈곤하다. 이는 일반 정황이고 만약 이 사람이 이때 그에게 8천원의 돈만 배치되는데 그가 부처님께 구하기를 80만을 요구했다면 그럼 남은 돈은 어디에서 오겠는가? 혹은 한 사람이 어느 한 사람을 볼 때 자신보다 돈을 더 많이 벌었다고 부처님께 절하면서 그 사람을 징벌해 주라고 한다.
만약 부처님께서 이렇게 행했다면 그 부처님은 사람과 똑같지 않는가. 그럼 당신은 이렇게 행해야 비로소 공평하다고 하는데 그럼 다른 한 사람에 대해서는 공평한가?! 사람은 항상 사람의 극단적이고 이기적이며 좋지 못한 마음으로 신과 부처님을 가늠한다. 부처임께서 이렇게 더러운 사람의 심리를 보았을 때 일찍이 떠난다! 신불은 자비하지만 사람의 무절제한 욕망을 만족시키지 않는다! 이 방면에 대해서는 이후에 천천히 말하겠다.
둘째, 만약 한 사람이 정말로 아주 좋아서 사회에서 기본적으로 약자를 동정하고 사람과 착하게 지내고 확실히 내심에서 실질적으로 행할 수 있어도 가끔 일부 번거로운 일에 부딪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번 생에서 잘하는 것은 전생에 좋지 못한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만약 예전에 좋지 못한 일을 하거나 혹은 남의 어떠한 것을 빚졌다면 이번 생에 주위의 일체 요소 역시 예전에 맺은 좋은 연분과 나쁜 연분으로 배치된 것이다. 물론 지상 생명의 윤회 환생을 책임진 신이 배치한다. 일부 사람들은, 나는 승인하지 않는다, 나는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실 사람이 승인해도 좋고 승인하지 않아도 좋은데 도리는 모두 이러하다. 만약 수단을 가리지 않고 추구한다면 얻을 수 있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아주 비참한 것이다. 믿지 않으면 시험해보라! 사실 간단하게 말해서, 왜 많은 사람들은 총통이 되고 싶고 억만장자가 되고 싶어도 어떤 사람은 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왜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가? 일체를 모두 배치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데 그럼 이런 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셋째, 신불이 보았을 때 사람이 인간 세상에 옴은 사람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업을 갚고 하루 빨리 영원히 아름다운 하늘로 올라가기 위함이다.
때문에 만약 한 생명의 도덕표준이 아주 좋다면 그에게 일부 마난(사실 또 모두 그 자신의 예전에 지은 좋지 않은 것이거나 혹은 빚진 것임)을 배치하여 그로 하여금 빨리 갚고 돌아가게 한다. 그러나 사람은 항상 이른 바 이 현실에 치중하여 순조롭지 못한 일에 부딪치기만 하면 방법을 대서 자신의 이익을 수호하려고 한다. 심지어 하늘을 원망하고 땅을 원망하며 심리는 아주 평온하지 못하다.
바로 이렇게 사람은 일체 후천에 형성된 자신을 위하는 관념을 자신으로 간주하고 좋은 것으로 간주하며 끊임없이 집착하고 끊임없이 변이한다. 사실 또 끊임없이 자신의 본성을 매몰하여 우주의 특성 진, 선, 인과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점차적으로 “인(人)”성이 없어지고 선악의 표준을 구분하지 못한다. 극단적인 이기주의, 다른 생명에 대한 배척과 멸시, 최후에는 사전의 문명처럼 도덕의 극단적인 파괴 하에 한차례 큰 천재가 이 문명으로 하여금 철저히 소멸되게 한다… …
나도 이 속에서 마찬가지였고 모두 이 큰 염색 독 속에서 오염되었다. 사상 중에는 아주 많은 좋지 못한 물질과 관념이 달라붙어 항상 이런 관념을 좋은 것으로 간주했다.
바로 이러하다
변이관념을 복으로 여기고
윤회 환생의 고달픔을 잊었네.
붓으로 썩은 것을 폭로 제거하여
생명을 깨끗이 씻으니 늘 웃음이 가득하네!
(제2장 끝)
발표시간:2007년 07월13일
정견문장: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7/7/13/4478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