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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거봉진: 자항보제(慈航普濟)

작자: 소연(小蓮)

[정견망] 후세인들의 기록에 따르면 자항(慈航)은 원래 남자의 몸이었다. 중국 동토(東土)의 중생들에게 불법(佛法)이 널리 전해지지 않아 도덕이 개화되지 못하는 상황을 보고 불조(佛祖)에게 청하여 중국에 내려가 여인의 몸으로 중생을 교화하고자 했다. 이리하여 많은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이에 대해서는 “관세음보살 전기” 중에 이미 기록되어 있으니 여기서는 많이 말하지 않겠다.

이 글에서는 다만 “관세음보살 전기”에 기록되지 않은 부분과 일부 방면에 표현된 의미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자항이란 이 생명은 단지 불조 그곳뿐 아니라 더욱 높은 내원이 있다. 하지만 그는 (특수한 사명을 띠고) 불타의 세계 속에 내려와 불타의 제자가 됐다. 자항의 사명은 사실 중국 역사에서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내포와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중토(中土)에서 “관음보살(觀音菩薩)”의 의미는 자못 심상치 않다. 사람들이 관음보살을 언급하면 늘 자비와 고난을 구원하는 것을 생각하며 관음보살에 대한 중국인들의 숭경(崇敬)은 정말 대단하다. 그렇다면 인류의 도덕표준이 높았을 때는 사람이 정말 재난이 닥쳤을 때 관음보살에게 도움을 청하면 누구든지 도움을 얻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마음속으로 경건하게 관음보살을 믿었다.

그렇다면 당초 자항이 불타의 세계를 떠나 인간세상에 전생(轉生)했을 때 그는 황금색 가사를 걸치고 피부는 마치 인도인처럼 짙은 누런색으로 나타났다. 그는 자신의 행적을 통해 대자대비의 이름인 “관세음(觀世音)”을 성취하고자 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 길고 긴 역사 중에서 왜 “관세음”과 “대자대비”가 연계되는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관세음보살이 사람을 구하는 대자대비한 일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관세음(觀世音)”이란 세 글자는 우연한 것인가? 이 글자가 산스크리트어를 번역한 것이든 어디서 유래했든 우리는 한자에는 특수한 뜻이 있으며 그것이 천지와 대응된 것임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것은 차치하고 관세음이란 세 글자만 말한다면 그것은 본래 액을 돕고 난에서 구제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관세음은 자비의 이름이다, 그러면 관세음보살에 대한 신앙은 이렇게 오래됐으니 그분을 진정하게 믿는 사람은 많고도 많다. 다른 말로 하면 많은 사람이 관세음보살과 인연이 있는 것이다. 이런 연분은 설마 겨우 고난 중에서 도움을 얻는 정도의 간단한 일이란 말인가? 전혀 아니다. 그것은 다만 연분을 끄는 끈에 불과하다. 그저 역사상 자비와 수행의 내포를 다진 것일 뿐이다. 진정한 목적은 오늘을 위한 것이다.

앞에서 자항은 불타의 세계에서만 온 것이 아니라 더 높은 내원이 있다고 했다. 다만 역사상 중국동토의 중생들이 개화되지 않은 단계에서 여인의 몸으로 세상에 내려왔을 뿐이다. 그는 각고의 수행을 통해 마침내 대자대비하고 널리 중생을 제도하는 보살이 됐다. 그러면 역사의 초기부터 현재까지 관세음보살의 이름은 널리 인연을 맺었다고 할 수 있는데 최종 목적은 오늘날 더욱 많은 사람들이 진상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다.

어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사실 아득한 옛날 문명이 싹트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모든 것은 오늘을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전반 우주는 매우 특수한 시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다른 나라의 각종 예언, 불가, 도가나 서방의 선지자들은 모두 이 때 우주의 주불(主佛)이 세상에 내려오며 파룬(法輪)을 돌려 중생을 제도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정법이 널리 전해지기 때문에 사악이 가로막으며 동시에 이때 사람들이 더욱 대법을 잘 이해하도록 역사상 반드시 상관된 문화를 다져야 했는데 그래야만 사람들이 비로소 이때 대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당초 자항 같은 이들, 이런 사명을 지니고 내려온 신들이 인간세상에 와서 많은 방면의 문화를 다진 후 오늘날 주불의 제자가 됐을 때 역사상 그들이 행한 자비는 더욱 뚜렷해진다. 모두 연을 맺은 사람들로 하여금 오늘 이 특수한 시기에 진상을 알도록 하기 위함이다.

다년간 파룬따파를 긍정적으로 보도한 사이트를 볼 때 많은 사람들은 일종의 잠재의식이 있다. 즉 “나는 누구의 글을 보기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어떤 대법제자가 쓴 글은 반향을 잘 일으키며 잘 읽혀지는가? 이는 금생의 수련 요소와 관련이 있으며 전에 중생들과 맺은 연분과도 긴밀한 관계가 있다. 다시 말해 전에 자비로 구도 받은 사람이 그렇게 많다면 연분의 종자는 이미 심어진 것이다. 오늘날 겉보기에는 우연한 것 같지만 전단지 한 장이나 인터넷에서 어떤 사람이 쓴 글을 보면 좋다고 느끼며 진상을 알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연분이 닿은 것이다. 이 역시 당초 자항이 인간세상에 내려와 대자대비한 관세음보살의 모습로 나타난 의미이다.

후기: 이 글은 내가 어제 새벽에 꿈을 꾸고 나서 정리한 것이다. 어제 동수가 자료가 필요해 나는 다른 동수와 함께 철야로 일을 했고 새벽이 되어서야 끝마쳤다. 나는 자리에 눕자마자 꿈을 꾸었는데 자항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의상에서부터 어떻게 더욱 높은 층차에서 내려왔는지, 불조에게 무엇을 말했는지, 연후에 인간세상에 내려와 온갖 고생을 다 겪고 나서 관세음보살이 된 것 및 그 후 자비심으로 중생을 제도한 것에 이르기까지. 나는 당시 그녀의 자비가 지금에 와서 볼 때 무엇 때문인지 단번에 깨달았다. 그래서 이 문장을 정리해낸 것이다.

발표시간: 2012년 6월 25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11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