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윤회기실: 용문조상(龍門造像)

작자/석방행(石方行)

【정견망】

들어가는 말: 한 사람이 생명의 긴 흐름 중에서 잘못을 면하기란 어렵다. 어떤 사람은 잘못을 범한 후 한바탕의 곡절 끝에 진심으로 잘못을 고치고 어떤 사람은 줄곧 고집스레 행하고 끝까지 잘못을 범한다. 전자는 좋은 미래가 있을 것이고 후자는 마땅한 보응을 받는다. 지금처럼 파룬궁 진상이 일찍이 환히 밝혀진 때 중공 사당 체제 내의 사람 중 어떤 사람은 시비를 구분할 수 있어 잘못을 고치지만 어떤 이는 여전히 고집을 피워 대법제자를 박해한다. 그러면 그를 기다리는 것은 하늘의 이치, 법률의 보응과 징벌이다.

세인들의 마음 밑바닥에 존재하는 선념을 일깨우기 위해 본래 나는 전적으로 윤회관련 글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 다시 붓을 들어 최근 몇 년에 알게 된 윤회 이야기를 써낸다. 무슨 직업에 종사하던지 오직 마음속에 선념이 있다면 우리는 곧 쉽지 않은 역사의 기연을 소중히 여기길 희망한다.

본문이 설명하려는 것은 한 사람이 잘못하고 성심으로 잘못을 고쳐 최후에 성공한 경력이다.


용문석굴 동산전경


용문석굴 봉선사 전경

며칠 전 우리 몇몇 친구들이 함께 낙양 용문 석굴을 보았다. 나로서는 두 번째 방문이었다. 이번 느낌은 지난번과 달랐다. 지난번 여기에 왔을 때 표면상의 석굴 조각을 본 외에 과거 불상을 만들 때 장면들이 다 쉽지 않음도 보았다. 그러나 중점은 상을 만드는 장인의 신앙과 힘든 정도에 두었다. 상을 조각하는 일들은 너무나 많아 과거의 일부 자세한 내용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몇 친구들은 사진을 찍느라 바빠 나와 당시 정황과 윤회의 경력을 이야기 나눌 시간이 없었고 나도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또 본 장면에 대해 정리를 하지 않았다.

8년의 시간이 지나 다시 옛 명승지에 놀러 왔는데, 석굴은 산문이 임시로 바뀐 이외 그 속의 것은 무슨 큰 변화가 없었다.

우리 일행이 이곳에 왔을 때는 이미 황혼 무렵이었다. 관리직원은 6시에 문을 닫는다고 했다. 참관 시간이 오직 2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는 다음날 일정 때문에 그래도 표를 사서 들어갔다. 당시 햇빛이 어두웠기 때문에 여기에서 사진을 찍어도 똑똑하지 않았고 소용없었다. 본문은 단지 인터넷에서 찾은 사진 두 장을 배경으로 삼는다.

내가 한번 와 봤기 때문에 길 안내를 했다. 빛이 좀 어두워 일부 동굴은 그리 똑똑히 보이지 않았다. 동굴 곁을 걸어갔을 때 그 위에 “삼세불(三世佛)”이라고 쓰인 것이 있는데 그 안에는 삼존의 불상이 있었으니 바로 미래불, 현재불, 과거불이었다. 내 친구 소립아와 대성이 모두 다가가 보았는데 즉시 한 장면이 나의 눈앞에 반영되었다.

여기 당시 이미 계속해서 많은 동굴을 뚫었고 또 일부는 뚫는 과정에 있었지만 아직 전성기(당나라)는 오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이곳은 당시에도 이미 시끌벅적했다.

당시 어느 명문가에서 대성(大成 당시 인근에서 유명한 장인)이란 사람을 고용해 이 동굴을 뚫었다. 그가 한 불두(佛頭)의 윤곽을 막 파냈을 때 그 집에서 고용한 하인(여기서도 소립아라 부른다)이 그에게 밥을 가져다주었다. 평소 이 집의 요리는 아주 맛있었다. 그리고 술도 주었지만 실수할까 봐 매우 조금 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소립아가 술을 단번에 많이 따라주었다. 또 대성은 본래 술을 잘하지 못하므로 많이 마시자 대성은 탑을 세우는 임시 장막 속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소립아는 담이 매우 크고 호기심이 강한데다 겨우 약관의 젊은이였다.

그는 대성이 이미 불두의 윤곽을 파낸 것을 보고 손이 좀 근질근질했다. 그래서 망치와 끌을 들고 한번 뚫어보았다. 그는 불상을 깎아본 적이 없기에 몇 번 노력을 하자 곧 원래 윤곽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가 보니 모양이 말이 아니고 힘도 그리 세게 쓸 수 없으므로 세밀하게 깎기 시작했다. 한참 힘을 들여 원래의 모양을 일부 회복했다. 그러나 일부분은 원상을 회복할 수 없었다. 그는 큰 화를 당할 것 같아 곧 밥그릇을 버리고 도망갔다.

알아야 할 것은 당시에는 불상을 깎는데 장소 선정도 마음대로 하지 않았다. 먼저 신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을 모셔 와야 했고 심지어 법사(法事)를 행해 부처님의 도움을 청했다. 이런 동굴을 파내는 행위는 사람들이 예불하고 존경하고 신앙을 기울이는 방식만이 아니라 일종 수행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불상을 깎아내는 일을 통해서 자기 심신 경지를 고치고 제고하며 동시에 신불의 보우를 얻을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죽을 때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기를 바란다. 대체적으로 여기에 석굴을 파는 목적은 기본적으로 이렇다. 물론 더욱 복잡한 일부 구하는 바가 섞여 있다. 부처님께 오곡이 풍년하고 가족이 평안한 등을 보호주기를 희망한다. 감숙성에 있는 둔황석굴의 수행 요소는 더욱 많다. 만일 금생에 내가 둔황에 갈 기회가 있다면 그곳의 일부 문화 내포와 상세한 내막을 정리할 것이다.

대성이 깨어나 보니 이미 깎아낸 불상 윤곽이 자기가 잠들기 전의 모습이 아닌 것을 알고 대노를 금할 수 없었다. 소립아를 찾아 물어보려 했으나 반나절을 찾아도 그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도 소립아를 찾지 못하자 어쩔 수 없이 불상을 계속 깎았다. 불상을 자세히 보고 유명한 장인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그는 원래의 도안을 고쳐 새 도안에 따라 팠다. 보기에 더욱 아름답고 더욱 부처의 장엄과 신성이 드러났다. 파는 과정도 역시 매우 힘들었다. 그러나 어쨌든 대성은 여전히 임무를 훌륭히 완성했다. 나중에 대성은 여기서 다른 주인이 낸 자금으로 동굴을 파는 일을 맡았다.

대성을 잠시 내려놓고 소립아 이야기만 하자. 그는 도망친 후 장안 일대에 떠돌아 다녔다. 처음에 작은 장사를 했는데 나중에 돌을 파는 업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 그는 자기가 일찍이 용문 석굴 중에 대불상을 판 적이 있다고 허풍을 떨었고 유명한 공인 대성이 친구이며 또 그를 따라 조각하는 기술을 배웠다고 했다. 어쨌든 말로 큰소리치며 그야말로 자기의 재주를 자랑해댔다.

이 말을 그곳 관리가 우연히 들었다. 그 관리는 마침 돌사자를 깎으려 하고 있었다. 그가 자기의 기술이 이렇게 좋다고 불어대니 그래서 정말 그에게 돌사자를 파게 시켰다. 그는 그 말을 듣고 즉시 놀라 두 다리가 벌벌 떨렸다. 그는 만일 잘못 깎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았다. 그래서 일을 그만두고 그날 밤 장안에서 사라져 멀리 도망갔다.

이 지방에 이름을 숨기고 조용히 숨어 산지 몇 년, 그도 몇 명 좋은 친구를 알았다. 한번은 술을 많이 마셨을 때 과장하는 병이 또 도졌다. 사람들에게 자기의 조각 수법이 얼마나 좋은지 허풍 떨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친구가 그 말이 진짜라고 믿고 집에 돌아가 식구들에게 알렸다. 공교롭게도 그 집은 조정의 어느 고관과 먼 친척이었다. 이 고관도 마침 이곳을 지나는 중이었는데 또 비석 하나를 파려고 했다. 이것은 섬세한 일로서 솜씨가 좋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다음날 그의 친구가 그에게 이 일을 부탁하려고 했을 때 그는 자기가 술 마신 후 실언한 것을 매우 후회했다. 하지만 친구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맡았다. 하지만 그는 자기 종전의 경력을 친구에게 설명하며 며칠간 외출해야 한다고 했다. 친구는 그가 그래도 잘못을 승인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그가 다시 도망가지 않을 것이라고 그를 믿었다.

그는 매우 먼 지방에서 낙양으로 돌아와 대성을 찾았다. 자기의 잘못을 승인하고 마지막으로 정말 대성을 따라 조각하는 솜씨를 배우겠다고 하며 대성에게 이 비석의 조각을 완성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다. 대성은 소립아를 보았을 때 매우 화를 냈으나 나중에 그가 잘못을 고치는 것을 알고 또 솜씨를 잘 배우려고 하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응낙했다.

그들은 함께 그곳으로 돌아와 대성의 도움 하에 비석을 재빨리 깎았고 그 조정 관원의 호평을 들었다. 나중에 그들은 또 많은 조각의 일을 맡았다.

십여 년이 지난 후 한번은 소립아의 조각하는 솜씨가 대성에 비해 거의 못지않게 되었을 때 그는 대성에게 말했다. 자기는 불상을 조각한 적이 없어 유감이며 좀 큰 불상을 다시 조각했으면 희망했다. 대성은 말했다. 요즘 우리도 돈을 좀 벌었는데 우리 함께 용문으로 돌아가자. 이번에는 네가 주로 깎고 내가 옆에서 가르쳐 줄게. 그는 즉시 동의했다.

그렇게 그들은 용문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서산에서 (이곳에는 당나라 때 백거이가 살던 숲과 장개석이 살던 별장이 남아 있다) 팠다. 파는 과정 중 부처가 나타났고 그에게 옷의 세부적인 부분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들이 파는 불상은 정말 진짜같이 세밀한 부분도 잘 드러났다. 이뿐만 아니라 완공할 때 칠보색의 불광이 불상 주위에 나타나서 보는 이마다 놀라서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피차 이 일생 중 겪은 일부 일을 통하여 자기의 도덕과 심성 경지를 제고했다. 그 생이 끝날 때 그들은 서로 간에 생명 경지 상에서 많이 제고되어 삼계 내의 약간 높은 층차에서 3백년을 향수했다. 삼백년 후 그들은 또 윤회로 들어갔다.

바로 다음과 같았다.

손재주 없이 불상을 건드렸는데교묘히 졸작을 고쳐 제대로 만들었네곡절 끝에 잘못을 반성하고전심으로 재주를 배우니 광명이 내렸구나!

無有手藝來造像弄巧成拙改原樣曆經周折思己過潛心學藝光明降!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248675