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대법제자
【정견망】
최근 밍후이왕에 실린 《/span>백거이 내세의 소원이란 글을 보고 내심으로 감동이 깊었다. 마땅히 백거이(백낙천)의 금생 상황을 사람들에게 한번 알려야겠다고 느꼈다. 동시에 이를 계기로 일부 역사 명인의 표현과 금생에 어떤 작용을 하는 지 말해보겠다.
과거에 문장을 쓸 때는 줄곧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의 윤회 정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려 했다. 특히 금생과 역사 명인의 대응에 대해서 쓰지 않았다. 목적은 수련 중에 자기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집착도 일으키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면 수련과 법실증을 교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기회가 닿았는데 누가 쓰는지 혹은 누가 누구에 대응하는지 추측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하면 최대한도로 자신과 수련인들에게 집착과 교란을 가져오지 않게 할 수 있다.
역사적인 유명인사를 말하자면 누구든 역사상 무슨 유명인이 되었던지 모두 일종의 배역으로 생명 과정 중 일종의 역할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역할 연기를 통해 우리와 연을 맺고 소원을 이루고 금생에 전륜성왕이 인간세상에 법을 전하는 역사시기에 법을 실증하는 순서와 안배가 있다. 말하자면 역사상 누구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금생에 반드시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전(史前)의 큰 소원을 성취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 이런 각도에서 말하자면 금생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역할을 잘 수행하면 가장 위로되고 영광스럽고 가치 있는 일이다.
말을 줄이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런 시가 있다.
人間四月芳菲盡,
山寺桃花始盛開。
長恨春歸無覓處,
不知轉入此中來。
인간세상 4월 꽃이 다하고
산사에 복숭아 꽃 만개하기 시작하니
한 많은 봄 찾아오는 곳을 몰라
이곳에 돌아올 줄 모르노라.
이 시는 당나라 때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span>대림사도화(大林寺桃花)>라는 작품이다. 현대의 많은 중국인들에게 국내외를 막론하고 널리 회자되고 있다.
백거이의 정황에 대해서 이전의 어느 글에서 일부를 언급한 외 일찍이 정견망에도 《/span>고대시인의 수련이야기: 백거이라는 문장에서 백거이가 어느 시에서 자신의 전생을 알았다는 언급이 나온다.
오늘은 우선 두 가지 고서에 실린 백거이의 정황을 말해보자.
“공(백거이)은 신선이 구름을 타고 자유롭게 다니는 것을 좋아해 향을 피우고 연기가 솟아 올라왔다. 처음에 구강에 와서 려산 아래 초가를 짓고 단약을 만드는데 아직 살고 있다.” 《/span>당재자전권6, 백거이 편
“이때 백낙천이 늙어 퇴직했는데 이상은(李商隱)의 글을 매우 좋아해 그에게 말했다. ‘나는 사후에 자네 아들이 되었으면 좋겠네.’ 백거이가 죽은 지 몇 년 후 이은상이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백로(白老 -늙은 백거이)’라 지었다. 기장, 수비둔, 온비경(온정균)이 놀리며 말했다. ‘당신이 대랑(待郎)의 후신이 되었으니 너무 송구스럽지 않은가?’ 나중에 또 아들을 낳아서 이름을 곤사(袞師)로 했는데 총명하고 준수했다. 상은이 시를 지어 말했다. ‘곤사는 나의 예쁜 아들인데 똑똑하기가 이를 데 없다.’ 어쩌면 이 역시 그의 후신이다. 《/span>당재자전권7
앞에서는 백거이가 신선술을 닦았음을 말해주며 뒷단락은 백거이와 이상은 사이의 이야기다. 백거이의 흉금과 기백을 엿볼 수 있다. 백거이가 이상은의 어느 아들로 태어났는지 혹은 다른 변화가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문인 사이의 재미로 여기면 된다.
앞에 언급한 두 글 중에 백거이의 정황을 소개했으니 여기서는 더 중복할 필요가 없다.
백거이는 백성들의 질병과 고통에 걱정했고 그의 시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연을 맺는 과정이다. 그 당시 당시(唐詩)를 개창하는 데 적극적인 작용을 했다.
백거이는 그 일생이 끝난 후 많은 다른 배역으로 전생했다. 북송 시기에 그는 온갖 재주를 갖춘 유명시인으로 태어났다.(여기서 이름은 언급하지 않는다) 이 시인도 불도(佛道)를 좋아했고 그의 시 역시 사람들에게 널리 회자되었다. 자신의 재능을 믿고 남을 깔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구세력의 신은 그에게 많은 마난과 고험을 안배했다. 그의 성격을 단련하기 위함이었다. 그의 성격 중에는 백거이와 좀 유사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친민(親民)’ – 백성을 사랑함이었다. 가난한 백성들의 고통을 동정하는 것으로서 문장 속에는 우아함과 속됨이 같이 들어있다. 저층 백성들의 많은 실제 사정을 풀기 위해서였다.
그의 작품 중 많은 것들이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 있을 때 쓴 것들이다.
원나라 시기에는 야율초재로 태어났으며 한(漢)문화를 보호하기 위해 많은 공헌을 했다. 명나라 때는 서달과 척계광으로 전생했으니 이는 무(武)와 충(忠)의 내포를 성취하기 위함이었다. 청나라에서는 관천배(關天培)로 태어나 나라와 국가를 보위하고 죽음으로 충성을 다했다.
이 기간 또 다른 많은 유명인으로 전생했는데 일일이 들지 않겠다.
백거이는 “나 역시 정(定)에 들어 숙명을 보았는데 여러 생에서 시가를 책임졌다” 고 했다. 한 사람이 윤회환생 후 때로는 전생(前生)의 일부 애호나 능력을 지니는 것이 가능하다. 동시에 그는 그 생에 숙명통 공능이 있어서 자신과 다른 사람의 전생을 볼 수 있었다.
그러면 금생에, 어떤 사람이 태어난 후 ‘자연’적으로 서적을 좋아하고 시문을 좋아하며 인생의 궁극적 문제를 사고하기를 좋아한다(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등).
집에 있는 모친의 책 《/span>만수당인절구(萬首唐人絕句)> 라는 책을 보고는 손에서 놓기를 아쉬워했다. 백거이의 자가 낙천(樂天)이라는 사실을 모르면서 스스로 자를 ‘樂天’으로 정했고 또 필명을 ‘天下’로 지었다. 이런 것은 비록 모두 10대 때 희망이 반영된 것이지만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책을 보는 일이다. 조용히 혼자 앉아 책을 볼 때 일어나는 만족감은 달콤한 꿀을 먹는 것에 비할 수 있었다.
나중에 그가 점점 자람에 따라 많은 경우 자신은 당시(唐詩)에 정말 특별한 애정이 있음을 알았다. 작문을 할 때면 늘 생각이 용솟음 쳐서 조금도 힘이 들지 않았다. 평소 생활 중에 늘 침묵했으므로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는 소박하고 좀 어리석은 아이였다.
나중에 거의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대법이 널리 전해져 법을 얻었고 그 후 마음속의 수수께끼가 점점 풀리기 시작했다. 그 때의 격동과 희열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 때 그의 사고는 점점 열렸다. 더욱이 1999년 7월 이후 생명이 세세생생 다져놓은 각종 연분과 쌓인 문화를 거친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대법의 인도 하에 각종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였다.
그는 또 북경에 들어가 호법을 시작했고 일부 자료점 일도 했다. 나중에 다른 동수와 협력하거나 글을 쓰는 일도 동시에 했다.
나중에 공능으로 법을 실증하는데 관한 글을 썼으며(숙명통 공능으로 윤회 따위의 글을 쓰는 것 포함) 문장의 품격에는 한가지 특징이 있었다. 바로 표면적으로 보기에 당시(唐詩)의 향기가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 글에는 몇 수의 시가 있기도 한데 비록 생명 특징의 자연적인 노출이긴 하지만 역시 인간 세상 중에서 다진 문화와 관련이 있다. 어쨌든 중화문화는 신전문화다. 당시(唐詩), 송사(宋詞) 모두 예외가 아니다.
여기까지 썼으니 한가지 중요한 문제를 말해야겠다. 그의 문장은 문필의 각도에서는 그리 좋지 않아서 많은 경우 모두 진실한 이야기를 썼다. 하지만 수련자나 수련하지 않는 사람을 포함하여 왜 많은 사람이 보고 싶어 하는가? 이것이 바로 종전의 연분 때문이다. 역사상 자신의 각도에서 말하면 문장의 결과로, 게다가 친척 친구 등 사회 관계의 연분은 사람들로 하여금 보게 한다. 당연 그것이 법에 부합함이 근본이다. 법연(法緣)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러면 이 점에서 말하면 역사상의 일체 연분은 모두 대법과 연을 맺기 위해 기초를 다진 것이 아닌가!!
이때 그는 더욱 근신한다. 비록 많은 일을 알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공능(윤회 포함)에 대한 일을 암암리에 거의 말하지 않았다. 예전처럼 겉보기에 아무 것도 모르는(그를 비교적 잘 아는 사람은 그를 이렇게 평한다) 사람 같다. 그저 금생에 묵묵히 자기의 사명을 완성하려고 할 뿐이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역사상 많은 명인들이 다 법을 얻었다. 어떤 사람은 수련을 잘했고 자신의 장기를 이용해 법을 실증하고 있다(공능, 글을 쓰는 등 각종 방식) 예를 들면 두보, 이상은, 구양수, 진관(秦觀), 신기질(辛棄疾), 이청조(李清照) 등이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역사상 우리가 비록 아무리 휘황했더라도 그런 것들은 모두 우리의 오늘을 위해 문화를 다진 것이며 우리는 그런 배역 자체를 중시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한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기회가 많지 않으니 소중히 해야 한다.
바로 이렇다.
居易人間伴修仙(미주)
輪回輾轉曆魔難
今朝得法專心修
救得萬眾樂在天
거이는 세상에서 신선수련하며
윤회전전 마난을 겪었는데
오늘 날 법을 얻어 전심 수련하며
많은 민중을 구하니 즐거움이 하늘에 있도다
[주] 이 구절의 표면적인 뜻: 백거이가 인간 세상에 수행을 했거나, 혹은 세간에 거주할 때 각지를 돌아다니며 수련을 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마음은 수련을 향했고 또 행동을 동반했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157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