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망2004년 1월 21일] 옛날 중국 구화산(九華山)에는 원적 후에도 육신이 썩지않는 대덕고승이 많이 나타났는데, 청나라 말에 태어난 대흥(大興)스님도 그 중의 한 분이다. (대흥스님 원적 후 항아리에 넣었다가, 3년 후에 항아리를 열었어도 신체는 여전히 부드럽고 얼굴 모습도 생전모습 그대로였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자선하였고 관대하고 후덕하였다. 괴로움을 참고 힘든 일을 견디며 고생을 꾹 참고 수행하였다. 아래에 적힌 일화는 대흥스님이 치욕을 참아가며 무거운 짊을 지는데 있어서 속인을 초월한 이야기이다.
구화산 아래에 부유한 한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이 집에는 금지옥엽 귀한 딸이 하나 있었다. 아가씨는 부모의 명령에 순종하여 어울리는 가문의 공자(公子)와 혼인을 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정식으로 결혼하기 3년 전에 딸은 집에서 아이를 낳았다. 부모님의 엄격한 추궁과 강박에 못이겨 아가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구화산에 올라가 절에서 향을 사르고 참배를 올릴 때 대흥화상에게 겁간을 당했으며 이후에 임신하여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가씨의 부친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힘센 장정들을 데리고 절로 뛰어들어가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흥스님을 때리고 욕하며 모욕했다. 그리고는 아이를 스님에게 떠넘겼다. 대흥스님은 아무런 동요도 없이 침착했으며, 하는 수 없이 아이를 받아 안았다. 그리고는 대수롭지 않게 “선재(善哉)라, 아미타불!”하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이 지방에서 오랫동안 명성을 누렸던 대흥스님의 위신은 단번에 땅바닥에 떨어졌고 평판이 아주 나빠졌으며, 도처에서 사람들에게 조소와 멸시를 받았다. 사람들은 “파계승” 이라며 그를 욕했다. 그러나 스님은 이런 것들을 마음 속에 두지않고 매일 산을 내려가 마을 사람들한테 아이를 위한 젖동냥을 했다. 스님의 정성스런 보살핌아래 아이는 점점 성장해서, 살도 포동포동해지고 총명하고 영리하게 자랐다.
이렇게 시간은 어느덧 3년이 지났다…….
아가씨는 정식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 신혼 첫날밤에 신랑은 아이의 행방을 물었다.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처음부터 끝까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이튿날 젊은 부부는 사실대로 부모님께 알렸다. 원래 이 아이는 그들의 친 혈육이었으나 대흥스님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모함을 했던 것이다. 3일 째 친정에 돌아온 기회에 아가씨는 또한 사실대로 친정 부모에게도 알렸다. 친정부모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경악을 금할 수 없었으며 후회가 막급했다.
양가 부모는 젊은 부부를 데리고 절에 와서는, 대흥스님 앞에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잘못을 인정하고 정중히 사죄하면서 절하고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아이를 돌려 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대흥스님은 기뻐하면서 아이를 안아 공손하게 엄마 품에 안겨주었다. 스님은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게 허허 웃으면서 “데리고 가십시오! 아미타불!” 두 손을 합장하면서 말하고는 만면에 웃음을 띄며 몸을 돌려 선방(禪房)으로 돌아갔다.
이때부터 많은 승려들과 백성들은 대흥스님을 더욱 우러러 받들고 존경하게되었다.
발표시간:2004년 1월 21일
문장분류:인체생명우주>인체와 수련
원문위치:http://zhengjian.org/zj/articles/2004/1/21/25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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