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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에서 맺은 인연 : 다섯 송이 황금연꽃

천상에서 맺은 인연 : 다섯 송이 황금연꽃

작가: 소연(小蓮)

【정견망 2009년 12월 19일】

이런 시가 있다:


비취가 영롱하고 옥퉁소를 부니
만년의 속세에 춤이 나부끼는데
봄비는 소리 없이 밤을 적시고
영롱한 연꽃은 아득히 높은 하늘 위로 올라가네

翡翠玲瓏吹玉簫
萬載紅塵舞飄飄
春雨無聲潛入夜
晶瑩蓮花上九霄

문장을 쓴 연고 때문에 최근에 나는 각지에서 온 몇 명의 동수들을 만났다.(해외 동수 2명 포함) 그들과 접촉하는 과정 중에 나는 사람들의 마음이 정말 상통하는 것을 느꼈고 모두 어떻게 하면 세인의 마음에 맺힌 것을 철저히 풀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우리는 함께 상의해 연구했는데 어떻게 하면 우리의 글을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싶게끔 끌어들여 그들이 은연중에 진상을 알고 구도 받을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대법제자의 각도에서 쓰게 되고 그러면 많은 사람들의 접수 정도에 한계가 있어서 일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념이 어떻게 변해 “보통 사람의 지기(知己)”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이 아주 관건적인 문제이다. 우리는 글을 얼마나 발표하는가만 볼 수 없고 우리의 글이 중생을 구도하는데 일으키는 실제적인 작용을 보아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동수와 접촉 중에 반드시 일부 협조해야 할 일을 만난다. 생명이 부동함으로 인하여 한 가지 일에 대해 부동한 견해가 있다. 그럼 그 중에는 우리 수련의 요소가 있게 마련이다. 되돌아 자세히 살펴보면 자신의 많은 부족을 발견하게 되며 접촉한 몇 사람은 나이가 나보다 많건 적건 그들은 모두 매우 관용적인 심태로 온화하게 나를 일깨워준다. 때로는 정말 부끄러워 면목이 없다.

동수가 함께 모이는 것은 이미 매우 어렵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함께 한 가지 일을 하기 위해 신문에 널리 알리면 이 얼마나 위대하고 신성한 연분인가! 또한 무엇 때문에 어떤 기연은 우리가 종전에 피차 이때 함께 잘하자고 서로 부탁하지 않았는가?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자!

우선 한 가지 일을 말해야겠다.

“다섯 송이 황금연꽃”는 6명의 동수를 포함한다. 그중에는 우(雨)형, 벽련(碧蓮), 나, f형(해외), y형(해외)으로 그 층차에서 황금 연꽃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벽옥은 늘 나의 연꽃송이에 머물러 있는 황금연밥이며 형상은 2살 정도의 아기 모습인데 순정하고 선량하다. 물론 그녀는 늘 다른 연꽃에 가서 놀기도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주의 호한(浩瀚)함과 천체(天體)의 홍대(洪大)함은 사람으로서는 능히 탐지할 수 있음이 아니요 물질의 미세(微)함도 사람으로서 능히 엿보아 낼 수 있음이 아니며 인체의 심오함은 사람들이 표면만 배워서는 알 수 없는 아득한 일이요 생명의 방대하고 복잡함은 인류의 영원한 미혹(迷)이로다”(《정진요지》〈궁>)

망망한 우주는 그야말로 너무나 복잡하고 너무나 크다. 수련할수록 우주의 깊이는 추측할 수 없고 더욱 멀어 닿을 수 없다고 느낀다. 내 생각으로는 그야말로 형용할 방법이 없다.

이 무한하고 방대한 우주와 극히 복잡한 중생을 대하여 우리는 그저 가장 겸손한 심태로 대해야 하며 우리의 인식은 이 우주의 무궁한 지혜와 비해서 영원히 그렇게 미미하다.

그렇다면 인간 세상에 온 우리 많은 동수들은 오늘 금생에 만났고 또 마음과 뜻을 알아주는 사람들이며 서로 공통의 목표가 있다. 자신을 잘 수련하는 기초에서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더 잘 완수하려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의 윤회전생 중에서 끊임없이 서로 연을 맺은 것은 선연이든 악연이든 한편으로는 인류의 문화를 풍부히 하기 위함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오늘 함께 법을 실증할 수 있는 기연을 다지기 위함이었다. 그러면 금생의 법연(法緣)은 설마 그저 인간에서만 다져진 것인가? 아마 천상에는 더욱 장엄하고 뛰어나며 엄숙한 연분이 있을 것이다!

또 이런 말이 있다. 연분을 쓰는 것이 목적이 아니며 근본 목적은 오기 쉽지 않은 수련인 사이의 정법수련의 기연을 소중히 하기 위함이다. 과거에 우리는 무수한 길고긴 역사를 함께 걸었고 많은 문화를 다졌다. 그럼 오늘날 오늘 우리가 오기 쉽지 않은 법연을 함께 소중히 할 때 그것은 역사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아닌가! 과거 어느 신이 안배하여 우리가 연을 맺었던지 그 역시 공로가 있는 것이 아닌가? 만일 우리가 이번 생에 피차 소중히 하지 않아 간격이 크다면 과거의 일체 경험에 미안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줄곧 한 길을 걷도록 보증하고 있는 힘을 다해 안배한 일체의 신에게 미안하지 않은가? 물론 구세력의 안배에 대해 우리는 철저히 부정해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위대한 역사의 기연을 만났기 때문에 주불과 더불어 정법시기에 같이 있을 수 있는데 어떤 말로도 기연을 형용할 수 없다. 우리는 마땅히 피차 소중히 해야 하며 서로 격려해야 한다. 이것은 자기의 현재만 아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겪은 역사를 소중히 하는 것이다!

우리 이 천체 대궁을 아주 멀리 초월하는 층차 중에 이런 곳이 있다. 그곳에는 사람 모양의 생명은 많지 않고 모두 다 꽃, 풀, 나무 등의 생명이다. 물론 선량한 동물도 있고 매 동물에도 많은 종류가 있다. 예를 들어 용은 몸 색깔과 형상이 수십 종으로 나뉘며 봉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경지는 우리 태양광이 직사하는 그런 광원이 아니며 만물이 빛을 발하는 상태이다. 중생들은 매우 상화롭고 자비로운 상태에 생활하고 있다. 무슨 표현을 쓰더라도 그들은 모두 신으로서 신통광대하다. 지상의 생명과는 완전히 다르다. 또 그들의 신체는 투명한데 다채로운 빛을 뿌리는 신성한 상태이다.

이 경지 중에 하늘의 떠받드는 것 같은 한분의 생명이 있는데 그는 그 한층의 본원과 일체를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기둥”으로 표현된다. 정말 비할 수 없이 높이 우뚝 하늘을 떠받들고 있다. 이것이 일반적인 정황이다. 때로는 그 역시 부처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당연히 이것은 이 경지 중에 특히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이렇게 한다.

그의 신체 중간 부위에 다섯 송이의 황금 연꽃이 있어 그를 둘러싸고 있다. 일종의 위덕으로서 호법이다. 나는 벽련과 우형과 바짝 붙어 있으며 우형, f 형, 벽련은 y형과 붙어 있다. 나의 이 연꽃송이에는 황금 연밥인 벽옥이 있는데 그녀를 어떻게 말할까, 그 층차에 나타나기는 모양이 인간의 2살 정도 아동처럼 매우 순정하고 선량하다. 그러나 매우 장난스럽다. 비록 늘 내 속에 있지만 많은 때에 다른 연꽃 속에서 마음껏 논다.

천상에서는 생명이 다채롭기 때문에 생명 존재의 상태는 매우 행복하고 즐겁다. 이것인 법이 부여한 은혜와 생명의 상태이다.

이 황금연밥이 매우 즐겁게 놀고 있을 때 우리 다섯 역시 사실 매우 기뻤고 그녀를 매우 좋아했다. 마치 금생처럼 그녀를 어린이로 좋아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순정함과 선량함을 좋아했다. 이것이 가장 정확한 말이다.

한번은 그녀가 벽련과 함께 작은 여자어린이 모양으로 변해 저 나무 아래에 내려가서 용과 봉과 함께 놀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이 다섯송이 황금연꽃과 연밥은 함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여 만일 이 경지에 큰 일이 일어나면 매우 번거로울 수 있다. 그들은 호법이므로 묵묵히 이 경지를 지키고 있다.

벽련은 이곳에 머물러 좀 적막해진 것 같았다. 이 형용이 그리 정확하지는 않다 해도 바로 이런 뜻이 있다. 왜냐하면 이 역시 생명이 만장한 세월 중에 변이되어 조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벽련은 세 살쯤 되어 보이는 매우 예쁜 여자아이 모습으로 벽옥과 함께 나무 아래 내려가서 놀았다. 그녀들은 늘 그곳에 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가는데 마다 모두 신선했다. 많고 많은 생명들이 매우 선량했고 그녀들은 매우 즐겁게 놀다가 시간가는 줄 몰랐다…

……

돌이켜 우리 남은 네 사람을 말하자. 그녀들이 놀러간 것을 보고 우리도 속으로 아래에 내려가서 놀고 싶었다. 그러나 감히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는데 그런 마음은 필경 있었다. 이때 더욱 미시적인 곳에서 매우 사악한 생명이 뛰어왔고 그것은 이 지방을 점유하려고 생각하였다. 이 경지의 “기둥” 형태의 생명은 우리 일동을 소집하여 그 사악한 생명을 깨끗이 제거하라고 했다. 우리는 네 명만 남았으므로 비록 그 사악한 생명을 쫓아내긴 했지만 최종적으로 이 기둥상태의 생명은 이 한층 본원의 생명이 상처를 입어 좀 덜 순정하게 되었고 이 경지는 점점 해체될 운명을 만회할 수 없게 되었다.

그녀들이 돌아왔을 때 우리는 그녀들에게 이 일을 말해주었고 그녀들은 매우 후회했다. 그녀들은 마땅히 영원히 자기의 사명에 충실했어야 했다. 우리가 호법의 사명을 다하지 못했기에 그 층차에서 머물 수 없게 되었다. 더욱 높은 신에 의해 벌을 받아 한 층차 떨어져야 했고 내려오려고 할 때 우리는 주불(主佛)을 뵈었다.

우리는 주불 앞에 꿇어앉아 주불께 한번 더 기회를 주실 것을 희망했다. 주불께서는 자비롭게 말씀하셨다. “중생은 모두 변이가 출현하여 이런 일이 생겼다. 나는 더욱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서 철저히 이 일을 되돌려 놓아야겠다. 그래야 비로소 진정하게 전체 대궁 체계의 모든 중생을 구할 수 있으니 당신들이 나를 따라가지 않겠는가! 당신들은 이 층차 중에서 호법의 직책을 다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그러면 가장 낮은 층차에 갔을 때 내가 당신들을 만나도록 안배할 것이며 그때 당신들은 더는 노는 것을 탐하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정체를 형성해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당신들의 생명이 어떻든 당신들의 역할을 잘해야 한다!”(대개의 뜻)

우리는 눈물을 머금고 끄덕였다. 우리는 주불을 따라 끊임없이 아래로 내려갔고 끊임없이 내려갔다.

이야기를 다 마친 후 나 역시 소리 없이 울었다. 바로 이때 나는 사부님이 말씀하신 수련의 엄숙성과 신성함을 더욱 알 수 있었다. 인간에서 우리가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어떻게 우리의 천체를 관리할 수 있는가, 어떻게 그 한 층차의 일체와 중생을 책임질 수 있는가? 수련 중 누구도 잘못이 있다. 그렇다면 어쨌든 잘 협조하는 것이 우리 필수적으로 도달해야 할 경지와 요구이다. 많은 일은 우리 스스로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좀 더 온화하게 일깨우고 원망과 질책을 좀 적게 하면 협조하지 못할 것이 있겠는가? 우스갯소리로 하면 아마 이 이야기처럼 위에서 우리 몇 사람이 마땅히 함께 완성해야할 사명을 완성하지 못하면 금생에 자비로운 사부님이 우리에게 보충할 기회를 주시고 함께 만나도록 해주셨는데 그럼 우리는 무슨 이유로 그 기회를 미루겠는가?

자아를 좀 내려놓으면 아마 더 관용할 수 있고 더 자비로울 수 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건 마음을 함께 하고 한 곳에 두어 위대한 역사의 홍원을 완성하기 위해 진력하자!

우리 모두 진정하게 속세에서 나부끼듯 웃고 하늘에서 웃자!

발표시간: 2009년 12월 19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9/12/19/631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