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제자의 견증(見證)
글 / 미국 캘리포니아 제자
[정견망 2001년 4월 8일] 나는 직업의사로 올해 57세인 여성이다. 1998년 7월 4일 法輪大法(파룬따파)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의학영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임상연구를 하던 중, 세월이 흘러갈수록, 나는 점점 더 전통의학중의 찌꺼기(糟粕)와 현대의학의 “가설(加設)”에 대해 알게되었다. 심지어는 인류 질병의 병인(病因), 병기(病機), 치료원칙, 의사의 처방과 용약이 모두 병인(病因)과 병기(病機)를 잘 모르면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정확하게 질병의 예후나 결과를 모르는 상황 하에서 단지 의사의 학식과 경험 및 이학(理學)적 진단을 종합적으로 참고해서 “인상(印象)에 따른 진단”을 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이와 같이 허구(虛構)에 기초하여 사람의 생명을 초개와 같이 다루는 것이다. 이러고도 펜을 들어 치료방안을 확정하고 처방과 용약을 한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의사의 오진(誤診)이나 오치(誤治), 약물부작용으로 사망하는 사람의 수가 적어도 몇 십만 명에 달한다.
미국의 경우도 비록 전자공업이 아주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질병의 병인학(病因學)에 대해서는 더욱 황당하다. 아주 많은 돌연사(突然死)의 경우 병인이 확실하지 않고, 허다한 “시대병(時代病)”전문가들이나 교수들도 속수무책이다.
나는 조교, 강사, 교수의 과정을 밟아 오면서 양심상 의학의 새로운 길에 대해 진정으로 사고하기 시작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1998년 7월 4일, 나는 法輪大法(파룬따파)을 수련하기 시작하였고, 이때부터 질병에 대한 나의 인식은 활연(豁然)히 열렸다. 나는 현대서양의학이 실제상 하나의 아주 불완전한 체계임을 알게되었는데, 그것의 질병에 대한 인식은 완전히 우리 현재 물질공간 안에 국한되어있다. 그러나 아주 많은 질병의 근원은 다른 공간에 존재한다. 만약, 우리들이 현재공간의 속박을 돌파하여, 다른 공간으로부터 인체와 질병을 탐색하지 못한다면, 우리들의 의학은 곧 영원히 이공간 속에서 기어다니게 될 것이다. 아래에 내가 직접 겪은 질병을 예로 들어 현대의학의 한계를 지적하고, 法輪大法(파룬따파)의 정심(精深)함을 견증하고자 한다.
1998년 4월, 나는 캘리포니아주의 한 도시에 개업(開業)하였다. 매일 침구와 약물로 환자들을 “죽음에서 구하고 상해(傷害)에서 도와주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단지 질병의 통증만을 치료할 수 있을뿐 환자의 정신적인 문제를 경감(輕減)시킨다는 것이 아주 어렵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가령, 과도한 압력이나, 발광(發狂), 자신의 정서를 통제하지 못하는 것 등이다.
일종의 “비약물(非藥物) 치료법”을 찾기 위해 나는 강렬하게 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는 친구의 인도하에 LA로 가서 한 명의 “신인(神人)”을 찾아 “술법”을 배우려했다. 法輪大法(파룬따파)에서는 사람의 마음이 올발라야만 사(邪)를 초래하지 않는다고 가르치고 있지만, 당시에 나는 이런 도리에 대해 명백히 알지 못했다. 당시 마침 “신인”을 만나고 보니 좌측 엄지발가락에 동통(疼痛)이 있다고 하여 나는 “평추법(平推法)”을 써서 치료하고자 했다. 신기하면서도 두려운 일이 이때 발생하였다.
내가 막 “신인”의 좌측 엄지발가락에 손을 대려는 순간, 갑자기 등위 단중(顫中)혈의 반대부위에 길이가 10cm, 폭이 약 6cm정도의 얼음장같이 차가운 압력이 맹렬하게 나를 덮쳐 왔다. 갑자기 전신에 일종 차가운 전기가 투과된 것과 같은 괴이한 감각이 있었다. “누가 나를 밀었어?” 내가 큰 소리를 지르면서 고개를 돌려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등뒤에 있던 “신인”의 부인과 내 친구가 동시에 아무도 나를 밀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는 이때 부체(附體)가 들어왔던 것이다.(지금 나는 法輪大法(파룬따파)을 배운 후에 부체가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좋지 않은 영체(靈體)라는 것을 명백히 알고있다.)
나는 당시에 내 말이 갈팡질팡하는 것을 느꼈다. 마음속으로는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입은 도리어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친구 집에 돌아왔을 때는 상황이 더욱 엄중(嚴重)해졌다. 친구가 “부처님께 향을 올려보렴!”하고 권하여 내가 막 향을 피워 불상 앞에 놓인 향로에 꽂으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곧바로 나는 집으로 후송되었다.
극렬한 두통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나는 인근 시에 있는 종합병원 신경외과 응급실에 입원하였다. CT 진단상으로는 뇌출혈(腦出血)이었다. 왜냐하면 뇌(腦) 안에 액체가 있음을 의미하는 음영(陰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뇌출혈의 증상은 없었고 목이 굳어지면서 구토를 하였다. 나는 “원인미상의 난치병 환자(疑難病人)”로 간주되어 확진(確診)을 위해 다시 진단을 받아야했다. 나는 곧바로 중환자실 ICU(집중 관리실)에 입원하여 매 10분마다 간호사가 와서 심장박동, 혈압, 맥박 등을 측정하여 기록하였고 손발에는 모두 수액(輸液)을 넣는 바늘이 꽂혀있었다. 의사들도 총총히 오고갔으며 가족들의 면회도 금지되었다.
나는 뇌출혈 진단에 필요한 증상을 구비(具備)하지 못하였기에, 다시 검사를 받아야했다. 이번에는 2번에 걸친 MRI 검사와 한 번의 뇌척수액 검사, 한 번의 뇌단층 촬영과 여러 차례의 안저(眼底)검사 등 나는 현대의학이 자랑하는 정밀한 기기들과 번잡한 혈액검사를 받았으며 반복적으로 약을 먹어야했다. 주치의와 전공의들의 반복적인 여러 차례 회진은 나를 괴롭혀 거의 죽기 직전이었다. 그럼에도 나 역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기에 당연히 그들의 학습을 지지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전에 또한 여러 차례 주정부 및 연방정부의 연구 프로젝트를 따낸 적이 있었기에 그들이 나를 가지고 실험하는 것을 지지했다. 최후에 그들이 MRI로 2번째 검사를 할 때 나는 거의 죽을 지경이었고 호흡은 질식할 것 같았다. 밀폐된 방안에서 나는 단지 두 발을 발버둥쳐서 실외에서 컴퓨터를 조종하는 화면상에 반영되어 나오도록 노력할 뿐이었다. 내 딸이 강력하게 검사를 중지할 것을 요구하면서, 아니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한 후에야 나는 겨우 현대의학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즉, MRI를 중지한 것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왜 검사를 해도 병인(病因)이 나오지 않는가? 의사는 이해하지 못하였고 전문가들도 명백하지 않았으며 교수들도 이상하게 생각했다. 허약해진 몸을 이끌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으며 이때 나는 시력이 거의 소실되었다.
(하편에 이어집니다.)
발표일 : 2001년 4월 8일
문장분류 : 인체생명우주>인체와 수련
원문위치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1/4/8/9718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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