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인류사회에는 최면술(催眠術)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그 중에 약간의 초상적인 현상이 일반인들을 곤혹스럽게 하며 해석하기 어렵게 만든다. 어떤 사람은 최면상태–사실 최면이라는 용어는 적당하지 못한 표현이다.–하에서 확실히 정상적인 경우에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할 수 있다.
전에 중국 TV방송의 한 프로에서, 안경을 낀 문약(文弱)해 보이는 한 젊은이가 최면에 걸린 것을 보았다. 그의 몸은 강철같이 단단하여 두 의자사이에 허리를 걸어 놓고 그 위에 성인(成人)이 올라가 밟아도 전혀 굽어지지 않았다. 비록 호의를 가지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프로그램은 다른 방면에서 사람의 사상은 거대한 잠재력이 있음을 실증하였다. 나는 또 다른 프로그램에서 최면에 걸린 학생 위에 7,8명의 학생들이 올라가도 밑에 있는 학생이 태연(泰然)한 모습을 본적도 있다.
일반인들은 이것을 해석하지 못하고 멋대로 추측하는데 대법제자로 말한다면 도리어 일목요연하다. 사실상 최면에 걸린 사람은 최면 중에 심리 상태가 아주 순정(純淨)하여 본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최면술사의 도움 하에 사람의 의념이 다른 공간에서 강철같이 단단해 진다면, 이 공간에서도 강철같이 단단하게 반영되어 올 수 있다. 즉, 이 공간에 있는 신체에는 아무런 해도 주지 않으면서 다른 공간에 있는 신체가 대신 떠맡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의식이 깨어있는 상태에서는 할 수 없는가? 사부님께서는 《공능이란 무엇인가?[什馬是功能]》에서 “공능이란 사실 생명의 본능이며 층차가 높을수록 충분히 발휘되어 나온다. 반대로 층차가 낮을수록 더 발휘되기 힘들거나 충분히 발휘되지 못한다. 이렇게 되는 근본원인은 우주의 최고층차에서 최저층차에 이르기까지 낮으면 낮을수록 생명과 그것이 존재하는 경계중의 일체물질은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입자는 점점 크게 되어 생명의 무게가 더욱 크기 때문에 층차가 낮을수록 생명의 본능은 물질에 억제되는 것이 점점 많아지고 무거워져서 작용을 일으킬 수 없게된다. 이것이 바로 층차가 낮을수록 능력이 점점 작아지는 원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은 필경 사람이기에 일단 깨어나게 되면 사상이 아주 복잡한데 이런 생각 속에 다른 공간의 잡다한 것들이 섞여 들어온다. 게다가 생각이 반신반의(半信半疑)하게 되면 의념이 잠시 존재하다가 곧 사라지게 되어 안 되는 것이다. 만약 이때에 사람이 올라가 밟게 되면 허리가 부러질 수도 있다. 어떤 동수(同修)는 조주교(趙州橋)는 어떻게 만들었기에 일천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가를 깨달은 적이 있는데 사실 이 공간의 결실(結實)이 아니라 그것을 만든 사람이 다른 공간에서 아주 잘 결실한 것이었다. 과거에 고대의 장인들은–자신은 비록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단지 물질만 이용한 것이 아니며 동시에 마음을 다하여 다른 공간에 그 물건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고대인들은 특별히 마음의 수양을 강조하였는데 사실은 다른 공간의 작용을 중시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중에서 “그때에 공부하는 사람은 모두 가부좌를 강구하였다. 앉음에 자세를 강조하였고 필을 드는데는 기를 운행하여 호흡함을 강조하였고 각 사업부문은 다 마음을 깨끗이 하고 호흡을 조절함을 강조하였는데 온 사회는 모두 이러한 일종의 상태에 처해 있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현대인은 이미 마음의 작용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중에서 금종조, 철포삼의 원리를 말씀하셨는데 사실상 다른 공간의 공능의 작용이며 이 공간의 육체는 아무런 작용도 하지 못한다.
일부 특이공능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실 다른 공간의 신체에 작은 반면(反面) 능력이 존재한다. 그들은 장(場) 속에서 특이공능자의 능력발휘를 간섭하거나, 특이공능에 회의적인 연구원들을 더하여, 그들의 사상이 다른 공간의 물질을 모두 간섭하게 된다. 이 경우 능력이 작은 특이공능자는 공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되며 이에 반대자들은 과학이라는 큰 몽둥이를 휘둘러 이것이 모두 사기라고 하는 것이다.
최면술의 표현에서 우리는 사상이란 다른 공간에서는 물질존재이며 일반인이라도 순정한 마음상태 하에서는 초상적인 작용을 발휘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대법제자는 하나의 신(神)의 상태를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정념(正念)의 거대한 작용을 의심할 수 있겠는가? 우리들의 사상은 다른 공간에서는 더욱 크고 더욱 위력이 있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는 것이다》에서 “사실 대법제자 개개인은 모두 능력이 있는 것이다. 단지 표면공간에서 표현되어 나오지 않았을 뿐이어서 공능이 없다고 여길 따름이다. 하지만 표면공간에서 표현할 수 있든지 없든지 막론하고 진념(眞念)을 움직일 때에는 모두 위력이 강대하다.”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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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8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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