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이야기 : 왕흥(王興)
작가:구양자운 정리
【정견망 2002년 10월 11일】
왕흥(王興)은 양성(陽城)사람이며 호곡(壺谷)에 거주하던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책을 읽지 않았으며 글자도 모르고 신선을 추구하고 도(道)를 물을 뜻도 없었다.
그 때는 한무제(漢武帝)가 한마음으로 도를 닦으려고 하남 숭산(崇山)에 가서 도를 배울 때였다. 그는 대우(大愚) 석굴에 도관을 짓고 당시의 대유학자 동중서(董仲舒), 명사인 동방삭(東方朔)을 청해 재계하고 정신을 집중해 천지를 감응시키며 신선이 속세에 내려오길 바랐다. 주위가 적막하던 어느 날 밤 과연 키가 2장 가량 되는 신선이 강림했는데 그의 두 귀는 비할 바 없이 클 뿐먼 아니라 귀 끝이 머리보다 더 높았고 귀가 어깨까지 드리웠다.
무제는 그에게 예를 올리고 나서 어디서 온 신선인지 물었다. 선인은 “나는 구전(九巅)의 신인데 듣자하니 숭산 암석위에 일종의 창포(菖蒲)라고 하는 선초(仙草)가 자라는데 한 치에 아홉 마디가 있고 복용하면 장생불로한다 하기에 가서 좀 따올까 합니다.”라고 말을 마치자 사라져 버렸다.
무제가 주위 신하에게 “그 분 신선은 결코 도를 배우거나 약초 캐려는 사람이 아니고 숭산의 신기(神祇)로 내게 뭘 암시하려는 걸꺼야.” 그래서 무제는 사람을 보내 창포를 채취해 복용하였다. 2년째 복용했을 때 무제는 속이 갑갑함을 느껴 그만두었다. 당시 무제를 따라갔던 사람들은 모두 창포를 복용했는데 끝까지 견지한 사람이 없었고 그 일행 중 단지 왕흥 한 사람만 신선이 가르쳐 준대로 내내 창포를 복용하면서 중단하지 않았는데 마침내 불로장생하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대대로 그가 살아있음을 보았고 나중에 그가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실 왕흥은 “듣고 따른 것”을 확고하게 했기 때문에 전혀 선도를 구함이 없는 사람이었음에도 결국에는 신선이 될 수 있었다.
(자료출처 : 태평광기)
발표시간 : 2002년 10월 11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2/10/11/188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