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이야기 : 의박운천(義薄雲天)
작자: 소연(小蓮)
【정견망 2009년 12월 17일】
예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의(義)”를 위해 목숨을 바쳤는가! 오늘 나는 한 친구와 역사상 경험한 이 “의(義)”를 말해보고자 한다.
그때는 청나라 옹정(雍正 1722-1735) 연간이었다. 나는 당시 문인이었으며 독서, 예의 따위를 즐겼다. 그러나 집이 매우 가난했다. 한번은 양주(揚州)에서 어느 작은 주점에 도착하여 술을 마셨다. 다 마시고 나서 품을 더듬어보니 주머니가 텅 비어 있었다. 얼마 안남은 약간의 돈마저 잃어버렸던 것이었다. 나는 매우 거북했다. 주점 주인은 네가 돈을 꺼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나를 한바탕 때렸다.
내가 한창 구타당하고 있을 때 한 영준한 남자가 들어오더니 이 장면을 보고는 말했다. “그 사람을 때리지 마시오, 그의 술값을 내가 내겠소!” 그러자 주인은 더 이상 나를 때리지 않았다. 그는 나를 부축하여 품에서 천을 꺼내어 내 피를 닦아주며 나를 위로했다.
나는 얼른 손을 포권하며 감사를 표시했다. 다리를 다쳐 행동이 불편했고 하마터면 쓰러질 뻔 했다. 이런 정황을 보고 그는 나를 부축하여 가까운 여관으로 가서 상처를 치료하도록 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커다란 은덕에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은인의 대명을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하면서 내 나이와 생일을 말해주었다.
그러나 그는 뜻밖에 펄쩍 뛰어 일어나며 말했다. “알고 보니 당신과 나는 같은 해 같은 날 같은 시진에 태어났군요! 천하에 이런 일도 다 있소! 그럼 우리 아예 “금란지교”를 맺읍시다. 사양하지 마십시오, 저는 “벽옥”이라고 부릅니다.”
나는 기뻐하며 말했다. “좋습니다! 하지만 제 상처가 낫기를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문제 없소!” 보
름 후 상처는 거의 다 나았다.(본래 그리 심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교외에 경치 좋은 곳을 골라 흙을 쌓아 화로로 삼고 풀을 향 대신 꽂고 땅에 무릎을 꿇고 낭랑한 음성으로 발원했다. “금생에 이왕 동년 동월 동일 동시에 태어났으니 죽을 때도 동년 동월 동일 동시에 죽기를 원합니다. 금생에 영원히 가장 좋은 형제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같은 생진이었으므로 누구 나이가 위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집안 환경이 가난하여 보기에 나이가 좀 더 들어 보였으므로 그는 나더러 형이 되라고 했고 나도 좋다고 했다.
벽옥은 집안이 풍족한 편이어서 그는 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 갔고 나는 한마음으로 책을 보았다. 한번은 호기심에서 물어보았다. “아우의 인품과 무공이 이렇게 뛰어난데 왜 아리따운 규수를 맞이하지 않는가?”
“아! 사람은 각자 뜻이 있습니다. 저는 현재 공명을 성취하지 못했으므로 아내를 맞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 우리 함께 공부하여 성공을 한 후에 함께 처를 맞이하세. 가장 좋기는 우리 아이들이 같은 날 같은 시에 태어나고 모두 아들이라면 결의형제하거 다 같이 딸이라면 자매를 맺으면 되고 각자 아들과 딸을 낳으면 그럼 가장 사돈을 맺세!”
“형님 말씀대로 하지요!” 그는 크게 웃었다.
나중에 우리는 함께 과거에 참가해 향시(鄕試), 회시(會試)를 통과했다. 그 후 나는 조정에서 공부시랑(工部侍郎)이 되었고 그는 호부시랑이 되었으니 관직의 차이도 별로 없었다.
하루는 벽옥이 나를 찾아와서 매우 높은 관원이 그에게 혼담을 꺼냈다고 하며 내 뜻을 물었다. 나는 매우 좋다고 했다. 하지만 인생무상이라 벽옥 아우가 장가를 들기도 전에 문자옥(文字獄-문자를 구실로 사상을 탄압한 사건)이 발생해 우리 둘 다 걸려들었다. 그래서 아내를 맞이하는 일 역시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옹정황제로부터 직접 비판을 받아 천리 밖으로 유배되었다. 우리의 귀양지는 지금의 흑룡강 영안(寧安)이었다. 족쇄를 찬 채 천리 밖으로 유배당하니 그 느낌은 정말 “괴로웠다!” 벽옥은 원래 무공이 고강했는데 그가 도망을 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북경을 떠나기 전 그의 무공은 폐해졌다. 나는 줄곧 그를 잘 돌보았으며 그를 위로했다.
가는 도중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유배지에 도착한 후 우리는 그곳의 사람들에게 일을 해주도록 배정되었다. 여름날은 좀 지내기 나았으나 겨울이 오면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그때 흑룡강은 겨울에 몹시 추웠는데 우리는 남방 사람이라 얇은 옷 밖에 없었기에 얼어서 온몸을 떨었다.
마침 어느 사람이 우리에게 솜 의복과 양식을 주어 우리는 한동안 지낼 수 있었다. 나중에 연말이 다 되가는 어느 날 이 고용주가 물건을 잃어버렸는데 우리가 훔쳤다고 모함하여 하인들에게 우리를 때리라고 했다. 솜옷을 벗기고 얇은 옷만 남겼다. 우리는 서로 붙잡고 의지하여 돼지우리 같은 집으로 돌아갔다.
서로를 쳐다보며 한참 말이 없었고 내가 말했다. “좋다, 비록 우리가 금생에 많은 벌을 받았고 고생을 많이 겪었지만 어떻게 하늘에 올라가던지 내가 너를 알아볼 것이다-아우야! 내일은 새해인데 우리가 서로 부둥켜안고 따뜻하게 하지 않으면 살 수 없구나. 설사 오늘 밤 여기서 굶어죽는다 하더라도 나는 유감이 없다. 우리는 같은 날 태어났으니 같은 날 죽는다한들 무슨 유감이 있겠는가? 친구가 되어도 우리 같은 이만한 친구가 되기 어려우니 인생의 큰 행운이라 할 수 있다.”
몸에 상처가 있었고 신체가 매우 피로했으므로 우리 둘은 차례로 깊이 잠들기 시작했다.
이 날은 1년 중 가장 추운 밤이었다 하늘에서는 큰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마치 달콤한 꿈을 꾸는 듯이 입에서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아침에 그 하인들이 우리를 깨우러 왔을 때는 우리의 몸은 이미 뻣뻣해져 있었다. 이미 동사한지 몇 시진이 되었던 것이다. 이때 햇빛이 나왔고 하늘은 매우 맑았다. 집집마다 폭죽을 터뜨리며 신년을 축하했다.
이것을 시로 읊으면 바로 다음과 같다.
같은 날 태어나 함께 죽으니 “의”로 이끌었네
천년 윤회의 “인연”이 이어지니
오늘 법을 얻어 공동 정진하여
서로 권하며 예전 소원 이루세.
同生共死”義”字牽
輪回千載”緣”相連
今朝得法同精進
相知相勉了前願!
발표시간 : 2009년 12월 17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9/12/17/6316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