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 원만 이야기(15): 주 목왕(周穆王)
작자: 구양자운 정리
(편집자 주) 중화 오천년 수련문화를 돌이켜 보면, 수련 성취하여 담백한 인생을 사는 은사도 있고 어떤 사람은 출세하여 조정의 명관이 되는 사람도 있고 더욱이 “천하를 덮고 제 땅이 아닌 것이 없는” 제왕도 있다. 주나라의 다섯 번째 주목왕은 제왕으로 득도하여 선인이 된 일례이다.
주 소왕의 아들인 주 목왕은 희만이라고 부르며 방태후에게서 났다. 소왕이 남쪽으로 순시할 때 도중에 죽어 목왕을 주나라의 임금으로 세웠는데 당시 목왕은 이미 오십세였다. 그는 54년 간 제위에 있었으니 104세까지 살았다.
목왕은 어렸을 때 신선의 도를 즐겼고 황제(黄帝)를 흉내 내어 수레를 타고 천하 명산 대천을 주유 편람하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제일 유명한 마부에게 어가를 만들게 하여 여덟 필의 준마가 이끄는 수레를 타고 서북쪽 융족이 사는 곳으로 달려갔다. 들리는데 의하면 그의 수레가 약수(弱水-전설에 신선이 산다는 곳. 부력이 약해 노를 저을 수 없고 깃털도 뜨지 못했다고 한다)에 도착했을 때 강 속의 물고기, 자라, 거북 등이 그를 위해 다리를 만들어 그의 수레가 통과하도록 하였다.
이어서 목왕은 태산을 올라갔는데, 천계의 요지(瑤池)에서 서왕모를 만나 함께 술을 마셨다. 연회석상에서 서왕모가 노래 부르기를
“천상에 구름이 유유하니
도의 길은 느릿하며 유원하도다,
산하가 우리를 갈라놓을 것이니
한번 헤어지면 다시 소식 주기 어려워라.
하지만 당신은 장생불로 할테니
나와 다시 만날 날 있으리라”
목왕은 답하기를
“내가 중국에 돌아간 후
화하(華夏-옛 중국을 이름)의 각국이 서로 화목하게 하고
만민이 평등 부귀케 하여
천하가 태평하면 내 다시 여기 와 만나리다”
삼년이 지난 후 목왕은 다시 길을 나서 산서의 뇌수산과 태행산으로 갔고 그 후에 주나라의 도성 호경(镐京-지금 서안의 서남쪽)으로 돌아 왔다. 옛날 윤희(尹喜-노자에게 도덕경을 받은 사람)가 고생스럽게 사막과 풀밭을 지나 종남산 북쪽에 도착하였는데 주목왕은 그 길을 따라서 은사 윤첩, 두충에게 청해 나무 위에 풀로 집을 지어달라고 하여 주목왕은 그들과 함께 같이 머물렀으니 그들의 초가집을 “누관(樓觀)”이라고 한다. 후에 정포로부터 제부(祭父)가 와서 목왕을 뵙고서 말하길 서언(徐偃)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하여 목왕은 비로소 반란을 평정하러 나라로 돌아가 사직을 처음과 같이 평안하게 하였다.
목왕이 곤륜산을 올라갈 때 먹고 마신 것은 봉산석수(蜂山石髓), 옥수(玉树)의 과실 뿐이었다. 서왕모가 거주하는 군옥산에 올라갈 때 하늘로 올라가는 도를 다 알았다. 그가 아직 범인(凡人)의 형상으로 세간에 출현하는 것은 몸을 나타내어 도를 말하고 사람에게 수련을 알려주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목왕이 마신 것은 옥석으로 만든 고장(膏浆)이고 먹은 것은 곤륜산의 감설, 소련, 흑조, 벽우, 백귤 등 모두 신선의 물건인데 어찌 수명을 늘려 불로장생 못하겠는가?
듣기에 서왕모가 일찍이 주목왕의 궁중에 내려와 두 사람은 같이 구름 수레를 타고 비승하여 천궁으로 갔다고 한다.
자료내원: <태평광기>
발표시간 : 2002년 12월 26일
정견문장: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2/12/26/1976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