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청
【정견망】
꽃이 피고 지고, 상전벽해(滄海桑田)의 변화가 있었다. 유유한 세월은 찰나에 불과했다.
정법(正法)을 위해 조성된 삼계(三界)의 무대 위에서, 모든 생명은 각기 다른 역할을 연기하고 있다. 군왕이든 서민이든, 영웅이든 강도든, 모두 정(情)과 욕망의 바다에서 부침하며 윤회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고, 막이 오르고 내리는 이 혼탁한 속세에서 모든 사람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죄업을 지었다. 매번 환생할 때 가져가는 것은 누적된 덕(德), 업(業), 그리고 은혜, 원한, 애증(恩怨情仇)뿐이다. 다하지 못한 인연은 다음 생의 홍진 속에서 계속 얽히고 갚는다.
묵은 업이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업이 더해지고, 층층의 업력이 생명의 본체에 얽매여 끝없이 이어진다. 벗어날 수 없는 죄업은 사람들을 지옥의 심연으로 한 걸음씩 끌고 간다… 만약 사부님의 구도가 아니었다면, 어떤 생명이든 최종 귀착지는 육도 윤회 속에서 형신전멸하는 비참한 결말이었을 것이다.
나는 수많은 생을 여자의 몸으로 환생했으며, 이번 생도 마찬가지다. 이번 생의 어머니는 나를 낳은 후 계속 몸이 약했고, 나중에 나를 자신의 언니, 즉 나의 이모에게 맡겨 키우도록 했다. 나의 어린 시절은 이모 댁에서 보냈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두 자매는 서로 의지하며 살았는데, 언니는 어머니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 두 분보다 감정이 더 깊은 자매를 본 적이 없다. 이모가 어머니를 돌보는 것이 자매라기보다는 자애로운 어머니 같았다. 어머니는 이모에게 경제적으로 노인을 공경하듯이 도움을 주었다.
이모에게는 아들 하나만 있는데, 나보다 여덟 살이 많다. 이모와 이모부는 모두 순박하고 성실한 농민으로, 그들은 매우 순박하고 부지런하며 착하고 선량했다. 나를 친부모보다 더 아껴주셨다. 이모와 외사촌 오빠가 나를 무척 아끼고 친애한 것은 일가친척의 피가 조금 섞였으니 그럴 만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모부의 나에 대한 애정은 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모와 이모부는 정말 저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금쪽같은 딸로 여겼고, 나에 대한 애정과 보살핌은 외사촌 오빠를 훨씬 능가했다. 내가 영리하고 착하며 부지런하고 눈치가 빨랐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이모 댁에서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모부는 젊은 시절 매우 단정하고 청수하게 생겼으며, 모습이 매란방(梅蘭芳 역주:중국의 유명연극배우)을 닮은 데다 좋은 목소리까지 가지고 있어서 마을 연극 무대의 기둥이었다. 그의 성격도 매우 부드럽고, 성질도 상당히 좋았다. 말과 행동이 느긋하고 조심스러우며, 말도 매우 재미있고 유머러스했다. 어렸을 때, 나는 매일 밤 그에게 달라붙어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랐다. 이모는 방에서 신발 밑창을 꿰매거나 솜을 잣고 있었다. 그는 그 옆에 앉아 이불 속에 누워 있는 나와 외사촌 오빠에게 연극 속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양산백과 축영대, 목계영(穆桂英), 화목란이 아버지를 대신하여 종군한 이야기, 왕보천이 18년 동안 한요(寒窯)에서 고생하며 기다린 이야기 등, 저는 매일 밤 그의 이야기 속에서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밖에 또 무슨 친우라든가, 문하생이라든가, 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은혜와 원한(恩怨)으로 맺어진 이 연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모두 당신과 한 가정 혹은 한 군체(群體)를 이루게 할 수 있으며, 사회에서 사회적인 연계를 이루어 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순, 은혜와 원한을 되돌아 갚도록 한다. 이것이 모두 연이며 모두 이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일세에서 온 것이 아니며 몇 세 혹은 전 한 세(世)의 것으로 이것은 이런 상황을 가리킨다. 이런 하나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또 사람이 이 일생 중에서 그의 은혜와 원한이 있고, 그의 친우가 있고, 그의 아내, 자식이 있는 등등 등등이다. 그럼 아마 이 한 군체는 곧 은혜와 원한이 존재할 수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에게 좋게 대하거나, 좋지 않게 대하거나 하여, 그는 그에게 되돌아 갚으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은 곧 다음 일세(一世)의 군체적인 전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함께 오는 것이 아니며 여럿이 함께 전생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올 때 빠르고 늦음이 같지 않으며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고 나이가 어린 사람도 있는데, 어쨌든 이 사람들 속에서 그는 일부 연계를 이루어 앞뒤로 전생해 오는 것이다.” (《미국법회설법》 〈뉴욕법회설법〉)
수련이 깊어짐에 따라 사부님께서는 점차 나에게 일부 기억을 열어주셨고, 나 역시 나와 주변 친척, 친구들 사이의 인연 관계 일부를 알게 되었다. 그중에는 이모부와의 인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생에서 나는 꽃처럼 아름다웠다. 아마 운명이었을까 나는 성실하고 순박하며 가난한 농가로 시집갔다. 남편은 순박하고 어수룩했으며, 시부모님도 매우 부지런하고 선량했다. 그 생의 남편이 이번 생의 나의 외사촌 오빠였고, 시부모님이 이번 생의 나의 이모와 이모부였다. 그들은 이번 생과 마찬가지로 니를 극진히 아껴주셨다. 이 집안 사람들의 인품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활발하고 낭만적인 성격이었는데,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남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결혼에 대해 늘 마음에 흡족하지 않았다. 비록 그가 나에게 전적으로 복종하고 공주처럼 떠받들었지만 말이다.
아마도 악연이었나보다. 나중에 나는 우연히 풍류를 즐기고 세련된 부잣집 공자를 만났는데, 그는 나에게 첫눈에 반했고 깊이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그가 바로 내가 마음속으로 동경하던 유형의 남자였다. 그는 나의 환심을 얻기 위해 수많은 보석과 장신구를 사 주었다. 나는 정(情)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 하지만 나의 선량한 본성과 도덕적 관념은 나를 깊은 고통 속에 빠지게 했고, 깊은 죄책감은 나를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순박하고 선량한 시부모님 가족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나는 몇 번이고 이 부정한 관계를 끊으려 했지만, 이 치정에 빠진 공자가 끈질기게 매달려 벗어날 수 없었다.
죄를 속죄하고 양심에 조금이라도 안정을 얻기 위해, 나는 그 공자가 나에게 준 돈과 장신구를 모두 가계에 보탰다. 동시에 나는 시부모님과 남편에게 더욱 배로 잘해 드렸고, 매우 효심 깊고 현숙했다. 그 가족은 여전히 나를 온갖 방법으로 보살펴 주었으며, 반 마디의 비난도 없었다. 나는 그 생에서 그러한 죄책감의 얽매임과 우울 속에서 짧은 일생을 마쳤다.
다시 환생했을 때, 내가 결혼했던 남편은 이번 생의 남편이다. 아마도 역사적으로 내가 빚진 정(情)의 빚이 너무 많고 죄업이 너무 무거웠기 때문인지 나의 여러 생의 결혼 생활은 매우 불행했으며, 그 생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가 두 딸을 낳은 후, 남편은 밖에서 다른 여자를 만났고, 그 후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큰딸은 네다섯 살 정도였고 (그녀는 이번 생에 다시 나의 딸이 되었다), 작은딸은 겨우 한두 살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가르쳤고, 학교의 한 방에서 살면서, 홀로 두 어린아이를 키우고 일해서 가족을 부양해야 했으니, 삶의 고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내가 가장 힘들 때, 이모부가 시골에서 오셨다. 그는 쉰 살에서 예순 살 정도였고, 여전히 이번 생의 모습이었으며, 여전히 이모부의 역할이었다. 그는 학교 정문 옆 도로변에 천막을 치고 작은 수리 가판대를 차려 거기서 지냈다. 낮에는 나의 아이들을 돌봐주고, 큰아이의 등하교를 도왔으며, 한가할 때는 사람들의 자전거를 고쳐주거나 냄비를 때우거나 사발을 고치는 등의 수공업으로 약간의 돈을 벌어 나의 생활에 보탰다. 그 생에서 그는 나를 많이 도와주었고, 나와 함께 많은 고생을 했다.
홍진의 정은 괴롭고, 정은 홍진을 미혹시킨다. 만약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를 다행히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이미 혼백이 어디로 돌아갔을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법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사부님의 고난의 구도를 소중히 여기며,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선하게 대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우리와 깊은 인연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8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