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인간 시리즈:천지지행(11) 정법수련
작가:소련
【정견망 2007년 7월 31일】
제4장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홍원을 이뤄
제3절 정법수련
2000년 1월 나는 외지에서 전해온 한 부의 자료를 보았는데 위에는 99년 파리법회의 개막사와 체험이 있었다. 개막사 위 몇 구절이 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주었다: 자애로운 아버지가 비방을 받는데 자녀가 나서지 않으면 세인들도 염치 없다고 욕을 한다고 북경으로 올라가 청원하는 것은 선하고 진실한 것이다… 설령 혹형이 가해지더라도….. “사”는 집착이니 결국에는 버려야 한다… 신우주에는 나의 호법신이 있다>>>(순서는 뒤바뀔 수 있는데 시간이 매우 오래지나 기억이 분명치 않다.) 이것을 보고 나는 눈물을 흘렸고 심리는 명백해졌다. 나는 응당 나가야 한다. 정정당당하게 몸을 버려 호법해야 한다!
그 해 구정을 보내는 시기에 우리 그곳의 많은 동수들은 천안문 광장에 갔고 우리 마음 깊은 곳의 소리를 내었다. “파룬따파하오! 파룬따파는 정법이다!”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는 우리가 북경에 갈까 두려워 우리를 사무실에 연금시켜 “학습”을 시켰다. 그곳에서 우리는 일언일행에서 내심으로 그들을 위해 잘 하고 그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매우 감동시켰다. 또 우리를 위해서는 불공평하다고 했다! 1월15일이 되어 그들은 우리를 위해 보름날 음식을 사주었다. 우리가 돈을 내겠다고 하자 그들은 돈은 정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견지하며 말했다. 우리 사부님은 우리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는데 우리는 다른 사람의 편의를 점유할 수 없다! 1월 16일 그곳의 공안국은 상부의 명령에 의해 우리 이런 견정한 제자들을 구류하고 있을 때 우리의 동네의 서기는 울었다(당연히 그는 우리 앞에서는 울지 않았다. 그가 우는 것을 내가 보았다.) 그들은 우리처럼 이런 좋은 사람을 대해 진심으로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어디를 가도 대법의 아름다움, 대법제자의 자비로움, 대법진상을 가지고 간다. 구치소에 가도 마찬가지다. 나와 동수들은 함께 대법의 아름다움을 전시하고 그곳의 환경을 개창했다.
대륙에서, 붙잡힌 사람은 모두 진짜 범죄인이 아니다. 나중에 어떤 사람은 심지어 교자를 먹고 간장에 찍어먹지 않았다고 노동교양 일년을 당한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장림자 노교소) 사정은 이랬다. 어느 젊은이가 음식점에서 교자를 먹었다 아마 마음이 무거웠던지 간장을 찍지 않았다. 이때 그의 반대편에 앉아있던 사복 경찰이 그를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직장에서 제멋대로 하던 습관 때문인지 그에게 불쾌한 기색으로 물었다: 너는 왜 간장을 치지 않냐? 그도 언짢게 말했다: 내가 간장을 치던 안치던 무슨 상관이요! 이어서 그들은 언쟁이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이 젊은이는 일년의 노동교양 판결을 받았다!
처음 붙잡힌 지 10일 안에 우리는 이곳의 환경을 매우 좋게 바꾸었고 많은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표시했으며 다시는 그런 나쁜 짓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당신들이 이렇게 좋은 것을 보니 우리가 돌아가면 반드시 수련하겠다고 했다.
당시 법리에 대해 인식이 뚜렷하지 못했기에 사람의 변이관념에 움직여 원만을 구하는 마음을 내려놓았어야 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중에 보증서에 사인하고 돌아왔다.
당시 사악의 생명은 우리가 수련해버리지 못한 나쁜 것을 이용하여 교란하였고 우리에게 가상을 만들어 우리의 정념을 동요시켰다.
집에 돌아온 후 우리는 법공부를 통하여 이런 생각이 옳지 않다고 느꼈다. 원만의 마음을 내려놓는 것은 서명해도 좋다는 것과는 다르다. 연마하지 않겠다, 그러면 무슨 집착심을 버림을 말하는가? 수련인조차도 아니면서 어떻게 원만을 담론하는가?
우리 수련인은 “진”을 수련하는데 자기가 수련인 인 것조차 내려놓는다? 이렇게 문제를 인식할 수 있는가?
그래서 나중에 그 지역 경찰이 우리 집에 와서 우리와 담화하는데 나와 모친은 모두 말했다. 당초 연마하지 않겠다고 서명한 것은 집에 돌아오기 위한 방편이었다, 더욱 잘 연마하기 위해서이다고 했다.
이 한마디에 4월 23일 또 잡혀갔다. 이유는 “사회질서교란”이었다. 들어가자 우리는 누구를 보던지 말했다: 우리는 집에 살고 있는데 우리가 누구를 교란하냐? 그 교관이 보고서 할 말이 없으니, 현재 연공 하는 것 자체가 질서를 교란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것은 누구의 질서인가? 장모모의 것인가? 우리 그곳에 많은 할머니가 수련하지 않다가 나중에 죽었다. 이 일은 당신들이 관여하는가? 그는, 우리는 관여하지 않는다, 우리는 명령을 집행할 뿐이다고 했다.
그 후 얼마 안 가서 우리는 단식을 시작했는데 60여명이 단식하자 그곳의 정치보위과에서는 두려워했다. 그 당시 모두 합쳐 6일간 단식했다. 이번에 우리는 잡혀온 지 32일 후 무조건 석방되었다!
시간이 흘러 5월말이 되었다. 얼마 안되어 사부님의 신경문 <심자명>을 받았고 다 본 후 마음은 매우 밝아졌다.
이 일 이전에 우리는 일부 수련생 사이에 전해지는 가짜 경문을 보았었다. 당시 우리는 이 때가 우리를 시험하는 때라고 생각했다. 사부님은 일반적으로 경문을 발표하지 않는다. 이 원고를 보았을 때 천 위에 일종 제사(题词) 형식으로 썼는데 파룬과 사부님의 서명과 도장이 있었다. 또한 이전의 법으로 헤아려 보니 확실히 사부님의 말씀이었다.
이때부터 사부님께서는 한 단락 시간마다 한편의 문장이나 설법을 발표하여 우리가 난 중에 정진하도록 지도하셨다.
사악한 낡은 세력은 나에게 일종의 연약하고 다른 사람을 고치기 싫어하는 이런 변이된 것을 조성하였다. 비록”다른 사람을 고치기 싫어함” 에는 다른 사람을 존중한다는 요소도 있지만 상대방이 옳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도 말을 하지 않으면 상대방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것이며 “자비심”이 부족한 것이다!
그 해 11월 말 모친이 북경에 올라가 청원했기 때문에 우리 이곳에서 나도 잡혔다. 이번에 나는 일종의 “개인영웅주의”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동수 앞에서 내가 견정함을(많은 사람들은 현지 경찰이 찾아와 물으면 “연마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타내고 싶은 심리가 있었는데 그 기점은 옳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곳에 반달 정도 있다가 나는 마땅히 북경에 가야 한다 는 생각에 또 한번 서명했다. 그러나 사악은 나를 즉시 놓아주지 않았다. 나중에 모친과 일동은 거의 열 명이 함께 단식하여(나는 서명했으므로 단식하지 않고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일개월 후 석방되었다.
이 한 단락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말하게 되면 매우 부끄럽다. 가장 관건적인 시기에 도달해서 많은 경우 법리를 잘 알지 못하고 사람의 관념과 개인성격의 연약한 일면이 많은 부정적인 작용을 일으켜 나의 수련에 엄중한 오점을 남겼다! 그곳에 잡혀있는 동안에 많은 동수들의 가족들이 와서 권했고 경찰도 말했다: “당신들은 너무 이기적이다, 자기의 원만을 위해 가족의 사활을 돌보지 않는다. 당신들이 전화하지 않으면 나도 처분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나올 때 동수들은 함께 교류했다. 이는 완전히 사악의 논리다! 우리가 감옥에 들어간 것이 우리가 원한 것인가? 우리는 근본적으로 어떤 법률도 범한 적이 없는데 당신들이 강제로 우리를 여기 잡아온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고생을 하는 것은 우리의 일체를 이용하여 사람의 그 오랫동안 미혹된 선량한 본성을 깨우치기 위한 것이며 오래된 양지를 되돌리기 위함이다!
우리는 자신의 아이와 부모를 돌보고 싶다. 그러나 너희들이 못하게 한다. 오히려 우리가 인성이 없다고 하며 진정 가정을 이산 시키는 것은 너희들이다. 사악에 참여하여 진압한 경찰이지 우리가 아니다. 우리의 “전향”은 사람의 가장 최소한의 표준을 배반하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전 인류가 양지를 잃고 권세와 압력에 놀라 넘어지면 그런 장래 인류는 구할 수 없다! 인류의 존엄과 대법이 인류에 창조해 준 이 한 층의 이치를 수호하기 위해 우리는 일체를 다 버렸다! 이는 존경할 만 한 것이 아닌가!
수련은 바로 집착심을 버리는 과정이기 때문에 때로는 많은 사람의 마음이 반영되어 나오며 나도 예외가 아니다.
당시 형세가 이런 모양인 것을 보고 언제 끝나나 하고 생각했다. 나는 좀 비관하였으며 속인으로 돌아가는 것을 생각해보니 근본적으로 불가능했다. 사상 차이가 너무 크고 우리는 속인이 생각하는 것이 모두 이기적이고 색정적인 등 나쁜 것이며 우리의 사상은 깨끗하다. 내가 생생세세 심산에서 고행하며 수련하던 의식이 또 튀어나왔다: 그래서 막 대설이 내린 매우 추운 겨울 어느 날 나는 큰 산의 깊은 곳으로 갔다. 미망 속에서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춥고 배고프고 태양이 서쪽으로 지는데도 아직 잠잘 곳을 찾지 못했다. 이 때 나는 하늘을 보고 장탄식했다: 설마 대법제자가 사람 없는 깊은 산속에서 동사하겠는가? 이때 석양의 노을이 눈 내린 산봉우리를 비추었고 그곳에 이름 모를 관목이 나 있었는데 겨울철이라 나무는 말랐으나 잎은 아직 가지에 걸려있었다. 햇빛과 눈빛이 비치어 매우 보기 좋았다.
당시 나의 정념이 나왔다. 속으로 생각하기를 : 나는 사부님의 보호가 있으니 결코 여기에서 동사하지 않을 것이다! 조금 지나자 나는 어느 집을 보았다. 주인은 막 차를 타고 산을 내려가려고 했는데 나는 그들의 차를 타고 큰 산을 빠져 나와 큰길로 나왔다. 정말 아슬했다.
나온 후 나는 성 밖에 있는 동수의 고향 집으로 갔다. 2001년 연말 환경은 매우 긴박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텔레비전에서는 천안문 분신사건의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실은 눈이 밝은 사람은 한번 보면 가짜임을 알 수 있는데 그것들이 스스로 연기한 것이었다. 다른 것을 말하지 않는다: 당시 천안문의 경비가 매우 엄했고 많은 사람들은 여기 오기도 전에 다 잡혀갔는데 어찌 몇 명이 휘발유를 들고 앉아 점화를 하고 구호를 외칠 수 있는가? 또 예를 들어 : 어디에 분신이 있으면 사전에 공안이 알지 못했다면 어떻게 매우 완전한 화면을 찍을 수 있고 또한 가까이서 클로즈업 할 수 있는가? 상세한 것은 여기서 말하지 않겠다. 관심 있는 사람들은 관련된 문장과 영상자료를 보라.
그러나 분신사건 발생 후 해외의 동수들은 영상을 이용하여 진실을 바로 보는 방법으로 진상을 하기 시작했으며 진상의 강도와 효과가 더 좋았다! 이는 사악이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유리실소 하다가 2001년 여름 이곳으로 돌아왔다 그곳의 동수는 나더러 법 실증의 일에 참여하도록 했고 나도 시험 삼아 좀 참여하였다. 끊임없이 학습하고 자기의 정념을 끊임없이 충실히 하는 정황 하에서 나는 마침내 용기를 분발하여 명혜망에 엄정성명을 발표하고 이전에 모든 곳에서 썼던 보증서는 모두 폐기하고 합격한 대법제자가 되었다!
이것은 사부님과 서약했던 일차 약정과 같으며 나는 자신에게 다시는 약속을 어길 수 없다고 경계했다. 만약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일찍이 수련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일부 대법 일을 한 이 후 나는 마침내 북경에 올라가 천안문으로 갔다. 갔을 때 나와 모친은 내내 발정념을 했다. 나는 많은 신이 우리를 도와 사악을 제거하는 것을 보았고 또 파룬과 연꽃이 우리가 탄 차간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 광경은 정말 매우 수승하고 미묘했다! 비록 돌아올 때 일부 작은 곡절을 겪었고 심지어 현을 지나는 기차역 밖의 풀 숲에서 하룻밤을 추위에 떨었지만 안전하게 돌아왔다.
인터넷에서 동수들의 문장을 읽는 나머지 나는 이렇게 이기적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고 나도 나의 체험을 써내어 동수들과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 글 쓰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 필명이 인터넷에 나타났다. 이것 역시 현재 당초 주불과 뭇 신들의 앞에서 이런 방식으로 법을 실증하는 것이라고 입으로 직접 대답한 것을 실현할 수 있었다.
바로 글을 쓰기 때문에 나는 둘째 누나와 큰 형을 만났고 또 홍누나와 넷째 이모와 이모부 사촌누나 등등의 동수를 만났고 그녀들은 수련과 생활에서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여기서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시간을 흘러 2004년 11월이 되었고 이 해 해외의 최대 중문매체에서 평론 <구평공산당>이 발표되었고 이 글이 나오자 정법은 새로운 단계로 들어서는 표지가 되었다.
나중에 또 탈당의 조류가 나타나서 지금에 이르고 2천4백만 명 이상의 민중이 인터넷 상에서 이 사당과 그 일체의 부속 조직(공청단, 소선대 등)에서의 퇴출을 성명했다. 나는 깨달은 비교적 일찍 중 한명인데 인터넷에서 삼퇴의 성명이 시작된 후 성명을 큰 형에게 주어 인터넷에 올리게 했다.
<9평>과 삼퇴 현상에 대해 많은 사람은 아직 우리가 정치에 참여하여 어떻게 어떻게 하려고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내가 생각하기에 중공이 파룬공을 진압하는 초기 중공은 사람마다 태도를 표명하라고 했는데 사람들은 모두 비판했다. 이것은 정치로 여기는가 아닌가 묻고 싶다. 또한 당시 태도를 표명하지 않으면 바로 당 중앙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중공의 박해를 받았을지 모른다!
그럼 일부 사람들은 정치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행위 자체가 정치 태도를 표명하는 일종의 행위이며 바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비록 당시 많은 사람들이 진상을 알지 못했지만 또한 위협을 받았다.
신과 부처의 자비는 사람들이 불법을 비방하여 지은 하늘같이 큰 업력 중에서 돌아오게 한다. 그래서 이 사당의 본질을 똑똑히 알도록 하는데 이는 생명을 구하려는 것이지 정권을 탈취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9평>에서 말한 것은 모두 사실이며 무슨 말 못하게 할 것이 없다. 이것은 바로 사악한 당문화를 장기적으로 부어넣은 결과이다! 미국 등 서양국가에서는 가령 어느 대통령이 당선되더라도 일부 사람은 대통령 문 앞에서 항의를 하며 본국의 신문 매체는 공개적으로 일체를 보도한다. 결코 아름다운 것과 박수로 찬양하는 것만 보도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민주와 독재의 구별이다.
게다가 일부 사람들은 우리와 사당이 파룬궁을 박해한다는 이야기를 할 때 그는 말한다: “내가 89년에 등모모라면 나 역시 6.4 학생들에게 총을 쏘았을 것이다. 내가 만약 장모모이며 내가 공산당이라면 나 역시 파룬궁을 진압했을 것이다. 그럼 나는 말한다. 당신들은 왜 이런 나쁜 사람이나 사당과 비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가? 현재 공산당은 아무도 감히 6.4를 진압한 책임을 말하지 못하며 등의 딸조차도 이렇게 말한다. 6.4는 등소평 한 사람의 책임이 아니다. 감당하려면 함께 감당해야 한다고.
장모모가 파룬궁을 탄압하여 세계 많은 나라에서 기소를 당했는데 현재 세계적 범위로 “전세계 장모모 심판연맹”과 “중국공산당을 심판하는 국제법정”이 성립되었고 현재 장모모는 어디를 가도 온통 반대의 목소리뿐이다. 설마 당신도 장래 심판을 받으려는가? 왜 말 못하나? 나는 송나라의 악비처럼 정기가 호연하다! 2차 대전에 죽인 유태인 기념비 앞에 무릎 꿇고 참회하는 독일 총리처럼, 역사조류에 순응하여 움직인 전 소련 대통령 고르바쵸프처럼 소련공산당을 끝내어 그 나라의 사람들이 진정한 자유와 발전을 얻도록 하지 않는가?… 그들의 행위는 세계적인 찬양을 얻었으며 광명의 전도를 얻었다. 왜 자신을 그러한 사람으로 상상하지 않는가?
아래에 대법제자 중에 유전되는 한 수의 가사로 “정치참여” 이 화제를 설명한다.
당신은 내가 왜 진상을 알려주려는지 아는가?
당신과 나와 똑 같이 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더욱이 당신의 신앙을 바꾸려는 것은 더욱 아니다.
단지 당신더러 알게 하려는 것인데
사탄이 사람을 속이는 수단을.
자비 때문에 나는 당신이 사당과 함께 재앙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으며
하늘이 이 사당을 멸하려 하니
신이 나더러 이 무리를 구하라 하여
자비 때문에 나는 당신이 사당과 함께 재앙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나중에 중공 사당이 파룬궁 수련생의 생체에서 장기를 적출하여 판매하고 폭리를 취한 하늘까지 닿는 죄가 해외에 폭로되어 두 명의 국제 조사원이 보고를 발표하고 이 점을 충분히 실증했다.
2001년 우리 여기에서 32세 되는 파룬궁 수련자가 잡힌 후 삼일 이내 맞아죽었는데 목부터 생식기까지 뒤집혀 모든 기관이 다 채취 당했다. 또 한명의 대법제자가 감옥에서 단식하다가 물을 강제로 주입 당했고 나중에 시달리다 죽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같은 작은 현성에서 박해로 사망한 사람이 네 명 이다. 몇 년간 재물을 강탈당한 것이 거의 40만 위안이고 노교 판결을 불법적으로 갇힌 것이 총계 수백 차례이다. 위로는 70여세의 걷기도 힘든 노인부터 막 걸음을 떼기 시작한 어린이까지 다 있다.
사당의 사악이 어느 정도인지 이 박해의 참혹함이 어느 정도인지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늘에서는 이 사당이 이같이 나쁜 짓을 제멋대로 하도록 놔둘 수 있는가? 그것을 징벌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 사당이 인간의 표현은 그 당원과 그 부속 구성원으로 조성된 것인데 하늘이 중공을 멸하려 할 때 그런 구성원은 소각할 대상이 아니겠는가?
어떤 사람은 말한다, 나는 이곳의 구성원이 맞다. 그러나 박해 중에 나는 무슨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도태되어야 하는가? 아마 당신이 정말 직접 그런 나쁜 일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당신의 존재가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하여금 커지고 사악이 강하게 발휘하도록 했는데 위기가 출현함을 했을 때 보라. 그것(이 당의 우두머리)은 말할 것이다” 우리 모모 당에 천만이나 되는 당원이 있는데(사실은 자연히 단원과 대원도 포함) 어떻게 어떻게 이것을 대표하고 저것을 대표한다. 이중에 당신이 포함되지 않는가? 때가 되어 당신이 명확히 성명하여 퇴출하지 않으면 소멸되는 것은 자연히 당신이다!
당연히 어느 것을 버리고 어느 것을 따를 것인가는 자기가 말한 대로 된다. 수련자는 선으로 권할 뿐이다!
고향에서 진상의 일을 한 후 나는 어느 여자아이를 알았는데 나중에 우리는 함께 천리타향에 왔다. 박해 중 우리 집은 기본적으로 이미 가산을 탕진했으므로 거의 아무것도 없고 모친은 우리가 떠날 때 우리에게 900위안(그 중 300위안은 할머니 집에서 빌린 것이다)을 주었고 이렇게 우리는 타향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일한 것은 포장공장에서 일하는 것이었는데 당시 날씨는 갈수록 추워졌다. 어느 동짓날 추운 밤 밖에는 작은 눈이 내리고 나는 밖에서 집안으로 원료를 들고 왔는데 솜 바지를 살 돈이 없어 몸에 입은 것은 올 때 입었던 가을 내복이었다. 추워서 나는 온몸을 떨며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후회하는가 하고 나 자신에게 물었다. 당초 천상에서 내려올 때 많은 고통을 겪을 것을 알았고 또 결단코 사부님과 서약하여 인간에 내려왔다! 자기가 중생을 구도하는 사명을 이행해야 할 시각이 되어 이점 작은 고생도 견디지 못하면 정말로 대법과 사부님께 놀리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눈물을 닦고 견지해 가기로 했다!
2006년 12월 말 우리는 쌍방의 어른과 가족들이 보는 아래 매우 소박한 혼례를 올려 인생의 대사를 완성했다.
2007년 정월 나는 아내가 있는 공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곳곳에서 대법제자의 순정, 성실함, 무사의 경지를 나타내었고 공장의 지배인부터 직원까지 모두 만족하여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권하여 삼퇴를 했으며 자기와 가족의 생명을 위해 매우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했다!
그곳에서 의부를 만났는데 구정을 쇤 후 그는 우리를 현재 이 도시로 데리고 왔다. 우리는 현재 마음에 드는 일을 하고 있으며 때 맞추어 그곳의 동수들과 소통하며 우리는 엄격히 정법의 요구에 비추어 하고 힘껏 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천년의 홍원을 오늘에야 이루고
후회 원망 없이 정도(正道)를 수련하네
진상을 말하여 세인을 구도하고
큰 난이 닥쳐도 당신은 웃고 있기를 바라네.
(본장 끝)
발표시간:2007년 7월 31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7/7/31/450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