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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중의 모반 – 전세에 받은 상해, 금생에 빚을 갚으라는 표지”를 읽고 난 느낌 – 순한 빚쟁이

작자/무쟁(無諍)

【정견망】

부모님은 운명에 아들이 없었다. 무신론 사회의 생활 중에 그들은 운명을 믿지 않으며 반드시 아들을 낳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4살 되던 해에 외할머니는 꿈을 하나 꾸었다. 꿈에 남색 도포를 입은 도인을 보았는데 손에 불진을 들고 있었다. 도인은 엄마더러 만약 꼭 아들을 낳겠다고 한다면 노인의 명으로 바꾸어야 하니 노인의 수명을 잘라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이 말을 듣고 꿈이 미신이라고 했다.

외할머니는 이어서 꿈 속의 도인의 말을 해주었다. 만일 네가 믿기지 않으면 내가 죽은 후 반드시 7일간 놔두었다가 다시 묻어야 한다. 엄마는 이 말을 듣고 아무 말도 못했다. 외할머니는 이어서 말하기를, 나는 정말 죽고 싶지 않다. 나는 몇 년간 네 아이를 봐주었으면 한다. 적어도 소흔아(小欣儿 예쁜이)가 크는 것을 보아야 한다. 소흔아는 나의 어릴 적 이름이다. 엄마는 더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줄곧 낳으면 확률에 따라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어떻게 노인의 수명을 자르는 것을 보겠는가?

이날 밤 외할머니는 잠이 들었고 다시 깨어나지 않았다!

(당부한대로) 외할머니의 시신은 방에 7일 동안 놓여 있었다.

영전을 지키는 사람 외에는 다른 사람 모두 각자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 오직 부모님만 밖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외할머니가 생전에 살던 방에서 잠을 잤다. 바로 이 칠일 안에 나이가 28세인 아빠와 엄마는 대역부도한 짓을 하였고 외할머니가 당시 태에 들었다.

외할머니가 아무 병이 없이 세상을 떠난 9개월 반 후 남동생이 태어났다!

부모는 부모의 목숨의 빚을 졌는데 어떻게 갚는가? 순한 빚쟁이, 외할머니가 전생한 동생이 완성을 한다.

외할머니는 현숙한 농촌 부녀였으며 일자무식이었다. 하지만 돈을 계산하거나 생활하고 밥짓는 일을 잘했다. 동생은 어려서부터 공부를 못했다. 고등학교 시험에 5과목에 3백점이면 붙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동생은 매번 시험에서 몇십 점만 받았다. 다시 말해 평균이 매 과목마다 몇 점 또는 십몇 점이었다. 동생은 연속 4년을 공부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했다.

어쩔 수 없어 동생을 군대에 보냈다. 동생은 병사가 된 후에도 잘 배우지 못해서 비적(도적)이 되었고 그래도 입단은 했다.

동생은 돌아온 후 철도 건축 공사 일을 했다. 그의 구체적인 일은 작은 작업반에서 보일러를 데우는 일이었다. 그 반에는 한 사람만 있었다. 일하는 사람들은 위에서 일하고 동생은 아래서 보일러를 지폈다. 동생은 속인의 질투심이 표현되어 나왔다. ‘무엇 때문에 내가 데우는데 너희들이 따뜻하냐?’ 그래서 어떤 때는 보일러를 많이 데워 사람이 뜨거워서 창문을 열어도 더울 지경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불을 꺼놓아 사람은 추워서 솜옷을 껴입어야 했다! 바로 이런 동생이었다. 매형이 상사라서 아무도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 나중에 방법이 없어서 그를 운전하는 곳으로 전근시켰다. 실제로 그를 먹여 살린 것이었다.

동생은 결혼한 후 우리 집 재산은 자연히 그들의 것이 되었다. 하지만 제수는 빈말만 하고 부양을 담당하지 않았다.

이때 나는 이미 수련을 했으므로 속인처럼 다투고 싶지 않았다. 나이든 어머니를 모셔와서 몇 년간 부양하다 생을 마치게 했다. 어머니는 임종 몇 년 전 후회하면서 젊었을 때는 아무것도 안믿었는데 죽도록 후회한다고 했다. 외할머니가 전생한 일은 어머니가 말해준 것이다.

나는 동생에게 여러 차례 공청단에서 탈퇴하라고 했다. 그러면 그는 늘 퇴단하면 그에게 돈을 얼마나 주는지 물었다. 그는 어떻게 해야 내 말을 들을까? 그에게 자료를 보여주어야 되는데, 시디 한 장 보거나 책을 하나 보아도 돈을 얼마 주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포기했고 그는 아직도 탈퇴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동생부부는 당당하게 유골함을 들고 돌아갔으며 어머니 장례를 시끌벅적하게 치러주었고 돈을 받았다.

내가 어머니를 모셨으므로 화장장에서 사람들은 부의금을 모두 나에게 주어야 한다고 했다. 내 생각에 동생이 올케 앞에서 체면을 좀 살려주는 게 좋다 싶어 가지지 않았다. 그 결과 동생은 수만 위안에 달하는 돈을 마침 중학 동창회 모임에서 전부 써버렸다. 그의 중학 동창이 말했다. 보세요, 사진 중에 이 사람이 학교 다닐 때 형편없었지만 지금 잘 나가지 않소. 우리 이번 모임의 돈은 전부 그가 다 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매우 괴로웠다.

나중에 생각해 보았다. ‘동생은 나의 할머니다. 그녀가 나를 네 살까지 키웠는데 나는 그녀에게 보답할 기회가 없었다. 그저 어머니만 봉양함으로써 갚을 수 있다. 그래서 장례 상조비를 기꺼이 그에게 주자. 그가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서는 그의 자유이다. 내가 왜 괴로워하는가?’ 그러자 괴롭지 않았고 생활은 또 평탄하게 지나갔다.

일은 또 몹시 뼈에 사무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친척이 또 편지를 보냈는데, 동생이 말하기를 내가 어머니를 모신 것은 자원한 것이지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효성스럽고 그들이 효성스럽지 않다고 하니 억울하다고 하며 내가 그들을 기분 나쁘게 했고 내가 그들을 기쁘게 하지 않으면 원만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내가 들으니 정말 뼈에 사무치게 가슴이 아팠다.

이것이 얼마나 악독한 저주인가, 정말 온화하게 빚을 받아가는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역시 나는 확실히 그들을 기분 나쁘게 했다. 내가 어머니를 모신 것은 외할머니에게 대역부도한 딸이자 그의 생명을 앗아간 원수(어머니)를 구한 것인데 그가 기쁠 수 있는가? 수련의 각도에서 말하자면 나는 그들이 업을 끝맺는 것을 저지했다. 이 때문에 그는 내가 그를 기분 나쁘게 했으니 원만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어머니에게 효도한 것은 확실히 내가 자원한 것이다. 사부님은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도 좋게 대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하물며 어머니인데. 또한 나는 우리가 어떤 악연이라도 대법은 해결할 수 있다. 다만 나는 반드시 법의 요구에 따라 원한도 후회도 없이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왜 동생을 비적이라 하는가? 내가 직접 내 동생이 두 차례 어머니를 사지에 처하게 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모두 일부러 내가 늦지도 이르지도 않게 발견하도록 한 것이다. 이 역시 어머니의 목숨이 끊어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동생의 체면을 위해 나는 그를 폭로하지 않았다. 아울러 자원하여 어머니를 모셔와서 봉양했다. 뜻밖에 내가 노력을 아무리 해도 이같이 악독한 저주를 받았다.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정말 이 저주를 지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만일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나도 이처럼 높은 자태가 있지 않을 것이다. 마침 내가 대법을 수련하기에 이 저주는 파룬이 한번 돌만한 가치도 없다. 그래서 저주는 소용이 없었다. 사실이 이 같아 그는 내가 분명 죽도록 화가 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화로 알아보니 내 음성이 매우 즐거웠다. 그래서 그는 즉시 자기가 화가 났다.

사실 나는 이 반생에 확실히 일이 매우 엉켰다. 나는 금생에 태어나면서부터 총명하고 선량하며 부지런하고 용감해서 직장이든 사회든 가족이든 나는 누구에 대해서도 성실히 대했다. 하지만 그래도 좋은 보답은 오지 않았다. 마침내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단번에 풀렸다.

나는 꿈에서 내가 자희태후(청나라의 서태후)가 전생한 것임을 보았기 때문이다! 자희야, 자희야 네가 생전에 얼마나 많은 나쁜 짓을 했는가?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액운이 얼마나 많았을까? 현재까지 살아있을지 말하기 어렵다. 더 많은 사람이 나 같이 대법에 동화되기를 희망할 뿐이다!

내 동생이 하루 빨리 수인을 지우고 아름다운 미래로 들어오길 희망한다.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48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